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유총연맹 동원 선거개입 논란 대통령실 참모 수상한 통화 공개

콘크리트 지지 ‘극우 유튜버’ 깔고 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통령실이 직접 선거개입에 나섰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참모의 녹취나 정황 증거도 상당하다. 사실상 ‘총동원령’을 내렸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와 접촉한 인사 대부분은 ‘극우 아스팔트 유튜버’다. 진보 진영 깎아내리기 시위와 데모를 요청받은 이들은 김건희 여사의 고모인 김혜섭 목사와도 연관이 깊은 것으로 파악됐다.

“우파 시민들 총동원해서 시위해야 된다.” “주변에 좀 그렇게 전하라.” 이는 지난해 9월 이뤄진 국민의힘 관계자 A씨와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간 통화 내용이다. 이외에도 강 수석은 A씨에게 강신업 변호사의 당 대표 출마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의 직접적 선거개입 논란이 터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직접적 개입
대통령 의지?

A씨와 강 수석이 통화한 건 지난해 9월 MBC의 ‘바이든-날리면’ 관련 보도 직후인 22일이다. 녹취록서 강 수석은 “MBC나 저런 놈들,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자 A씨는 “MBC 앞에 가서 우파 시민들 총동원해서 시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그렇게 전하시라”며 사실상 데모를 지시했다.

실제로 이들의 통화 이후 지난해 말까지 MBC 앞에서는 30번이 넘는 외부인 집회가 신고됐다. 강 수석이 언급한 보수 유튜버 소모씨는 집회를 진행했고 강 수석과 식사도 했다. 당시 소씨 성을 가진 집회 신고자는 지난해 9월27일부터 10월14일까지 11차례였다. 강 수석은 강 변호사 측에게 출마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강 수석은 지난 1월4일 A씨와의 통화서 “저기, 강신업 변호사 출마 좀 자제시킬 수 없냐”며 “왜냐하면, 전선이 지금 이렇게 V(대통령)가. 이번에는 당 대표, 최고위원이고 V가 그림을 그려서 총선을 내년에 V 얼굴로 치러야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 간 갈등 과정서 김건희 여사가 논란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강 변호사는 결국 컷오프당하면서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김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전 대표로서 유튜브 채널 ‘강신업TV’를 운영하며 여권 내 입지를 넓혀갔다.

그러나 그가 당 대표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본심이었다는 분석은 여권 내에서 제기돼 왔다.

해당 녹취들은 시민언론 <더 탐사>와 KBS가 지난달부터 단독 보도했던 내용이다. 보도 이후 강 수석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모씨가 A씨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그는 1992년 현대그룹의 ‘왕회장’인 고 정주영의 대선 출마 당시 정무특보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씨는 A씨에게 지난 8일 “윤석열과 강승규를 배신하고 나니 기분이 좋냐? 대통령실서 법적 조치를 하려고 해서 내가 김대기 실장에게 하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월요일 수석비서관 회의서 결정이 날 것 같다. 별일 없기를 하늘에 빌어라”고 반협박식 어조로 문자를 보냈다.

A씨는 자신이 작성한 ‘반성문’을 보내자 “잘 썼네.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이씨의 연락을 받았다.

강승규 수석, 국힘 관계자에 데모·시위 지시
윤석열 “대통령 귀찮다” 김건희 “감사” 통화

A씨는 강 수석과의 친분이 깊지 않다. 강 수석보다는 윤 대통령, 김 여사와 먼저 통화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뿌리인 호남의 원로 정치인들과도 알고 지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내용은 A씨와 윤 대통령 간 통화서도 드러난다. 윤 대통령과 A씨의 통화는 대선 전에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보다 국힘을 더 싫어한다”며 “(국민의힘)이놈 XX들 들어가서 개판 치면 당 완전히 뽀개 버린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이제 주워 먹으러 가야 한다”고 국민의힘을 비하했다.

