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큰 그림 그리는 황우석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21 14:16:44
  • 호수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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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 손잡고 돌아온 복제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과학계서 논문 조작설이 불거질 때마다 으레 등장하는 이름 황우석. 그가 20년 만에 입을 열었다. 지난 6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에 출연한 황우석 박사는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관해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밝혔다. 예고라도 한 듯 황 박사는 국내서 반려견 복제 사업을 재개한다. 오명을 벗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이라는 비난 세례를 받으면서 퇴장했던 황우석 박사는 꾸준히 업적을 이어갔다. 1995년 그는 송아지 핵 이식 복제에 성공했다. 전 세계 최초로 동물복제 실현화를 이룬 것이다. 4년 뒤 복제 송아지인 ‘영롱이’를 만들어냈다. 이후 같은 방식으로 100일을 지낸 복제 강아지를 공개했다. 

넷플릭스 
깜짝 출연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인간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 이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되면서 한국의 위상을 떨쳤다. 황 박사는 살아있는 결과물을 눈으로 보여줬다. 그는 이병천 서울대 수의과 대학 교수 등과 함께 아프간하운드 종의 개 ‘스너피’를 최초로 복제했다.

숱한 교배를 통해 다양한 혈통을 가진 개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복제가 어렵다. 인간처럼 유전병이 있는 개를 복제하면서 난치병 연구를 향한 기대가 커졌다. 두 눈으로 복제를 목격한 일부 시민들은 부푼 기대감에 들떴다. 황 박사는 제2의 세종대왕으로 추앙됐다. 한글 이래, 최고의 발명이라며 열광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웠다. 황 박사를 대표 이미지로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직접 황우석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는 등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심지어 2004년 총선 정국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측으로부터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직에 나설 것을 제안받았다. 다만, 황 박사는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논문 발표 이후 황 박사는 대통령급 경호를 받았다. 국회에서는 “황 박사만큼은 특혜를 주자”며 “영수증 없이도 연구비를 지원하자”는 말이 나왔다. 당시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김병준 정책실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 3인방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특히 박 보좌관은 황 박사의 연구실을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으로 두고 지원했다. 여담으로 박 보좌관은 황 박사 연구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이언스> 논문의 13번째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훗날 박 보좌관은 황 박사로부터 연구비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물의를 빚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한 대한항공은 황 박사에게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무료로 지원해주겠다고 나섰다.

어느 덧 황 박사는 예수로 둔갑했다. 2005년 7월 KBS <열린음악회>서 댄스 듀오 클론의 강원래 공연을 본 그는 “조만간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후유증을 얻게 된 강씨는 이날 휠체어에 앉은 채 특별안무를 선보였다.

나라 망신시키고…논문 조작 흑역사
국내서 반려견 복제 사업 재개 선언

MBC <PD수첩>은 이를 두고 “원래야! 내가 너를 일으켜 걷게 하겠다”는 발언은 예수 행세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송으로 보행 장애인들은 황 박사가 희망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일부는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황 박사는 언론 플레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난치병, 불치병 환자의 가족들과 만나 자신이 연구한 줄기세포로 그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심지어 독재정권 시절 고문 후유증을 앓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내가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쇼맨십에 불과했지만,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당시 <PD수첩>의 한학수 PD가 쓴 <진실, 그것을 믿었다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에 따르면 황 박사는 다리가 불편한 아이에게 임상실험을 제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줄기세포 자체가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성장하더라도 정상세포가 될지 암세포가 될지 모르는 위험 단계였으며 실용화 단계까지 얼마만큼 걸릴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연구팀은 줄기세포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서 사람으로 임상실험을 계획했다. 연구재료로 사용된 여성의 난소를 채취하는 과정도 윤리적인 문제에 휩싸였다. 2004년 <사이언스> 게재 논문서 사용된 2221개 난자의 출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2002년 5월부터 2003년 6월까지 1년 동안 병원을 찾은 여성들의 몸에서 떼어낸 114개의 난소는 황 박사 연구팀으로 전달됐다. 이 과정서 연구소가 환자에게 “난소는 어떤 상황서 절제하고 난소 조직으로 어떤 연구를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등에 관한 설명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조사에서 한양대병원은 일부 환자의 동의서가 없는 상태서 난소를 채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난자 취득 과정에 ‘대가성’과 ‘강압성’이 있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황 박사팀의 연구윤리를 감독해야 할 서울대 수의대와 한양대병원 등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에 책임을 물었다.

