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키워준’ 카카오의 배신 ①비굴한 창업주 구하기

정권에 무릎 꼬리 내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궁지에 몰린 쥐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다. 고양이를 물거나 납작 엎드려 죽은 척을 하거나. 순응을 택한 쥐는 고양이의 눈을 피해 살길을 찾으려 든다. 깊게 몸을 수그리고 살살 눈치를 보면서 때를 기다린다. 고양이는 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다가 앞발을 휘두른다. 쥐는 바닥에 늘어진다.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퇴로가 차단된 상태서 ‘가둬놓고 패는’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다. 무너진 하늘 틈으로 솟아날 구멍을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은 상태다. 문재인정부와는 ‘밀월 관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독했던 터라 윤석열정부의 태도에 더 타격을 받는 모양새다. 

꽃길 끝나고
가시밭길로

결국 카카오는 꼬리를 내리고 무릎을 꿇었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십분 활용해 정부의 방향에 발 맞추기로 한 것. 현재 최대 화두인 윤정부의 ‘언론 길들이기’에 카카오가 힘을 더하는 방식으로 뛰어들었다. 문제는 카카오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카카오가 운영하는 포털사이트 ‘다음’이 뉴스 검색 결과서 뉴스 제휴 언론사 기사만 노출되도록 기본값을 변경했다. 다음은 지난달 22일 “지난 5월부터 전체 언론사와 뉴스 제휴 언론사를 구분해 검색 결과를 제공한 6개월 간의 실험을 바탕으로 검색 결과의 기본값을 전체 언론사에서 뉴스 제휴 언론사로 변경한다”고 공지했다. 

다음에 따르면 뉴스 제휴 언론사의 기사 소비량은 전체 언론사 대비 22%p 많았다. 뉴스 제휴 언론사의 기사가 전체 언론사보다 높은 검색 소비량을 보이고 있는 점을 기본값 변경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설정 변경을 통해 전체 언론사 기사를 볼 수 있도록 기본값 조정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음의 발표 이후 뉴스 제휴를 하고 있지 않은 언론사를 비롯해 언론단체의 반발이 이어졌다. 다음과 뉴스 제휴를 맺고 있는 언론사는 대부분 대형·주류 언론으로 분류된다. 다음이 뉴스 제휴 언론사의 우선 검색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중소 언론사를 배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인터넷신문협회(이하 인신협)는 지난달 24일 ‘국민의 다양한 뉴스선택권을 원천 봉쇄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악행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놨다. 인신협은 “100개 남짓한 다음 CP(콘텐츠 제휴)사 가운데 제평위(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면밀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곳은 단 8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CP사들은 포털사이트가 자체 계약을 통해 입점한 매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CP사라는 타이틀이 해당 언론사의 뉴스 품질을 담보하는 것도 결코 아니며 언론사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며 “올해 들어 포털은 기사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제평위 활동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뉴스 품질 심사기구의 가동도 중단하면서 이제는 국민의 다양한 뉴스 선택권을 사실상 원천 봉쇄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뉴스 검색 시스템 바꿔
정부 언론 길들이기 발 맞춰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카카오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뉴스 검열 쿠데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카카오가 정권의 입맛에 맞춰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다음이 뉴스 검색 기본값을 전체 언론사에서 CP사로 변경한 것은 카카오 사주 구하기, 정권의 입맛 맞추기가 아니냐는 합리적 의구심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유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인터넷신문 검열(심의) 주장 등 현 정권에 비판적인 인터넷 언론 등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속내의 반영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판적 인터넷 언론의 언로를 차단, 통제하는 현 정권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검색 사이트 카카오의 이 같은 행태는 권력과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한국 검색서비스 사업자의 추악한 민낯의 단면”이라고 일갈했다.  


윤정부는 최근 언론에 대해 강경일변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민 KBS 사장 등이 계속 입길에 오르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서 이 전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재발의하자 이 전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KBS는 박 사장의 행보에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서 카카오가 뉴스 검색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CP사만
알 권리?

