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정치 사법화’ 실상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1.13 10:23:25
  • 호수 1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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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 비싼 ‘아무 말 대잔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과 체포 시도가 현실화하자, 국민의힘의 선을 넘은 법률 왜곡 언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정당해산심판 요구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왜곡화·정치의 법 선동화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가 지난달 27일 가결되자, 국민의힘은 의원 108명 전원 명의로 즉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주진우 의원은 “총리로서 ▲법률안 거부권 행사 건의 ▲비상계엄 국무회의 심의 반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 등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당하게 수행한 직무일 뿐, 탄핵 사유라 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결집 유도
불순 의도

같은 달 31일엔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변호인단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권한 없는 영장 청구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내란죄로 체포영장을 발부해 대통령의 헌법 수호와 비상계엄 선포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권한쟁의심판은 2개 이상 기관이 특정 권한의 존재 여부와 범위를 놓고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권한쟁의심판은 다툼을 하는 당사자가 직접 대립하는 구조기 때문에, 심판을 청구하려면 당사자 능력과 당사자 적격을 갖춰야 한다.

한 총리 탄핵소추에 문제가 있다면, 한 총리가 직접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취지다. 제3자인 국민의힘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 자체가 없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도 특이하다. 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불만은 ‘개인 윤석열’이 법원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해 표현할 수 있다. 또 영장이 발부된 자체가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의미한다.

이는 법원의 판단을 놓고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법원의 체포영장 적법성을 다투고 싶다면, 체포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하면 될 일”이라며 “해괴한 절차를 언급하는 것은 오직 시간 끌기를 통해 극단적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참가한 윤갑근 변호사는 같은 날 “공수처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만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한 영장 쇼핑”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법 제31조는 공수처 사건의 제1심 재판 관할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 조항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다른 법원에 기소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단서가 있다. 또 법률엔 명백히 제1심 재판이라고 규정돼있다. 체포영장 청구는 피의자 신병 확보 절차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지, 윤 변호사의 주장대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5일 윤 대통령 측이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하는 것으로 윤 변호사의 주장에 대한 답변을 갈음했다.

강성 지지자들에 “방해해 달라”
탄핵·체포 과정 비상식적 주장


윤 변호사는 지난 2일, 형사소송법 역사에 길이 남을 주장을 이어간다. 그는 “경찰기동대는 관련법상 체포영장 집행 권한이 없다”며 “기동대가 공수처를 대신해 체포·수색영장 집행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이라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시민 누구에게나’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현행범은 일반인도 체포할 수 있다. 다만 현행범 체포엔 ▲범죄의 명백성 ▲체포의 필요성 등 적법 요건이 필요하다. 또 공조본은 “경찰기동대는 관저 주변 집회시위 관리 및 질서유지 업무만 담당했다”고 반박했다. 시민들은 관저에 들어갈 수 없다. “경찰기동대와 시민의 충돌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소지가 남는다.

아울러 “다수의 언론에 배포할 목적으로 작성돼 공연성이 인정되는 입장문을 수단 삼아,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해달라’는 특수공무집행방해를 부추긴 것 아니냐”고 해석될 위험이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과 충돌했다면, “특수공무집행방해 교사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함께 제기됐을 것이다. 교사행위의 방법은 제한이 없다. ‘유혹’도 교사행위 방법에 포함된다.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에 대해서도 비상식적인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은 지난 3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 중 형법상 내란죄를 사실상 철회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총력을 기울여 “내란죄 철회는 소추 사유 중대 변경이므로 각하해야 한다”이란 주장을 퍼트리고 있다.

그러자 대리인단은 “내란 행위를 심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변함없다”며 “형법상 내란죄가 아닌 헌법 위반으로 주장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탄핵 심판의 논점을 ▲12·3 비상계엄 사태 전반의 헌법 위반 ▲계엄 절차 관련 계엄법 위반 ▲형법상 내란죄 논란 등으로 정리했다. 대리인단의 형법상 내란죄 철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용 자체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기준을 바꾼 것이다.

헌법 위반·형법 위반을 모두 포함해 탄핵소추했지만, 형법 위반을 다투는 과정서 윤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를 우려해 헌법 위반 논점만 남겨두고 양을 대폭 줄인 것이다.

