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아버지 등진 박세리

돈으로 끊긴 부녀의 끈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골프선수 출신 박세리가 이끄는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세리의 부친 박준철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박씨는 새만금에 국제골프학교를 설립하는 업체로부터 참여 제안을 받고 재단의 법인 도장을 몰래 제작해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가 검찰 수사를 받는 가운데 박세리가 과거 아버지에 대해 언급한 방송이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 박세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를 고소했다. 지난 11일 <텐아시아>에 따르면 박세리희망재단은 지난해 9월 박씨를 사문서위조 및 사문서위조 행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금전 문제
‘리치 언니’

박세리희망재단은 박세리가 지난 2016년 골프 인재 양성 및 스포츠산업 발전을 위해 설립한 재단으로 이사장을 맡고 있다. 경찰은 이미 고소인과 참고인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또 아버지 박씨에 대한 혐의를 인정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리희망재단 측 변호인은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씨를 고소한 것이며 박세리 개인이 고소를 한 게 아니다” “재단 이사회를 통해 고소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한 뒤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드릴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부녀 갈등으로 보기엔 힘들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박씨가 박세리의 이름을 내세워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서 사문서 위조를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씨를 고소한 배경에는 새만금 지역 국제골프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골프학교 설립을 추진한 A사는 박씨를 통해 박세리희망재단에 운영 참여를 제안했다. 이후 박씨로부터 도장이 찍힌 사업참가의향서를 받아 새만금개발청에 제출하고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박세리희망재단은 사업참가의향서에 찍힌 도장이 위조라며 박씨를 고소했다. 이에 박씨는 재단의 법인 도장을 몰래 제작해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만금청은 박세리희망재단의 고소 이후 사업참가의향서 도장 위조에 대한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사업을 중단시킨 상황이다.

박세리희망재단과 박세리가 대표로 있는 바즈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는 “최근 박세리 감독의 성명을 무단으로 사용해 진행하고 있는 광고를 확인했다” “이에 박세리 감독은 국제골프스쿨 및 박세리 국제학교(골프아카데미, 태안 및 새만금 등 전국 모든 곳 포함) 유치 및 설립에 대한 전국 어느 곳에도 계획 및 예정도 없음을 밝힌다” “홍보한 사실과 관련해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며 이 같은 허위, 과장 광고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이전부터 게재돼있다.    

재단 이사장이 박세리인 만큼 간접적으로 딸이 아버지 박씨를 고소한 것이 돼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 사건의 배경에는 3000억원대 새만금 레저시설 조성사업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희망재단, 박씨 고소한 이유는?
“3000억대 새만금 사업 있었다”

새만금 관광단지 개발사업은 새만금 관광레저용지에 민간 주도로 1.64㎢ 규모의 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새만금개발청은 지난 2022년 6월 새만금 해양레저관광복합단지 개발사업 우선협상자로 6개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해당 컨소시엄은 해양 골프장과 웨이브 파크, 마리나 및 해양 레포츠센터 등 관광·레저시설과 요트 빌리지, 골프 풀빌라 등 주거·숙박시설, 국제골프학교 조성 등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박씨가 가짜로 꾸민 박세리희망재단 명의 의향서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세리 골프 아카데미를 세우겠다는 계획은 우선협상자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후 새만금개발청은 박세리희망재단 측에 골프 관광 개발사업에 협조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 요청을 했으나 사실무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야 서류 위조 사실을 알게 된 재단 측도 박세리의 부친 박씨를 고소하게 된 것이다. 

새만금개발청 측은 지난해 허위문서 제출에 대한 문제 상황을 인지한 후 해당 업체에 대한 선정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추후 손해배상청구소송, 관련 사업자에 대한 사업 참여 제한 조처를 고려 중이다. 

본래 새만금 해양레저복합단지는 오는 10월 개장 예정이었지만 박씨의 위조문서 제출로 현재는 사업이 중단됐다.

특히 박세리는 과거 방송서 아버지와 동반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던 바 있어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세리의 아버지를 고소하자 박세리가 부친과의 관계를 언급했던 과거 방송 내용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무산된 사업
부녀간 충돌

박세리는 지난 2013년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아버지의 빚을 갚는 데 자신의 골프 상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당시 박세리는 “은퇴 전까지 미국서만 상금으로 126억원 정도 벌었다”며 “상금만 그 정도였고 추가적인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수입이 500억원 정도는 될 텐데, 상금의 대부분은 아버지 빚 갚는 데 사용했다”고 털어놨다. 

박세리는 “골프가 재밌어진 순간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졌다”며 “그렇게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는데 아버지가 제 골프를 계속 시켜주시고자 끊임없이 돈을 빌리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탓에 상금을 가장 먼저 아버지 빚 갚는 데 쓴 것”이라며 “모든 상금과 계약금은 남한테 아쉬운 소리까지 하며 날 뒷바라지해 준 부모님께 다 드렸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SBS 예능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출연해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세리는 해당 방송서 “아버지는 제 첫 번째 코치”라며 “아버지가 있었기에 모든 걸 헤쳐 나갈 수 있었고 제가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박씨는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을 때였다” “늘 딸에게 미안하다” “이젠 무서운 코치가 아닌 좋은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며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 서기 위해 노력한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 앞서 방송된 지난해 9월27일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서 박세리가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제가 두 번째 딸이고 막내와 언니가 있는데 저만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고 중학교도 육상부 스카우트를 받아 입학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골프를 권유하신 건 제가 6학년 때쯤이었다” “연습장에 저를 데리고 가셔서 쳐보라고 하셨다” “당시 골프 연습장에는 어르신들만 계셔서 큰 관심은 없었다”고 소개했다.

