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드러난 스포츠협회 민낯

재주는 선수가, 돈은 임원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은 법이다. 선수들이 땀과 눈물로 쟁취한 메달의 이면이 드러나고 있다.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성적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4년마다 반복되는 ‘한여름의 꿈’. <일요시사>가 파리올림픽서 드러난 우리나라 대표팀의 명암을 조명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시작된 2024 파리 하계 올림픽(이하 파리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뒤로하고 지난 11일 막을 내렸다. 32개 종목 329개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 파리올림픽서 한국은 금메달 13개를 따냈다. 당초 목표치였던 금메달 5개를 크게 상회한 수치다. 

낮은 기대
역대급 성적

한국은 21개 종목에 선수 143명만 파견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래 48년 만의 최소 인원이다. 여자핸드볼을 제외한 단체 구기종목의 집단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우리 선수단의 목표는 금메달 5개 이상 종합순위 15위였다. 효자종목인 양궁을 비롯해 펜싱, 배드민턴 등에서 메달을 예상했다. 

개막 전까지 화제성도 낮았다. 인기 종목인 축구, 야구, 배구 등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좀처럼 올림픽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 하지만 사격 100m 공기소총 혼성 단체서 박하준과 금하준이 은메달, 김우민이 남자 수영 400m 자유형서 동메달을 따내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후 여자 사격 10m 공기권총서 오예진이 금메달, 김예지가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양궁 여자 리커브 단체,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양궁 남자 리커브 단체, 사격 여자 25m 권총 등에서 금맥이 터졌다. 특히 사격 대표팀은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따내는 등 예상 목표치를 크게 상회하는 성적으로 초반 화제성을 주도했다. 


‘전통의 금밭’ 양궁은 금메달 5개로 남녀 전 종목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남자 대표팀 김우진과 여자 대표팀 임시현은 개인과 단체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올랐다. 펜싱에서는 남자 사브르 단체서 금메달을, 오상욱은 사브르 개인전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을 차지했다. 

총, 칼, 활 등을 사용하는 종목서 잇따라 메달을 획득해 ‘무기의 나라’라는 말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기도 했다. 유도, 탁구 종목서도 메달이 쏟아졌다. 탁구 혼성 복식서 임종훈과 신유빈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유도 여자 57㎏급에서 허미미가 은메달, 김하윤이 +78㎏급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유도 혼성 단체전서도 동메달을 따냈다. 

안세영 작심발언에 체육계 발칵
사격연맹은 수장이 돌연 사임해

일찌감치 금메달 예상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면서 한국 선수단의 분위기는 물론 국민의 응원도 고조됐다. 절정은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 출전한 안세영의 금메달 소식이었다. 안세영은 결승전서 중국의 허빙자오를 2대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이어 올림픽까지 제패하면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한국 배드민턴의 올림픽 단식 종목 우승은 남녀를 통틀어 1996 애틀랜타올림픽 방수현 이후 역대 두 번째이자 28년 만이다. 준결승 승리 직후 ‘낭만 있게 끝내겠다’는 말을 지킨 안세영은 자타공인 ‘셔틀콕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대관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상황이 반전됐다. 

시상식을 마친 안세영은 공동취재구역서 “제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게 조금 많이 실망했었다”면서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은 조금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지난해 10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승전서 얻은 무릎 부상에 대한 대표팀의 대처 과정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어진 공식 기자회견서도 안세영의 비판은 계속됐다.

그는 “제가 부상을 겪는 상황서 대표팀에 대해 너무 크게 실망했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안세영에 따르면 재검진서 부상 정도가 심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오진이 났던 순간부터 계속 참으면서 경기했는데 지난해 말 다시 검진해보니 많이 안 좋더라”며 “꿋꿋이 참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팀을 나가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직격했다.

독기 품은
셔틀콕 여왕

안세영은 “대표팀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을 못 뛰는 것은 선수에게 야박하지 않나 싶다” “협회는 모든 것을 다 막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한다” “우리 배드민턴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금메달이 1개밖에 안 나왔다는 것도 돌아봐야 하지 않나 싶다” 등의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안세영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은퇴를 시사하는 것이라는 추측부터 배드민턴협회를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여론이 들끓었다. 금메달을 딴 직후라 안세영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서 나온 폭로여서 그 파급력은 더 컸다. 이후 안세영은 SNS 글을 통해 각종 추측에 대한 진화에 나섰다. 

안세영은 “일단 숙제를 끝낸 기분에 좀 즐기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도 없이 저의 인터뷰가 또 다른 기사로 확대되고 있어서 참… 저의 서사는 고비 고비가 쉬운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 관리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떠넘기는 협회나 감독님의 기사들에 또 한 번 상처를 받게 된다”며 “선수들이 보호되고 관리돼야 하는 부분 그리고 권력보단 소통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이야기해 드리고 싶었는데 또 자극적인 기사들로 재생되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전쟁하듯 이야기해 드리는 부분이 아니라 선수들의 보호에 관한 이야기임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은퇴라는 표현으로 곡해하지 말아달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며 글을 맺었다.

