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공룡’ MBK 손익 계산서

갈수록 간절해지는 본전 생각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잇따른 투자 실패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큰 기대를 안고 사들였다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매물이 곳곳에서 눈에 밟힌다. 차익은커녕 본전 뽑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바이아웃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사모펀드 운용사다.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한 뒤 재투자를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한 후 재매각하는 투자전략을 기초로 한다.

확연했던
파죽지세

MBK 성공신화의 주역은 단연 창업주인 김병주 회장이다. 골드만삭스, 칼라일그룹 등을 거친 김 회장은 2005년 MBK를 설립 이후 하락기에 기업을 인수해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키웠다.

한미캐피탈(현 KB캐피탈) 인수 및 매각은 관련 업계에서 MBK를 주목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MBK는 2006년 626억원을 투입해 한국씨티은행으로부터 한미캐피탈을 매입했고, 이듬해 우리은행에 한미캐피탈을 2711억원을 받고 되팔았다.

한미캐피탈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MBK가 거둔 차익은 1840억원에 달했다.


금호렌터카 인수 및 매각은 MBK의 투자 능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였다. MBK는 2010년 KT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한통운으로부터 금호렌터카 지분 100%를 2890억원에 인수했고, 금호렌터카와 KT렌탈이 합병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KT렌탈 2대 주주로 올라섰다.

MBK는 2013년에 자금회수에 나섰고, KT렌탈 보유 지분 42%를 KT에게 넘긴 대가로 2200억원을 챙겼다. 표면적인 차익은 800억원 수준이었지만, 금호렌터카 지분 인수 당시 40%가량을 금융권에서 차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수익은 훨씬 더 컸다.

ING생명(현 신한라이프) 인수 및 매각 과정에서도 남다른 수완이 돋보였다. ING생명은 2012년 네덜란드 본사의 경영난 여파로 시장에 매물로 나왔고, 1조8000억원을 지불한 MBK의 특수목적회사인 라이프투자유한회사가 새 주인으로 등극했다.

MBK 휘하에서 5년을 보낸 ING생명은 2018년 다시 시장에 나왔고, 신한금융지주가 최종 인수자로 결정됐다. MBK는 ING생명 주식 4850만주(지분율 59.15%)를 주당 4만7400원에 넘기는 대신 신한금융지주로부터 약 2조3000억원을 넘겨받았다.

2020년 매각한 코웨이는 가장 극대화된 이익을 남긴 투자 사례로 평가된다. 2013년 MBK는 극동건설 인수 여파로 자금사정이 악화된 웅진그룹으로부터 코웨이를 1조19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MBK는 3700억원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인수를 진행했다. 또 인수금융으로 4700억원을 마련했고, 상환전환우선주(3500억원)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MBK는 코웨이를 사들인 직후부터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에 힘을 쏟았고 효과는 확실했다. 강도 높은 체질 개선 작업에 힘입어 인수 3년째인 2015년에 20%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정도로 수익성이 극대화됐다. MBK는 2020년에 코웨이를 넷마블에 되팔면서 1조원대 차익을 남겼다.

쏠쏠했던
차익 장사


MBK는 연이은 투자 성공에 힘입어 금융투자업계에서 동아시아 지역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출범 당시 11억달러에 불과했던 운용 자금이 20년 만에 300억달러 규모로 커진 상태다.

물론 MBK가 무결점 성공가도를 달려온 건 아니다. 크고 작은 투자 실패 사례가 심심치 않게 목격됐으며, 몇몇 투자는 흑역사로 남기도 했다. 2008년 인수했던 씨앤엠(현 딜라이브)이 대표적이다.

MBK는 케이블TV 1위였던 씨앤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2조2000억원을 투입하는 강수를 뒀지만, 이는 패착이었다. 씨앤엠은 케이블TV에서 인터넷방송(IPTV)으로 시장 주도권이 넘어가는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2016년 채권단 경영관리체제로 전환했다. 채권단이 매각을 주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MBK는 산업 흐름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2010년 중후반에 인수한 ▲홈플러스 ▲롯데카드 ▲네파 등이 재매각에 어려움을 겪자, 이 같은 기류가 부각되는 양상이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9월 영국 대형마트 기업 테스코로부터 대형마트 업체인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당시 홈플러스에 책정된 몸값은 7조2000억원에 달했고,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수·합병 사례였다.

