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100조 꿈꾸는 물류 베테랑 승부사 신재명 큐런그룹 회장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24 09:08:01
  • 호수 1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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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큐’하면 우린 무조건 ‘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넘쳐나는 택배 물량을 소화하는 배송 기사들은 운송료를 받는 데만 한 달을 기다린다. 배송을 주선하는 운송사가 운송료를 선결제해주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신재명 큐런그룹 회장은 화물차주들의 고된 현실을 해소하고자 물류 네트워크 개발에 나섰다.

2020년 큐런을 설립한 신재명 회장은 꿈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였다. 배송의 속도와 품질을 높이기 위해 물류 업계에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찾아 해결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국내 42만군데가 넘는 물류 회사들 속에서 문제 해결 중심 원칙을 외치는 신 회장을 만나봤다.

주문과 동시에

과거엔 물류 운송을 위한 인프라나 인력, 장비에 대한 비용이 저렴했다. 과거에 비해 현재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요인과 불경기가 맞물려 효율적인 비용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 회장은 “대리점만 늘리는 물류 시스템으로는 페인 포인트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큐런은 대리점망을 구축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세워 IT 플랫폼을 통한 배송 네트워크의 안정화를 우선시할 계획이다. 수도권의 주요 거점을 마련하고 주문과 동시에 직접 배송을 실현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배송 네트워크가 완성돼야 한다.

신 회장은 “배송 기사들의 안정적인 수익, 그리고 빠른 선지급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며 “큐런은 배송 기사를 존중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일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들의 업무 만족도가 배송 네트워크의 안정화를 의미한다는 뜻이다.


신 회장은 “미배송, 오배송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기사들을 존중하는 것”이라며 “결국 화주들도 큐런을 믿고 화물을 맡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큐런은 기사들을 위한 자금 지원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물류 주선이 주요 사업인 큐런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류 주선 업계에선 강점을 갖고 지속하고 있는 데 더해 더 빠른 배송 속도를 요구하는 고객의 만족도를 충족시키려는 기업이다. 큐런은 경쟁사가 범람하는 업계서 차별화를 위해 ‘24시 번개배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 회장은 최근 물류센터 매입을 위해서도 분주하다. 1만5000평 규모의 수도권 물류센터 3-4개를 확보해 수도권에 라스트마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국방 물류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윤국 전 국군수송사령부 소장을 부사장으로 세워 군수송 분야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류 네트워크 개발 선진화 주도
24시 번개배송···4년 내 100조 목표

신 회장은 “이미 소비자들은 빠른 배송에 대한 경험이 쌓여 있다. 더 빠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다음 날 배송해준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큐런의 24시 번개배송은 조금 다르다”며 “6시간 내 배송을 기획하고 PT하는 과정서 ‘택배’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기존 택배 시스템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택배는 집하가 중요한 데 고객의 주문과 동시에 빠른배송이 가능하도록 촘촘한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20개 정도의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주간에 빠르게 배송해주거나 새벽 배송으로 서비스가 진행되는데 큐런은 24시간 언제라도 주문이 들어오면 6시간 안에 배송을 완료하려고 한다. 이 과정서 1분이라도 시간을 허비하는 방식을 배제할 것”이라며 “기존의 택배처럼 집하 개념이 아닌 자사몰을 운영하고 빠른 배송이 필요한 기업에 큐런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을 잘 아는 신 회장은 수기 송장과 수기 계산서가 사용되는 불편함과 전화로 배차하는 아날로그 방식까지 없애면서 배송 속도를 더욱 키우겠다는 설명이다.


인터뷰 내내 신 회장의 휴대전화 3개는 쉴 틈 없이 울렸다. 현장 업무도 직접 관리하는 그는 회장이라는 직에 걸맞은 권위적인 이미지보다 실무자 모습에 가까웠다. 물류 기사들과 통화하는 업무서 그는 설득을 통한 상호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스스로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집념이 보였다.

신 회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흐름에 맞춰서 준비를 지속하고 있고 그 과정서 직접 현장을 지휘하면서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큐런이라는 상호도 고객이 ‘큐’를 외치면 ‘런’하겠다는 직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며 “큐런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서비스인 ‘24시 번개배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는 언제라도 6시간 안에 배송하는 서비스다. 현재 전산 개발은 끝난 상황이며 서울 수도권에 5개의 거점을 확보해 최종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이 직접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이유는 ‘실력으로 승부하자’는 그의 철학과 맞아떨어진다. 최근 신 회장이 직원들 앞에서 발표한 매출 100조 달성 목표는 실무자로서의 자신감으로부터 비롯됐다. 큐런은 지난 1월6일 ‘2025 신속히 도약해 비상하자!’라는 주제로 열린 워크숍서 이같이 발표했다.

당시 큐런그룹 계열사인 큐런네트웍스, 시사픽, 짐플러스 임직원들이 참석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권안식 규런네트웍스 총괄고문은 “큐런맨이 물류산업 전반에 관한 핵심 포인트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강연에 나선 이현우 전 CJ대한통운 대표이사는 “큐런그룹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도약하고 비상하기 위해선 국내외 현황을 면밀히 분석해 리스크를 줄이고 큰 비전을 품어야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신 회장은 “전 계열사 임직원이 전략적 비전을 갖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었다”며 “앞으로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고 직원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해 임직원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큐런 임직원들의 의기투합은 신 회장의 리더십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배송 기사님을 위한 회사
운송료 선결제 도입 호평

큐런을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신 회장은 “현장에 일하는 사람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한 일인데, 배송 기사들의 경제적인 여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선지급 구조를 만들겠다”며 “기사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상생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다. 물류 업계는 기존 시장의 파이를 나눠 먹는 형태다. 이 과정서 회사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피해를 받는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큐런은 물류인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이들과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마무리했다. 실제로 보름서 한 달 뒤에나 운송료를 받는 기사들은 체감상 결제에 걸리는 시간을 60일처럼 느낀다고 한다.

당당한 그에게도 과거의 아픔은 있었다. 지난 2022년 큐런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고난이 찾아왔다. 큐런은 당시 큐런 택배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그러나 기존의 택배와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신 회장이 과거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큐런 그룹서 겪지 않도록 계획한 이유다.

한편, 신 회장은 전문가 수준의 무예가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4월 대한합기도무예협회장으로 취임한 바 있다. 신 회장은 (사)대한합기도무예협회장 취임식서 “합기도인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합기도의 과학화와 지도자 양성에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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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은 “특히 대한합기도무예협회의 목적인 합기도 사범의 해외 파견과 초청, 국제교류, 국내외 합기도 대회 개최, 합기도 관련 서적과 역사 편찬 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임기 중에 속도를 내서 목적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합기도무예협회 공인 6단이다. 또 지난 2년간 (사)한국권투협회 제3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권투 종목의 위상 제고와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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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