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아버지 등진 박세리

돈으로 끊긴 부녀의 끈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골프선수 출신 박세리가 이끄는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세리의 부친 박준철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박씨는 새만금에 국제골프학교를 설립하는 업체로부터 참여 제안을 받고 재단의 법인 도장을 몰래 제작해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가 검찰 수사를 받는 가운데 박세리가 과거 아버지에 대해 언급한 방송이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 박세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를 고소했다. 지난 11일 <텐아시아>에 따르면 박세리희망재단은 지난해 9월 박씨를 사문서위조 및 사문서위조 행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금전 문제
‘리치 언니’

박세리희망재단은 박세리가 지난 2016년 골프 인재 양성 및 스포츠산업 발전을 위해 설립한 재단으로 이사장을 맡고 있다. 경찰은 이미 고소인과 참고인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또 아버지 박씨에 대한 혐의를 인정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리희망재단 측 변호인은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씨를 고소한 것이며 박세리 개인이 고소를 한 게 아니다” “재단 이사회를 통해 고소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한 뒤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드릴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부녀 갈등으로 보기엔 힘들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박씨가 박세리의 이름을 내세워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서 사문서 위조를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씨를 고소한 배경에는 새만금 지역 국제골프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골프학교 설립을 추진한 A사는 박씨를 통해 박세리희망재단에 운영 참여를 제안했다. 이후 박씨로부터 도장이 찍힌 사업참가의향서를 받아 새만금개발청에 제출하고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박세리희망재단은 사업참가의향서에 찍힌 도장이 위조라며 박씨를 고소했다. 이에 박씨는 재단의 법인 도장을 몰래 제작해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만금청은 박세리희망재단의 고소 이후 사업참가의향서 도장 위조에 대한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사업을 중단시킨 상황이다.

박세리희망재단과 박세리가 대표로 있는 바즈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는 “최근 박세리 감독의 성명을 무단으로 사용해 진행하고 있는 광고를 확인했다” “이에 박세리 감독은 국제골프스쿨 및 박세리 국제학교(골프아카데미, 태안 및 새만금 등 전국 모든 곳 포함) 유치 및 설립에 대한 전국 어느 곳에도 계획 및 예정도 없음을 밝힌다” “홍보한 사실과 관련해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며 이 같은 허위, 과장 광고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이전부터 게재돼있다.    

재단 이사장이 박세리인 만큼 간접적으로 딸이 아버지 박씨를 고소한 것이 돼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 사건의 배경에는 3000억원대 새만금 레저시설 조성사업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희망재단, 박씨 고소한 이유는?
“3000억대 새만금 사업 있었다”

새만금 관광단지 개발사업은 새만금 관광레저용지에 민간 주도로 1.64㎢ 규모의 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새만금개발청은 지난 2022년 6월 새만금 해양레저관광복합단지 개발사업 우선협상자로 6개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해당 컨소시엄은 해양 골프장과 웨이브 파크, 마리나 및 해양 레포츠센터 등 관광·레저시설과 요트 빌리지, 골프 풀빌라 등 주거·숙박시설, 국제골프학교 조성 등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박씨가 가짜로 꾸민 박세리희망재단 명의 의향서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세리 골프 아카데미를 세우겠다는 계획은 우선협상자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후 새만금개발청은 박세리희망재단 측에 골프 관광 개발사업에 협조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 요청을 했으나 사실무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야 서류 위조 사실을 알게 된 재단 측도 박세리의 부친 박씨를 고소하게 된 것이다. 

새만금개발청 측은 지난해 허위문서 제출에 대한 문제 상황을 인지한 후 해당 업체에 대한 선정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추후 손해배상청구소송, 관련 사업자에 대한 사업 참여 제한 조처를 고려 중이다. 

본래 새만금 해양레저복합단지는 오는 10월 개장 예정이었지만 박씨의 위조문서 제출로 현재는 사업이 중단됐다.

특히 박세리는 과거 방송서 아버지와 동반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던 바 있어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박세리희망재단이 박세리의 아버지를 고소하자 박세리가 부친과의 관계를 언급했던 과거 방송 내용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무산된 사업
부녀간 충돌

박세리는 지난 2013년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아버지의 빚을 갚는 데 자신의 골프 상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당시 박세리는 “은퇴 전까지 미국서만 상금으로 126억원 정도 벌었다”며 “상금만 그 정도였고 추가적인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수입이 500억원 정도는 될 텐데, 상금의 대부분은 아버지 빚 갚는 데 사용했다”고 털어놨다. 

박세리는 “골프가 재밌어진 순간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졌다”며 “그렇게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는데 아버지가 제 골프를 계속 시켜주시고자 끊임없이 돈을 빌리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탓에 상금을 가장 먼저 아버지 빚 갚는 데 쓴 것”이라며 “모든 상금과 계약금은 남한테 아쉬운 소리까지 하며 날 뒷바라지해 준 부모님께 다 드렸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SBS 예능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출연해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세리는 해당 방송서 “아버지는 제 첫 번째 코치”라며 “아버지가 있었기에 모든 걸 헤쳐 나갈 수 있었고 제가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박씨는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을 때였다” “늘 딸에게 미안하다” “이젠 무서운 코치가 아닌 좋은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며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 서기 위해 노력한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 앞서 방송된 지난해 9월27일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서 박세리가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제가 두 번째 딸이고 막내와 언니가 있는데 저만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고 중학교도 육상부 스카우트를 받아 입학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골프를 권유하신 건 제가 6학년 때쯤이었다” “연습장에 저를 데리고 가셔서 쳐보라고 하셨다” “당시 골프 연습장에는 어르신들만 계셔서 큰 관심은 없었다”고 소개했다.