들통난
거짓말

황 박사팀은 2002년 11월28일부터 2005년 12월24일까지 ▲미즈메디병원 ▲한나산부인과 ▲한양대병원 ▲삼성제일병원 등 4개 의료기관으로부터 119명의 여성으로부터 138회에 걸쳐 총 2221개의 난자를 제공받았다. 이 과정서 현금 지급, 불임치료비 경감 등 반대급부가 제공됐다.

이는 인공수정을 위해 제공되는 난자 매매를 금지한 의사윤리지침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산부인과는 황 박사팀으로부터 배란유도제를 제공받았다. 특히, 난자를 연구용으로 공여한 환자에게 약값이나 체외수정시술비를 일부 감면했다. 이 과정서 한나산부인과는 불임치료에 사용해야 할 좋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제공했다.

오히려 등급이 낮은 난자를 불임치료에 사용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복지부가 한나산부인과의 체외수정시술 대장, 체외수정시술 기록지 등을 검토한 결과, 전체 채취 난자의 48%가 황 박사팀에 제공됐다. 난자의 성숙도별로 평가했을 때 성숙도가 좋은 등급의 난자 중 63%가 연구용으로 황 박사팀에 건네졌다.

국가생명위는 의료윤리 원칙을 무시했다고 봤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악의, 소홀함, 무관심 등으로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이른바 ‘악행 금지의 원칙’이 있다. 한나산부인과는 이 원칙을 어겼고, 직업상 윤리 의무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생명위는 “인체를 대상으로 연구, 치료할 때는 생명윤리 가치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나가던 황 박사는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2005년 12월 <PD수첩>은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 출처에 의문을 제기했다. 황 박사는 2005년 게재한 논문서 여러 수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연구했던 류영준 교수가 해당 사실을 폭로하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황 박사는 이에 반박하며 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류씨는 지난 2018년 10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류 교수의 발언이 허위 사실로 보기 부족하다며 “피해자에 대해 비방 목적이나 명예훼손의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앉은 자를 
걷게 하리”

또 황 박사가 실험실서 만들었다고 주장한 11개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가짜로 드러났다. 서울대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에 나섰다. 2006년 1월10일 조사위는 최종보고서를 통해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각각 발표한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이 허위라고 발표했다.

이후 <사이언스> 잡지사는 해당 논문들을 취소했다. 2006년 3월20일 서울대학교는 그를 교수직서 파면했고 2005년 12월30일 검찰은 사실상 내사에 착수했다. 2006년 5월 사기, 업무상 횡령, 난자 불법매매(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황 박사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법원은(형사2부) 생명윤리법 위반은 유죄로 최종 징역 2년,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서울대 파면 직후에도 황 박사는 꼿꼿했다. 그는 즉시 서울대를 상대로 파면 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는 승소했다. 황 박사 지지자들은 그의 억울함이 밝혀졌다고 환호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파면 처분이 재량의 일탈 및 남용 혹은 비례원칙 위반이라고 판시한 것이지, 그가 무죄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2014년 2월 상고심서 대법원은 파면 처분은 정당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해 8월 파기환송심서 파면이 확정됐다. 

복제연구를 향한 애정만큼은 진심이었다. 2006년 서울대 수의대 제자들과 함께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세우면서 재기에 나섰다. 연구원은 주로 강아지 복제를 하면서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개 복제 회사가 됐다. 2008년에는 9·11 사태 당시 인명구조견을 복제했다.

