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큰 그림 그리는 황우석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21 14:16:44
  • 호수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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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 손잡고 돌아온 복제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과학계서 논문 조작설이 불거질 때마다 으레 등장하는 이름 황우석. 그가 20년 만에 입을 열었다. 지난 6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에 출연한 황우석 박사는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관해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밝혔다. 예고라도 한 듯 황 박사는 국내서 반려견 복제 사업을 재개한다. 오명을 벗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이라는 비난 세례를 받으면서 퇴장했던 황우석 박사는 꾸준히 업적을 이어갔다. 1995년 그는 송아지 핵 이식 복제에 성공했다. 전 세계 최초로 동물복제 실현화를 이룬 것이다. 4년 뒤 복제 송아지인 ‘영롱이’를 만들어냈다. 이후 같은 방식으로 100일을 지낸 복제 강아지를 공개했다. 

넷플릭스 
깜짝 출연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인간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 이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되면서 한국의 위상을 떨쳤다. 황 박사는 살아있는 결과물을 눈으로 보여줬다. 그는 이병천 서울대 수의과 대학 교수 등과 함께 아프간하운드 종의 개 ‘스너피’를 최초로 복제했다.

숱한 교배를 통해 다양한 혈통을 가진 개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복제가 어렵다. 인간처럼 유전병이 있는 개를 복제하면서 난치병 연구를 향한 기대가 커졌다. 두 눈으로 복제를 목격한 일부 시민들은 부푼 기대감에 들떴다. 황 박사는 제2의 세종대왕으로 추앙됐다. 한글 이래, 최고의 발명이라며 열광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웠다. 황 박사를 대표 이미지로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직접 황우석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는 등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심지어 2004년 총선 정국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측으로부터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직에 나설 것을 제안받았다. 다만, 황 박사는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논문 발표 이후 황 박사는 대통령급 경호를 받았다. 국회에서는 “황 박사만큼은 특혜를 주자”며 “영수증 없이도 연구비를 지원하자”는 말이 나왔다. 당시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김병준 정책실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 3인방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특히 박 보좌관은 황 박사의 연구실을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으로 두고 지원했다. 여담으로 박 보좌관은 황 박사 연구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이언스> 논문의 13번째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훗날 박 보좌관은 황 박사로부터 연구비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물의를 빚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한 대한항공은 황 박사에게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무료로 지원해주겠다고 나섰다.

어느 덧 황 박사는 예수로 둔갑했다. 2005년 7월 KBS <열린음악회>서 댄스 듀오 클론의 강원래 공연을 본 그는 “조만간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후유증을 얻게 된 강씨는 이날 휠체어에 앉은 채 특별안무를 선보였다.

나라 망신시키고…논문 조작 흑역사
국내서 반려견 복제 사업 재개 선언

MBC <PD수첩>은 이를 두고 “원래야! 내가 너를 일으켜 걷게 하겠다”는 발언은 예수 행세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송으로 보행 장애인들은 황 박사가 희망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일부는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황 박사는 언론 플레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난치병, 불치병 환자의 가족들과 만나 자신이 연구한 줄기세포로 그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심지어 독재정권 시절 고문 후유증을 앓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내가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쇼맨십에 불과했지만,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당시 <PD수첩>의 한학수 PD가 쓴 <진실, 그것을 믿었다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에 따르면 황 박사는 다리가 불편한 아이에게 임상실험을 제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줄기세포 자체가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성장하더라도 정상세포가 될지 암세포가 될지 모르는 위험 단계였으며 실용화 단계까지 얼마만큼 걸릴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연구팀은 줄기세포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서 사람으로 임상실험을 계획했다. 연구재료로 사용된 여성의 난소를 채취하는 과정도 윤리적인 문제에 휩싸였다. 2004년 <사이언스> 게재 논문서 사용된 2221개 난자의 출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2002년 5월부터 2003년 6월까지 1년 동안 병원을 찾은 여성들의 몸에서 떼어낸 114개의 난소는 황 박사 연구팀으로 전달됐다. 이 과정서 연구소가 환자에게 “난소는 어떤 상황서 절제하고 난소 조직으로 어떤 연구를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등에 관한 설명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조사에서 한양대병원은 일부 환자의 동의서가 없는 상태서 난소를 채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난자 취득 과정에 ‘대가성’과 ‘강압성’이 있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황 박사팀의 연구윤리를 감독해야 할 서울대 수의대와 한양대병원 등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에 책임을 물었다.

