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스파이’ 칼 빼든 정부 딜레마

그때그때 다른 고무줄 형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정부가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대응 및 처벌을 강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법과 선고의 괴리, 어려운 증거 입증 등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국가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법안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후속 대처만 논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정부의 대응으로 기술유출 범죄가 줄어들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정부가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칼을 빼 들었다. 앞으로는 영업비밀을 유출할 경우 최대 7년6개월의 형이, 해외 유출범에겐 최대 12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매년 평균 300건을 상회했다. 지난 2019년 376건이었던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2020년 405건까지 치솟았다. 2021년 378건, 2022년 348건, 지난해 379건이었다. 경찰이 불송치하거나 수사 중지한 사건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불방망이
솜방망이 

해외 유출도 지난 5년간 64%나 증가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정보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술 해외 유출은 2019년 14건서 지난해 23건으로 늘어났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피해액은 총 22조에 달한다.

하지만 기술유출범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33건 중 무죄 선고가 60.6%, 집행유예가 27.2%를 차지했다. 기소된 유출범의 87.8%가 가벼운 처벌을 받은 셈이다. 2022년에도 해외 유출범에 대한 형량이 평균 1년여 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대검이 지난 2022년 9월 ‘기술유출범죄 수사지원센터’를 설치한 후 1년여간 총 64건을 기소했지만 그중 4건에 대해서만 유죄 선고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에 기업들은 영업비밀 유출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이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특허청이 발표한 ‘2023년 지식재산 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영업비밀을 보유한 기업 2곳 중 1곳은 ‘영업비밀 유출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이 강화돼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 같은 응답을 내놓은 기업의 비율은 2022년 27.1%서 지난해 46.4%로 2배 이상 높아졌다. 기업 현장서 느끼는 영업비밀 유출 범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진 것이다.

전문가와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기술유출 범죄를 중대범죄로 분류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은 기술유출 범죄 처벌이 기업에 돌아가는 징벌적 손해배상 위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며 “막대한 돈을 받고 기술을 유출하고 짧은 형량을 받으면 유출범에겐 남는 장사”라고 지적했다.

류성원 한국경제인협회 산업혁신팀장은 “산업기술 유출과 관련된 처벌이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대부분 실형을 살지 않고 집행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초범은 봐주는 경우가 많은데 한 번 유출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받으면 범죄 시도가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기술유출을 간첩죄에 준하는 정도로 심각하게 판단하고 있다”며 “사건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공소시효 등을 연장해 추후에도 기업이 민형사를 제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매년 평균 300건 이상 발생
5년간 87% 이상 가벼운 처벌 

형사뿐 아니라 민사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교수는 “민사서 기업의 피해를 상당 부분 인정해 주는 전향적인 판결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외국으로 기술이 유출된 경우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 같은 지적에 정부 관계기관들은 지난해부터 유출범에 대한 처벌 강화와 예방 대책을 논의했다. ▲양형기준 상향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으로 범죄 구성요건 확대 ▲주요 기술유출 경로 규제 대상 포함 ▲국가핵심기술 전면 현행화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운영 강화 ▲국가핵심기술 관련 인력관리 강화 등이다.

정부는 가장 먼저 유출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특허청은 지난 13일 정부대전청사서 ‘기술보호 대책’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4중 안전장치가 완성돼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4중 안전장치는 ▲특허청 방첩기관 지정 ▲기술경찰 수사 범위 확대 ▲양형기준 강화 ▲징벌 배상 확대 등이다.

김시형 특허청장 직무대리는 “지난달 23일 방첩업무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특허청이 방첩기관으로 새롭게 지정됐다”며 “기존 국가정보원, 법무부, 관세청, 경찰청, 해양경찰청, 국군방첩사령부 등 6개 방첩기관과 함께 산업스파이를 잡는 데 적극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허청은 공학박사, 변리사, 기술사 등 1300여명의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세계 첨단기술정보인 특허정보를 5억8000만개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정보를 국가정보원 산하 ‘방첩정보공유센터’와 공유하고 다른 방첩기관서 수집한 기술유출 관련 첩보와 상호 연계하는 등 산업스파이를 잡기 위해 기관 간 긴밀히 협력해 나갈 방침이다.

