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그 후 1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9.18 14:01:40
  • 호수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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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참사는 예고하지 않고 급습하지만, 예견해 방지할 수 있다.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일어난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됐다. 하지만 아직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기구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핼러윈데이가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이태원 참사 1주기도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이태원 참사는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용산구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와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 등지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발생한 압사사고다.

끔찍했던
압사사고

이 사고로 159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는 도로 상황이 원활하지 못해 최초 신고 이후 40분 이상이 지나 도착했고, 경찰의 도로 통제 후에야 구급차 진입이 원활해졌다. 이날 사고는 과밀한 핼러윈 축제 인원, 경찰‧행정당국의 안전관리와 통제 부족, 국민의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사고지만, 사고 징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우선 이태원 뒷골목은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엔 항상 사람이 많았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구간에서는 정체가 길어진 적도 있다. 게다가 이전부터 클럽들이 즐비해 택시가 잡히지 않고 차가 막히는 구간으로 유명했다. 또 사고 당일에는 오후부터 차량이 통제되지 않았고, 인파가 몰려들어 수많은 사람이 위험을 감지했다.

사고 발생 직전까지 경찰이 공개한 112 신고만 11건이었다. 신고 내용은 모두 압사사고에 대한 우려였는데, 경찰은 사건을 종결시켰다. 심지어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가 사고 지점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도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6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열린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문 교수는 “시스템, 법에 다중 인파 밀집을 재난 유형으로 넣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잘 짜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며 “안전관리위원회, 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구조통제단이 한국 재난관리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3축”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태원 참사가 예방 불가능한 사고가 아니었으며, 이 문제를 미리 해결했다면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즉, 피해자가 운이 나빠서 사고를 당한 게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라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되는 시점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아직 독립적 조사기구도 만들어지지 않아 유가족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의결했다. 특별법은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한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는 규정 명시 ▲피해 배·보상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특조위는 국회의장 추천 1명, 여야 추천 각각 4명, 유가족 단체 추천 2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독립적 조사 기구 없이 흐지부지
유가족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반면 여당은 특조위 구성 비율 등을 문제삼으며, 이태원 참사의 성격을 단순 사고라고 주장했다. 특조위를 통한 진상조사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특조위 11명 구성을 4대7(여당 대 야당)로 할 수 있게 했다.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이태원 참사는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몰려 난 사고로, 그 원인이 간단하다. 우리 국민은 사고에 대한 의혹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조위가 꾸려지지 않으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게 된 원인 규명을 명확하게 할 수 없다. 이 경우,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국내 대형 참사로는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다. 지난 2014년 4월16일 인천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서 침몰해 승객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대형 참사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해 학생 250명, 교사 11명이 사망했다. 일반인 사망자는 43명으로, 학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94명의 총 172명이 구조됐다.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만큼 당시 사회적 충격이 엄청났다.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해역이 있는 전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영정을 안고 도보 행진을 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만들었지만, 유가족들은 이 시행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특별법을 만들었으나 정부의 시행령으로는 진상조사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를 철회하고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시행령을 공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를 향해 “유가족과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아는 정부가 배‧보상 액수가 얼마니 하며 돈으로만 대답하고 있다. 죽음 앞에 돈 흔드는 모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이 과정 중 정부, 유가족,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언성을 높였지만,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국 조사기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가족이 요청해야만 조사기구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반대로 유가족이 요청하지 않으면 조사기구가 만들어지지 않고 사고는 유야무야 끝날 확률이 높다.

반복되는 
후천적 인재

물론 모든 분야가 이런 것은 아니다. 항공·철도·도로 분야의 대형 교통사고를 중심으로 조사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있다. 이곳은 항공·철도 사고 등의 원인 규명과 예방을 위한 사고 조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국토교통부 소속기관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대표적으로 ▲2013년 대구역 3중 충돌사고 ▲2014년 7월 태백선 누리로 충돌사고의 사고 원인 분석과 예방에 힘썼다.


한국철도공사는 ‘2022 철도안전관리 수준 평가’서 낮은 등급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경북 영천시 중앙선 북영천역 근처를 지나던 화물열차 1량이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났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포항과 태화강 등지서 동대구역을 오가는 대구선 무궁화호 열차 10여편이 운행이 중단돼 승객들은 열차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이때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 규명을 했다.

반복되고 있는 후천적 인재 참사를 막기 위해서 시민단체는 입을 모아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생명안전기본법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습 과정서 인권을 보호하는 것 ▲사고의 원인과 문제점 조사 ▲유사 문제의 재발 방지 ▲안전영향평가제도 ▲시민참여 ▲추모와 공동체 회복 등을 위한 목적이 있다.

이 법은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2015년 논의되기 시작했고, 2020년 11월 국회서 발의됐다. 생명안전기본법에는 사고가 발생한 후 독립 조사기구 설치 등에 관한 규정이 들어 있다. 지금도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이 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해도 구조적인 원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용균재단 등 46개 재난·참사 피해자 단체와 종교·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지난 5월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 동행’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159명 사망 196명 부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이날 발족식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스텔라데이지호 참사·세월호 참사·가습기살균제 참사·이태원 참사·삼풍백화점 생존자, 한익스프레스 참사 가족, 고 이한빛 PD 어머니, 경동건설 산재가족, 고교실습생 산재 가족, 청년건설이용 노동자 김태규씨 가족, 쿠팡 코로나 피해 가족, 어린이 교통안전 피해 가족 등 참사 피해 가족을 비롯해, 김훈 작가, 어린이, 장애인, 시민, 종교인 등이 참석해 발언했다.

이들은 “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비롯한 안전관련법령들은 안전과 재난관리를 위한 행정체계와 기능을 주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 문제를 국가의 관리 대상으로 삼았을 뿐 국민과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후진적인 대형 재난과 일터에서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끊임없는 재난과 산재, 억울한 희생을 막고자 생명안전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020년 11월13일 국회에 발의된 이후 2년6개월째 법안은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재난·참사 피해 가족들과 시민사회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발족식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김훈 작가는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해 생명안전을 정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 청원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관한 입법 청원이 진행 중이다. 청원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다. 청원자는 김순길 4·16연대 사무처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시민의 관점서 안전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려면 생명과 안전이 이윤보다 중요하다는 가치가 형성돼야 한다. 피해자 권리와 함께 독립 조사기구 설치와 안전에 대한 국가와 기업 책무 등을 규정한 기본법 제정으로 생명 존중 안전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 전문가는 “참사의 원인을 알아야 재발 방지 대책도 가능하다. 참사의 원인을 안다는 것은 누가 어떤 법률적 잘못을 저질렀는지 파악하는 것만이 아니다. 수사는 누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원인 알아야 
방지 대책도

이 관계자는 “당자사들이 구조적 원인을 밝힐 순 없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많은 이들이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경찰과 소방관이 바로 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는, 왜 그들이 구조요청을 위험신호로 인식하지 못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며 “그래서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독립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고, 생명안전기본법에 독립적 진상조사기구를 담고 있다. 참사를 개인의 불운이나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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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