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한동훈-이재명 서로 놓지 못하는 이유

돕고 돕는 적대적 공생관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적대적 공생관계’만큼 미묘한 단어가 있을까?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군이 되는 여의도에서는 특히 그렇다. 오로지 눈앞의 적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뒤를 노리는 또 다른 적은 살려둔다. 정치의 끝과 끝에 서 있는 양당 대표가 어떻게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의심을 사게 됐을까?

정치권이 연일 시끌벅적하다. 지난달을 기점으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을 흔들려는 이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간의 둑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갈등의 홍수 속에서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는 어려워 보인다.

밥 먹고
끝났다

한 대표와 용산 사이에 또다시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지도부 만찬 전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일대일 만남을 요구했는데 사실상 용산이 거절 의사를 내비치면서 형식적인 상견례 자리로 막을 내렸다.

앞서 지난 22일 한 대표가 24일 예정된 지도부 만찬을 앞두고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구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왔다. 당 지도부와 당직자가 다수 참여하는 자리에서는 최근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요구에 친윤(친 윤석열)계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한 대표가 독대 요구를 일부러 언론에 흘려 용산을 압박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이유에서다.


“당 장악력이 시원찮은 상황서 독대를 통해 덩치를 키우려는 속셈이 괘씸하다”는 불만도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친윤계 사이에서는 “모두가 타고 있는 배에 한 대표가 구멍을 뚫고 있다”며 원망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렇게 독대 얘기를 시키게 한 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대통령께서 체코 방문하고 와서 원전 수주와 관련해 여러 가지 성과도 있고 얘깃거리가 많지 않은가”라며 “그건 어디로 다 없어져 버리고 여당 대표와 대통령 간의 견해 차이, 갈등 이런 부분만 부각이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전 대표인 김기현 의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독대 요청을 했다는 사실이 사전 유출돼 주요 뉴스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이 잘 되질 않는다”며 “차기 대권을 위한 내부 분열은 용인될 수 없는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여당은 윤석열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덧붙였다.

한 대표가 만찬에 들고 올 것으로 예상됐던 의제는 의료 대란, 김건희 여사 논란 등이었다.

‘친윤 vs 친한’ 깊어지는 갈등 골
결국 밥상 두고 양쪽 모두 ‘찜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청을 거부한다면 당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반면 독대에 응하더라도 한 대표 측에서 “진전이 없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면 역시나 소통의 부재라는 지적으로 귀결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의 갈등이 봉합되긴 어려웠을 것이란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지난 24일 독대 없이 지도부 만찬이 진행됐다. 대통령실에서는 윤 대통령과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을 비롯한 수석급 참모진 전원 등 13명이 자리했다. 여당에서는 한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최고위원 등 지도부 소속 14명이 참석했다.

다수의 여권 관계자는 이날 만찬은 주로 윤 대통령이 체코 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머지 배석자가 호응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의정 갈등이나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다뤄질 분위기는 아니었었던 셈이다.

만찬 시작 전 한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거나 인사말 하는 식으로 윤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할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지만 90분 동안 진행된 이 자리서 한 대표에게 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변인 측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친 뒤 약 10분 정도 나란히 산책했지만 심각하거나 무거운 이야기는 나누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만찬은 한 대표가 전당대회서 당선된 이후 치러졌던 7월 만찬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당시 윤 대통령은 맥주를, 한 대표는 탄산음료를 든 채 ‘러브샷’을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번 만찬에는 오미자차가 술을 대신했다.

두 사람이 다정하게 서 있는 모습은 물론 현장 분위기가 담긴 영상도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두 달 사이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너무 급한 거리두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의 일방적 소통”이라는 친한(친 한동훈)계 측의 불만이 나오면서 용산이 진땀을 빼고 있다. 문제는 만찬 이후 한 대표가 다시 또다시 독대를 요청하면서 2라운드로 이어질지다. 앞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이 모습이 그대로 대중에 노출될 경우, 정부여당 할 것 없이 나란히 지지율 내림세에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별다른 말을 얹지 않았다. 지난 총선서 불거진 ‘김건희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부터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복권을 둘러싼 여당의 내분까지 온갖 갈등이 알아서 줄줄이 터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손 안 대도
알아서 척척

그렇다고 민주당에 호재만 이어진 건 아니다. 지난 20일 검찰이 대선서 허위 사실을 발언한 혐의로 이 대표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으며 1심 선고는 다음 달 15일로 예정됐다. 여기에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1심 선고도 앞두고 있어 모든 시선이 법원에 쏠린다.