이후 안세영의 발언에 배드민턴협회가 반박하는 양상이 이어지면서 사안은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일단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은 “(안세영과)갈등은 없었다.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이후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담은 A4용지 10페이지 분량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한체육회
조사 진행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의 부상 방치 의혹 ▲(안세영의)개인 트레이너 계약 여부 ▲(안세영의)개인 자격 대회 출전 가능성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지난 7일 입국한 안세영은 “난 싸우려는 의도가 아니라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을 호소하기 위해, 그렇게 이해해 달라는 마음으로 말씀드린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했다. 그러면서 자세한 내용은 대회 후에 말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안세영과 배드민턴협회의 갈등은 체육계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대한체육회는 감사원 출신 감사관, 경찰 수사관 출신 체육회 청렴시민감사관과 국민권익위 출신 감사관, 여성위원회 위원 등 외부 감사 전문과 4명과 체육회 법무팀장, 감사실장으로 조사위를 꾸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잡음이 나오는 건 배드민턴만이 아니었다. 파리올림픽서 역대급 성과를 거둔 사격서도 수장이 논란에 휩싸였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지난 6일 “신명주 회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올림픽 기간에 불거진 신 회장의 임금체불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서 종합병원인 명주병원을 운영하는 신 회장은 대한하키협회 부회장을 거쳐 지난 6월 사격연맹 회장에 취임했다. 사격연맹은 2002년부터 한화그룹이 회장사를 맡아오다 지난해 11월 물러나 6개월 넘게 회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명주병원은 최근 고용노동부에 임금이 체불됐다는 관련 신고가 100건 이상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4년에 한 번 ‘반짝’ 이슈로
지속적인 관심 있어야 변화

당장 포상금 문제도 불거졌다. 파리올림픽서 메달을 딴 5명에 대한 포상금 지급을 논의해야 할 시기에 신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사격연맹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포상금은 규정에 따라 총 3억1500만원(선수 2억1000만원, 지도자 1억500만원)이다.

신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사비를 털어서라도 포상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체육계 등에서는 매번 올림픽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리올림픽서 전 종목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양궁협회는 4년마다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수 선발 방식, 물심양면의 지원 등 양궁협회와 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칭송이 높다. 

그와 동시에 선수 지원이 부족한 협회에 대한 비판도 빗발친다. 최근 배드민턴협회와 사격연맹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한배구협회의 과거 행보가 재조명되는 것도 그 한 예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배구 여제’ 김연경을 필두로 세계 4강을 두 번이나 노크했다.

특히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는 이번 올림픽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타 종목서 메달 레이스가 부진해 여자배구 대표팀의 활약이 국민에게 큰 즐거움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서 높은 성적을 거둔 여자배구 대표팀에 대한 배구협회의 지원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김치찌개 회식’, 통역사 없이 대회를 치른 2016 리우올림픽 ‘부실 지원’, 귀국 후 논란 발언으로 난리가 났던 2020 도쿄올림픽까지 배구협회의 ‘흑역사’는 그 면면도 화려했다. 

좋든 나쁘든
지나면 끝

하지만 일각에서는 4년에 한 번 쏟아지는 ‘반짝 관심’으로는 엘리트체육의 고질적인 병폐를 바꿀 수 없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메달을 많이 따든 적게 따든 국민의 관심은 잠깐에 불과하기에 대대적인 변화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지적이다.

