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모자’ 쪼개지는 한미약품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1.25 14:43:15
  • 호수 14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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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떻게 키웠는데···골육상쟁 서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OCI그룹과 한미약품 간 통합 과정이 오너가 장남의 반발로 떠들썩하다.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양 그룹의 통합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반대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통합을 주도한 그의 모친 송영숙 회장과의 갈등은 어떤 결말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은 각각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와 OCI홀딩스 지분 10.4%를 맞교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를 OCI홀딩스가 7703억원을 들여 취득하고, OCI홀딩스 지분 10.4%는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취득하는 방식으로 양사가 통합을 결정한 것이다. 

임 창업주
떠나자마자…

계약이 마무리되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이자 통합 지주사가 된다. 한미사이언스는 제약바이오 자회사를 거느리는 중간 지주사가 된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통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이 내야 할 상속세는 약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미약품은 상속세 마련을 위해 OCI에 지분을 매각하면서도 임주현 사장의 경영권 유지를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2020년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아내 송영숙과 세 자녀(2남1녀) 등 오너 일가는 5400억원의 상속세를 안게 됐다. 송 회장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 2021년 서울 잠실세무서에 상속세 납부를 조건으로 총 12.29%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담보로 잡혔다. 


이들은 3년간 분할 납부를 해왔지만,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한미약품은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MG새마을금고가 주요 출자자인 사모 펀드 ‘라데팡스 파트너스(이하 라데팡스)’에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여파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투자받지 못하면서 한미약품은 지분매각 대상을 다시 물색했다.

라데팡스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사후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한미약품에 부회장으로 추천했을 만큼 한미약품과 신뢰관계를 유지한 운용사다. 지분매입이 불발로 돌아갔으나 지분매각 자문 역할은 유지했고, 이 과정서 OCI를 한미약품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장남···가처분신청까지
이종 결합 실패?···경영권 분쟁

당시 라데팡스는 임주현 사장의 경영에도 힘을 실어줬다. 이번 통합이 한미그룹의 ‘집안싸움’으로 번지게 된 이유다. 통합 후 OCI홀딩스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27.03%가 될 예정이지만,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의 지분을 합하면 17.69%에 불과하다. 

임종윤 사장은 통합에 반대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는 지난 17일 한미약품과 OCI의 통합중지가처분신청을 냈다. 남동생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도 한배를 탄 형국이다. 임종윤 사장은 이날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의 임종윤 및 임종훈은 공동으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신청서를 금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임종윤 사장이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서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이 형과 합류한 것은 예상 밖이라는 분위기다. 평소 송 회장 등과 사이가 원만했던 임종훈 사장은 한미약품의 우호 세력으로 평가됐다. 임종훈 사장이 임종윤 사장 편에 서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앞서 한미약품 측은 가처분신청 예정일이 지난 16일서 하루 연기된 것을 보며 임종윤 사장 측이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임종훈 사장이 나서면서 판도는 바뀌었다.

임종윤 사장 측은 지난 16일 오후 가처분신청을 하려고 했다. 가처분신청은 임종윤 사장 측이 주도하되 임종훈 사장이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임종훈 사장은 당일까지도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7일에도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신청은 오후 늦은 17시께 이뤄졌다.

임종훈 사장의 결정이 늦춰지자, 임종윤 사장 측은 단독으로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한미약품 오너가 경영권 분쟁은 앞으로 장기화될 전망이다. 조기 종결될 수 있던 순간 임종윤과 임종훈 사장이 전격 합류하면서 장·차남 대 모녀 구도가 완성됐다.

상속세 
선택지

임종윤 사장 측 가처분신청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지난 18일 <일요시사>와 통화서 “요건상 문제가 없어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우리 측 법률검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 그룹사가 합의한 동반, 상생 공동 경영의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원활한 통합 절차 진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사이언스 내 위치와 지분구조 등으로 볼 때 임종윤 사장이 이번 결정을 뒤집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약품-OCI 통합 발표가 임종윤 사장의 입지를 불안케 했던 것일까? 2000년대 초만 해도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의 유력 후계자였다. 

앞서 그는 매체와 인터뷰서 “내가 별도로 경영하는 코리그룹과 국내 기업을 통해 증권가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임종윤 사장은 지난 2004년부터 북경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동사장(회장) 등을 거치며 입지를 다져왔다.

