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키워준’ 카카오의 배신 ②피눈물 흘리는 소상공인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2.04 09:46:02
  • 호수 14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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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폭탄’ 대통령도 화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카카오가 ‘수수료 폭탄’ ‘소상공인 죽이는’ 카카오로 변했다. 그러나 대책은 뜨뜻미지근할 뿐. 이미 소상공인의 눈물은 마를 길이 없고, 속 시원한 해결 방안도 없다. 카카오가 선택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료 파티’였다.

혁신, 도전, 신뢰. 이 단어는 모든 기업들이 추구하는 이미지다. 카카오가 출범할 때만 해도 카카오를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혁신’과 가장 어울리는 기업으로 불렸던 카카오. 하지만 이미지는 역전됐다.

야금야금
골목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서 “카카오의 택시에 대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위 약탈적 가격이라고 해서 돈을 거의 안 받거나 아주 낮은 가격으로 해서 경쟁자를 다 없애버리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에 독점이 됐을 때 가격을 올려서 받아먹는 거라, 반드시 정부가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카카오 기업의 택시 사업인 카카오모빌리티는 국내 1위 택시 사업자다. 이용자 수는 3300만명에 달하는데 택시 대다수가 카카오택시다.

사업 초기 당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호출 방식으로 침체된 택시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켰던 카카오는 ‘과도한 수수료’ ‘최저임금보다 낮은 기사 수입’ ‘소비자 이용 불편 문제’가 화두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015년 처음 택시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이때부터 기존에 길에서 손을 흔들거나 콜택시를 불러야 했던 택시 시장은 ‘호출 시장’으로 바꿨다. 여기에 기존 택시 서비스에 불만이 많았던 소비자까지 큰 호응을 보내며 전용 앱 ‘카카오T’ 가입자 수는 5년 만에 2700만명을 달성했다.

이용자 수도 빠르게 늘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택시 호출 시장서 카카오모빌리티의 점유율은 95%에 육박한다. 택시 100대 중 95대가 카카오택시다. 2019년 92.99%였던 점유율은 2020년 94.23%, 2021년 94.46%로 매해 증가하고 있다. 월간 평균 활성 이용자 수 역시 1169만명으로 압도적 우위다.

빠르게 시장 선점에 성공한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와 함께 대리운전, 주차, 내비게이션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시장을 독점했다. 대표적으로 가맹 택시 기업인 ‘블루’의 경우 점유율이 2021년 기준으로 73.7%에 달한다. 이 서비스는 가맹 택시에 승객의 호출을 우선적으로 배치한다.

문어발식 경영…80% 이상 시장 독점
혁신의 아이콘? 가격만 높인 플랫폼

반면 카카오모빌리티의 주요 경쟁 사업자의 가맹 택시 수와 점유율은 감소하는 추세다. 올해 초 타다와 아이엠택시가 카카오모빌리티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병을 추진했지만, 추가 투자 유치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이런 상황서 피해를 보는 것은 택시 기사와 소비자다.

택시 기사 A씨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A씨는 “카카오는 너무 먼 거리에 있는 손님과 기사를 강제 배차해서 서로 힘들게 만든다. 손님은 배차된 택시가 1.5㎞ 이상 멀리 떨어져 있어도 콜 취소를 한다. 그런데 카카오택시는 손님과 택시가 2.3㎞, 2.8㎞ 떨어져 있어도 배차시킨다”고 지적했다.

즉, 카카오택시 배차 취소가 많은 것은 카카오 앱 강제 배차 때문인 것. 당연히 손님은 택시를 한참 기다리는 것보다 택시를 취소하고 다시 택시를 잡는 게 이득인 셈이다.


그렇다면 강제 배차 취소 수수료는 어떻게 될까? 우선 기본적으로 택시는 손님이 잡히면 손님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연료비나 시간 비용이 드는 것은 기본이다. 

호출 취소 수수료는 배차 완료 시점으로부터 1분이 지난 후 택시 배차를 취소하면 플랫폼·차량에 최대 5000원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예정 출발 시각으로부터 5분이 경과했는데 손님이 탑승하지 못하면 2000원서 5000원 사이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결국 손님이 콜을 취소하면 수수료가 적게 들거나 없기 때문에, 콜 취소에 대한 모든 부담은 택시 기사가 떠안게 된다.

카카오는 대표적인 택시 플랫폼 4곳 중 가장 높은 수수료를 부과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카카오 택시 기사들 사이에선 “이유 없이 택시 콜을 취소하는 손님을 신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안 할 수도… 
울며 겨자 먹기

B 택시 기사는 “손님이 이유도 없이 콜을 취소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렇게 당해도 택시 기사는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페널티가 있을까 봐 콜 대기를 누르는 분이 많다. 그런데 손님이 콜 취소를 일주일에 7회 하면 호출 제한 24시간 페널티가 부여된다”며 “사실 이런 손님은 거의 없다. 매일 택시를 타는 손님 자체가 적으니까”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한 명도 없는 게 아니란 것이 문제다. 어떤 손님은 계속 택시 콜을 불러서 취소하길 여러 번이다. 택시 기사는 콜이 잡히면 무조건 가야 페널티가 없지만, 손님은 페널티가 전혀 없으니 신고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B 택시기사는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에 홍대 골목서 콜을 받고 좁은 골목길을 힘들게 들어갔다. 거의 다 왔는데 콜이 취소된 경험이 있다. 너무 화가 나서 손님 신고라도 하는데, 그렇다고 손님한테 가는 불이익은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손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사가 먼저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카카오 비가맹이다. 카카오 블루는 콜이 1분 이상 취소됐을 때 600원 입금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맹 택시 기사에게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카카오는 택시 기사에게 손님 정보를 모두 숨겼다. 손님의 개인정보 같은 민감한 사안이 아니더라도, 콜 취소 건수, 콜 거리 정보 등 제공될 수 있는 기본 정보 역시 카카오만 알고 있다.