‘유혹’도
교사행위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이 총력을 다해 각하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형법 논점을 없애면, 탄핵 심판 심리가 빨리 끝날 것 같으니 저러는 것”이라며, “형사재판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노렸던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심리를 질질 끌어 시간을 벌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추 사유서 형법 위반 논점을 제외하면, 좋아할 일 아니냐”면서 윤 대통령을 조롱했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소추 대상이 되는 공무원의 기준을 “직무집행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라고 규정했다. ‘이나’라는 말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같은 사안을 헌법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고, 법률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다. 둘 다 적용할 수도 있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인정되면 파면되는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 44명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기한이었던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 앞에 모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일부 중진 의원들과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같은 날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형법상 내란죄 논점이 철회된 것을 항의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섰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시각에 따라선 특수공무집행방해 시도와 진행 중인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는 강요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의 각종 언행은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정치의 법 왜곡화 혹은 정치의 법 선동화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엔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다수 있고, 권 원내대표는 지난 2017년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소추위원이었다.

자신들의 언행이 법 상식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를 개연성은 높지 않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고 볼 여지가 남는다. 궁지에 몰리면 못 할 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1년 자국을 방문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에게 원전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산 오이를 예고 없이 시식시켰다. 그들이 오이를 먹은 곳은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던 후쿠시마시였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은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는 두 사람에게 오이를 먹인 후 “정말 감사하다. 두 분의 행동이야말로 일본의 복구 지원에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외교 관례를 모두 벗어던진 것이다. 법률을 놓고 진행되는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당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연상시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모두 정치의 사법화를 극단적으로 추구해 현재에 이르게 한 공동 책임이 있다. 양당은 ‘프로 고발러’로 알려진 습관적인 고발장 제출자들과 관련이 있다. 국민의힘엔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를 운영하는 이종배 서울시의원이 있다.

궁지에
몰렸다

김한메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에 서서 국민의힘 인사들을 주로 고발한다. 이들은 수시로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언론에 노출된다. 이들의 고발은 언론 보도를 노리고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특정 정파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일부 언론은 이들의 고발 중 구미에 맞는 것엔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보도한다.

이 과정을 거쳐 강경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결과가 양산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는 선동이다. “극단적인 지지자들만 선동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을 서울시의원으로 당선시키고 부대변인으로 임명해 본의 아니게 그 관련성을 공인했다. 이들이 프로 고발러로 알려지는 과정을 토대로 정치의 사법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자, 권 원내대표와 주 의원 등 검사 출신 의원들이 직접 법 왜곡 발언이나 행동에 앞장서는 등 프로 고발러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승용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의 지난 2009년 논문 <민주화 이후 정치의 사법화에 관한 연구>엔 스페인의 사회학자 호세 마리아 마라발 마드리드대 사회학과 교수의 지난 2003년 저서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치> 일부가 인용돼있다.

오 교수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마라발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를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발생하는 상황을 ▲정치인의 책임성 제한 ▲선거에 연패한 야당이 새로운 차원의 경쟁 돌입 ▲정부의 야당 약화 시도 등으로 정리했다. 이어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에 따라 법의 지배가 정치적 무기가 되면 법의 지배라는 원칙은 훼손된다”며 “정치의 사법화는 법의 지배의 실현이 아니라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법의 지배가 강화되는 경향 한편엔 사법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며 “우리 사례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 불신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이어 “문제의 핵심은 사법부의 정치화 이전에 의회의 문제 해결 능력 부재에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부의 정치화는 정치의 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의회와 정당의 정상화가 선결 과제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도 지난 2023년 발표한 논문 <법과 정치의 분화와 통합>서 “정치의 실패가 정치의 사법화를 불러온 것”이라며 “정치가 제 기능을 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가 확산한 이유는 정치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문제를 사법에 떠넘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부의 권력 비대화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한다.

