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사는데…’ 거야 각개전투, 왜?

머릿수는 많은데 비실비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리 뭉치고 저리 뭉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야6당이 손을 잡으면 21석까지 가능하지만 공동 교섭단체 구성이 말처럼 쉽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찢어진 ‘이낙연-이준석 빅텐트’가 트라우마로 남은 탓일까? 톱니바퀴를 억지로 맞추다간 오히려 탈이 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향해 교섭단체 완화에 대한 의지를 거듭 드러내고 있다. 총선을 치르기 전부터 요구해 왔지만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이야기가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야6당끼리도 머리를 맞대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 딱 8석이 모자란 혁신당만 속이 바싹 타들어 가는 모양새다.

틀어진
시나리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열풍이 불었다. 두 당은 ‘윤석열 심판론’을 놓고 함께 싸우자며 우애를 다졌다. 혁신당의 발목을 잡던 교섭단체 조건을 현행 20석서 10석으로 완화하는 데 민주당도 동의하는 듯했다.

혁신당은 제3의 교섭단체가 만들어지면 개혁 과제 실현이 더 용이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민주당을 설득하고 있다. 양당 교섭단체 체제로는 극단적인 대결과 파행이 거듭되지만 제3교섭단체가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게 되면 지금보다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란 점에서다.

군소정당 차원서도 교섭단체를 꾸리는 게 이득이다. 20석 미만인 비교섭단체는 정보위원회 활동이 불가능할뿐더러 상임위원회에 간사를 둘 수 없다. 본회의나 상임위, 또는 국정감사 같은 중요 일정 논의에서 배제되는 설움도 있다.


당시 12~15석을 예상하던 혁신당은 총선 기간 진보 진영의 군소정당들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총선이 끝난 후 혁신당은 민주당을 제외한 야6당끼리 손을 잡는 밑그림을 그렸다. 12석을 확보한 혁신당을 포함해 ▲개혁신당 3석 ▲진보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사회민주당 1석 ▲새진보연합 1석이 뭉치면 총 21석으로 공동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다.

윤정부 심판을 외치던 진보 진영의 군소정당이 전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순풍이 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막상 총선이 끝나자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일부 당선인이 합류를 보류하거나 선을 긋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다.

여기에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를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민주당마저 미묘한 변화를 보이면서 혁신당 내에서는 당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됐다. 돌풍을 타고 여의도에 진입한 혁신당 조국 대표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다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총선이 끝나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혁신당은 민주당을 향해 다시 한번 요구사항을 전했다.

‘목마른 혁신당’ 삽 들고 나섰지만…
살살 선 긋는 민주당에 ‘도돌이표’


조 대표는 “총선 기간에 당시 민주당 김민석 상황실장이 원내 교섭단체 의석수 기준을 낮추겠다고 했고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홍익표 의원도 ‘의석수 기준을 낮추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며 “전체적인 흐름으로는 김민석 의원이 말했던 것을 되돌리는 듯한 느낌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원내 교섭단체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급하게 서두를 생각은 없고 특정 당 사람을 빼 올 생각도 없다”며 “정공법에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혁신당의 요구에도 민주당이 선을 그으면서 교섭단체 논의가 답보 상태에 빠졌다.

김민석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총선 당시 정책 발표까지 담당하던 상황실장으로서 지난 3월27일 제기된 국민의힘 측의 정치개혁안 발표에 대응하는 차원서 정치 관련 정책 발표를 했다”며 “주요 공약 발표 후 당 연구원서 취합한 자료에 나온 교섭단체 요건 완화도 논의 및 검토 과제로 제기한 바 있다. 숫자 등에 대한 구체적 문제는 차후 검토사항임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개혁 정책을 발표하던 당시 교섭단체 기준 완화를 제시한 것은 맞지만 이는 이전부터 당이 논의해 왔던 안건일 뿐, 혁신당을 염두에 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장기적 논의사항이라는 것과 구체적으로 10석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 혁신당도 이를 유념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동안 교섭단체를 꾸리기 위해 혁신당만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은 아니다. 새로운미래와 진보당 등도 저마다 의견을 피력하며 교섭단체에만 주도권이 주어지는 국회 생태계를 비판하고 나섰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 대변인은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통화서 “거대 양당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는 조건서 지금 규정은 너무 엄격하다. 운영위원회에는 원내 모든 정당이 당연히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 20석 이상이라는 규정은 대폭 완화될 필요가 있다”며 “진보당에서는 ‘5석 이상 개정안’ 등 다양한 제기 방도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도나도
동상이몽

