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 ‘유기피해인특별법’ 공청회 가보니…

법안을 또 법안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10월 한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의 통과로 개인의 일로 여겨졌던 ‘출산’이 국가의 영역으로 편입됐다. 문제는 법안 통과와 동시에 제기된 부작용 우려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서는 법안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법안의 부작용을 법안으로 막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서 충분한 검토 없이 구멍 뚫린 법안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에는 ‘보호출산제’ 법안이 그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친부모 몰라

지난해 10월 보호출산제 도입을 위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신원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병원 밖 출산’을 택하는 임산부가 익명으로 병원서 출산해 신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아이를 낳으면 지자체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것. 

지난해 6월 말 국회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사라진 아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을 지방자치단체에 자동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출생통보제가 만들어낼 사각지대다. 신원 노출을 꺼리는 산모가 병원 밖에서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정된 법안이 바로 보호출산제 법안이다. 


법안에는 위기 임산부가 지정된 지역 상담 기관서 출산·양육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호출산을 원하는 경우 상담기관의 장이 비식별화된 정보를 입력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산모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되 출생기록을 남겨 추후 친모나 자녀의 동의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법 제정을 통해 위기 임산부가 체계적인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어떤 임산부라도 안전하게 병원서 출산하는 길이 열려 산모와 아동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됐다”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서도 도입을 권고한 제도인 만큼 철저히 준비해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보호출산제 부작용 우려
“아동 유기 야기” 지적

하지만 법 시행을 5개월여 앞두고 보호출산제의 부작용을 방지할 새로운 법안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다. 출생통보제에 대한 우려를 보호출산제로 막았듯, 보호출산제로 야기될 문제를 막을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달 29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의 주최로 ‘보호(익명)출산제 실행으로 인한 인권침해 방지 및 유기 피해인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서 열린 공청회는 사단법인 디올포원, 고아권익연대가 주관했다. 이들은 보호대상 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단체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는 민영창 국내입양연대 대표, 김민정 사단법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김수빈 나는부모다협회 회장을 비롯해 자립준비청년들이 참석했다. 


이수진 의원은 “보호출산제 입법 과정서 이 제도가 아동 유기를 양성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며 “부모가 원가정서 아동을 양육할 수 있는 제도를 강화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회사를 맡은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130만 고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보호출산제는 아동을 버린 자의 권리를 보호해주고 피해자의 권리를 짓밟는 법”이라며 “아동이 가정서 행복하게 자라도록 보장되는 법과 제도로 아동이 행복한 미래를 마음껏 꿈꾸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립준비청년과 입양인은 보호출산제가 사실상 아동 유기를 합법화하는 법안이라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취지는 아동 보호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아동이 시설에 맡겨져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설명이다. 

자신을 서울 은평구에 있는 꿈마을보육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이라고 소개한 안재모씨는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친부모를 알 권리를 박탈함과 동시에 국가가 버려진 아이들의 권리는 빼앗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빼앗긴 권리로 평생을 가혹한 환경서 살아가는 아동들을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전하게 병원서 출산”
“양육 환경 조성이 우선”

안씨는 자신이 나고 자란 보육원서 오랜 시간 학대를 겪어 왔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 학대만큼이나 자신을 힘들게 했던 건 친부모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나는 지금도 낳아주신 부모님을 너무나 찾고 싶다. 여러 곳을 수소문해서 생모의 사진을 찾을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어 “보호출산제로 인해 나 같은 아동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느끼는 그리움과 한을 다 알 수 없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기억이 있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리라 생각한다”며 “부디 아동의 권리와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가정서 아동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정부와 어른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청했다. 

자립준비청년 홍진수씨도 “보호출산제로 인해 부모님을 알 수 없다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고 슬프다”며 “부모 없는 자립준비청년은 지속적인 상처와 아픔을 달고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고 말했다. 홍씨는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부모가 자신을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보육원에 입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친권을 포기한 경우다.

생후 3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한분영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 공동대표는 “덴마크는 아이의 알 권리 차원서 부모가 누군지 국가가 알려주고 친부가 누군지 모를 때는 국가가 유전자 검사까지 해준다”며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보면 한국은 왜 이렇게 해외입양을 많이 보내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한국도 열심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한테 신경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꼼꼼한 지원

전문가는 양육을 위한 환경조성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임신 중 겪는 갈등 후 양육을 선택할지 입양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일이 없도록 지원체계가 더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위해 긴급으로 잠시 맡길 수 있는 긴급위탁가정 이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가족·친인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원가족·친인척 아이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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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