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큰 그림 그리는 황우석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21 14:16:44
  • 호수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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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 손잡고 돌아온 복제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과학계서 논문 조작설이 불거질 때마다 으레 등장하는 이름 황우석. 그가 20년 만에 입을 열었다. 지난 6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에 출연한 황우석 박사는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관해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밝혔다. 예고라도 한 듯 황 박사는 국내서 반려견 복제 사업을 재개한다. 오명을 벗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이라는 비난 세례를 받으면서 퇴장했던 황우석 박사는 꾸준히 업적을 이어갔다. 1995년 그는 송아지 핵 이식 복제에 성공했다. 전 세계 최초로 동물복제 실현화를 이룬 것이다. 4년 뒤 복제 송아지인 ‘영롱이’를 만들어냈다. 이후 같은 방식으로 100일을 지낸 복제 강아지를 공개했다. 

넷플릭스 
깜짝 출연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인간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 이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되면서 한국의 위상을 떨쳤다. 황 박사는 살아있는 결과물을 눈으로 보여줬다. 그는 이병천 서울대 수의과 대학 교수 등과 함께 아프간하운드 종의 개 ‘스너피’를 최초로 복제했다.

숱한 교배를 통해 다양한 혈통을 가진 개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복제가 어렵다. 인간처럼 유전병이 있는 개를 복제하면서 난치병 연구를 향한 기대가 커졌다. 두 눈으로 복제를 목격한 일부 시민들은 부푼 기대감에 들떴다. 황 박사는 제2의 세종대왕으로 추앙됐다. 한글 이래, 최고의 발명이라며 열광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웠다. 황 박사를 대표 이미지로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직접 황우석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는 등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심지어 2004년 총선 정국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측으로부터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직에 나설 것을 제안받았다. 다만, 황 박사는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논문 발표 이후 황 박사는 대통령급 경호를 받았다. 국회에서는 “황 박사만큼은 특혜를 주자”며 “영수증 없이도 연구비를 지원하자”는 말이 나왔다. 당시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김병준 정책실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 3인방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특히 박 보좌관은 황 박사의 연구실을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으로 두고 지원했다. 여담으로 박 보좌관은 황 박사 연구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이언스> 논문의 13번째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훗날 박 보좌관은 황 박사로부터 연구비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물의를 빚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한 대한항공은 황 박사에게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무료로 지원해주겠다고 나섰다.

어느 덧 황 박사는 예수로 둔갑했다. 2005년 7월 KBS <열린음악회>서 댄스 듀오 클론의 강원래 공연을 본 그는 “조만간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후유증을 얻게 된 강씨는 이날 휠체어에 앉은 채 특별안무를 선보였다.

나라 망신시키고…논문 조작 흑역사
국내서 반려견 복제 사업 재개 선언

MBC <PD수첩>은 이를 두고 “원래야! 내가 너를 일으켜 걷게 하겠다”는 발언은 예수 행세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송으로 보행 장애인들은 황 박사가 희망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일부는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황 박사는 언론 플레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난치병, 불치병 환자의 가족들과 만나 자신이 연구한 줄기세포로 그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심지어 독재정권 시절 고문 후유증을 앓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내가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쇼맨십에 불과했지만,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당시 <PD수첩>의 한학수 PD가 쓴 <진실, 그것을 믿었다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에 따르면 황 박사는 다리가 불편한 아이에게 임상실험을 제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줄기세포 자체가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성장하더라도 정상세포가 될지 암세포가 될지 모르는 위험 단계였으며 실용화 단계까지 얼마만큼 걸릴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연구팀은 줄기세포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서 사람으로 임상실험을 계획했다. 연구재료로 사용된 여성의 난소를 채취하는 과정도 윤리적인 문제에 휩싸였다. 2004년 <사이언스> 게재 논문서 사용된 2221개 난자의 출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2002년 5월부터 2003년 6월까지 1년 동안 병원을 찾은 여성들의 몸에서 떼어낸 114개의 난소는 황 박사 연구팀으로 전달됐다. 이 과정서 연구소가 환자에게 “난소는 어떤 상황서 절제하고 난소 조직으로 어떤 연구를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등에 관한 설명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조사에서 한양대병원은 일부 환자의 동의서가 없는 상태서 난소를 채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난자 취득 과정에 ‘대가성’과 ‘강압성’이 있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황 박사팀의 연구윤리를 감독해야 할 서울대 수의대와 한양대병원 등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에 책임을 물었다.