들통난
거짓말

황 박사팀은 2002년 11월28일부터 2005년 12월24일까지 ▲미즈메디병원 ▲한나산부인과 ▲한양대병원 ▲삼성제일병원 등 4개 의료기관으로부터 119명의 여성으로부터 138회에 걸쳐 총 2221개의 난자를 제공받았다. 이 과정서 현금 지급, 불임치료비 경감 등 반대급부가 제공됐다.

이는 인공수정을 위해 제공되는 난자 매매를 금지한 의사윤리지침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산부인과는 황 박사팀으로부터 배란유도제를 제공받았다. 특히, 난자를 연구용으로 공여한 환자에게 약값이나 체외수정시술비를 일부 감면했다. 이 과정서 한나산부인과는 불임치료에 사용해야 할 좋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제공했다.

오히려 등급이 낮은 난자를 불임치료에 사용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복지부가 한나산부인과의 체외수정시술 대장, 체외수정시술 기록지 등을 검토한 결과, 전체 채취 난자의 48%가 황 박사팀에 제공됐다. 난자의 성숙도별로 평가했을 때 성숙도가 좋은 등급의 난자 중 63%가 연구용으로 황 박사팀에 건네졌다.

국가생명위는 의료윤리 원칙을 무시했다고 봤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악의, 소홀함, 무관심 등으로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이른바 ‘악행 금지의 원칙’이 있다. 한나산부인과는 이 원칙을 어겼고, 직업상 윤리 의무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생명위는 “인체를 대상으로 연구, 치료할 때는 생명윤리 가치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나가던 황 박사는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2005년 12월 <PD수첩>은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 출처에 의문을 제기했다. 황 박사는 2005년 게재한 논문서 여러 수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연구했던 류영준 교수가 해당 사실을 폭로하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황 박사는 이에 반박하며 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류씨는 지난 2018년 10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류 교수의 발언이 허위 사실로 보기 부족하다며 “피해자에 대해 비방 목적이나 명예훼손의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앉은 자를 
걷게 하리”

또 황 박사가 실험실서 만들었다고 주장한 11개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가짜로 드러났다. 서울대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에 나섰다. 2006년 1월10일 조사위는 최종보고서를 통해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각각 발표한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이 허위라고 발표했다.

이후 <사이언스> 잡지사는 해당 논문들을 취소했다. 2006년 3월20일 서울대학교는 그를 교수직서 파면했고 2005년 12월30일 검찰은 사실상 내사에 착수했다. 2006년 5월 사기, 업무상 횡령, 난자 불법매매(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황 박사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법원은(형사2부) 생명윤리법 위반은 유죄로 최종 징역 2년,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서울대 파면 직후에도 황 박사는 꼿꼿했다. 그는 즉시 서울대를 상대로 파면 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는 승소했다. 황 박사 지지자들은 그의 억울함이 밝혀졌다고 환호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파면 처분이 재량의 일탈 및 남용 혹은 비례원칙 위반이라고 판시한 것이지, 그가 무죄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2014년 2월 상고심서 대법원은 파면 처분은 정당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해 8월 파기환송심서 파면이 확정됐다. 

복제연구를 향한 애정만큼은 진심이었다. 2006년 서울대 수의대 제자들과 함께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세우면서 재기에 나섰다. 연구원은 주로 강아지 복제를 하면서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개 복제 회사가 됐다. 2008년에는 9·11 사태 당시 인명구조견을 복제했다.

