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수양딸 사기사건 풀스토리

탈북자 돕자더니…야금야금 30억 ‘꿀꺽’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 김모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미군기지 내 투자 사업을 빌미로 지인들에게 투자금을 받은 후 사업을 무기한 지연시키는 등 총 30억대의 사기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경찰조사에서 드러난 피해금일 뿐 실제로는 100억대에 이른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10일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2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그의 얼굴에 먹칠한 수양딸 김모씨의 뻔뻔한 사기사건이 드러났다. 김씨는 2009년부터 지인 윤모씨와 합심해 3년간 개인 사업가 3명에게 8차례 걸쳐 총 3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받은 후 사업을 무기한 지연시키는 사기행각을 벌였다. 피해자 가운데 1명은 투자자 7∼8명이 100억대의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수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인 끌어들여
계획적 사기행각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황 전 비서의 생존 당시 피해자 차모씨 등 3명으로부터 각각 21억원·5억원·6억원을 가로챘다. 김씨는 재력가 3명에게 용산 미군기지 내 육류납품, 고철처리, 매점운영 등 각종 용역 사업에 투자할 것을 권유한데 이어 미국으로부터 미군기지 내 100여 개에 달하는 거대 수익사업을 탈북자 사업을 위해 위탁받았다며 투자를 유도했다.

투자자금 횡령을 목적으로 피해자들을 꾀어내기 위해 언급한 녹취록을 피해자들 중 1명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기행각에 대한 증거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김씨가 황 전 비서의 수양딸이라는 점과 미 8군 중장 비서를 사칭한 모 중년여성이 사업을 보증하자 신뢰를 갖고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3명 가운데 2명은 과거 황 전 비서의 강연을 듣고 줄곧 존경심을 가졌던 사업가들이었고, 나머지 1명은 ‘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의 직원이 소개한 사람이었다. 김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재력가 3명은 김씨의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은 후 마음 놓고 투자했지만 김씨 등의 사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고 투자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미군부대에 찾아가 사업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씨 일행의 계획적인 사기행각이 탄로 났다.


미군 사업 빌미로 투자금 32억원 가로챈 혐의
투자자 100억원 피해 주장…수사 확대 불가피

경찰은 이번 사건을 황 전 비서의 대외적 신뢰와 지명도를 이용,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운 집단 사기극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황장엽이란 이름만 보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거액을 투자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 황 전 비서가 생전에 이 사업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미 8군 중장 비서를 사칭 했던 중년여성도 미 육군 범죄수사대 조사 결과 미군 부대에서 일한 적도 없는 여성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의 투자금은 김씨 아들의 법무법인 계좌와 미 8군 중장 비서를 사칭한 공범의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항간에서는 김씨가 회사를 아들 명의로 신청한 것은 엄연히 탈북자를 위한 사업인데 황장엽 수양딸이 직접 사업을 하면 외부에서 좋지 않은 눈초리로 보는 게 뻔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공범 윤씨는 김씨와 10년 지기로 알려져 있으며 김씨의 사건이 보도되기 전 이미 어디론가 잠적한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며 단지 지연되고 있을 뿐 사기는 아니다”라며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의 해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경찰의 지속된 추궁 끝에 김씨가 실체 불분명한 유령사업을 진행했던 사실이 낱낱이 드러난 것. 김씨의 얄팍한 변명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처럼 날아가 버렸다.

결국 김씨는 지난 17일 차씨 등 3명에게 투자를 권유, 3년간 30여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서울남부지법 박강준 영장전담판사는 “혐의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김씨는 누구?
신분 설왕설래

그렇다면 김씨는 누구일까.
김씨는 1997년 황 전 비서의 망명을 중개했다. 이후 황 전 비서가 별세한 2010년 10월까지 무려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황 전 비서의 곁을 지킨 유일한 법적 가족이다. 워낙 베일에 싸여진 인물이라 항간에서는 김씨를 두고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의 여동생이다’ ‘북파공작원이다’등 말들이 많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김씨는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정보기관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난 단지 기독교인으로서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갖고 활동했다”고 딱 잘라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모교에서 영문과 교수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황 전 비서가 망명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당시엔 김 전 대통령에게 황 전 비서의 친서를 수차례 전달하며 중개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씨와 황 전 비서와 인연이 시작된 것은 1995년 중국 신양에서 처음 대면했을 즈음이다. 김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황 전 비서가 자신을 처음 본 후 ‘남한에 이렇게 정직한 여자가 있느냐’고 언급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김씨는 1998년 12월 황 전 비서의 호적에 이름을 올렸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아버지와 딸’보다는 ‘동지’에 더 가까웠다. 김씨는 황 전 비서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 대표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황 전 비서의 안전가옥에도 자주 들렀다. 둘은 인연을 맺은 후 사소한 것부터 기밀적인 부분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피보다 진한 교감을 했다.