김 직무대리는 “기술유출 시도가 지속 발생하고 있으나 유출범죄가 지닌 심각성에 비해 처벌은 미흡한 실정이었다”며 “양형기준을 높여 영업비밀 유출 범죄에 대해 해외 유출의 경우 9년서 12년으로 늘렸고(국내 유출은 6년서 7년6개월), 초범도 곧바로 실형이 선고되도록 집행유예 기준을 강화해 법적 억제력을 높였다”고 말했다.

지난 3월25일에 열린 제130차 대법원 양형위원회서도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의결안을 발표해 이에 대한 사법적 대응역량 강화를 선언했다.

“증거 입증
어려워…”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는 ‘지식재산권범죄’로 분류돼있던 기존의 양형기준을 ‘지식재산 및 기술침해범죄’로 수정해 기술침해범죄를 사법적으로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아울러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도 대폭적으로 강화했는데, 처벌의 근거가 되던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양형기준을 이전의 최대 6년서 8년으로 상향했다.


국가의 핵심기술을 외국으로 유출한 경우에는 최대 12년, 여기에 더해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사람이거나 계획적·조직적 범행, 동종의 누범일 경우에는 2분의 1을 가중해 최대 18년까지 가능하게 했다. 일반산업기술 사건은 국외 침해에 대해서는 최대 15년, 국내 침해에 대해서는 최대 9년까지도 가능토록 했다.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특허청 서울사무소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경법)’ 제도개선위원회가 출범해 활동을 본격화하기도 했다.

위원회는 영업비밀 분야 석학, 영업비밀 사건 실무경험이 많은 변호사, 대·중소기업서 실제 영업비밀 보호업무를 담당하는 산업계 전문가 등 12명으로 구성돼 첨단기술 등 영업비밀 유출 방지를 위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

부경법은 위조 상품의 유통과 타인의 아이디어 탈취 등 부정경쟁 행위를 방지하고,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이다.

특허청은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영업비밀 보호의 중요성이 커지는 현장 상황을 반영해 영업비밀 침해에 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3배서 5배, 조직적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법인의 벌금형을 행위자에게 부과된 벌금의 최대 3배로 강화하는 등 부경법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하지만 처벌을 강화해도 침해된 영업비밀의 가치·중요도·피해 규모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면, 실제 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재판 과정서 이를 보완할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영업비밀 침해 형사재판서 피해자의 변호사가 영업비밀을 판사에게 직접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변호사의 진술권 도입이 대표적인 예다. 특허청은 연말까지 위원회서 논의된 주요 쟁점을 정리하고, 내년부터 선별적으로 입법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정인식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세계 각국이 자국의 첨단기술 보호를 강화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상황인 점을 고려할 때 영업비밀 보호는 기업과 국가 모두의 경쟁력에 직결되는 문제”라며 “특허청은 부정경쟁행위와 영업비밀에 관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 시의적절하고 체계적으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 실행에 옮기겠다”고 말했다.

6년→8년
최대 12년

다만 처벌 기준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재판관들의 법 감정이 해당 기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10일 핵심기술들을 중국 신생 경쟁업체에 유출한 산업스파이 4명이 각각 징역 1년~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5형사단독 김희영 부장판사는 10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4명에게 징역 1년~2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피고인 중 수사에 협조한 1명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법정 구속됐다.

A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대구 소재 반도체 장비제작 업체는 3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은 피해기업 영업비밀이 중국서 사용될 것임을 잘 알면서도 부정한 이익을 얻기 위해 사용·누설했다”며 “이런 범죄를 가볍게 처벌한다면 해외 경쟁업체가 우리 기업이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기술력을 손쉽게 탈취하는 것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양형 이유에는 가볍게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으면서도 징역 1~2년의 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국민들이 느끼는 법 감정과 판사들이 느끼는 법 감정이 너무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 판사출신 변호사는 “판사들이 처벌 기준에 맞지 않게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며 “처벌 기준보다 낮게 처벌하는 판례가 많이 쌓인다면 범죄자들은 처벌 기준에 따른 선고에도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형위의 심의 결과에 맞는 선고를 내리도록 판사들의 법 감정을 다시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기술 유출 범죄를 입증하는 일이 어려운 점도 지적된다.

‘기술 유출’ 들쭉날쭉 판결, 왜?
처벌 규정·양형기준 대폭 강화

한 예로 한 드론 업체는 연구소 직원들이 회사의 핵심기술을 활용한 회사를 설립한 것에 대해 영업상비밀누설, 부정경쟁방지법 등으로 고소했지만 회사 기밀을 빼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연구한 성과라고 주장하면서 재판이 공전하고 있기도 하다.