들통난
거짓말

황 박사팀은 2002년 11월28일부터 2005년 12월24일까지 ▲미즈메디병원 ▲한나산부인과 ▲한양대병원 ▲삼성제일병원 등 4개 의료기관으로부터 119명의 여성으로부터 138회에 걸쳐 총 2221개의 난자를 제공받았다. 이 과정서 현금 지급, 불임치료비 경감 등 반대급부가 제공됐다.

이는 인공수정을 위해 제공되는 난자 매매를 금지한 의사윤리지침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산부인과는 황 박사팀으로부터 배란유도제를 제공받았다. 특히, 난자를 연구용으로 공여한 환자에게 약값이나 체외수정시술비를 일부 감면했다. 이 과정서 한나산부인과는 불임치료에 사용해야 할 좋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제공했다.

오히려 등급이 낮은 난자를 불임치료에 사용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복지부가 한나산부인과의 체외수정시술 대장, 체외수정시술 기록지 등을 검토한 결과, 전체 채취 난자의 48%가 황 박사팀에 제공됐다. 난자의 성숙도별로 평가했을 때 성숙도가 좋은 등급의 난자 중 63%가 연구용으로 황 박사팀에 건네졌다.

국가생명위는 의료윤리 원칙을 무시했다고 봤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악의, 소홀함, 무관심 등으로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이른바 ‘악행 금지의 원칙’이 있다. 한나산부인과는 이 원칙을 어겼고, 직업상 윤리 의무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생명위는 “인체를 대상으로 연구, 치료할 때는 생명윤리 가치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나가던 황 박사는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2005년 12월 <PD수첩>은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 출처에 의문을 제기했다. 황 박사는 2005년 게재한 논문서 여러 수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연구했던 류영준 교수가 해당 사실을 폭로하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황 박사는 이에 반박하며 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류씨는 지난 2018년 10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류 교수의 발언이 허위 사실로 보기 부족하다며 “피해자에 대해 비방 목적이나 명예훼손의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앉은 자를 
걷게 하리”

또 황 박사가 실험실서 만들었다고 주장한 11개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가짜로 드러났다. 서울대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에 나섰다. 2006년 1월10일 조사위는 최종보고서를 통해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각각 발표한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이 허위라고 발표했다.

이후 <사이언스> 잡지사는 해당 논문들을 취소했다. 2006년 3월20일 서울대학교는 그를 교수직서 파면했고 2005년 12월30일 검찰은 사실상 내사에 착수했다. 2006년 5월 사기, 업무상 횡령, 난자 불법매매(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황 박사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법원은(형사2부) 생명윤리법 위반은 유죄로 최종 징역 2년,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서울대 파면 직후에도 황 박사는 꼿꼿했다. 그는 즉시 서울대를 상대로 파면 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는 승소했다. 황 박사 지지자들은 그의 억울함이 밝혀졌다고 환호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파면 처분이 재량의 일탈 및 남용 혹은 비례원칙 위반이라고 판시한 것이지, 그가 무죄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2014년 2월 상고심서 대법원은 파면 처분은 정당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해 8월 파기환송심서 파면이 확정됐다. 

복제연구를 향한 애정만큼은 진심이었다. 2006년 서울대 수의대 제자들과 함께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세우면서 재기에 나섰다. 연구원은 주로 강아지 복제를 하면서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개 복제 회사가 됐다. 2008년에는 9·11 사태 당시 인명구조견을 복제했다.

