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중대재해처벌법 본보기’ 1호 박순관 아리셀 대표

아무 말 없이…첫 번째 철창행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공장 화재로 근로자 23명이 사망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대표가 지난달 28일 구속됐다. 지난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 후 업체 대표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중처법 혐의로 구속되는 1호 사건 이후, 같은 날 박영민 영풍 대표도 잇따라 구속되면서 하루 새 1·2호가 나왔다.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배터리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와 관련해 중처법 위반과 파견법 위반 혐의로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지난달 28일 구속됐다. 지난 2022년 중처법 시행 이후 업체 대표가 구속된 첫 사례다. 그동안 노동당국이 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적은 있지만, 발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반 혐의
영장 발부

박 대표는 이날 오전 8시40분께 수원지법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출석에 앞서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파견 혐의를 인정하느냐’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유족들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박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은 법원 지하 통로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법원에 출석하며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검찰은 박 대표를 중대재해처벌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경영책임자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가 아들인 박 본부장으로부터 꾸준히 업무보고를 받은 데다 안전보건 분야서도 최종 권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처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경영책임자로 규정한다.

검찰은 박 대표가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 절차 마련, 재해예방 예산 편성·집행,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 작업 중지·노동자 대피 등 대응조치 매뉴얼 마련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수원지법 손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박 대표와 박 본부장, 아리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와 인력 공급업체인 한신다이아 대표 등에 대한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하고, 같은 날 오후 11시40분쯤 박 대표와 박 본부장에 대한 영장을 각각 발부했다. 

손 부장판사는 박 대표와 박 본부장에 대해 “혐의 사실이 중대하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박 본부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아리셀의 안전보건관리 담당자와 인력 공급업체 한신다이아의 대표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23명 사망자 발생 화재 사고
2022년 시행 이후 구속 처음

이와 관련해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달 29일 오전 성명을 통해 “오늘 법원의 결정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구속 결정 소식에 많은 유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고 밝혔다. 


이어 “유가족이 마주할 현실 앞에 이번 수원지법의 결정이 좋은 영향으로 작용하길 바란다”며 “이번 결정은 참사가 발생한 지 66일을 살아내는 동안 받아온 차별, 혐오, 배제의 말과 시선, 감정의 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버텨온 시간에 대한 아주 작은 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수사기관은 강도 높은 보강 수사와 조사를 통해 박순관과 그 일당의 범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의 해결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밝혀진 진상과 그에 부합하는 책임자 처벌,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 마련까지 갈 길은 여전히 멀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 역시 요원하다”며 “이를 위해 가족협의회·대책위는 오늘의 기쁨과 자신감으로 다시 힘차게 내일을 맞이할 것이며,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도록 다시 단결과 연대를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지난달 26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살인자 에스코넥·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 구속 촉구 및 유가족 긴급행동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수원지법 앞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이들은 박 대표를 비롯한 책임자들의 구속을 촉구했다.

박 대표는 구속과 함께 에스코넥 대표이사직서 사임했다. 에스코넥은 아리셀의 지분 96%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며, 박 대표의 에스코넥 지분율은 13.81%다. 이에 따라 박 대표는 사임서를 제출했고 변경 후 신임 대표이사는 이사회서 선임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에스코넥 외에도 아리셀의 대표를 맡고 있다.

검찰은 화재 사고 직후 형사 3부(이동현 부장검사)와 공공수사부(허훈 부장검사)를 중심으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경기남부경찰청, 고용노동부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실시간으로 수사 상황을 공유하며 화재 원인과 위법 사항 규명, 관련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아리셀 등 3개 업체 관련 1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4차례에 걸쳐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또 피의자 및 참고인 103명을 131회에 걸쳐 조사해 이 중 18명을 입건한 바 있다. 

총체적 부실
드러난 혐의

경기남부경찰청 화재 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지난달 23일 화성서부경찰서에서 수사 결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이 지난 2021년 최초 군에 납품할 당시부터 줄곧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수법 등으로 데이터를 조작해 국방기술품질원을 속였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아리셀은 지난 2021년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47억원 상당의 전지를 군에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던 아리셀은 지난 4월분 납품을 위한 품질검사에서 처음으로 국방 규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무작위로 선정한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과정서 선정된 시료에 적힌 서명을 위조한 사실이 탄로난 것이다. 

아리셀은 올해도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계약을 맺고 지난 2월 말 8만3000여개를 납품한 데 이어 4월 말에도 8만3000개의 전지를 납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규격 미달 판정으로 4월 납품분을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6월분(6만9000여개) 납기일도 다가오자 아리셀은 지난 5월 ‘하루 5000개 생산’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제조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루 5000개는 아리셀 공장의 일평균 생산량의 2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아리셀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한신다이아(메이셀의 전신)로부터 근로자 53명을 신규 공급받았다. 이어 숙련되지 않은 이들을 충분한 교육도 없이 주요 제조공정에 투입했다.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는 파견법에 규정된 32개 파견근로 허용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불법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3∼4월 2.2%였던 평균 불량률은 5월 3.3%, 6월 6.5%로 치솟았고 케이스 찌그러짐이나 전지 내 구멍 등 기존에 없던 유형의 불량도 추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리셀은 문제 해결 없이 케이스를 망치로 쳐 억지로 결합하거나 구멍 난 케이스를 재용접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산을 이어갔다. 