또 예전처럼 USB에 핵심기술 괸련 정보를 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직원들의 ‘머릿속에 입력된 기술’을 빼내오는 방식으로 유출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어 기술을 빼내올 것을 요구한 정황이 있어도 이를 쉽게 증명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한 첨단기술 업계 관계자는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기술 유출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어 법의 도움을 못 받고 있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라며 “또 재판이나 수사 과정서 해당 기술을 전부 공개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법조계에서는 기술 유출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스커버리(증거공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가 증거를 미리 교환하는 절차다.

한 기술유출 전문 변호사는 “기술 유출 재판의 핵심은 증거 확보”라며 “일단 기술 개발이 완료되고 나면 어떤 기술이 유출됐고 어떻게 사용됐는지 추적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 기업이 기술 유출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막혀 있는 상황서 디스커버리 제도는 유용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기술 유출 정황을 발견했을 때 형사절차를 먼저 개시한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확보하거나 민사소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거의 없어 압수수색 등 수사 권력의 힘을 빌려 증거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활성화되면 재판 시작 전 기술 유출 증거를 확인해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은 “민사소송이든 형사소송이든 기술 유출을 판단하고 피해 규모를 산정하게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와 증거 공개가 필수다. 기술 유출뿐 아니라 민사소송서 디스커버리는 중요한 문제”라며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제3의 기관에게 감정받아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을 통해 효율적으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기술 유출에 관한 처벌 규정은 강화됐지만 산업기술보호법의 규제를 받는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규정은 아직 국회서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일(오는 29일)이 2주 정도 남은 가운데 반도체·이차전지(배터리) 등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를 골자로 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선 이 법안을 작년 11월 통과시킨 이후 12월 소위 심사를 한번 진행한 상태다. 법제사법위원회의(법사위) 법안 심의를 거쳐 본회의 통과라는 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국가핵심기술
아직 계류 중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만약 법안 통과가 되지 않는다면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될 것이고 22대 국회서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고 심의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반복될 것”이라며 “촉각을 다투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서 밀리는 등 심각한 상황서도 우리 기업, 정부는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임직원 상당수가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유죄로 판단돼도 법정형 대비 양형이 낮은 수준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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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올인’ 민주당 그림자

