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눈물

엄마, 딸, 동생이었던 서른여덟 여성의 죽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누군가의 죽음이 입법 시스템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건 과정서 드러난 법의 허점과 틈새를 피해자의 죽음이 메워주는 식이다. 문제는 피해자의 남겨진 가족이다. 가족은 피해자를 제물로 삼아 변화할 사회를 기다리며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들의 기다림에는 기약이 없다. 

한 여성이 자신의 집 앞에서 살해됐다. 누군가의 딸, 엄마, 언니 그리고 동생이었던 여성은 마지막 말도 남기지 못한 채 한 남성의 칼부림에 사망했다. 피해자의 날벼락 같은 죽음은 가족을 덮쳤다.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이들은 슬퍼할 새도 없었다. 피해자의 죽음 너머 가족이 짊어져야 할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서른여덟
피지 못하고

지난달 17일 오전 5시50분경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서 이은총씨가 전 남자친구 A씨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려 달라’는 은총씨의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A씨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손에 큰 부상을 입었다. 가슴과 배 등에 치명상을 입은 은총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범행은 은총씨가 어머니, 딸과 함께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부근서 일어났다. 유가족은 A씨가 엘리베이터 옆 비상계단 쪽에 숨어 있다가 출근하는 은총씨를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휘두른 칼을 맨손으로 막고 있던 은총씨의 어머니는 여섯살 손녀가 집밖으로 나오려 하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 경찰에 신고했다. 손녀를 지키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간 사이 문 너머에서는 딸이 죽어가고 있었다.

A씨는 은총씨를 공격한 20~30㎝ 길이의 회칼로 자신의 복부를 찌르는 등 자해를 한 뒤 피범벅이 된 피해자 옆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유가족에 따르면 출동한 구급대원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같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은총씨는 영안실로, A씨는 중환자실로 각각 옮겨졌지만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은 한 공간에 있던 셈이다.

지난 11일 인천지검 형사2부(위수현 부장검사)는 살인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A씨를 구속 기소했다. 유가족은 A씨가 은총씨를 살해하기 전, 분명한 ‘전조증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2월 은총씨를 폭행한 혐의로, 6월에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 

심지어 법원은 “은총씨로부터 100m 이내에는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내용의 명령도 내렸다. 경찰은 은총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제공했다. 대상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비상’ 버튼을 누르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방식이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던 한 달간 A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법원의 접근금지명령과 경찰이 건넨 스마트워치는 A씨로부터 은총씨를 지킬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경찰은 한 달간 A씨가 은총씨 주변에 나타나지 않자 스마트워치 반납을 요구했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반납하고 사흘 뒤 A씨는 회칼을 휘둘렀다.

출근을 위해 이른 시각 집을 나섰던 서른여덟의 은총씨는 끝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지난 18일 오전 전남 지역의 한 카페서 만난 은총씨의 사촌언니 이모씨는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울먹였다. A씨를 향한 분노,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황망함, 은총씨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 등 많은 감정이 범벅된 눈물이었다. 올해 초 전남 지역으로 이사 온 이씨는 현재 서울을 오가며 은총씨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스마트워치 반납 사흘 만에
집 앞에서 칼에 찔려 사망


“저는 은총이를 사촌동생이 아니라 친자매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작은아빠(은총씨 아버지)도 장애가 있고 저희 아빠도 눈이 안 보이세요. 가정환경이 비슷해서인지 사촌이지만 친하게 지냈어요. 한 직장서 일도 같이했었고 은총이가 힘들 때 저를 찾아온 적도 많았고요. 그놈(A씨)하고 사귀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일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은총씨는 2021년 운동 동호회서 A씨를 만났다. 이후 또 다른 동호회에 가입할 때도 A씨는 따라왔다. 심지어 A씨가 은총씨의 직장에 입사하면서 두 사람은 같은 장소서 일했다. 접근금지명령을 받으면서 휴직 상태가 된 이후에도 A씨는 은총씨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척거리에 맴돌았다. 