오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근대 대의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그 이유로는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다른 헌법기관에 의해 견제받지도 않으며, 사법적 판단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홍 교수도 비슷한 예측을 하면서 “사법에 의해 정치가 식민화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점점 늘어나는 정당해산심판 요구
사법부 권력 비대화 위험 경고도

그 경고는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어서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십년 역사를 가진 거대정당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제기되고, 만약 인용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 우리 헌정사에 엄청난 여파를 남길 것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지난해 12월6일 처음 언급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에게 동조하고, 가볍게 퉁치고 넘어가려고 하면, 개혁신당부터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을 걸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다음날 “당이 조직적으로 국헌 문란 행위에 가담했다면 정당 해산 사유인 위헌정당이라는 것이 판례”라며 국민의힘을 향한 정당 해산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지난 5일 정부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은 “국민의힘이 위헌정당인 본질은 윤석열을 옹호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어긋날 때, 정부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재에 청구한다. 우리 헌정사에선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인용된 사례가 유일하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을 적극적으로 두둔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전 의원의 사건은 내란 음모였던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실제로 군을 동원했다.

국민의힘은 집단행동을 불사하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하고 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진지해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정치의 사법화와 민주주의>서 “헌법규범이 생활규범으로 정착되는 단계서 나타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며 “정치의 사법화가 가능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소요건이 갖춰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력분립의 실질적인 정착서 비롯되고 촉진되는 현상이라는 점도 간과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동화
왜곡화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선동화·왜곡화가 돼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어느덧 공공연하게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시도하고, 지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선동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란 사태 자체의 후유증 못지않은 것이 정치권이 구조화시킨 정치 사법화의 문제점을 수습하는 것일 듯하다.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비싼 관람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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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신학원 이사의 수상한 영전