박세리는 “아버지 친구분이 저를 골프대회 관람에 데려가 선수 몇 명을 소개해 주셨다” “당시 최고 또래 선수들을 소개받으면서 뭔지 모를 스파크가 딱 왔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골프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욕심이 좀 많아서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고 싶었다”며 “이후 아버지 사업도 기울면서 마음 잡고 골프에 집중했다” “골프로 어머니를 돈방석에 앉게 해주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박세리는 과거 한 방송서 “이제부터 열심히 벌어야 한다”며 “대전에 부모님을 위해 저택을 마련해 드렸다” “부모님께 해드린 것은 절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지극한 효심
과거 재조명

한편 과거 아버지 박씨는 불법·도박 및 폭행 가담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비즈한국>은 지난 2016년 6월 박씨가 불법 도박 폭행 의혹에 휘말렸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016년 2월20일 충남 공주시 한 사택에 개설된 속칭 하우스 도박장서 벌어진 도박판 현장에 있었다.

당시 도박에 참가했던 A씨는 청주지방검찰청에 박씨를 고소했다. 그는 “도박장서 상대를 속이는 수법으로 화투를 치다 적발됐고 함께 도박을 한 이들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당시 박씨가 내 손을 붙잡은 기억이 난다”고 주장했다.

이때 A씨의 일행인 B씨는 “박씨가 A씨를 폭행한 것을 목격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으나 해당 수사에서 제외됐다. 이에 A씨는 “박씨가 지역 유지라서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 같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들은 폭행을 직접 목격했는데 왜 수사 대상서 박씨가 제외됐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박씨는 “고추장을 사기 위해 갔다가 우연치 않게 도박장에 자리하게 됐다”며 현장에 있었던 사실은 인정했지만 “도박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폭행도 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 측은 “도박은 입건 사안이 아니며 사기, 개장, 폭행, 현금 갈취를 중점으로 조사가 됐다”며 “이 사건은 사기가 있었기 때문에 도박 참여자들은 모두 사기 피해자가 돼 법적으로 도박죄를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A씨가 내가 유명인의 아버지라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부녀 갈등이라고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박세리와 박씨의 갈등 관계가 수면 위로 표출됐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박세리는 아버지 박씨를 자신의 심장이자 첫 골프 스승이라고 밝히며 애정을 많이 드러냈다.

앞서 박씨가 불법 도박과 폭행에 연루된 일로 부녀 간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이어진다고 유추해 보기는 어렵다. 이번 일로 부녀 간의 갈등이 촉발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전에 갈등이 원인으로 돼서 박세리가 아버지를 고소했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딸 이름 내세워 사익 추구
문서·법인 도장 위조 의혹

박세리의 사연이 알려지자 국내 여러 스타들도 부모와의 금전 거래로 논란을 겪은 사례들이 재소환되는 추세다. 가장 대표적으로 방송인 박수홍은 친형과 매니지먼트 자금 횡령을 두고 지난 2022년부터 법정 공방 중이다. 

박수홍의 친형은 지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동생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면서 운영한 연예기획사 라엘과 메디아붐서 약 20억원과 동생의 개인 자금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22년 재판에 넘겨졌다. 형수 이씨도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1심서 박수홍의 친형이 20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동생의 개인 자금을 빼돌렸다는 점은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형수 이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박수홍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오는 7월 열리는 항소심 2차 공판서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할 예정이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 역시 부모와의 금전 문제로 논란을 겪었다. 장윤정은 부모의 과도한 소비와 부채로 인해 가족 간 갈등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법적 분쟁까지 이어졌던 바 있다.

박세리는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이다. 지난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과 미국 무대를 오가며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특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서 통산 25승을 수확했으며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골프선수기도 하다.

지난 1998년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서는 맨발의 투혼을 발휘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화제가 됐다. 당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리던 박세리의 모습은 IMF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국민에게 희망과 환희를 안겨줬다.

박세리는 2000년대 중반까지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과 함께 여자 골프 시장을 장악했다. 박세리가 선수 생활 동안 우승 상금으로 번 수익만 1258만 달러(한화 약 173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광고 모델료 등을 더하면 수입은 더 늘어난다.

뛰어난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여자골프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박세리를 보고 자란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등 세리 키즈들이 박세리의 뒤를 이어 세계 무대를 누비며 한국 여자골프를 세계 최강으로 이끌었다. 

맨발의 투혼
최정상 골퍼

지난 2016년 은퇴를 선언했던 박세리는 같은 해 2016 리우올림픽서 골프 여자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박인비의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후 SBS <정글의 법칙>, MBC <나 혼자 산다>, E채널 <노는 언니> 등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서 남다른 예능감을 발휘하며 사랑받았다. 최근에는 SBS 금토드라마 <재벌X형사>에 특별 출연해 카메오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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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