두 사람의 교제 기간은 6개월 남짓이었다. A씨는 은총씨의 이별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 위협을 가했다.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은총씨는 그 시기 10㎏ 가까이 살이 빠졌다. 특히 자신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어린 딸이 A씨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은총씨는 일을 쉴 수 없었다. 남편과 헤어진 이후 세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며 가장 노릇을 해왔기 때문. 또 10년 넘게 회사 영업직으로 근무하면서 관리하고 있는 고객도 많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쉽사리 바꿀 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게 은총씨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다.  

“저도 해봐서 알지만 영업 일은 밤낮이 없어요. 고객 위주로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스케줄을 그쪽(고객)에 맞춰야 하거든요. 은총이는 정말 정신없이 열심히 일했어요. 팀원들하고 손발도 잘 맞았고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도 눈앞에 두고 있던 시기로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가버린 거죠.”

사촌언니 이씨는 은총씨의 죽음을 접한 이후 끊임없이 발로 뛰었다. 사건 당일 오후 4시경 은총씨 동생을 통해 소식을 들었을 땐 무너질 듯한 슬픔을 느꼈지만 이내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마냥 슬퍼만 하기엔 산적해 있는 현실적인 사안이 너무 많았다. 

접근금지명령
임시방편일 뿐

당장 사건이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헤어짐을 요구하는 연인을 스토킹 끝에 살해하는 ‘교제 살인’ 사건이 늘어나면서 아이러니하게 관심이 줄어들었다. 직계가족도 아닌 사촌언니로서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은총씨의 죽음이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지 않도록 언론에 호소하는 것뿐이었다. 

이 과정서 이씨는 끊임없이 은총씨와 그 가족을 언급해야 했다. 사촌동생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고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지,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던 엄마를 졸지에 잃은 어린 조카가 어떻게 지내는지,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실 등 이른바 ‘피해자 서사’를 거듭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의 태도서 비롯된 불신으로 유가족이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언론을 통해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게 무서워요. 혹시라도 그놈이 나와서 내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할까 두렵기도 하고요. 어떨 때는 그놈이 바깥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방송에 출연한 은총이 직장 동료들도 지금 잠을 잘 못 잔다고 연락이 와요. 왜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이 이렇게 벌벌 떨어야 하죠. 그놈은 조사 받으면서 편하게 있을 텐데….” 

이씨는 사건 발생 이후 한 달여 동안 공권력에 크게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스마트워치의 실효성은 차치하고라도 경찰의 반납 요구, 그리고 은총씨의 반납 직후 사건이 일어난 게 두고두고 한이 되는 듯했다. 또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던 기간 동안 A씨가 범죄를 계획했다는 의혹에 관해서도 경찰은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에 따르면 사건 장소 근처서 ‘곱게 개어둔 정장’이 발견됐다. A씨는 6월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후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주 토요일부터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은총씨가 평소 좋아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영화를 보고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날짜는 7월13일 목요일, 살해당한 날짜는 7월17일 월요일이다. 이씨는 스마트워치 반납과 사건 당일 사이 금·토·일 사흘, 그리고 그보다 앞서 접근금지명령을 받고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한 달 동안 A씨가 은총씨의 헤어짐 요구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려는 준비 기간을 가졌던 게 아니냐는 의문을 표했다.  

피해자 가족
직접 나서야

“그렇게 (은총이를)쫓아다니던 놈이 그 한 달 동안 대체 뭘 했냐는 거죠. 그 부분을 알고 싶어서 경찰에 물어봤는데 (A씨가)접근금지명령 기간에 은총이한테 뭔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그놈이 뭘 했는지 조사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보복살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찰에서는 단순 살인으로 보는 것 같아요.”