그런데 법인 택시는 3만3000원, 개인택시는 4만8000원의 별도 관리비도 받아 간다. 카카오는 관리비가 승객의 편안한 탑승과 가맹 차량의 품질 향상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런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관리해 주지도 않으면서 관리비를 받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카카오 대리운전도 문제가 발생했다. 애초에 카카오는 2020년 8월부터 월 2만2000원의 프로그램비를 받고 우선 배차권과 전화대리업체의 콜 등을 제공하는 ‘프로서비스’를 도입했다. 수수료 외에 어떤 비용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이 말이 바로 취소된 것이다. 

상품권 수수료
대기업과 차별


대리운전 기사 C씨는 “대리기사 80% 정도는 프로서비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선 배차의 의미는 사라지고 카카오가 사실상의 프로그램비를 받는 셈”이라고 분개했다. 

수수료 역시 0~20%까지 다양하지만, 실제로 수요가 많은 번화가에선 20%짜리 콜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또 카카오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콜 단가를 낮추고 있다는 것도 대리운전 기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C씨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카카오를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카카오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종종 말도 안 되는 단가를 올려놓는다. 이런 게 너무 당연해지면 기사들의 수익 자체가 줄어들 수 있어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카카오 헤어샵은 골목상권 침해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한때 카카오 헤어샵은 국내 뷰티 예약 서비스 점유율 70% 이상을 기록했지만, 현재는 오명을 쓴 채 퇴출될 운명이다. 이유가 뭘까?

카카오 헤어샵 수수료는 24.48%로 책정됐다. 결제금액의 4분의1 가까이가 카카오에 수수료로 빠지는 것이다. 기존 11.48%서 2배 이상 올린 대신 재방문 고객에게 받던 4.48% 수수료를 없앴다. 신규 고객에게만 수수료를 받겠다는 방침이었다.

이 같은 카카오 헤어샵의 수수료 책정에 대한 불만이 폭주했다. 플랫폼을 이용한 대가라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 비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 미용실 업주는 “지불 비용이 턱없이 높아 망설였지만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들어갔다. 첫 고객은 안 남긴다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억울해도…’ 페널티 먹고 전전긍긍
하다 하다 문구·장난감·미용까지

카카오 헤어샵에 입점한 미용실 최저가 9000원(남성 커트 기준)을 적용하면 사업자에게 남는 금액은 6750원꼴로 최저임금보다 낮다. 실제로 카카오 헤어샵 수수료는 타 서비스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동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 예약’의 경우 입점 비용 없이 2%대의 결제 수수료만 책정돼있다.

여러 불만이 폭주하면서 결국 카카오 헤어샵은 소매업 사업서 철수하기로 결정됐다. 지난 2021년 카카오는 국정감사를 비롯해 정치권서 문어발 확장 논란과 함께 헤어샵을 포함한 꽃·간식·샐러드·완구 사업 운영을 두고 골목상권 침해라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헤어샵과 문구·장난감 소매업 사업은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미용실 예약 플랫폼 카카오 헤어샵의 경우 투자자와 체결한 주주 간 계약에 따라 매각이 지연되고 있다. 카카오 헤어샵 운영사인 ‘와이어트’ 역시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지분을 24.19% 갖고 있었는데 카카오가 철수 의사를 발표하자 와이어트 투자자들의 반발로 매각이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 6월 풋옵션 행사기일이 도래하면서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와이어트 투자자의 지분을 500억원 넘게 주고 매입하면서 보유 지분은 지난해 말 24.19%서 38.9%로 확대됐다.

업계에선 카카오가 카카오 헤어샵 매각을 재추진, 미용실 예약 플랫폼 사업서 철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와이어트는 헤어샵 사업부를 물적 분할한 뒤 보유 지분 100%를 매각하는 카브아웃(Carve-out)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악재가 겹치면서 관련 소상공인들은 카카오톡의 모바일 상품권 거래 시 높은 수수료 산정과 수수료 차별 등에 대한 시정을 촉구하며 카카오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신고했다. 카카오는 수수료율 결정 문제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쿠폰사가 협의할 문제라며 맞섰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등은 지난달 22일 참여연대서 카카오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신고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촉구했다.

카톡 선물하기의 모바일 상품권은 카카오-쿠폰 사업자-프랜차이즈 본사-가맹점 등의 과정을 통해 유통된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가맹점이 내는 수수료율은 5%~11%로, 카드 수수료(1.0~1.5%)에 비하면 최대 10배가량 차이 난다. 가맹점주 평균 영업이익률 8~12%임을 감안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카톡 선물하기 
수수료 논란도

하지만 카드 수수료와 달리 상품권 수수료가 산출되는 근거가 무엇인지 가맹점주는 알 수 없다. 이들 단체는 “스타벅스처럼 대기업 본사가 직영하는 경우 모바일 상품권 수수료율이 5%로 상대적으로 낮고 가맹점주가 수수료를 모두 부담하는 경우는 10%가량 높은 수수료를 부과해 차별 대우를 받는다”며 “카카오가 대기업과 소상공인 사이 수수료 차이를 두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가격 차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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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