지난 6월 야6당 원내대표가 공동 교섭단체를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설지 이목이 쏠렸다. 이날 마련된 자리에는 ▲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새로운미래 김종민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가 자리했다.

새로운미래 김 의원은 “교섭단체 제도를 바꾸거나 폐지하는 게 맞다”며 힘을 실었다. 이어 “교섭단체는 정당은 아니라서 정치적이거나 정책적인 견해를 같이하거나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는데 국회 운영에 관해서는 민주적인 운영에 대한 목소리를 같이 내는 게 교섭단체의 취지”라며 먼저 나서서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적극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을 두고 개혁보수를 표방하는 개혁신당이 혁신당을 비롯한 사회민주당·진보당 등과 손을 잡을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왔다.


역시나 혁신당은 이날 자리가 마무리된 후 언론 공지를 통해 “야6당 공동 교섭단체 추진 관련해 논의한 바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알렸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공동 교섭단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논의 없이 무작정 상대방과 손을 잡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개혁신당도 “공동 교섭단체 구성과 관련해 향후 논의를 이어가자는 입장으로 추진과 관련해선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야6당이 곧바로 합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의 방향성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총선을 앞두고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가 빅텐트를 쳤지만 결국 갈라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야당으로 묶이지만 정치 스펙트럼 선에서 놓고 봤을 때 끝과 끝이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 군소정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솔직히 공동 교섭단체가 절실한 상황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한 가지 걸리는 건 국민의힘과 가장 근접하게 위치한 개혁신당”이라며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완화되지 않는다면 개혁신당과 함께 가야 하는데 서로 불편해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비전이 같아야 잡음이 없고 또 각 당의 지지자분들도 이해해주실 텐데 (개혁신당과 손을 잡는 건)쉽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교섭단체 조건에 대한 진전이 없다. 민주당이 해법을 쥐고 있는데 아마 그쪽(민주당)도 고심이 깊을 것”이라며 “그래도 거대 양당의 충돌을 제3자가 막아주는 상황이 조금 더 희망적이지 않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이유 있는
급발진


새로운미래 관계자 역시 “김 의원은 윤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비명(비 이재명)계로 알려졌다. 반면 혁신당이 이 대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서로(김 의원과 조 대표)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며 “김 의원 역시 교섭단체에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어디까지나 정책 부문서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지, 혁신당과의 깊은 관계에 있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야6당은 공동 교섭단체에 뜻을 함께하고 있으면서도 저마다 걱정을 안고 있다. 특히 개혁신당과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지난 8일 조 대표가 개혁신당 허은하 대표를 예방했지만 양쪽 모두 “공동 교섭단체 구성 관련해 적극적으로 열어두고 있다” “구성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등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30일 혁신당은 교섭단체 의석수를 10석으로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민심 그대로 정치혁신 4법’을 발의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조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서 “10석이던 국회 교섭단체 의석수를 20석으로 올린 것은 1971년 박정희 독재정권”이라며 “국회가 낡은 정치체제를 대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교섭단체 요건 완화가 곧 22대 총선 민심”이라고 주장했다.

10석이란 숫자가 도출된 이유는 각 3석을 확보한 진보당과 개혁신당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둘 중 한쪽이라도 뜻을 함께하지 않으면 교섭단체 조건인 20석을 넘지 못하는 만큼 12석인 자당의 힘으로 교섭단체를 꾸리겠다는 설명이다.