A씨를 막다가 손을 크게 다친 은총씨 어머니의 거취 문제를 두고도 분통을 터트렸다. 은총씨의 어머니는 사건의 흔적이 가득한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피가 낭자했던 복도와 엘리베이터 주변은 깨끗해졌지만 집 안 곳곳에는 여전히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은총씨 동생은 지방에 살고 있어 어머니의 손을 치료하기에 여의치 않았다. 

범죄 피해자를 위한 주거지원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도 이씨였다. 이씨는 여러 기관에 전화를 돌리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등 수소문 끝에야 제도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법무부는 살인 등의 범죄로 기존 집에서 살기 어려워진 피해자를 위해 국민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 등을 저렴하게 임대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건을 겪으면서 기관이란 기관에는 다 전화해봤어요. 여성가족부를 시작으로 경찰서 알려준 곳까지 다 전화해봤는데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말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그 부분은 담당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쪽으로 전화해보세요’ 이런 식으로 빙빙 돌려요. 인터넷 커뮤니티서 알게 된 분도 도움을 주셨는데 저하고 똑같이 여기저기에 전화하셨더라고요. 결국 기관이 아니라 개인이 알아낸 거죠.”

이씨는 사촌언니라는 관계의 벽에 여러 차례 부딪치면서도 은총씨의 동생을 독려해 사건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서 ‘왜 사촌언니가 나서?’ ‘친동생도 있는데 그쯤 했으면 되지 않아?’ 등의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은총이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서”라고 울먹였다. 

교제 살인 늘면서 관심 줄어들어
“피해자 연대해 대안 요구하고파”

이씨는 A씨가 엄벌을 받을 때까지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듯 되뇌었다. 남아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A씨가 ‘무기징역’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상공개도 이뤄지지 않았고 보복살인서 단순살인으로, 살인미수에서 특수상해, 상해 등으로 혐의가 줄어들어 낮은 형량을 받을까 두려운 모습이 역력했다.

“은총이가 출근할 때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거든요. 그놈이 덤벼들 때 그걸 휘둘렀다면 죽지 않았을지, 소리를 크게 질렀다면 살았을지, 조금 더 늦게 출근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돼요. 저한테 미리 말했다면 다른 조치를 취해줄 수 있었을 텐데.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친동생처럼 생각했는데 제가 미덥지 못했을까요.”

은총씨는 A씨의 스토킹이 심해질 무렵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을 찾아가 인사를 건네고 돈을 들여 짐을 정리했다. 직장 동료에게 자신이 잘못되면 딸은 외할머니(은총씨 어머니)가 키웠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A씨의 위협이 심각했고 이 때문에 자신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주변 정리를 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사건 당일 오전 6시도 안 돼 출근길에 나선 것도 일처리를 빨리 마친 뒤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들은 은총씨의 딸 사랑이 지극했다고 입을 모았다. 은총씨의 딸은 현재 아빠(은총씨 전 남편)와 함께 있다. 엄마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아이는 엄마를 찾지도 않고 사건 당시 상황에 관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태다. 

이씨는 그런 조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마음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사촌언니인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대신 이씨는 은총씨와 똑같은 사건 피해자를 찾아 나섰다. 이번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그리고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는 의지다. 

“이런 일은 아마 또 일어날 거예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알아서 노력해야 되는 게 지금 현실이에요. 물론 더 이상 노출되기 싫고 사건을 떠올리기 싫은 분도 계시겠지만 은총이가 겪은 사건과 비슷한 피해자를 모아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 있게 국가에 요구하고 싶어요. 칼 들고 쫓아오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스마트워치를 누른다고 그 살인이 막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체포했다가 4시간 만에 풀어주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또 다시
일어난다

이씨가 무엇보다 가슴 아파하는 부분은 은총씨 사건 이후 가족이 해체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세 모녀는 이제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굴레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그 무게에 짓눌려 대다수의 피해자 가족이 갈가리 찢어지고 쪼개진다. ‘그놈’이 살해한 건 은총씨만이 아니었다. ‘그놈’은 은총씨의 가족까지 파괴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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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