체육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좋은 이슈든, 나쁜 이슈든 한 달이면 다 사라질 것”이라며 “4년 뒤에야 또다시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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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생전 걸음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경찰서를 드나들었고 송사를 치르느라 법정을 오갔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법원에서 날아온 문서 한 장에서 시작됐다. 어떤 실수는 손쓸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시에는 실수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갔다가 뒤늦게 알아채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습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계약이 이뤄진 상태라면 더더욱 원상복구가 쉽지 않다. 김모씨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놀라서 해줬다가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7월 김씨는 경기도 광주의 한 빌라에 거주할 목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2017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2년, 보증금은 2억200만원으로 했다. 해당 빌라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김씨가 전세 계약을 맺은 후 임대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새로운 임대인이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전세 계약 기간 만료 후인 2019년 9월 해당 빌라에 임차권등기를 마쳤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임차주택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면서 이사할 수 있는 제도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차주택에 거주할 때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도 대항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퇴거하게 되면 이사하는 곳으로 주소를 옮겨야 하니 임차권등기명령을 통해 대항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차권등기명령은 등기부등본에 기재되는 만큼, 강한 대항력을 가진다”고 부연했다. 다시 말해 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돼있다는 것은 세입자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지만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김씨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서 운영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에 가입해 뒀다는 사실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은 전세 계약이 종료됐을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전세보증금을 HUG가 대신 돌려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HUG가 임차인에게 먼저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청구하는 방식이다. 김씨는 2019년 10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 전액인 2억200만원을 받았다. 전세 살다 보증금 못 받아 전세보증금 보험으로 구제 이후 김씨는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했고 해당 빌라와 관련한 일은 새카맣게 잊고 지냈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HUG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았으니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이후 5년여 동안 해당 빌라와 관련해 김씨에게까지 영향이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사이 해당 빌라의 주인이 바뀌는 등 소유권 변동이 일어났지만 김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 그러다 지난해 11월 김씨에게 임차권등기명령 취소 신청서가 날아들었다. 김씨는 “법원에서 문서가 송달돼 크게 당황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 문서에 기재된 번호로 연락했더니 7년 전 전세로 살았던 빌라의 집주인이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집주인이 임차권등기를 말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갑자기 법원에서 종이가 날아오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말에 덜컥 겁을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임차권등기 말소를 위한 서류를 직접 떼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 가져다줬다고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20일 김씨가 해당 빌라에 걸어놨던 임차권등기가 말소됐다. 해당 빌라에 김씨가 행사할 수 있던 권한이 소멸한 것이다. 동시에 집주인으로서는 등기부등본이 깨끗해지는 효과를 얻게 됐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를 구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줄줄이 꼬였다 이때 김씨가 간과한 사실은 HUG의 존재였다. 김씨가 해당 빌라의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임차권등기를 말소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가 돈을 받은 뒤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주는 게 실제 일반적인 절차다. 이 과정에서도 공인중개사 등 부동산 전문가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까지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HUG에서 받았다. HUG 입장에서는 해당 빌라의 집주인에게 2억200만원 즉, 돌려받아야 할 돈이 있는 상황에서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으로 말소해버린 것이다. 동시에 김씨가 배당 순위에서 밀리게 되면서 HUG는 대위변제한 보증금을 회수할 방법이 요원해졌다. 여기에 은행, 지자체 등 후순위 채권자들도 있는 상황이다. 김씨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HUG 경기관리센터(이하 HUG 경기센터)는 “모든 임차인은 HUG에 대위변제를 받으면서 대위변제증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가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을 당시 작성한 대위변제증서에는 ‘본인(김씨)은 HUG가 대위변제금 및 제반 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HUG의 동의 없이 주택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겠으며 본인의 주택임차권등기 말소로 인해 HUG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할 것을 확약한다’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HUG 경기센터는 “HUG는 대위변제 물건을 경매에 넘겨서 배당을 회수하는데 임차권등기명령을 무단 말소하면 경매에서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HUG에 연락했으면 대신 응소해 임차권등기를 지켰을 텐데 당시 김씨가 연로해 이런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낙장불입 그러나… 김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집주인이) 내가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를 말소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본인(집주인)이 손해를 보고 있다. 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나를 속였다”며 “내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주인 말에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김씨가 집주인과 해당 빌라의 채권자들에게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피고(집주인)가 원고(김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의적인 기망행위를 했다거나 그로 인해 김씨가 신청 취하 행위 자체에 착오에 빠져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김씨의 “속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현재 김씨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HUG 경기센터는 대위변제한 보증금 회수를 위해 일단 김씨의 부동산 등에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다. 그러면서도 김씨의 상황을 참작하고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임차권등기 무단 말소 무효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HUG 측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한번도 진행한 적 없는 소송이라고 한다. “억울하다” 법원 인정 안 해 HUG, 구제 위해 소송 제기 HUG 경기센터는 “그동안 임차권등기가 말소되면 복구할 가능성이 없는 것(낙장불입)으로 보고 임차인 손해배상 청구로 업무를 진행해 왔는데, ‘임차권등기 말소 무효 소송을 통해 원상복구 가능성이 있다’는 법률 자문이 있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송이 HUG의 승소로 종결돼 임차권등기가 부활하면 김씨에 대한 구제가 가능하다. 이때 김씨는 소송 실비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HUG 경기센터가 제기한 소송은 김씨에게 해당 빌라에 걸려 있던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HUG가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만큼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도 HUG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김씨의 임차권등기 말소 행위는 무효라는 게 골자다. HUG 경기센터는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 말소하면서 채권 선순위로 올라온 은행, 세무서, 지자체 등이 김씨의 억울함을 헤아려 대승적인 차원에서 응소하지 않길 기대하고 있지만, 이들은 김씨가 별도로 제기했던 소송에 모두 대응한 전력이 있어 HUG가 제기한 소송에도 응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HUG가 김씨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구제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이들 후순위 채권자들도 집주인의 허위 소송에 안타깝게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한 김씨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왔다. 실제 김씨가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은행 한 곳은 대응하지 않았다. 순간 실수 인정될까? 김씨는 집주인과 채권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의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HUG와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법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일이 벌어지고 HUG로부터 연락을 받고 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며 “재산은 (가압류로) 묶였고 소송비용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