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마을을 찾아 ①속초 몽트비어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지다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하고 청량한 라거(Lager, 하면발효맥주) 맥주가 여름에 제격이라면 가을엔 농익은 에일(Ale, 상면발효백주) 맥주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라거맥주 위주였던 우리나라에 탄산이 적고 색이 진하며 풍부한 향이 특징인 에일맥주가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기호도 다양해졌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찾아 마시는가 하면 집에서 직접 맥주를 만드는 홈브루잉을 즐기는 사람도 생겨났다.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져 맥주 만들기 동호회에서 홈브루잉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 몽트비어다.

홈브루잉을 즐기던 동호회원들이 양조장을 설립한 것은 술을 만들어 외부 유통이 가능하도록 개정된 주세법이 계기가 됐다. 진정한 수제 맥주가 무엇인지, 지역 맥주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맥주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수제 맥주

붉은색 벽돌과 파란색 간판이 어우러진 건물은 양조장이라기보다 카페의 느낌에 가깝다. 비어 바(Beer Bar)가 있는 2층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울산바위를 중심으로 설악산과 북한부터 이어진 금강산의 봉우리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프랑스어의 산을 뜻하는 단어에서 착안한 ‘몽트(Mont)’라는 이름과 울산바위를 형상화한 로고가 만들어진 이유다.

몽트비어를 찾는 가장 큰 즐거움은 갓 나온 신선한 맥주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몽트비어가 선보인 맥주 종류는 10가지가 넘는다. 그중에는 스트로베리 에일과 피치 화이트 사워처럼 독특한 재료를 사용한 맥주도 눈에 띈다.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는 한국관광공사 관광두레서 만난 업체의 농산물을 사용한다.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로컬맥주라는 생각에서다.

처음엔 속초 응골딸기마을에서 생산된 딸기로 과즙을 내서 ‘스트로베리 에일’을 만들었다. 생딸기를 아낌없이 넣어 은은한 딸기향을 느낄 수 있는 봄철 한정판 맥주다. 소비자의 반응도 좋았다. 뒤이어 양양의 곰마을에서 재배한 복숭아를 이용해 ‘피치 화이트 사워 맥주’도 만들었다.

유산균 발효 공정을 거쳐 복숭아의 향미와 더불어 새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맥주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제 맥주 대회서 피치 화이트 사워는 금상을, 스트로베리 에일은 동상을 받아 품질도 인정받았다. 몇 년 전, 강원도서 감자 파동이 있었을 때는 감자로 맥주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춘천에 있는 강원농식품연구소와 협업해 2년간 개발 기간을 거쳐 만든 것이 강원감자 맥주 ‘쟈니’다.

신선한 맥주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는 곳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요리도 구비

국내산 효모와 감자 전분을 사용했다. ‘쟈니’라는 이름은 ‘야, 이거 ×× 쟈니?’라는 식의 강원도 사투리 말투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맥주의 주재료 중 하나인 홉도 국내산을 사용하기 위해 밭에서 직접 재배한다. 홉은 맥주 특유의 쌉싸름한 맛을 내는 재료로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다양하다. 홉의 향과 풍미를 더하기 위해 더블 드라이 호핑(Double Dry Hopping) 공정을 거친 하와이안 IPA(India Pale Ale)도 인기다.


미국식 IPA로 홉에서 나오는 열대과일향과 쌉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IPA 맥주는 홉을 많이 넣어 쓴맛이 강한 것이 특징인데, 쓴맛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쓴맛을 최소로 줄였다. 

‘필 바이젠’은 외부 유통을 하지 않아 몽트비어에서만 마시거나 구입할 수 있는 맥주다. 독일어로 밀을 뜻하는 ‘바이젠(Weizen)’ 이름대로 온도에 민감한 밀맥주기 때문이다. 필 바이젠은 맥주에 효모가 살아 있는 독일식 헤페 바이젠(Hefe Wei zen)으로 바나나 향을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바이젠 맥주의 맛은 효모가 발효되면서 정해지는데 온도와 습도 등 환경을 유지해주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지만 맛있게 익는 것은 자연의 영역이어서 상업용 맥주를 만들 때 효모를 발효해 향 내는 과정이 너무나 어려웠다고 한다. 

‘라운드 미드나잇’이라는 이름의 한정판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 맥주도 빼놓을 수 없다. 싱글몰트위스키서 제조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고품질의 맥주다. 참나무 향을 입히기 위해 오크통에서 6개월 이상 1차 발효를 한 후 병에 넣어 2차 발효해 완성한다.

알코올 도수는 12°에 이르며 향과 풍미가 좋아 이 맥주만 찾는 마니아가 있을 정도다. 

몽트비어 맥주는 모두 병에 담겨 시중에 유통된다. 맥주는 양조한 뒤 탱크 안에 들어있을 때가 가장 맛이 좋다. 두 번째는 생맥주를 담는 20ℓ짜리 스테인리스 통이고 세 번째가 유리병이다. 유리병은 맥주의 맛을 유지하면서 소비자를 만나기에 가장 좋은 형태기 때문이다.