‘이재명 올인’ 민주당 그림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4월부터 설설 끓던 ‘이재명 연임론’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연임으로 잠재적 합의를 본 듯하다. 당의 앞날이 오직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재명 몰빵’을 외친 채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일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각종 현안을 띄우며 여론전에 나섰지만 그만큼 구설에 오르기도 하는 요즘이다.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둔 포석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여의도에서는 ‘어대이(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기류가 강하지만 정작 본인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 대표는 24일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당 대표직을 사임했지만, 연임 여부에 관해서는 “길지 않게 고민해서 저의 거취를 결정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모냐 도냐 민주당 의원은 저마다 이 대표 연임론에 군불을 때고 있다. 거대 야당을 맡을 적임자로 이 대표가 제격일뿐더러 민주당 내 마땅한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 대표의 연임에 대해 “당연하다”며 “지난 총선서 국민은 민주당에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줌으로써(이 대표가) 리더십의 재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도 말씀하셨지만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며 “민주당은 절체절명의 정권 교체에 있는데(이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1등을 뺏겨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이 대표를 두고 “윤석열정부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적임자”라며 연임에 힘을 실었다. 장 최고위원은 라디오를 통해 “본인 개인적으로는 힘드시겠지만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국민이 바라는 건 물러터진 민주당이 아니라 강한 민주당, 이기는 민주당”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이 대표께서 연임을 결단 내리고 출마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길지 않은 시간 내에 고민을 정리하시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민주당이 당헌·당규 개정안을 손질하면서 이 대표의 연임도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제4차 중앙위원회의를 열고 ‘당 대표 사퇴 시한에 예외를 두는 당헌 개정안’을 최종 의결했다. 민주당 당헌 25조2항에 따르면 당 대표나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선거 1년 전 직을 사퇴해야 한다. 해당 조항은 그대로 두되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위원회 의결로 시한을 달리하는 규정을 신설한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중앙위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가 진행됐으며 참여자 501명 중 422명인 84.23%가 찬성했다. 반대는 15.77%로 79명이었다. 개정되기 전 당헌을 따를 경우 이 대표는 오는 8월 전당대회를 통해 연임에 성공해도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2026년 3월에 사퇴해야 한다. 하지만 신설 조항이 개정되면서 같은 해 6월 치러질 지방선거에도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당대회 앞두고 멍석 깔았다 당헌·당규 이어 러닝메이트도 국민의힘이 “이재명을 위한 1인 지배정당”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서 민주당 강득구 수석사무부총장은 “비상 상황이 생길 때(개정을) 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그때 수정하면 정치적 목적으로 ‘셀프 개정’했다는 오해를 받을 염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대표나 최고위원이 우리 당의 유력 대선후보인데 정해진 일정이 아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해 대선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떡할지 고민이 있었다”며 “개정이 필요하다는 차원서 절박한 마음으로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부연했다.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로 된 분위기 속에서 2기 지도부에 함께할 의원들도 자천타천 거론된다. 새로운 수석 최고위원이자 이 대표의 러닝메이트로는 4선인 같은 당 김민석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 의원은 지난 총선서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등을 역임하면서 이 대표와 긴밀히 소통해 온 인물이다. 선수가 높아 캠프의 핵심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크다. 이 밖에도 최고위원 후보군으로 전현희·이언주·민형배·한준호·강선우 의원이 물망에 올랐다. 원외에서는 전봉주 전 의원과 김지호 상근부대변인이 이름을 올렸다. 이 대표도 각종 현안을 띄우며 부지런히 발을 맞췄다. 최근에는 주4일제와 단통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여론 주도권 쥐기에 나섰다. 지난 총선 때 공약으로 내건 ‘25만원 지원금’에 이은 민생 이슈로 다가오는 전당대회를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9일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주 4일제는 피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며 “거꾸로 가는 노동 시계를 바로 잡고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한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실의 “근로 다양성을 고려해서 주 52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적하는 동시에 맞대응할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의욕이 지나쳤나? 이날 이 대표는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인 단통법을 신속하게 폐지하겠다고도 밝혔다. 박근혜정부 시절 시행돼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통신비 절감 효과는커녕 부작용만 양산했다는 점에서다. 이 대표는 이런 점을 꼬집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지난 1월 민생토론회서 단통법 폐지를 약속했다. 그런데 벌써 반년 동안 변한 게 없다”며 “단통법 폐지에 대해 정부여당도 말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우리 국민의 통신비 부담이 저감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 대표는 민주당의 아버지”라는 찬사가 나오기도 했다. 새롭게 최고위원회의에 합류하게 된 강민구 최고위원은 “아버님이 지난주 소천하셨다. 아버님은 평생 이발사를 하며 자식을 무척이나 아껴주신 큰 기둥이었다”며 “소천 소식에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당원들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 대표”라며 “국민의힘이 영남당이 된 지금 민주당의 동진 전략이 계속돼야 한다. 집안의 큰 어르신으로서 이 대표가 총선 직후부터 영남 민주당의 발전과 전진에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다”고 덧붙였다. 해당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에게 충성 경쟁을 하기 위한 ‘낯 뜨거운 찬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국민의힘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 막장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당 김장겸 의원도 “잠시 조선노동당 얘기인 줄 착각했다”며 “우상화가 시작됐나요?”라고 비꼬았다. 