당시 연구원서 개 복제를 하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호황이었다고 한다. 반려견 복제 비용이 건당 10만달러 이상임에도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연간 매출액만 300억원이 넘을 정도였다. 2009~2019년까지 복제견 1000마리 이상이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000조 재벌’ UAE 부통령 초청
“강아지 복제 원하는 고객 많아”

경기도는 2009년 황 박사와 바이오연구협력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논문 조작 파동은 서서히 잊혀갔다. 목적은 “당뇨병 치료를 위한 형질전환 복제 돼지 생산”이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논문 파동과 관련해 황 박사의 재판이 진행 중이나 도는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생명공학 분야 연구에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황 박사는 범정부 차원의 복제 관련 사업도 진행했다. 2013년에는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 등과 함께 매머드 복제에 참여했다. 다만, 매머드 샘플 수십㎏으로도 체세포 배양에 실패하자 제주대에 샘플을 넘겼다. 최근에 알려진 근황은 중동서의 활약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황 박사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바이오테크 연구센터서 관상용 낙타를 복제했다고 소개됐다. 그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부통령의 초청을 받아 정착했다고 밝혔다. 만수르 부통령은 1000조원을 가진 재벌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인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황 박사는 ‘UAE서 그간 낙타를 얼마나 복제했느냐’는 질문에 “150마리가 넘는다”고 답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한국 과학계, 세계 과학계에 하나의 교훈과 이정표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압박이 있었다고 핑계를 댄다면 그건 비겁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이어 “과욕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지 그걸 가지고 누구 핑계를 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제가 만약 다시 태어나 인생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똑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스타트업 ㈜크리오아시아는 황 박사와 개 복제 서비스를 다시 추진한다고 밝혔다.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크리오아시아는 반려동물 장례식장, 동물병원들과 협력해 황 박사와 사업을 진행할 전망이다.

성격까지 
복제되나

크리오아시아 측은 “최근 강아지 복제를 원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옴에 따라 이달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며 “다만, 해외로 체세포를 보내야 하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에 기존에 국내서 복제를 진행할 때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비용이 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복제동물이 성격까지 복제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세포를 채취해 외형적, 유전적 특성을 복제할 뿐, 환경적 요인으로 구성되는 성격, 습관 등은 복제기술로 구현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우석 저격한 ‘닥터K’ 류영준

황우석 박사의 근황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제보한 류영준 강원대 교수가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18년 전 황 박사를 고발한 그는 “10살 전신마비 소년에게 줄기세포를 주입하려 한다는 얘기에 눈앞이 아찔했다”며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아내는 “사안이 너무 커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만류했다.

망설이던 그는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과 피해를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배에서 체세포를 뗀 자신이 감당할 죄책감이 더 무거웠다.

원자력병원 레지던트였던 그는 2005년 6월1일 MBC <PD수첩>에 ‘닥터 K’라는 익명으로 제보했다. 

이후 정치권과 언론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끝까지 버틴 끝에 보도가 되고, 그의 신념은 결국 실현됐다.

그와 황 박사의 인연은 1999년부터다.

<네이처>에 실린 영국 복제양 ‘돌리’에 관한 논문을 본 그는 환자 치료에 사용할 세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황 박사는 복제소 ‘영롱이’와 ‘진이’로 명성을 얻고 있던 때였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돈독한 사제 관계를 맺었다.

류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서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황 박사는 인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어떤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모든 걸 내가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실험실 청소부터 시작한 류 교수는 ‘영롱이’와 ‘진이’ 논문 보고싶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선배에게 논문을 달라고 요청했다. 한숨과 함께 돌아온 답은 ‘그런 건 없다’였다”고 토로했다.

류 교수는 이 사건 이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거짓과 조작의 냄새였다.

황 박사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가 지금 1등을 뺏기면 끝이다. 나중에 우리가 실력을 쌓아서 진짜로 복제하면 된다’고 답하더라는 것이었다.

당시 복제 연구 경쟁 상대인 축산기술연구원에서 조만간 복제소가 태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황 박사가 입수한 것이다.

숱한 비리에 둘러싸인 ‘황우석 사건’은 과거 한국이 절대 목표에 복종하면서 벌어진 비윤리적 행태였다.

류 교수는 “젊은 과학자들은 기성세대의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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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