아리셀은 이 과정서 전지에 발열이 생기는 것을 인지해 정상 전지와 분리했지만, 6월분 납기 일정에 쫓기자 위험성을 무시한 채 발열 전지도 납품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화재 이틀 전인 같은 달 22일 전해액 주입이 완료된 전지 1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지만, 아리셀은 생산라인을 중단하지 않은 채 가동했다. 

연이은 2호
나란히 구속

비상구 설치 등 대피경로 확보에도 총체적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 난 공장 3동 2층에선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중 일부는 피난 방향과 반대로 열리도록 설치됐다.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는 문에 보안장치가 설치돼있어 아이디 카드를 소지한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었다. 

또 근로자의 채용과 작업 내용 변경 때마다 진행돼야 할 사고 대처 요령에 관한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근로자들은 배터리 폭발 시 즉시 대피해야 한다는 안전 지침을 알지 못한 탓에 최초 폭발이 발생한 오전 10시30분 3초부터 출입문을 통해 근로자가 마지막으로 대피한 30분40초까지의 골든타임 ‘37초’를 놓쳤다.

결국, 23명이 출입문을 불과 20여m를 남겨둔 지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검찰이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에도 불법파견 혐의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달 28일 수원지법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대표의 파견법 위반 혐의를 진술하던 중 에스코넥도 불법파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한 무허가 파견업체 메이셀의 실질적 경영자인 정용환씨에 대해선 파견법 위반 여죄 수사가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정씨가 메이셀 전신인 한신다이아를 운영하면서 에스코넥 안산사업장(삼영피엔텍)에 인력을 공급한 것도 불법파견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대책위는 그간 아리셀뿐 아니라 에스코넥도 불법파견 혐의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아리셀과 메이셀 관계, 한신다이아와 에스코넥 안산사업장 관계가 닮았기 때문이다. 메이셀은 법인 등기상 직업소개 업체 혹은 파견업체가 아닌 일차전지 제조업체로 등록돼있고, 주소지는 아리셀 공장 2층이다. 

아리셀이 불법파견을 피하고자 형식적으로 메이셀을 사내하도급업체처럼 꾸민 것이다. 한신다이아는 휴대전화 부품을 가공하는 에스코넥 안산사업장과 마찬가지로 법인 등기상 휴대폰 부품 제조업체로 등록돼있고, 주소지는 에스코넥 안산공장 2층이다.

에스코넥 안산사업장 역시 파견업체인 한신다이아와 위장도급계약을 체결했을 개연성이 크다.

유가족, 기쁨의 눈물 흘려
“강도 높은 보강수사해야”

중처법 시행 이후 두 번째 구속 사례도 연이어 나왔다. 박영민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이사도 중대재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박 대표에 이어 몇 시간 차이로 구속된 것이다. 

대구지법 안동지원(재판장 박영수 부장판사)은 지난달 29일 박 대표이사와 배상윤 석포제련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범죄 혐의가 중대하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전날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최근 9개월간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며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을 지우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범죄 혐의를 소명했다. 

이날 구속된 박 대표이사는 중처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고, 배 소장은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영장실질심사 후 취재진에게 “죄송하다”고 말했으나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는 지난해 12월6일 탱크 모터 교체 작업을 하던 근로자 1명이 비소 중독으로 숨졌으며, 근로자 3명이 상해를 입었다. 지난 3월에는 냉각탑 청소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1명이 사망했으며, 지난달 2일에는 하청 노동자 1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안동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산업재해로 영풍 석포제련소서 사망한 근로자는 총 15명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박 대표이사를 중처법 위반 혐의로, 배 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석포제련소 내 유해 물질 밀폐설비 등 안전보건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증거인멸의 우려 등도 있다”고 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한편, 지난 6월24일 오전 10시31분께 경기 화성시 소재 아리셀 공장 3동 2층서 불이 나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CCTV 확인 결과 불은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 작업 등을 하고 있던 공장 3동 2층서 1개의 리튬 배터리 폭발로 시작됐다. 

이어 다른 배터리가 연속해 폭발하면서 급속히 연소가 확대됐다. 화재는 배터리 1개에 불이 붙으면서 급속도로 확산했으며, 대량의 화염과 연기가 발생하고 폭발도 연달아 발생한 탓에, 안에 있던 다수의 작업자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죽음의 공장
영풍 제련소

해당 공장은 리튬 배터리인 일차전지를 제조하는 곳이다. 불이 난 공장 3동에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000여개가 보관돼있었다. 수사 결과 아리셀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 근로자를 제조 공정에 불법으로 투입했고, 이 과정서 발생한 불량 전지가 폭발 및 화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yuncastl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올해 상반기 일터서 쓰러진 ‘296명’

지난해에 비해 사고 건수는 줄었지만, 아리셀 참사의 영향으로 사망자는 오히려 늘었다.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2분기(누적)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사고사망자 수는 296명으로 지난해 동기(289명) 대비 7명(2.4%) 증가했다.

사고 건수는 284건서 266건으로 18건(6.3%) 감소했다.

정부는 23명이 사망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를 분석한 것이다. <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