새로운미래 최성 수석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재명 1인 절대권을 지닌 친정 체제’가 확고히 뿌리내리는 장면”이라며 “이재명이 민주당의 아버지면 ‘법카 횡령’으로 재판을 받는 김혜경 여사는 머지 않아 ‘민주당의 어머니’로 칭송받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고 직격했다. ‘민주당의 아버지’ 논란이 불거지자 강 의원은 SNS를 통해 “깊은 인사는 영남 남인의 예법”이라고 설명했지만 비판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 대표의 연임은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했다. 특유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민주당을 질서정연하게 이끌겠지만, 앞으로 민주당이 하는 모든 행동이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한 방탄으로 비춰질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민주당이 꾸리고 있는 지도 체제 목적은 뚜렷하다. 이 대표를 사법 리스크로부터 구해내는 게 당의 목표가 되다 보니 자꾸 무리수가 생긴다”며 “옆에서 함께 뛰는 동료들이 눈치를 못 채겠나. 그래도 크게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우니 ‘민주당이 모든 걸 쟁취하겠다’는 여론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탄 색안경 언제쯤 벗나 민주당이 11개 상임위를 선점하고 각종 법안을 발의하자 국민의힘은 ‘의회 독주’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던 날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상식에도 맞지 않고 국회법에도 맞지 않고 관례에도 맞지 않는 상임위 배분안”이라고 비판했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질주하는 민주당의 모든 행동이 기승전 이 대표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서 징역 9년6개월을 선고받자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이 대표 지키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여권의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법제사법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를 차지하고 강경파 의원을 위원장으로 앉힌 것 역시 이 대표를 사법 리스크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이라고 해석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발의한 ‘대북송금 특검법’ ‘수사기관 무고죄’ 등도 모두 이 대표 방탄을 위한 맞춤형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인 방송 4법을 국회 상임위원회(과방위)서 단독으로 처리한 것 또한 이 대표가 언론을 개인 방송으로 사유화하기 위한 절차라고 맹비난했다. 방송 4법은 지난 21대 국회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법안 중 하나다. 기존 방송 3법에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4인 이상으로 하는 내용을 더해 22대 국회서 재발의한 것이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표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애완견’으로 비난하면서 언론을 사실상 이 대표의 개인 방송으로 사유화하고 장악하겠다는 속셈”이라며 “국회는 이 대표의 방탄 로펌이 아니며 공영방송이 이 대표의 개인 방송으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 대표가 자신의 대북송금 의혹 수사 관련 보도를 한 일부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으로 표현한 게 논란이 되자 일부러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안 의원은 “날치기로 통과시킨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진 대부분을 친민주당·친민주노총 성향 단체들이 추천하겠다는 개악법”이라며 “‘이재명 민주당’이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뻔하다. 방탄 언론으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강조했다. 말 한마디도 ‘방탄’ 직결 “연임은 당이 쥘 양날의 검”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 대표를 향해 “여의도 동탁이 등장했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이재명 1극 체제’는 우리로서 전혀 나쁘지 않다. 동탁 체제가 아무리 공고해 본들 그건 20% 남짓한 극성 좌파들 집단의 지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 시장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어버이 수령 체제’로 치닫는 민주당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본다”며 “민주사회서 최종 승리는 결국 다자 경쟁구도서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이 그걸 증명해 준다”고 덧붙였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 대표가 연임하면 지방선거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이 줄어든다”며 “민주당을 이끌 새로운 인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인물은 민주당 내에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도나도 이 대표를 추대하는 분위기로 몰려 선뜻 목소리를 못 내고 있을 뿐”이라며 “결국 국민의 피로감만 쌓이는 전당대회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민주당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모양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누가 당 대표가 되든 민주당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이재명이라는 대선후보의 입장서 보면 너무 많은(당의) 리스크를 안고 가는 선택 아닐까”라고 우려를 표했다. 고 최고위원은 ‘리스크를 떠안고 갈 우려가 너무 크다’ ‘목표를 대권에 잡아야지 당권에 둬서는 안 된다’ 등의 이유로 이낙연 전 대표의 출마를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은 당권을 갖고 갔다. 그리고 리스크를 다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갔다”며 “그게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서 대권과 당권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리스크 확성기 야권의 한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어떤 집단이 일극체제로 굴러가는 건 누군가의 뛰어난 리더십이 발휘됐다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로 꽁꽁 묶여 있다. 거대한 무리서 혼자 톡 튀어나온 이 대표는 국민의힘의 타깃이 되기 딱 좋은 위치”라고 우려를 표했다. 모든 시선이 이 대표에게 쏠려 있으니 국민의힘이 작은 오점 하나까지 꼬투리를 잡아 늘어질 게 뻔하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 한 명만 쓰러뜨리면 끝나는 게임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후보군이 제법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면서도 “전당대회뿐만이 아니라 대선에 등장할 잠룡도 많은데 민주당은 ‘오직 이재명’만 외치면서 다음 대책도 없이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기서 변화구가? 5선인 민주당 이인영 의원의 당권 도전 가능성이 8월 전당대회 변수로 떠올랐다. 잔뼈가 굵은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나 “국회의장 선거서 우원식 의원이 추미애 의원을 꺾었다. 이인영 의원도 우 의원과 같은 GT계(김근태계) 사람”이라며 “우원식 의원을 의장으로 만들었으니 이 의원의 출마는 ‘못 먹어도 고’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다만 “이 대표 추대론으로 분위기가 맞춰지고 있어 이 의원의 도전이 계파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며 “고심이 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전당대회 출마와 관련해 이 의원은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