윤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정권교체하려고 나온 사람이지, 대통령을 하려고 나온 사람이 아니다”며 “어쨌든 이거(문재인정부)는 엎어줘야 하고, 국힘에 이걸(대통령) 할 놈이 없다”고 했다. 이어 “지금 이준석이 아무리 까불어봤자 3개월짜리”라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비판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해당 녹취 파일의 제목에는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다. 취재 결과 해당 번호는 김 여사의 최측근이자 코바나컨텐츠 출신인 정모씨의 연락처였다. 정씨는 김 여사가 지난해 봉하마을을 방문했을 때 수행원이기도 했다.

특히 건진법사의 제자 ‘심 박사’와 함께 코바나컨텐츠서 여론조작 의혹을 받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씨는 김 여사의 일정과 각종 계획을 도맡아 관리해왔다. 이명수 <서울의 소리> 기자가 김 여사와 접촉할 때도 정씨를 통해 일정을 확인했다.

정씨는 코바나컨텐츠 정식 직원이 아니었다. 프리랜서 신분으로 김 여사와 코바나컨텐츠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회사에 자주 출입하며 사실상 김 여사 ‘비서’ 역할을 자임했다. 그는 공식적인 대선 캠페인에도 참여하면서 윤 대통령의 SNS 계정 관리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대통령 총무비서관실 한남동 공관팀 소속으로 근무했으나 지금까지 근무 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A씨는 축하를 전달하려 했다. 대신해 전화를 받은 건 김 여사였다. 김 여사는 “선생님 고생 많으셨다”며 덕담을 건넸다.

녹취 파일
들어보니…

A씨는 “윤석열정부 성공하려면 지방선거 압승해야 한다. 경기도지사에 김은혜 당선시키려고 제가 특보로 임명받았다. 선거전략 다 만들어놨고 윤 대통령 당선시켰는데 경기도지사 그까짓 거 당선 못 시키겠냐”고 하자 김 여사는 “선생님 감사하다”고 답했다.

A씨는 강 수석이 윤 대통령을 도와준 대가로 자리를 알아봐준다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지킬 가능성이 없었던 약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자칭 보수 ‘유튜버’만 해도 100여명이 넘는다. 게다가 지난 7월 한국자유총연맹(이하 자유총연맹)이 미디어분과 자문위원으로 보수 유튜버를 대거 위촉한 인사만 수십명이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해 윤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던 인물이다. 유튜버로 구성한 자문위원단은 자유총연맹에 이른바 ‘아스팔트 투쟁’ 과정서 발생하는 벌금에 관한 예산 지원도 요청했다. 자유총연맹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매해 약 4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자문위원으로 임명된 사람은 황경구 애국순찰팀 단장 겸 유튜브 채널 ‘시사파이터’ ‘시사창고’ 운영자, ‘짝지tv’ 운영자 유승민씨 등이 임명됐다. 지난해 8월 <한겨레>가 공개한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에 따르면 ‘이봉규TV’ ‘시사창고’ ‘시사파이터’ ‘너알아tv’ ‘짝지tv’ ‘애국순찰팀’ ‘가로세로연구소’ ‘자유청년연합’ ‘정의구현박완석’의 관계자들은 김 여사의 추천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다.


황 단장은 미디어분과 자문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황 단장은 2021년부터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지지하는 내용의 영상을 올려왔다. 황 단장과 유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위치한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평산마을서 시위를 벌였던 극우 유튜버 중 ‘한동훈삼촌tv’(구 ‘우파삼촌tv’) 운영자 김기환씨도 자유총연맹 자문위원으로 임명됐다.

욕설·막말로 여러 차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안정권씨의 측근도 자문위원이 됐다. 자유총연맹 신규 자문위원이자 유튜브 채널 ‘홈런왕 김탁탁’ 운영자인 김정환씨는 안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 ‘벨라도’의 본부장이다. 그는 안씨가 운영하던 채널인 ‘GZSS’서도 활동했다.

