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국민의힘 참패 예견한 유준상 상임고문

“결국 대통령이 풀어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을 100일 앞두고 쓴소리를 쏟아냈던 정치 원로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후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했고 선거전략도 부족했다. 공당의 자산으로 여겼던 인물은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고 물러났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상태다. 4개월 만에 다시 마주 앉은 국민의힘 원로들은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지난 17일, 국민의힘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여 4·10 총선 패배와 관련해 정부여당에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당의 무능, 국민의 정권 심판 등 총선 참패의 배경을 두고 상임고문단의 성토가 이어졌다. 당의 내홍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총선 승리를 노렸다. 정치 경험은 없지만 국민 호감도가 높은 인물로 당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야당과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기세를 보여준 것은 선거 초반뿐이었다. 대통령실발 악재 등이 거듭되면서 선거 막판에 이르러서는 ‘읍소’만이 남았다. 

결국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을 합해 108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이 192석을 얻은 것과 비교하면 궤멸에 가까운 수치다. 국민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낙제점을 매겼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개헌과 대통령 탄핵이 가능한 범야권 200석을 저지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국민의힘 유준상 상임고문은 “선거는 바람이다. 총선 기간 내내 정권 심판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채 상병 사건, 황(상무) 수석 발언, 대파 사건, 김건희 여사 디올백 사건 등이 거듭 불거지면서 정권에 대한 분노가 커졌고 심판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반면에 국민의힘 지지층은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유 상임고문은 지난해 12월15일과 26일 총선을 100일가량 앞두고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그는 이번 총선서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는 물론 여야 정치인에 대한 국민 심판이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민의힘 공천 과정서 영남권의 다선 중진 의원이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는 등 혁명에 가까운 공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인터뷰 당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한 전 장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한 전 장관이)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인재를 영입하고 이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거를 진두지휘하길 바랐다. 이미 비대위원장으로 결정된 이상 흔들림 없이 나아갔으면 하지만 총선서 패배할 경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정치 원로의 진단은 족집게처럼 맞아 떨어졌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은 정권 심판 바람에 밀렸고 대통령실 등에서 터진 각종 악재들은 유권자의 표심은 물론, 보수 지지자들의 투표 의욕까지 갉아먹었다.

유 상임고문은 지난달 4일 윤 대통령이 이종섭 전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했을 당시를 총선 참패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그때 제가 상임고문단 회의를 소집해달라고 정의화 의장한테 요청했어요. 대통령이 대사 임명을 취소하도록 성명서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됐습니다. 그때 ‘선거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100석 이하로 봤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의 한 카페서 유 상임고문을 만났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간담회를 마친 직후였다. 다음은 유 상임고문과의 일문일답.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했습니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정책을 하나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해결책 제시도 늦었습니다. 김건희 여사 디올백, 채 상병 사건이 터졌을 때 빠르게 해명하고 사과했으면 끝날 일이었습니다. 또 의정 갈등을 추진하는 과정서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한 면도 감표의 요인으로 생각됩니다. 


-여당의 선거 전략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대통령실서 사안에 대한 해결책을 즉시 내놓지 못하면서 일을 키운 감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면서 야당의 선거전략인 정권 심판이 국민의 분노와 맞물려 폭발력을 갖게 됐습니다. 또 지난 대선서 윤 대통령을 선택했던 지지자들의 실망감이 더해지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결정적 순간
6월 안에 조기 전당대회 열고 수습

-‘한동훈 비대위’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동훈 위원장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사력을 다했다고 평가합니다. 한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대위원장에 임명되기 전 ‘공공선을 추구하고 개인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민의힘이 키워야 할 큰 자산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번 총선 참패로 상처를 입은 부분은 안타깝지만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임고문단 간담회서 윤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셨습니다.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이후 국민을 상대로 입장을 밝히려 했다면 국무위원을 상대로 한 국무회의가 아니라 기자회견, 대국민 담화 등의 방식을 취했어야 합니다. 내용 또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움츠러들 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자회견을 진행해 국민과의 접촉면을 넓혀야 합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소통하는 모습으로 불통 이미지를 씻어내야 합니다. 

-국무총리에 어떤 인물이 임명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지금까지 국무총리는 모두 관료 출신이었습니다. 이제는 윤 대통령의 부족한 정치 경험을 보완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합니다. 풍부한 정치적 경험과 정무적 판단 능력으로 대통령에게 정확한 정세를 말해줄 수 있고 여야 간 소통으로 협치를 이끌어내고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국무총리를 빠르게 임명해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워야 합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국무총리 추천을 요청하거나 야당과의 협의를 통해 국회 동의가 가능한 인물로 지명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비서실장으로 정진석 전 의원을 발탁했습니다.

▲신임 정진석 비서실장은 언론계,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의원 5선 중진, 원내대표. 비대위원장, 국회부의장 등을 두루 역임한 분입니다. 충청도 출신이고 폭넓은 소통과 화합의 중진 정치인으로서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서실장직을 잘 수행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상황은 어떻게 수습될 것으로 보십니까?


▲2년 동안 비대위만 3번 구성됐습니다. 더 이상 비대위 체제로 가서는 안됩니다. 6월 안에 조기 전당대회를 열고 새로운 지도부를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부 정비는 물론 여야 간 소통, 당정 대화 등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당원과 국민에게 새롭게 변모한 집권당으로서의 모습을 빠른 시일 안에 보여줘야 합니다. 

-국민의힘은 두 번 연속 대패했습니다.

▲총선 기간 내내 주말을 이용해 전국의 선거현장을 다녔습니다. 민심은 정말로 무섭다는 것을 또 한 번 체감했습니다. 이번 선거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지만 민주당이 교만과 오만, 불통의 정치를 한다면 삽시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낮은 자세로 정말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국민의힘과 함께 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생긴다’는 구호를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의힘에는 국민의 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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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