특히 황 전 비서는 망명 이후 김씨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기 전까지 “내가 심리적 안정이 안 되니 부녀의 연을 맺자. 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이 내게 안정을 준다”며 간곡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에 대한 신뢰와 애착이 컸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황장엽 이름만 믿고 거액 베팅”
철저한 사전 계획 세운  사기극

일각에선 황 전 비서의 망명 중개를 시작으로 세상을 등지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꿋꿋하게 곁을 지킨 김씨에 대해 ‘황 전 비서가 남긴 거액의 유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김씨에 대한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했지만 측근들은 황 전 비서가 타계한 직후까지도 김씨를 대가 없이 황 전 비서의 곁을 지켜왔던 지고지순한 수양딸로 인식했다.

그러던 중 김씨는 황 전 비서의 별세 직후 두 얼굴을 드러냈다. “아버지의 재산을 돌려달라”며 살아생전 황 전 비서의 의식주 문제 등을 돌본 엄모씨를 상대로 9억원대의 재산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

김씨는 소장에서 “황 전 비서는 지난 2001년 10억여원이 들어있던 자신의 통장을 해지했고 그 중 9억원을 엄씨에게 전달했다. 황 전 비서로부터 9억원을 건네받은 엄씨는 그 돈으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대 토지와 건물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황 전 비서가 남한의 경제사정에 어두웠던 점, 사회적 지위나 인지도 상 부동산 매매계약의 대상자로 섣불리 나서기 곤란한 입장이었던 점을 미루어 자신을 돌봐준 엄씨에게 대신 계약을 체결하도록 맡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부동산 구입당시 엄씨는 매매대금을 지불할 만한 능력을 갖지 못했다. 수상한 것은 엄씨가 계약한 해당 부동산의 잔금 지급 하루 전에 9억원이 들어있는 황 전 비서의 예금계좌 2개가 해약된 점이다. 평소 큰돈을 사용하지 않던 아버지가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 엄씨 측에 거액을 지급한 것이 분명하다”며 “구입한 부동산의 소유권은 엄씨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매매대금은 부당하게 취득한 이득이므로 엄씨 명의로 돼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대 토지와 건물의 실소유자는 아버지”라고 강조했다.

숨겨왔던 욕망
드디어 드러내

그런데 이 소송에서 제기된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 엄씨가 그토록 황 전 비서 곁을 오랫동안 지켰으며 ‘둘이 과연 아무 사이도 아니었을까’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수양딸인 김씨보다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떠돌면서 각종 매체는 숱한 취재 끝에 엄씨가 황 전 비서의 사실혼 관계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황 전 비서보다 38세 연하인 엄씨는 측근에서 그를 돌보며 사실상 황 전 비서의 비서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수년간 같이 생활했던 엄씨와 황 전 비서 사이에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인 황 전 비서를 쏙 빼닮아 평소 황 전 비서가 늦둥이 아들 엄군을 무척 귀여워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엄씨는 입국 후 국가정보원 측이 추천한 비서 후보들 가운데 황 전 비서가 직접 선택한 여성으로 현재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하지만 황 전 비서의 호적에는 황 전 비서의 부인과 아들이 올라있지 않아 아들의 성은 ‘황’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1997년 망명 중개…이듬해 호적에 입적
사실혼 부인에 작고 후 9억대 재산 소송

황 전 비서가 사망하기 전 자신의 재산을 수양딸 김씨에게 상속하고 그 중 일부를 엄씨와 그의 아들에게 분배할 것을 부탁했다는 설도 나돌았다. 엄씨 측근은 한 언론에 “황 전 비서의 상속인은 수양딸이다. 황 전 비서는 사후 자신의 재산을 일단 수양딸에게 넘긴 뒤, 자신의 어린 아들과 부인에게 분배토록 약정서 같은 것을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언론에서는 황 전 비서가 남긴 상당한 유산으로 인한 수양딸과 사실혼 관계의 부인 간 분쟁 가능성도 제기했다. 황 전 비서의 사망 장소인 안전가옥이 국가재산이 아닌 개인소유지라는 말도 나왔기 때문에 재산싸움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전혀 사실무근이며 남한에 남겨진 가족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황 전 비서의 스캔들에 대해선 “국정원 내 안가에서는 모든 게 통제가 된다. 24시간 관리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어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고 악의적으로 유포한 것이다. 만약 아들이 정말 있다면 우리에게는 돌볼 책임이 있다. 어른을 부검할 때 구강 내 점막을 떼어놓았다. 언제라도 유전자 감식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씨는 지난 4월 엄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결국 김씨가 엄씨와 그의 아들의 존재를 끝까지 부인한 진짜 이유는 ‘황장엽 체면 세워주기’가 아닌 ‘거액 유산 혼자 먹기’가 된 셈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황 전 비서가 엄씨에게 토지를 명의신탁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며 사실상 부부로 지낸 엄씨에게 재산을 증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남의 것 탐하다
망신살 뻗쳐


엄씨를 상대로 낸 9억원대 재산반환 소송과 아버지의 이름값을 빌려 재력가들을 상대로 벌인 30억대 사기행각. 분수에 맞지 않는 끝없는 욕심이 결국 파국을 불러왔다.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오랜 시간동안 고인을 모셔왔다고 자부한 김씨는 돈 한 푼 없이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아버지를 함부로 모함하지 말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쇠고랑을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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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