업계에서는 그 배경으로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전 의장을 들고 있다. 카카오에 대한 검찰의 전 방위적 수사에서 창업자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뉴스 검색 시스템 변화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이미 카카오는 강도 높은 검찰 수사로 누더기가 된 상태다. 금융감독원이 토스하고 검찰이 스파이크를 때리는 방식으로 두들겨 맞는 사이 핵심 관계자는 구속까지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달 13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배 대표는 올해 2월 SM엔터테인먼트 기업지배권 경쟁 과정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 고정할 목적으로 시세조정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이런 혐의로 배 대표와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강모씨,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 이모씨 등의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 가운데 배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배 대표 등의 법률대리인은 “합법적인 장내 주식 매수였고 시세조종을 한 사실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사업 강제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양벌 규정에 따라 배 대표와 함께 카카오 법인도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만일 카카오 법인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은행 대주주 지위를 박탈당한다.

검찰 수사
막아보려?

카카오뱅크 지분 27.17% 중 10%만 남기고 모두 매각도 해야 한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의 핵심 계열사인 만큼 대주주 지위가 박탈되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게다가 검찰의 칼끝이 정조준하고 있는 곳은 김 전 의장이다. 김 전 의장은 지난달 15일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김 전 의장을 비롯해 홍은택 카카오 대표, 이진수·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등도 함께 검찰에 넘겨졌다. 카카오그룹 핵심 경영진 대부분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셈이다. 

지난달 22일에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서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카카오그룹의 일부 사무실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수색에 김 전 의장의 자택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날 카카오는 다음의 뉴스 검색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카카오가 몸을 바짝 낮춰 ‘항복’ 의사를 표했지만 검찰은 전선을 확대했다. 검찰은 당시 압수수색 과정서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바람픽쳐스를 200억원에 사들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인수 당시 바람픽쳐스가 3년간 매출을 내지 못한 자본잠식 상태 이른바 ‘깡통회사’였다는 점이다. 검찰은 바람픽쳐스 인수 과정서 불법 리베이트가 있었는지, 김 전 의장이 관여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체인 플랫폼 관련 고발 건도 있다. 카카오가 2018년 구축한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이 발행한 가상자산(암호화폐) ‘클레이’(KLAY)와 관련해 횡령·배임 혐의로 김 전 의장 등이 고발된 상태다. 아직 본격적인 수사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카카오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면 해당 고발 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범수 구속 가능성에 벌벌
경영쇄신 카드 좌초 가능성↑

일단 김 전 의장은 ‘경영쇄신’ 카드를 꺼내들었다. 카카오는 내부 경영쇄신위원회와 외부 독립조직으로 설립된 준법과신뢰위원회(준법신뢰위)를 구성하고 비상경영에 준하는 대수술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전 의장이 직접 경영쇄신위원장을 맡았다. 

준법신뢰위는 김소영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최근 1기 위원 명단을 최종 확정했다. 연내 공식 출범한 뒤 ‘직접 제재 권한’ 등을 통해 카카오 관계사의 준법·윤리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 전 의장의 구속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이 카카오에 대한 수사 전선을 넓히고 있는 상황서 김 전 의장이 법망을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김 전 의장이 구속될 경우 경영쇄신은 좌초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카카오 입장서 김 전 의장의 구속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카카오의 경영쇄신이 ‘겉핥기’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카카오는 창립 이래 제대로 된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사방팔방서 가해지는 ‘사법 리스크’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 카카오 내부는 처음 겪는 전방위적 압박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이뿐만 아니다. 바깥의 공격을 방어해야 할 내부서도 잡음이 일고 있다. 김정호 카카오 CA협의체 경영지원총괄이 카카오 내부 상황에 대해 ‘작심발언’을 이어 가면서 파열음이 나오는 중이다. 김 총괄은 김 전 의장이 카카오 쇄신을 위해 지난 9월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인물이라 그 파장은 더 큰 상태다. 

내부 시끌
폭망 기류

카카오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등에 업고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국민의 90% 이상이 사용하는 메신저가 가져다준 전례 없는 메리트는 카카오의 사업 확장에 큰 발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자 국민 대신 정부를 택했다. 국민기업이 국민 밉상 기업으로 전락한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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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