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너는 분명히 성공할 거야. 배우 계약하고 소속사 지정 강사에게 연기를 더 배우자.” 배우 지망생에게는 꿈과 같은 말이다. 저 말대로 더 배우고 노력해서 멋지게 배우로 데뷔하는 것이야말로배우 지망생들의 꿈이다. 하지만 배우지망생은 달콤한 말 속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알 수 없다.
연예인 지망생 100만명은 넘은 지 이미 오래전이다.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으로 ‘연예인’이 높은 순위로 자리 잡은 지도 꽤 됐다.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 연예인은 방송에 나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소속사에서 뽑혔는지 말한다. 배우나 아이돌을 뽑는 공개 오디션에 갔다가 여러 차례 낙방 후 뽑히거나,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에 참석해 뽑힌 경우가 있다.
마지막 기회
오디션 예선서 탈락이 됐지만 이후 소속사로부터 연락 와서 연예인이 되기도 하고,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캐스팅되기도 한다. 연예인이 되는 길은 이렇게 다양하지만, 이는 성공한 연예인들의 일화일 뿐이다. 대부분 연예인 지망생들은 자신의 프로필을 들고 제작사를 찾아가지만, 데뷔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작품 제의가 먼저 들어왔다는 배우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그들만의 이야기다.
무명 배우가 제작사나 영화사에 프로필을 놔두면 제작사에서 직접 연락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프로필을 100장 돌리면 간혹 한 번 정도 연락을 받는다”고 말한다. 무명 배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대학서 연기를 전공했거나, 극단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잔혹하다. 올해 4년제 연극영화 관련 학과 정원 내 모집 인원은 2072명에 무려 5만1434명이 지원했다. 전문대는 정원 내 1420명을 모집했고, 1만9456명이 지원했다.
유명 배우를 배출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는 2024학년도 연극원 연기과 입학정원이 37명인데 5083명이 지원했다. 배우가 되길 원하는 지망생이 얼마나 많은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다.
이렇게 배우가 되길 열망하는 이유가 뭘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름을 알리게 된다면 부와 명예, 인기를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이 크다. 그리고 이 틈을 노린 사기가 극성이다.
여전히 많은 장래 희망 1순위 ‘연예인’
프로필 100장 돌려도 연락 올까 말까
현재 다른 직종에 있는 전직 영화감독 A씨는 꾸준히 배우 지망생들의 연락을 받는다. 배우 지망생들이 캐스팅을 받은 뒤 괜찮은 곳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연락을 한다.
A씨에게 전화한 배우 지망생 B씨는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곧 40세가 된다. 나이가 많음에도 여전히 배우의 꿈을 버리지 않고 배우 모집공고가 있으면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B씨는 A씨에게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하다. 최근 배우를 모집하는 한 공고를 보고 오디션을 봤는데, 다음 날 바로 계약 제의를 받았다. 이렇게 빨리 계약 제의가 올 거라고 생각을 못 해 확인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소속사 측에서 오늘 당장 계약을 하지 않으면 이 기회가 물 건너간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서명을 하려다가 한 번만 생각해보겠다고 4시간만 달라고 부탁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오디션 후 배우 계약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정상적인 계약인지 의심스러워 연락했던 것이다. B씨 역시 이 계약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리서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여태까지 한 번도 자신에게 배우 계약을 해 보자고 권유했던 소속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B씨의 배우 계약서를 검토했다. 확인 결과 이상한 부분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계약서에서는 ‘배우는 소속사가 정한 연기 강사에게 수업을 받아서 연기력을 키워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말은 B씨는 배우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보다 연기를 더 배워야 하는 수준이라는 해석이 가능했다. 소속사 입장에선 B씨와 계약 전제조건으로 연기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해당 연기수업을 들으려면 최소한 1년에 300만원 이상의 수강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배우 계약으로 B씨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소속사에 돈을 내는 구조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계약서였다. A씨는 계약서를 확인한 즉시 B씨에게 “내 주변에 이런 식으로 계약한 배우는 단 한 명도 없다. 사인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소속사가 정한 강사에 배워라”
비용 내는 이상한 계약서 조항
A씨의 조언에도 B씨는 고민했다. 여태까지 B씨에게 배우 계약을 제의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B씨 주위에도 배우 계약을 한 사람이 없으니 ‘혹시나 내가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친한 배우에게 B씨한테 배우 계약을 하면 안 된다고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연락을 받은 배우는 “안 그래도 요새 들어 배우 지망생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한두 명 당한 게 아니다. 배우 지망생들에게 배우 계약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고 있다”며 “대부분 오랫동안 배우 지망생 생활을 했던 사람이 당한다. 배우 지망생은 이런 계약서가 이상하다고 느껴도 기회를 놓칠까 봐 계약해 사기를 당한다”고 토로했다.
보통 이 같은 사기는 소속사나 영화사를 통해 이뤄지는데, 배우를 뽑는다는 모집공고를 올리고 지망생 프로필을 받는다. 이때 프로필을 낸 배우 지망생에게 오프라인 미팅을 요청한다. 이때는 일반적인 오디션을 보며, 촬영도 하고 질문도 한다.
오디션이 끝난 뒤 감독은 배우 지망생을 따로 불러서 “이번 상대역으로 너를 뽑고 싶은데 너는 너무 무명이다. 제작사를 설득할 테니 돈을 준비하라” “너를 배우로 계약하고 싶은데 연기 실력이 별로다. 배우 계약을 할 테니 그 조건으로 돈을 내고 배워라”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은데 술자리에 참석해라” 등의 제안을 한다.
이 같은 회유에 배우 지망생들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집문서를 팔아서 돈을 감독에게 보내면, 그날로 감독과의연락이 끊긴다. 송금한 뒤 시나리오를 보내는 감독도 있지만, 연락이 끊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술집에 와라”
한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 지망생을 둘러싼 소속사 계약 사기에 대해 “요즘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정상적인 제작사는 준비가 안 된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는다”며 “가르치면서 촬영하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 일반 기획사, 아카데미형 기획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강남 일대에 많다. 그나마 돈을 낸 만큼 교육을 받으면 사기는 아닌데, 출연을 전제로 교육 받고 출연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사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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