당시 북경한미약품의 연 매출이 600억원대로 성장하면서 임 사장의 경영 성과는 돋보였다. 이어 2009년 한미약품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가 나뉘기 전에 한미약품의 등기임원(사장)으로 선임됐다. 분할 이후에는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아버지 임성기 회장 대신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에 단독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2020년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 찬밥 신세에 놓였다. 모친 송 회장이 임 전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임종윤 사장의 동생 2명을 모두 한미약품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이다. 2021년 한미약품그룹은 임종훈 사장의 동생 임주현·임종훈 남매의 한미약품 사장 선임을 발표했다.

후계구도가 송 회장이 지시한 ‘삼남매 검증 후 결정’으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임종윤 사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임씨 집안 내에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서 물러났고 이사회서도 제외됐다.

OCI 집안과
가깝게 지내

모자간 갈등이 본격화된 계기는 임종윤 사장이 중국서 벌인 신사업의 부진과 이에 대한 모친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홍콩 소재에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오브맘컴퍼니와 임종윤 사장 개인회사인 코리그룹 계열사 코리포항의 실패다.


임종윤 사장은 오브맘그룹을 통해 프리미엄 산후조리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산후조리원을 사들이기 위해 SG프라이빗에쿼티·플루터스에쿼티파트너스서 공동 조성하는 200억원대 사모펀드에 개인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브맘컴퍼니의 한국 법인인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매년 수십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2022년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34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코리포항의 2021년 기준 연 매출은 4700만원에 불과하다.

부진한 사업 결과에도 임종윤 사장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버클리음대 재즈작곡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다. 업계에선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시절에도 자유로운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시켰다”고 했다.

그의 독특한 행보는 한미약품 경영에 관여해온 ‘여장부’ 송 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 회장은 임 전 회장 생전에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한미사진미술관장 등의 자리서 문화사업을 이끌면서도 경영 일정 부분에 참여해왔다.

송 회장이 북경한미약품의 어린이 유산균정장제 ‘마미아이’를 직접 작명하기도 했고, 북경한미가 성장하는 과정서 중국 진출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직접 경영을 맡게 된 2020년부터는 안팎서 ‘저돌적으로 경영한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이번 OCI그룹과의 통합 역시 송 회장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후문.

여장부 엄마-음대 출신 아들
갑자기 사이 벌어진 까닭은?


임종윤 사장도 송 회장이 자신을 배제했다고 했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2020년부터 한미약품 그룹서 밀실 경영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했다. 현재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대표이사가 아닌 ‘미래전략 담당’이다. 내부에선 그가 사내에 역할이 없는 상징적인 자리에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한미 오너 일가가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OCI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다만, OCI가 산업재료용 화학제품 전문기업으로 제약업과 접점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지분을 인수할 상대 기업의 업종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타 국내 제약사와 비교해 협업 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왔다”며 “한미약품이 헬스케어나 제약·바이오사업 경험이 없는 대기업 그룹사와 협업을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무래도 약국부터 시작한 임성기 전 회장과는 다른 송영숙 회장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이 OCI를 통합 대상으로 수용한 배경에는 송 회장과 이우현 OCI 회장의 모친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분이 깔려 있다고 한다. 송 회장은 OCI를 제안받고 “점잖고 믿을 수 있는 집안”이라며 통합 추진을 승인했다고 전해졌다.

송 회장과 김 이사장은 문화활동과 사회공헌활동을 함께하면서 가깝게 지낸 사이다. 송 회장은 국내서 유일한 사진미술관을 운영할 만큼 국내 예술사진계를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이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점도 신뢰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OCI 측에서는 이 회장의 OCI홀딩스 지분율이 6.55%에 불과하고, 작은아버지 두 명의 지분이 15%에 육박하는 점도 한미약품과의 지분 일부 교환을 결정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양사가 상부상조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양사가 이번 지분거래를 ‘합병’이라는 경영 용어 대신 ‘통합’이라고 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제약업계에서는 ‘이종결합’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OCI는 제약·바이오산업 진출을 위해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했으나 인수 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부광약품 내부에서는 OCI가 제약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서 영업망 축소 등 부광약품 조직개편과 건강기능식품 진출 등을 추진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한판 붙은 
오너 일가

또, 차세대 승계를 진행하지 못한 다른 제약사들이 향후 한미약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분을 이종 기업에 파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OCI가 이번 통합 발표 내용대로 한미약품의 경영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미약품의 신약 연구개발(R&D) 능력 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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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