당시 연구원서 개 복제를 하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호황이었다고 한다. 반려견 복제 비용이 건당 10만달러 이상임에도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연간 매출액만 300억원이 넘을 정도였다. 2009~2019년까지 복제견 1000마리 이상이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000조 재벌’ UAE 부통령 초청
“강아지 복제 원하는 고객 많아”

경기도는 2009년 황 박사와 바이오연구협력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논문 조작 파동은 서서히 잊혀갔다. 목적은 “당뇨병 치료를 위한 형질전환 복제 돼지 생산”이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논문 파동과 관련해 황 박사의 재판이 진행 중이나 도는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생명공학 분야 연구에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황 박사는 범정부 차원의 복제 관련 사업도 진행했다. 2013년에는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 등과 함께 매머드 복제에 참여했다. 다만, 매머드 샘플 수십㎏으로도 체세포 배양에 실패하자 제주대에 샘플을 넘겼다. 최근에 알려진 근황은 중동서의 활약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황 박사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바이오테크 연구센터서 관상용 낙타를 복제했다고 소개됐다. 그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부통령의 초청을 받아 정착했다고 밝혔다. 만수르 부통령은 1000조원을 가진 재벌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인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황 박사는 ‘UAE서 그간 낙타를 얼마나 복제했느냐’는 질문에 “150마리가 넘는다”고 답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한국 과학계, 세계 과학계에 하나의 교훈과 이정표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압박이 있었다고 핑계를 댄다면 그건 비겁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이어 “과욕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지 그걸 가지고 누구 핑계를 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제가 만약 다시 태어나 인생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똑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스타트업 ㈜크리오아시아는 황 박사와 개 복제 서비스를 다시 추진한다고 밝혔다.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크리오아시아는 반려동물 장례식장, 동물병원들과 협력해 황 박사와 사업을 진행할 전망이다.

성격까지 
복제되나

크리오아시아 측은 “최근 강아지 복제를 원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옴에 따라 이달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며 “다만, 해외로 체세포를 보내야 하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에 기존에 국내서 복제를 진행할 때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비용이 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복제동물이 성격까지 복제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세포를 채취해 외형적, 유전적 특성을 복제할 뿐, 환경적 요인으로 구성되는 성격, 습관 등은 복제기술로 구현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우석 저격한 ‘닥터K’ 류영준

황우석 박사의 근황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제보한 류영준 강원대 교수가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18년 전 황 박사를 고발한 그는 “10살 전신마비 소년에게 줄기세포를 주입하려 한다는 얘기에 눈앞이 아찔했다”며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아내는 “사안이 너무 커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만류했다.

망설이던 그는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과 피해를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배에서 체세포를 뗀 자신이 감당할 죄책감이 더 무거웠다.

원자력병원 레지던트였던 그는 2005년 6월1일 MBC <PD수첩>에 ‘닥터 K’라는 익명으로 제보했다. 

이후 정치권과 언론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끝까지 버틴 끝에 보도가 되고, 그의 신념은 결국 실현됐다.

그와 황 박사의 인연은 1999년부터다.

<네이처>에 실린 영국 복제양 ‘돌리’에 관한 논문을 본 그는 환자 치료에 사용할 세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황 박사는 복제소 ‘영롱이’와 ‘진이’로 명성을 얻고 있던 때였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돈독한 사제 관계를 맺었다.

류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서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황 박사는 인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어떤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모든 걸 내가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실험실 청소부터 시작한 류 교수는 ‘영롱이’와 ‘진이’ 논문 보고싶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선배에게 논문을 달라고 요청했다. 한숨과 함께 돌아온 답은 ‘그런 건 없다’였다”고 토로했다.

류 교수는 이 사건 이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거짓과 조작의 냄새였다.

황 박사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가 지금 1등을 뺏기면 끝이다. 나중에 우리가 실력을 쌓아서 진짜로 복제하면 된다’고 답하더라는 것이었다.

당시 복제 연구 경쟁 상대인 축산기술연구원에서 조만간 복제소가 태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황 박사가 입수한 것이다.

숱한 비리에 둘러싸인 ‘황우석 사건’은 과거 한국이 절대 목표에 복종하면서 벌어진 비윤리적 행태였다.

류 교수는 “젊은 과학자들은 기성세대의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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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