[단독] 한신학원 이사의 수상한 영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신학원 이사였던 A씨가 한신대학교 총장과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가 취하했다. 공교롭게도 고소를 취하하기 직전에 열린 이사회에서 그는 교육인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고소가 이뤄진 배경은 지난 5월22일 열린 한신대학교 이사회에서 비롯됐다. 이날 회의에는 총장을 비롯해 이사 17명이 참석했다. 당시 학교법인 한신학원의 감사가 “그동안 한신대에서 사내 공사를 한 금액이 70억원이 넘는데 모두 입찰을 피하기 위한 쪼개기 공사로,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했다”고 보고하면서다. 학원 감사 내부 폭로 당시 감사의 충격적인 발언으로, 한신학원 이사 A씨는 고민 끝에 업무상 배임 및 횡령으로 한신대 총장과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다. A씨가 지적하는 부분은 세 가지다. 첫 번째로 한신학원 재산인 거제도 땅과 관련한 배임을 주장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신학원은 거제시에 임야 약 55만평을 보유하고 있었고,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맹지’로 분류된 해당 부지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그 곳은 수익용 기본재산임에도 장기간 활용이 어려운 상태였다. 한신학원 측은 이 토지를 단순 보유할 경우 관리비만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가치 상승도 제한적이라고 판단해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었다. 당시 M 건설은 2016년부터 경남 거제시 아주동 일원에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업 대상 부지 중 일부가 학교법인 한신학원 소유의 임야로 포함돼있었고, 한신학원 역시 해당 지역 임야를 공동개발 방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M 건설은 경상남도로부터 지구 지정에 대한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신학원 이사들은 당시 이사장이 학원 소유 토지를 공공임대주택 개발에 제공하는 대가로 20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용역업체 대표의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 이사회는 즉시 M 건설 측에 협상단을 파견해 토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이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한신학원의 상급기관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이하 기장총회)는 사업 자체를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M 건설은 한신학원 측의 토지 사용 승낙을 얻지 못하게 됐고, 결국 조건부 지구 지정이 취소될 위기에 놓이면서 개발사업은 사실상 좌초됐다. 이후, 한신학원 법인 산하 ‘한신영림운영위원회’는 열린 회의에서 해당 부지를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하는 형태로 개발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이 회의에는 삼부토건 관계자라고 주장하는 B씨와 C씨가 직접 참석해 사업 구조와 예상 수익, 한신학원의 참여 방식 등을 설명했다. 이들은 명함까지 주며 자신들을 “삼부토건 고문”과 “부사장”이라고 소개하며 접근했다. 한신대 상대로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 고소 불법 매각·쪼개기 공사·교비 횡령 의혹 제기 두 사람이 제안한 내용은 “삼부토건이 M 건설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해 시행하며, 한신학원은 부동산투자회사(REITs)에 현물출자하고 주식 지분을 배당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때 M 건설에도 B씨와 C씨가 접근했다. 이들은 “한신학원과 협의를 주선해 사업을 재개시키겠다”고 제안했다. M 건설은 이 제안을 믿고 2023년 8월 ‘사업시행대행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조건은 B씨 측이 같은 해 9월20일까지 한신학원으로부터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받아오면 용역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M 건설은 계약금 명목으로 1억원을 지급했다. 같은 해 이사회는 한신영림운영위원회의 보고를 바탕으로 관련 헌의안을 기장총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한신학원은 기장총회가 한신대 운영을 위해 설립한 법인으로, 모든 사업은 기장총회의 허가가 필요하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사업 예측치도 포함됐다. “지구 단위 승인을 거쳐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될 경우 평당 100만~150만원의 감정가가 예상되며, 현물출자 후 10년 임대 기간이 끝나 분양 전환 시 내부수익률(IRR)은 약 6.77% 이상”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기장총회는 “한신학원 소유 토지는 공공개발 참여 대신 현금 매매로 전환한다”는 결의를 내렸다. 한편,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 M 건설에 토지 사용 승낙서는 발급되지 않았다. M 건설이 계약 해지를 통보하자 B씨 측은 “승낙서가 곧 발급된다”며 시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승낙서는 끝내 발급되지 않았다. M 건설은 곧바로 계약을 해지하고, 실제 B씨가 대표로 있는 S사를 상대로 계약금 1억원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 시기 한신학원은 삼부토건에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삼부토건은 “B씨와 C씨는 우리 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 즉, 자신들을 삼부토건 관계자라고 밝힌 B씨와 C씨가 실제로는 삼부토건 관계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삼부토건 본사는 “이들과 별도의 위임이나 계약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대형 건설사인 삼부토건의 이름을 내세워 사업을 추진하려 한 것이다. 실체 없는 부동산 리츠 이후 B씨는 자신의 배우자 명의의 P사로 이름을 바꿔 사업을 계속 추진했다. B씨 일행의 만행을 알게 된 M 건설은 지난해 3월, 한신학원에 ‘토지 매수의향서’를 보내 “거제 아주동 임야를 평당 50만원에 매수할 의사가 있다”고 전달했다. M 건설은 인근 토지를 이미 평당 44만원에 매입했다고 밝히며, 한신학원 토지는 “13% 이상 높은 가격으로 정당하게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B씨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한신학원은 같은 해 5월30일, B씨의 부인이 대표로 있는 P사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총장과 이사장이 이 제안을 알고도 이사회나 총회에 보고하지 않았다”면서 “M 건설의 제안이 있었음에도 총장과 이사장이 P사와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로 지적한 점은 계약 내용이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계약금 총액은 10억5000만원으로 명시됐지만, 실제 한신학원이 받은 금액은 1억원뿐이었다. 잔금 9억5000만원은 “4년 이내 부동산투자회사(REITs)와의 매매계약 재체결 시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고, 심지어 한신학원은 받은 계약금 1억원을 매수인에게 반환하기로 명시돼있었다. 또 특약 사항에는 ‘매도인은 계약 체결 시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발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즉, 계약금 실수령액이 전체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상황에서 매수인이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셈이었다. 