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형태는 다양한 각도와 기준에서 유형화되고 있다. 장소를 기준으로 학교폭력이나 직장폭력이나 가정폭력이 있다면, 동기에 따라 ‘표출적 범죄(Expressive crimes)’와 ‘도구적 범죄(Instrumental crimes)’로 나뉜다.
표출적 범죄는 폭력적 결과 이상의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 고안되거나 유상적(tangible)인 무언가의 취득을 지향하지 않는 폭력을 포함하는 감정적 공격(affective aggression)이라고도 한다. 가정폭력이나 폭행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표출적 범죄는 범죄행위 그 자체가 범죄의 동기요 목적인 범죄로서, 테러와 같이 분노, 혐오, 증오와 같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목적인 범죄행위다.
청소년 비행에 있어서도 표출적 범죄는 ‘make a statement’, 즉 자신을 나타내는 ‘존재를 남기기’를 목표로 할 뿐, ‘make a living’, 즉 생계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구적 범죄와 구별된다. 표출적 범죄는 그야말로 증오와 같은 자기감정의 표출이거나 일부 묻지마 범죄자처럼 ‘sensation’을 추가하는 것이다.
도구적 범죄는 절도나 강도 등 재산이나 금전의 취득과 같은 특정한 유상적 목표가 있는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도구적 범죄는 범죄 그 자체가 범행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요 수단으로서 행해지는 범죄다. 범죄가 금전의 취득을 위한 폭력의 행사와 같은 것이다.
범죄를 구별하고 차이를 이해하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흔히 범죄 발생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범행 동기를 가진 잠재적 범죄자, 범행의 기회, 보호되지 않는 매력적인 표적을 들고 있는데, 범죄의 근본적인 해결은 그 예방이고, 예방을 위해서는 잠재적 범죄자의 동기를 제거하거나 해소하거나 적어도 억제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범행 동기의 완전한 해소나 제거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가까운 것이기에, 차선책은 동기를 실제 범행으로 옮기지 못하거나 옮기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범행의 동기가 다르다면, 당연히 동기의 억제에 대한 정책의 결과적인 효과나 영향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도구적 범죄를 억제하는 데는 잠재적 범법자에게 기대되는 물질적 비용을 높이는 것이 성공적이고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표출적 범죄자는 일종의 확신범에 가까워서 범죄의 기대비용에 무관하게 자신의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표출하기 때문에 처벌을 통한 범죄의 억제와는 거리가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이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다. 도구적 범죄는 사고하는 인간으로서의 이성적 범죄자가 범행을 합리적 계산의 결과 범행의 이익이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체로 도구적 범죄는 계획된 반면, 표출적 범죄는 충동적·격정적 범죄라고 할 수 있다. 합리적 계산과 선택이 형벌이라는 범죄 비용의 강화를 통한 범행 동기의 억제와 그 결과적인 범죄의 예방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측면서 최근 우리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소위 ‘증오 범죄(Hate crimes)’를 이해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데도 동기의 차별화에 따른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
흔히들 말하는 ‘묻지마 범죄’ ‘이상 동기 범죄’ 등은 일종의 증오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처럼 인종으로 인한 증오 범죄가 있는 반면, 우리처럼 심각한 상대적 박탈과 좌절로 인한 사회에 대한 증오의 표출로서의 증오 범죄도 있다.
표출적 범죄는 합리적 계산과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자기감정의 표출 방법으로서의 범죄기에 기대비용의 증대라는 고전적 형사정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재산범죄가 해당될 수 있는 도구적 범죄는 형벌의 강화라는 비용의 증대로 동기를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
즉, 표출적 범죄자는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이거나 그들의 범행이 적어도 합리적인 계산과 선택의 결과가 아니며, 따라서 합리적 선택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은 그야말로 우리에게 합리적 정책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