만일 이보다 높은 15석으로 합의를 보더라도 3석만 확보하면 된다. 야6당이 뭉치기 어려운 상황서 의석수를 줄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혁신당은 최근까지도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나 설득을 시도했다. 이들 모두 교섭단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은 서로 협의하고 논의해야 한다며 확답을 피했다.

우 의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서 교섭단체 완화에 관한 질문에 “다수의 교섭단체 생성이 꽉 막힌 정국서 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군소정당이)양당을 잘 설득하고 순기능을 이야기해서 관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군소정당에 공을 넘겼다.

교섭단체 캐스팅보트 진보·개혁신당
“달라도 너무 달라” 빅텐트 뻔한 결말

누구 하나 명확한 답을 주지 않던 시점서 국회 국민청원이 해법이 될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달 29일 ‘국회 교섭단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 촉구에 관한 청원’이 소관 상임위 회부 요건인 5만명 동의를 충족하면서다.

앞서 조 대표는 청원 링크를 SNS에 게시하고 당원들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혁신당 의원들 역시 일제히 SNS에 같은 내용을 공유하며 청원 동의를 격려했다.

지난 19일 해당 청원은 심사 요건을 충족해 국회 운영위원회로 자동 회부됐다. 공이 국회로 넘어오자 조 대표는 “이제 민주당이 응답할 차례”라며 “옳은 주장이지만 우리에게 이익이 없으니 하기 싫다는 건 이기주의 발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길게 보면 어떤 선택이 승리의 길인지 명확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했다.

혁신당이 교섭단체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국회 내 각종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서라지만 일각에서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야6당 중 혁신당이 (교섭단체 구성에)제일 열심히 하고 있다. 12석의 혁신당은 1~2석을 가진 정당보다 교섭단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20점을 맞은 학생과 98점을 맞은 학생 중 어느 쪽이 100점을 위해 더 노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교섭단체가 되면 국회서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이런저런 제약도 풀리지만 조 대표는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법원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 국회에 조금이라도 더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을 믿고 함께한 비례혁신당 의원들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둥지를 꾸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조 대표에게는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모든 논의는 과반 의석인 민주당의 동의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주도권을 쥔 민주당은 “야6당의 합의 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언급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교섭단체는 오히려 이재명 대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대표의 대권가도에 도움이 되고 의회 운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조 대표를 이 대표의 라이벌로 보는데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다. 지금 상황서 혁신당은 아군이 아니라 우군”이라며 “현실적으로 야6당, 21석이 뭉치기는 어렵다. 20석을 10석으로 완화해 혁신당이 독자적 교섭단체가 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게 유리하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추석 전후를 눈여겨보라고 귀띔했다.

한발 후퇴?
도움닫기?

이 관계자는 “TF처럼 느슨한 형태의 교섭단체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야6당이 손잡고 간병인 부담 완화나 간호법 같은 민생법안을 추석 전까지 빠르게 통과시키는 방안이 거론된다. 연대에 부담을 느끼는 당이 있는 만큼 정책 지향성을 배제하고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핵심 의제를 관철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임 당 대표의 회담이 한차례 미뤄지면서 모든 이슈를 흡수하고 있다. 제3정당의 공간이 좁아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민생 의제를 두고 존재감 확보를 위해 추석 전후로 교섭단체 등록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조 회동 무슨 말 오갔나?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만남을 가졌다.

이 대표는 “두 당의 관계는 협력적 경쟁 관계이자 경쟁적 협력관계”라며 “우당으로서 최종적 정권교체를 이뤄내자”고 강조했다.

조 대표 역시 정권교체를 힘주어 말하며 “이 대표가 선봉에 서서 3가지 과제의 해결사 역할을 해달라”고 화답했다.

이날 이 대표는 교섭단체 문제에 공감하며 기본과 원칙을 위해 힘을 모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지난 18일 전당대회서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정치라는 게 현실이어서 제 개인적인 뜻대로만 움직이는 건 아닌데 노력해보겠다”고 말해 민주당 내 의견을 통합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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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