끊을 수 없는
끈끈한 관계

또 다른 자문위원인 이민구 ‘깨어있는시민연대(깨시연)’ 대표도 김 여사와 관련이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5월18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서 “김건희 여사 팬클럽인 ‘건사랑’ 카페의 성장을 나와 깨시연이 도와줬다”며 “윤 후보가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3·1절날 식당서 나랑 마주 앉자마자 ‘와이프 팬카페 만드는 걸 도와줘 고맙다’며 사인을 해주더라”고 말했다.

황 단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상진 신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지난해 9월 “묵묵히 흘린 땀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우리의 미래를 비출 것입니다. 대통령 내외 윤석열 김건희”라고 적힌 엽서와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신의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외에도 자문위원 명단에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지지하거나 부정선거론을 펼치는 유튜버 등이 다수 포함됐다.

대통령실과 극우 유튜버들 간의 연결고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극우 유튜버를 포함한 윤 대통령 지지자 수십명은 지난 3월 대통령실을 방문해 김대남 시민소통비서관과 사진을 찍었다. 보수 유튜버들은 당시 계정 폐쇄를 막아달라는 민원을 했고, 대통령실 행정관은 살펴보겠다고 답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일 자유총연맹 자문위원인 한 유튜버(BJ톨)는 “오늘 대통령실 간담회 다녀왔다. 좀 많은 분들이 함께 간담회에 갔다”며 대통령 시계를 받았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총선이 7개월여 남은 시점부터 극우 유튜버들이 들끓기 시작한 것은 김 여사의 고모인 김혜섭 목사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김 목사는 지난해부터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 유튜버들에게 큰손으로 불리는 ‘로뎀지기’다.

가짜뉴스 생산자 자문위원 위촉만 수십명
비서관에 “계정 폐쇄 막아 달라” 민원도

로뎀지기는 지난해부터 유튜브 채널마다 돌아다니며 슈퍼챗을 쏘고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튜버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다. 실제로 김 목사로부터 옷이나 신발을 선물 받은 이들이 다수였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을 그만둔 안씨의 누나도 김 목사를 통해 대통령실에 입성할 수 있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 목사는 기하성여의도총회 로뎀교회 소속 목사다. 2002년 2월 대한중앙신학연구원을 졸업하고 2004년 1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연합여목총회서 안수를 받았다. 예장 연학여목총회 산하 교육 기간은 정식 인가하지 못했다. 이후 2006년 2월 기하성 목회연구원(서상식 목사)을 수료하고 2013년 9월 기하성여의도총회 연수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김 목사 남편인 장모씨는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거론된 인물이다. 장씨는 경기도 평택 물류항서 큰 이권을 챙겨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과거 관세포탈과 세금 탈루를 일삼던 최순실 국정 농단 세력이 쥐고 있던 가공식품 제조업체 선라이즈F&T를 꿰차는 과정서 비리를 제보하던 이성열 슈퍼마린종합물류회사 대표를 도산으로 몰아넣은 인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그만두기 직전 대검찰청 앞에 많은 화환이 놓였던 일화도 있다. 앞서 안씨와 같은 성향을 띠면서 자유총연맹 자문위원이 된 김상진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윤 대통령을 임명했을 당시 계란을 들고 출근하는 윤 대통령에게 계란을 들고 직접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협박하는 방송을 진행하다가 구속된 바 있다.

김 대표는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났고 안씨는 김씨를 마중 나갔다. 안씨는 이후 대검찰청 앞을 화환으로 꾸며놨다. 김 목사는 본인이 직접 해당 화환을 둬왔다고 주장했었다. 안씨가 김 목사의 지시를 받아 화환을 놓아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이는
연결고리

대통령실과 친분을 강조한 유튜버도 있다. 이봉규씨는 직접 지난 대선 과정서 “윤석열 후보가 자면서도 ‘이봉규TV’를 즐겨본다”고 주장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는데, 이씨는 해당 사진이 자신의 채널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에 대한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직과 분명한 친분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전혀 없는 말을 지어낸 것으로 보기에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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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