그러나 홈플러스에 매겨진 천문학적인 몸값은 재매각을 어렵게 만들었고,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실적은 뒷걸음질쳤다. MBK가 인수하기 직전인 2014 회계연도에 영업이익 2400억원을 거뒀던 홈플러스는 2022년에 영업손실 2602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좋은 시절은 다 끝났나?
팔리지 않고 쌓이는 매물

이런 가운데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지난달 28일, 홈플러스 기업어음·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로 유지했다. 지난해 2월28일 A3+에서 A3로 조정한 신용등급을 재평가에서 동일하게 적용한 것이다. 신용등급 A3는 적기 상환 가능성은 일정 수준 인정되나, 단기적인 환경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되는 등급이다.

한신평은 대형마트·SSM의 시장 지위 하락, 과거 대비 약화된 경쟁력, 현금창출력 대비 과중한 재무부담 등을 평가 이유로 언급했다. 홈플러스가 지속된 점포 매각과 제한적인 설비 투자로 대형마트 시장 내 경쟁력이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금리·고물가로 소비가 둔화하고 온라인, 근거리·소량 구매 등 대형마트에 불리한 소비행태가 굳어져 단기간 내 유의미한 수준의 수익성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롯데카드는 롯데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꾀하던 2019년 매물로 나왔고, MBK·우리은행 컨소시엄에 최종 매각됐다. 당시 MBK가 책정한 롯데카드의 기업가치는 1조8000억원 수준이었다.

MBK는 롯데카드가 2022년 말 역대 최대인 순이익 2780억원을 기록한 것을 계기로 롯데카드 매각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드 업황 부진으로 매각 작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당시 MBK 측이 요구한 롯데카드 매각가는 약 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MBK는 롯데카드 분리매각 수순을 밟았다. 지난해 맥쿼리자산운용에 롯데카드가 보유한 교통카드 사업 자회사 로카모빌리티 지분 100%를 4150억원에 매각하면서 다소 몸집을 줄인 상태다.

네파는 MBK가 2013년 1조원가량을 투자해 평안엘앤씨로부터 지분 94.2%를 사들인 아웃도어 업체다. 투자금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00억원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했으며 2·3호 블라인드 펀드에서 나머지 금액을 부담했다. 

그러나 네파는 지금껏 재매각에 실패했다. 2022년 영업이익 264억원을 거두는 등 최근 들어 확연한 성장세를 나타냈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아웃도어를 포함한 국내 패션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식었다는 게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엉켜버린
엑시트

최근 들어 투자 실패 사례가 연이어 목격된 것과 별개로, 여전히 MBK 휘하에는 매력적인 기업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최근 수익성이 눈에 띄게 향상된 글로벌고메이서비시스(bhc), 모던하우스 등은 매각 가능성이 높은 매물로 분류된다.

MBK는 bhc를 지배하는 글로벌고메이서비시스의 최대주주다. 2018년 전환사채(CB) 투자, 2020년 2차 투자를 통해 지분율을 끌어올렸으며, 경영권 인수가 아닌 지분 투자 형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bhc는 기업가치가 3조원대로 평가받고 있다. 2018년(6800억원)과 비교해 4배가량 상승한 수치다. 30%대 영업이익률은 동종업계에서 가장 월등한 축이다. 지난해 11월 박현종 bhc 회장 해임을 계기로 bhc 매각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 분위기이며, 차영수 MBK 운영 파트너가 박 회장을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1996년 이랜드그룹 생활 사업부로 출범한 모던하우스는 국내 홈·리빙 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MBK는 2017년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이랜드리테일로부터 모던하우스를 약 686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직후인 2018년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모던하우스는 영업이익 315억원을 기록하면서 확실한 실적 반등을 이뤄냈다. 수익성이 높아진 이후 MBK는 2021년 모던하우스 운영법인(엠에이치엔코) 지분 100%를 매각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아직까지는 재매각을 실현하지 못한 상태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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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