병은 와인병 크기인 750㎖를 고집하는데 우리나라서 유일하게 금형을 만들어 OEM 방식으로 유리병을 생산해 사용하는 업체기도 하다. 비어 바에는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요리도 준비돼있다. 피자와 감바스, 소시지, 먹태, 감자튀김 등 모두 맥주와 잘 어울린다. 

몽트비어는 맥주를 만드는 양조시설을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개인 방문자의 경우, 관람 가능한 동선 내에서 자유롭게 양조장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건물 입구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맥주를 만드는 양조 탱크시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창이 나 있다.

10명 이상이라면 투어를 신청하는 것도 좋다. 관람 가능한 날짜에 예약해 방문하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양조장 곳곳을 견학할 수 있다.

가을을 느끼기 좋은 설악향기로는 설악동 계곡의 절경과 어우러지는 산책로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순환형으로 자차를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쌍천 수변을 따라 설악의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코스로 총길이 2.7㎞ 중 863m는 출렁다리를 포함해 새로 조성된 스카이워크 구간이다.

저녁에는 고보조명(영상조명)과 반딧불 조명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봄에는 목우재삼거리부터 길을 따라 벚꽃 터널을 이룬다.

영랑호 맨발 황톳길은 수채화 같은 영랑호 풍경을 벗삼아 맨발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편도 420m 순환형 코스로 황톳길과 산책길, 세족장, 황토볼장, 황토족장의 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다. 황톳길 흙이 수분을 머금고 있어 발에 전해지는 감촉이 푹신하며 걸을 때 관절에 무리를 덜 주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다.


설악 향기로

외옹치 바다향기로는 외옹치항과 외옹치해변 사이 위치한 리조트 주변 바닷가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약 890m 길이의 산책길이다. 수십년 동안 군사작전 지역으로 묶여있다가 지난 2018년에 개방됐다. 탁 트인 동해와 함께 어우러진 암석관찰길과 안보체험길, 하늘데크길, 대나무명상길로 구간마다 변화하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몽트비어→설악향기로→영랑호 맨발 황톳길→외옹치 바다향기로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몽트비어→설악향기로→영랑호 맨발 황톳길→외옹치 바다향기로→몽트비어 속초해변점
-둘째 날 속초아이→크래프트루트→척산온천휴양촌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몽트비어: montbeer.modoo.at 
-설악향기로: https://www.sok cho.go.kr/ct/tour/attraction/nature?contentSeq=162 
-영랑호 맨발 황톳길: https://www.sokcho.go.kr/ct/tour/att raction/nature 
-외옹치 바다향기로: https://www.sokcho.go .kr/ct/tour/attraction/nature

운영 정보
-몽트비어 BEER BAR 운영시간: 평일·일요일 13:30~220:00(L.O 21:30), 금~토요일 13:30~23:00(L.O 22:30) 휴무일: 연중무휴 요금: 입장 무료
-설악향기로 운영시간: 상시 이용 가능 휴무일: 연중무휴 요금: 무료
-영랑호 맨발 황톳길 운영시간: 09:00~18:00 휴무일: 연중무휴 요금: 무료
-외옹치 바다향기로 운영시간: 06:00~19:30(4월~9월), 07:00 ~17:30(10월~3월) 휴무일: 연중무휴(기상악화 시 통제) 요금: 무료


문의 전화
-몽트비어 033)636-9010
-설악향기로 033)639-2077
-영랑호 맨발 황톳길 033)639-2422
-외옹치 바다향기로 033)639-2362

대중교통
버스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수복탑 정류장서 3번 또는 3-1번 버스(일 15회 운행) 이용, 한화리조트별관입구 정류장서 하차 후 몽티비어까지 도보 약 10분

*문의: 속초시청 교통과 033)639 -2368, www.sokcho.go.kr/sc/fields/traffic/transport

자가운전
동해고속도로 속초IC→속초 방향 56번 도로(미시령로) 쪽으로 진출→콩꽃마을교차로서 좌회전→몽트비어 이정표서 우회전→몽트비어

숙박 정보
-한화리조트 설악 쏘라노: 속초시 미시령로, 033)630-5500, www .hanwharesort.co.kr 
-어반스테이 속초해변C: 속초시 해오름로, 0507)1375-7694, https://urbanstay.co.kr 
-위드유호텔앤게스트하우스: 속초시 동해대로, 010-9631-3620, https://withugh.modoo.at

식당 정보
-옛날할머니순두부(두부부침, 순두부): 속초시 원암학사평길, 033)636-8641 
-옥미정산채정식(산채비빔밥, 황태구이정식): 속초시 원암학사평길), 033)631-7799 
-은진네횟집(대게, 모둠회): 속초시 대포항길, 033)636-3562

주변 볼거리
-설악문화제(속초음식축제 포함): 10월4~6일, 엑스포잔디광장
-새해맞이 축제: 12월31일~1월1일 일출 시까지, 엑스포잔디광장(12월31일), 속초해수욕장(1월1일) 
-속초아이, 크래프트루트, 척산온천휴양촌(맨발 걷기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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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