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인테리어 계약은 공사금을 선지급하는 관행 탓에 소비자가 돈을 내고도 ‘을’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자 판정도 업자의 전문성에 맡길 수밖에 없어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의뢰인이 “2평 화장실 공사가 50일 가까이 지연됐다”는 호소와 함께 업계의 고질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양새다.
지난달 29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엔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 A씨는 “운영하는 음식점의 2평 남짓한 화장실의 남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 중”이라며 운을 뗐다.
A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 8월11일부터 한 인테리어 업체에 남녀 공용화장실을 분리하는 공사를 맡겼다. 계약서상 공사 기간은 10일이었지만 업체는 일주일에 한두 번만 현장에 나왔고, 때로는 오후 늦게 와 1~2시간 일하다가 돌아갔다.
그 때문이었을까? 50일이 지나도록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업체는 바닥 배수로 두 곳을 팔 때 장비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A씨는 “공사 완료 시점을 물어볼 때마다 업주는 ‘이번주에 끝날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설치된 변기도 중저가 브랜드라 자재비를 아끼려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식당 영업에도 지장을 준다”며 “손님들이 화장실을 찾을 때마다 사정을 설명해야 하고, 단골들은 ‘대체 그 업체는 어디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며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업체 10곳 이상을 미팅한 끝에 나름대로 신중히 선택했지만, 지금은 후회가 된다. 공사비 전액을 선입금한 것도 잘못된 결정이었던 것 같다”며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글을 접한 회원들은 “전액 선입금해서 당신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저러다 싫은 소리 하면 연락이 두절되는 업자도 많다” “공사비 일부만 선입금한 뒤 분할 입금하는 것으로 계약해야 했다” “작은 화장실 공사는 빠른 업체의 경우 3일 만에도 끝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선 이른바 ‘먹튀’ 논란이나, 하자가 발생했음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업계의 행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인테리어 공사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지난 2017년 359건에서 2021년 568건으로 늘었으며, 부실 시공(406건), 공사 지연 등 계약불이행(398건), 하자 보수 지연·거부(237건) 등 피해 유형도 다양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조정위)는 3530만원 규모의 인테리어 공사 후 베란다 창호 유리에 균열이 발생한 사건에서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자 보수 요구에 업체는 보증 기간 만료를 이유로 거부했지만, 조정위는 소비자 책임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상 보수를 명령했다.
앞서 지난 2017년에도 총 4850만원 규모의 인테리어 공사에서 현관 바닥 자재 변경, 벽지 곰팡이, 환기시설 부실 등 계약과 다른 시공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재시공을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업체 측은 “제품만 제공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조정위는 자재 변경과 부실 시공을 인정해 손해배상금 10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인테리어 공사 분쟁에서 소비자는 사기를 당한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형사 책임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공사가 일부 진행된 상황에서 업주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발뺌할 경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6개 인테리어 중개 플랫폼의 불공정 약관을 시정하는 한편, 주요 플랫폼 4개사와 ▲전문건설업 등록 표시 ▲고액 공사 시 유의 사항 고지 ▲표준계약서 사용 권장 ▲악성 시공업체 모니터링·제재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정보제공 강화 및 분쟁 해결 자율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인테리어 분쟁 예방을 위해 국토교통부 고시 표준계약서 사용 및 공사 기간, 하자 보수 범위 명시를 권장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표준계약서를 기준으로 업체 계약서와 비교하고, 대금은 착공 50%, 중도 30%, 완공 20%와 같은 분할 지급 방식을 적용하는 등, 계약 단계에서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도 공사 진행분에 해당하는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100% 선지급은 피해 위험을 키운다”고 말했다. 업체 선정과 관련해선 “포트폴리오를 통해 실제 시공 사례를 확인해야 한다”면서 “시장 평균보다 지나치게 낮은 견적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일요시사>는 1일 A씨에게 ▲업주와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 ▲계약서상 공사 지연 배상책임 명시 여부 ▲소비자원에 도움을 요청했는지 등을 확인하고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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