당시 연구원서 개 복제를 하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호황이었다고 한다. 반려견 복제 비용이 건당 10만달러 이상임에도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연간 매출액만 300억원이 넘을 정도였다. 2009~2019년까지 복제견 1000마리 이상이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000조 재벌’ UAE 부통령 초청
“강아지 복제 원하는 고객 많아”

경기도는 2009년 황 박사와 바이오연구협력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논문 조작 파동은 서서히 잊혀갔다. 목적은 “당뇨병 치료를 위한 형질전환 복제 돼지 생산”이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논문 파동과 관련해 황 박사의 재판이 진행 중이나 도는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생명공학 분야 연구에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황 박사는 범정부 차원의 복제 관련 사업도 진행했다. 2013년에는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 등과 함께 매머드 복제에 참여했다. 다만, 매머드 샘플 수십㎏으로도 체세포 배양에 실패하자 제주대에 샘플을 넘겼다. 최근에 알려진 근황은 중동서의 활약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황 박사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바이오테크 연구센터서 관상용 낙타를 복제했다고 소개됐다. 그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부통령의 초청을 받아 정착했다고 밝혔다. 만수르 부통령은 1000조원을 가진 재벌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인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황 박사는 ‘UAE서 그간 낙타를 얼마나 복제했느냐’는 질문에 “150마리가 넘는다”고 답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한국 과학계, 세계 과학계에 하나의 교훈과 이정표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압박이 있었다고 핑계를 댄다면 그건 비겁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이어 “과욕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지 그걸 가지고 누구 핑계를 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제가 만약 다시 태어나 인생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똑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스타트업 ㈜크리오아시아는 황 박사와 개 복제 서비스를 다시 추진한다고 밝혔다.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크리오아시아는 반려동물 장례식장, 동물병원들과 협력해 황 박사와 사업을 진행할 전망이다.

성격까지 
복제되나

크리오아시아 측은 “최근 강아지 복제를 원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옴에 따라 이달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며 “다만, 해외로 체세포를 보내야 하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에 기존에 국내서 복제를 진행할 때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비용이 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복제동물이 성격까지 복제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세포를 채취해 외형적, 유전적 특성을 복제할 뿐, 환경적 요인으로 구성되는 성격, 습관 등은 복제기술로 구현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우석 저격한 ‘닥터K’ 류영준

황우석 박사의 근황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제보한 류영준 강원대 교수가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18년 전 황 박사를 고발한 그는 “10살 전신마비 소년에게 줄기세포를 주입하려 한다는 얘기에 눈앞이 아찔했다”며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아내는 “사안이 너무 커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만류했다.

망설이던 그는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과 피해를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배에서 체세포를 뗀 자신이 감당할 죄책감이 더 무거웠다.

원자력병원 레지던트였던 그는 2005년 6월1일 MBC <PD수첩>에 ‘닥터 K’라는 익명으로 제보했다. 

이후 정치권과 언론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끝까지 버틴 끝에 보도가 되고, 그의 신념은 결국 실현됐다.

그와 황 박사의 인연은 1999년부터다.

<네이처>에 실린 영국 복제양 ‘돌리’에 관한 논문을 본 그는 환자 치료에 사용할 세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황 박사는 복제소 ‘영롱이’와 ‘진이’로 명성을 얻고 있던 때였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돈독한 사제 관계를 맺었다.

류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서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황 박사는 인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어떤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모든 걸 내가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실험실 청소부터 시작한 류 교수는 ‘영롱이’와 ‘진이’ 논문 보고싶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선배에게 논문을 달라고 요청했다. 한숨과 함께 돌아온 답은 ‘그런 건 없다’였다”고 토로했다.

류 교수는 이 사건 이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거짓과 조작의 냄새였다.

황 박사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가 지금 1등을 뺏기면 끝이다. 나중에 우리가 실력을 쌓아서 진짜로 복제하면 된다’고 답하더라는 것이었다.

당시 복제 연구 경쟁 상대인 축산기술연구원에서 조만간 복제소가 태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황 박사가 입수한 것이다.

숱한 비리에 둘러싸인 ‘황우석 사건’은 과거 한국이 절대 목표에 복종하면서 벌어진 비윤리적 행태였다.

류 교수는 “젊은 과학자들은 기성세대의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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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