대권주자 행보를 걷는 도중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다면 중도층 이탈은 물론 최악의 경우 피선거권 박탈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부터 눈을 돌리고 ‘우클릭’ 논제를 끌어올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 대상으로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대표가 적합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앞서 한 대표는 7월 전당대회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화두에 올렸다. 정부가 강경하게 밀고 나가는 의료개혁에 대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1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모두 용산과 각을 세우거나 윤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인 만큼 여권 내에서는 적잖은 후폭풍을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제3자 특검법은 민주당과 충돌했고 강성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용산과 친윤계의 반응으로 미뤄봤을 때 한 대표가 현 정부를 대상으로 차별화 전략에 나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지만 그동안 숱하게 거쳐간 다른 당 대표와 달리 야당과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정치인으로서의 캐릭터를 잡아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용산과 한 대표의 틈새를 파고들어 정부의 힘을 뺄 기회를 보고 있다. 레임덕을 겨냥한 ‘윤석열 고립 작전’을 염두에 뒀다는 관측이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 총선 전부터 벼르던 이른바 ‘한동훈 특검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혁신당은 당론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해당 특검법에는 ‘고발사주 의혹’을 포함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 취소소송 항소심에 대한 고의 패소 ▲자녀 논문 대필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요청 시 피의사실 공표 및 공무상 비밀 누설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를 시행령 등으로 무리하게 확대함으로써 국회의 입법 취지 형해화 등의 의혹이 담겼다.

법안 발의 당시 민주당은 크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이후 혁신당은 지난 7월 기존 특검법에 ’사설 댓글팀 운영 의혹‘을 담아 추가로 발의했고 법안 합의를 보기로 한 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해당 법안을 상정했다.


다만 법안 통과의 목줄을 민주당이 쥐고 있는 상황서 한동훈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장 문턱을 넘을지는 알 수 없다. 이 대표 못지않게 한 대표 역시 자신을 겨냥한 특검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에 있어 한동훈 특검법은 언제든지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오월동주

결국 두 사람의 공생관계는 시한폭탄이다. 각자 한발씩 양보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맞서야 할 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폭탄이 대선 레이스 전초전 시작과 함께 터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9월 두 사람은 첫 회동서도 주요 의제를 놓고 시각차를 보였다. 두 대표 모두 정치 복원에 있어서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불체포특권,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문제를 놓고는 충돌했다.

당초 이 대표는 한 대표의 만남을 적극 환영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당 대표 시절에 식사 회동을 제안하자 “밥 먹고 술 먹는 것은 친구분들과 하라”고 딱 잘라 거절했던 것에 비하면 한 대표와는 대화할 의지가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회동은 빈손으로 끝났지만 협치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레임덕 수순에 접어들면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사라진다. 이때부터는 ‘거대 야당의 수장’과 ‘검사 출신 정치인’의 진검승부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3년가량 남았지만 지지율은 벌써부터 20~30%대를 기록하고 있다.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리스크와 의료 대란 등이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부 지지율이 10%대, 극단적으로는 한 자릿수를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야권 내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 때문일까? 여야 막론한 대권주자들의 활동 시기가 앞당겨졌다. 지난 총선서 ‘비명횡사’ 당했던 민주당 박용진 전 의원은 추석을 기점으로 정치 활동 재개 의지를 드러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호남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혁신당 조국 대표 역시 꾸준히 정치기반을 넓히고 있다.

여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잠룡으로 꼽힌다. 오 시장은 지난달 1일 민선 8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서 “임기 반환점 도는 시점에 벌써 대권 운운하는 것은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여운을 남겼지만 꾸준히 대권주자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 여사 공천 의혹에 엮인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돼 이번 논란을 어떻게 갈무리지을지 눈길이 쏠린다.

이 대표와 한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다투는 만큼 그 경쟁 역시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는 중도층을, 한 대표는 자신의 세력을 늘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클릭’ 이재명 ‘좌클릭’ 한동훈
웃으며 만났지만…주머니엔 칼자루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이 대표는 금투세를 꺼내 들었다.

지난 24일 민주당은 금투세를 놓고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시행팀’과 유예해야 한다는 ‘유예팀’으로 나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전당대회서 이 대표가 금투세를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당내 의견이 다소 갈렸는데, 이를 정리하고 당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과정으로 읽힌다.

당내서 금투세 유예 기간을 3년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을 두고 여권에서는 ‘대선을 염두에 둔 꼼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개미 투자자 사이에서는 금투세 문제를 당론으로 정하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을 가중했다는 불만도 나왔다.

여야는 물론 일반 투자자까지 얽혀 있어 금투세를 당론으로 정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반면 한 대표는 중도층을 흡수하는 데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으로 3년, 살아 있는 권력인 윤 대통령과 제대로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는 걸 전제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문제는 이 과정서 영남권 등 중진 의원이나 거물급 정치인의 신뢰를 잃어 입지가 확 쪼그라드는 경우다. 정치적 기반이 없던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세운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진 ‘전통 보수층’에게 또다시 전직 검사를 대권주자로 내세워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 대표의 정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한 대표가 취임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국민의힘 내에서는 차기 비대위원장 물색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실패한 당 대표’ 꼬리표는 대권주자로서 치명적이다. 정치적 부활도 쉽지 않다. 보수 기반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도 전 용산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민주당과 ‘협력관계’라는 프레임에 갇힌 게 한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적대적 공생관계는 두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런 관계성은 (두 사람보다는)이 대표와 조 대표, 그리고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쪽이 그렇다고 본다”며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가라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회를
위기로?

독대 요청을 거절당하는 등 지속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용산과 한 대표의 관계는 오히려 당의 지지율이 반등할 기회라고 내다봤다.

신 교수는 “사람들은 갈등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갈등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여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커플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당정이 한 몸이라는 인식을 깨트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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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