고소인은 이를 “매매계약을 가장한 사실상 사용 허가서”라고 주장했다. 한신학원 정관 시행세칙 제18조에는 “기본재산의 매도·증여·교환 또는 용도 변경 시에는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이사회 의결을 거쳐 관할 관청 허가를 득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고소인은 “삼부토건으로 의결된 사업을 P사로 변경하면서 이사회가 새로이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토지 처분 신고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한신학원은 지난해 1월 교육부에 ‘수익용기본재산 처분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감정가 이상(16억7000만원 이상)에 토지를 처분하고 대체 부동산을 구입하겠다”고 보고했다. 이후, 교육부는 이 신고를 ‘처분 허가’로 정정해 승인했으며 “1년 내 매각 완료, 대금 완납 전 소유권 이전 불가”를 조건으로 달았다. 그러나 P사와의 계약서에는 잔금 지급 시점이 명확히 적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소인은 “교육부에는 단기 매각으로 보고하고 실제로는 장기 임대 형태로 계약했다”며 기망 가능성을 제기했다. 계약서상 ‘잔금 수령일’이 없고, 2차 계약금도 부동산투자회사와의 별도 계약 체결 이후로 미뤄져 있다. 쪼개기 공사? 교비도 횡령? 가장 큰 문제점은 잔금을 받기로 한 부동산투자회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당 회사는 현재 설립 예정으로 실체가 없는 곳이다. 게다가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토지 사용 허락서는 교육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토지 사용 허락서가 교육부에 신고되지 않은 채 발급됐다는게 A씨의 주장이다. 실제 교육부는 민원 답변을 통해" 해당 토지의 사용 승낙 신청을 접수하거나 허가한 내역이 없으며, 우리부 허가가 없는 토지 사용 승낙은 효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두 번째로, 한신대가 진행한 각종 시설공사와 관련해 수의계약 체결 과정의 절차 위반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A씨는 “학교법인 및 산하 대학이 사립학교법과 학내 재정세칙에 따라 공개경쟁입찰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공사계약을 다수 수의계약 형태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한신학원 정관과 세칙에는 ‘2000만원 이상의 공사는 공고를 해서 경쟁에 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2인 이상의 견적서와 시방서, 설계서를 징수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한신대학교는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약 40억원 규모의 공사 57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절차를 대부분 생략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법인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도 교내 공사 57건이 40억원에 진행됐다. 동일 공사인데도 나눠서 계약을 하고, 2억원까지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명목으로 쪼개기 공사와 공사 지정 업체의 중복이 발견되는 등 부실 흔적이 많다. 앞으로 전자입찰이 되도록 공사 입찰 규정을 반드시 만들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계약단가가 낮아져 수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규정을 어긴 업무처리로 한신학원 및 한신대에 수억원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며 이를 업무상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한신대학교 교비 회계 자금이 학교 운영과 직접 관련 없는 법률 비용으로 사용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A씨는 “교비 회계는 학교 운영과 교육에 필요한 경비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음에도, 교비 자금이 법적 분쟁 비용으로 전용됐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것은 노무사 선임비용 약 6800만원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신대 총장은 2023년 고용노동부에 진정이 제기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노무사 및 법률대리인 선임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했다. 해당 진정은 한신대 내부 인사·노무 관련 사안으로, 교직원 고용 문제 및 근로계약 분쟁에 대한 것이었다. 이사회 후 돌연 취하, 왜? 학원 교육인사위원장 임명 A씨는 이를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비는 학생 교육에 직접 필요한 용도로만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법인 소송이나 노무 분쟁처럼 학교 운영 전반과 직접 관련이 없는 항목은 교비에서 부담하면 안 된다는 것이 고소인 측의 입장이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비용 지출의 성격이다. 즉 ‘노무사 선임이 학교 교육활동에 직접 관련된 행위인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실제로 올해 대법원은 노무법인 자문 비용을 교비회계 자금으로 집행한 행위를 업무상 횡령으로 판단하는 판결을 내렸다. 제주의 한 대학교 총장 A씨는 소속 교수가 자신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비용 330만원을 포함해 총 1880만원의 변호사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며 “교수 및 노조 등과 관련한 분쟁 대응을 위한 변호사 비용은 학교의 교육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현재 해당 고소 건은 취하된 상태다. 지난달 <일요시사>가 이 사건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한신대 비서실을 통해 A씨가 고소를 취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제보자 역시 “해당 이사가 면직 압박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으며, 그 직후 인사위원장 보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기자가 한신학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지난달 10일 인사위원장으로 임명됐고, 같은 달 11일부터 공식 업무가 시작됐다. 추가로 확보한 녹취에서 A씨는 고소를 취하한 이유에 대해 “이사회에서 강제로 면직시키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한신학원 인사위원회는 내부 교직원의 인사와 징계 등을 담당하는 핵심 기구로, 교육인사위원장은 실질적인 권한이 큰 자리로 알려져 있다. 통상 이사장은 교육인사위원장 출신 가운데에서 선출되는 경우가 많아, 해당 보직이 사실상 이사장 자리로 가는 주요 루트인 셈이다. 대가성 보직? 이사장 루트 한편, 한신대는 해당 고소 건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한신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토지 매각 문제의 경우 한신학원의 문제고 한신대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수의계약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2억원 미만이면 가능하다”고 밝혔고, 교비 횡령 의혹은 “사건 조사 관련된 비용으로 지출된 부분이라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