박세리는 “아버지 친구분이 저를 골프대회 관람에 데려가 선수 몇 명을 소개해 주셨다” “당시 최고 또래 선수들을 소개받으면서 뭔지 모를 스파크가 딱 왔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골프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욕심이 좀 많아서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고 싶었다”며 “이후 아버지 사업도 기울면서 마음 잡고 골프에 집중했다” “골프로 어머니를 돈방석에 앉게 해주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박세리는 과거 한 방송서 “이제부터 열심히 벌어야 한다”며 “대전에 부모님을 위해 저택을 마련해 드렸다” “부모님께 해드린 것은 절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지극한 효심
과거 재조명

한편 과거 아버지 박씨는 불법·도박 및 폭행 가담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비즈한국>은 지난 2016년 6월 박씨가 불법 도박 폭행 의혹에 휘말렸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016년 2월20일 충남 공주시 한 사택에 개설된 속칭 하우스 도박장서 벌어진 도박판 현장에 있었다.

당시 도박에 참가했던 A씨는 청주지방검찰청에 박씨를 고소했다. 그는 “도박장서 상대를 속이는 수법으로 화투를 치다 적발됐고 함께 도박을 한 이들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당시 박씨가 내 손을 붙잡은 기억이 난다”고 주장했다.

이때 A씨의 일행인 B씨는 “박씨가 A씨를 폭행한 것을 목격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으나 해당 수사에서 제외됐다. 이에 A씨는 “박씨가 지역 유지라서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 같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들은 폭행을 직접 목격했는데 왜 수사 대상서 박씨가 제외됐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박씨는 “고추장을 사기 위해 갔다가 우연치 않게 도박장에 자리하게 됐다”며 현장에 있었던 사실은 인정했지만 “도박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폭행도 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 측은 “도박은 입건 사안이 아니며 사기, 개장, 폭행, 현금 갈취를 중점으로 조사가 됐다”며 “이 사건은 사기가 있었기 때문에 도박 참여자들은 모두 사기 피해자가 돼 법적으로 도박죄를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A씨가 내가 유명인의 아버지라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부녀 갈등이라고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박세리와 박씨의 갈등 관계가 수면 위로 표출됐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박세리는 아버지 박씨를 자신의 심장이자 첫 골프 스승이라고 밝히며 애정을 많이 드러냈다.

앞서 박씨가 불법 도박과 폭행에 연루된 일로 부녀 간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이어진다고 유추해 보기는 어렵다. 이번 일로 부녀 간의 갈등이 촉발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전에 갈등이 원인으로 돼서 박세리가 아버지를 고소했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딸 이름 내세워 사익 추구
문서·법인 도장 위조 의혹

박세리의 사연이 알려지자 국내 여러 스타들도 부모와의 금전 거래로 논란을 겪은 사례들이 재소환되는 추세다. 가장 대표적으로 방송인 박수홍은 친형과 매니지먼트 자금 횡령을 두고 지난 2022년부터 법정 공방 중이다. 

박수홍의 친형은 지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동생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면서 운영한 연예기획사 라엘과 메디아붐서 약 20억원과 동생의 개인 자금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22년 재판에 넘겨졌다. 형수 이씨도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1심서 박수홍의 친형이 20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동생의 개인 자금을 빼돌렸다는 점은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형수 이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박수홍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오는 7월 열리는 항소심 2차 공판서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할 예정이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 역시 부모와의 금전 문제로 논란을 겪었다. 장윤정은 부모의 과도한 소비와 부채로 인해 가족 간 갈등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법적 분쟁까지 이어졌던 바 있다.

박세리는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이다. 지난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과 미국 무대를 오가며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특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서 통산 25승을 수확했으며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골프선수기도 하다.

지난 1998년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서는 맨발의 투혼을 발휘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화제가 됐다. 당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리던 박세리의 모습은 IMF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국민에게 희망과 환희를 안겨줬다.

박세리는 2000년대 중반까지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과 함께 여자 골프 시장을 장악했다. 박세리가 선수 생활 동안 우승 상금으로 번 수익만 1258만 달러(한화 약 173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광고 모델료 등을 더하면 수입은 더 늘어난다.

뛰어난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여자골프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박세리를 보고 자란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등 세리 키즈들이 박세리의 뒤를 이어 세계 무대를 누비며 한국 여자골프를 세계 최강으로 이끌었다. 

맨발의 투혼
최정상 골퍼

지난 2016년 은퇴를 선언했던 박세리는 같은 해 2016 리우올림픽서 골프 여자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박인비의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후 SBS <정글의 법칙>, MBC <나 혼자 산다>, E채널 <노는 언니> 등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서 남다른 예능감을 발휘하며 사랑받았다. 최근에는 SBS 금토드라마 <재벌X형사>에 특별 출연해 카메오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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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