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버린’ 대망신 잼버리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14 11:11:58
  • 호수 1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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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게임’ 안 죽었으니 다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시점이다.” 지난 8일 기자회견에 나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잼버리 조기 철수 사태에 대해 이같이 합리화했다. 한국의 병리 현상인 ‘빨리빨리 문화’를 초능력으로 미화한 셈이다. 군대 간 ‘방탄소년단(BTS)’이라도 무대에 투입할 기세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내놓은 타개책이다. 같은 당 박대출 의원은 IMF 외환위기 시절 금 모으기 정신으로 이겨내자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영수증 처리는 국민 몫이다.

올해 전북 새만금서 열린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사업비는 1171억원. 이 중 천막으로 만든 샤워장과 수시로 막힌 화장실에 119억원을 썼다. 변기는 중고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마저도 턱없이 부족했다. 기본적인 생존권도 위협받았다. 진흙밭에 세운 텐트 등에 59억원이 투입됐다. 모기 밥상이 따로 없었다. 텐트 실내온도는 30도를 훌쩍 넘겼다.

국제행사 
역대 최악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주최하는 가장 대표적인 행사다. 1920년 영국 런던서 선보인 이후 회원국 20곳을 돌며 4년마다 열린다. 올해 전북 부안 새만금서 열린 잼버리는 32년 만에 국내서 개최됐다. 강원도 고성서 열린 제17회(1991년)는 성공적인 대회로 꼽힌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봐도 부족함이 없다. 반면, 지난 1일 새만금 잼버리는 외교 문제로 번질 만큼 열악했다.

고성 잼버리를 경험했던 이들은 ‘숲과 매립지의 차이’를 꼽았다. 당시 참가자들은 나무 숲이 자리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고 기억했다. 또 벌레 물림 등의 안전사고를 막고자 군부대와 함께 진료 부스도 운영해 안전을 지켰다.


올해 잼버리 개최지인 전북 부안 새만금은 원래 바다였다가 인공 매립을 통해 조성한 부지다. 매립 당시부터 농어촌 용지라 물 빠짐이 쉽지 않았다. 상·하수 배수관 시설이 없어 폭우 때는 수시로 잠겼다. 대회 개막을 2주 앞두고 전례 없는 폭우도 이어졌다. 이후 폭염이 시작돼 펄펄 끓는 진흙탕이 됐다.

문제는 개최지의 특성만이 아니다. 야영장의 화장실과 샤워장은 악취가 끊이지 않았다. 포세식 화장실은 막히기 일쑤였다. 휴지는 없고 변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화장실 개수도 턱없이 부족했다. JTBC가 입수한 잼버리 사업계획서에는 여성 20명당 하나, 남성 30명당 하나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실제로는 70%밖에 설치하지 않았다. 야영장에 이동식 화장실은 354개만 설치했다. 이는 121.5명당 1개꼴이다.

화장실 사용법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각자 언어와 생활환경이 다른데 이를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야영장을 청소했던 전북도청 공무원들에 따르면 ‘수직 낙하식’인 변기는 페달을 밟아 오물을 내려보내는 수세식이다. 이 변기는 페달을 힘차게 밟지 않을 경우 오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1171억 예산 보니…기초시설에 고작 50억
꽉 막힌 화장실과 뻥 뚫린 샤워실 ‘멘붕’

전북도 관계자는 “변기를 청소하고 작동시켜본 결과 세번 정도만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어지간한 오물은 모두 처리되는데 작동법을 제대로 몰라 혼란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물휴지를 변기에 버리거나 화장지를 많이 쓴 것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막힌 변기를 직접 뚫어본 공무원은 “이물질을 빼내 보면 물휴지가 걸린 경우가 대부분이고 화장지를 너무 많이 몰아넣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음으로 민원이 발생한 것은 샤워시설이다. 당초 예산 계획대로라면 3700여개를 설치해야 했다. 10명당 1개씩 샤워장을 쓸 수 있었다. 실제 설치된 샤워장은 겨우 2200개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악취와 막힘으로 민원이 들끓었다. 외관은 천막으로 이루어져 바람 불면 내부가 훤히 보였다.

급기야 태국 남성이 여자 샤워실에 난입해 경찰까지 동원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3일 새벽 태국 남성 지도자 A씨는 여자 샤워실서 발견돼 적발됐다.  A씨를 발견한 피해자는 노랫소리가 들려 확인해보니 A씨가 샤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치안 대원조차 없었다는 증거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더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성적 목적을 두고 샤워실에 침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봤다. 

열악한 화장실·샤워장 등 기초시설에 들어간 국고보조금만 51억원이다. 피 같은 세금을 쓰고도 화장실 위생 불량 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정부도 조기 파행의 주된 원인이 기초시설 문제라고 봤다. 지난 8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새만금서의 마지막 브리핑을 열고 “세계연맹서 제기한 가장 큰 문제는 위생 문제였던 것 같다”며 “화장실 위생이나 청결 문제 부분서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혈세로 
돈잔치

영국 스카우트연맹 대표는 이번 잼버리 참가에 약 3500파운드(582만원)씩 지출했다. 나라별로 다르지만 1인당 최소 수백만원에 달하는 참가비를 지불했다. 그들이 마주한 건 곰팡이 핀 구운 달걀이었다. 지난 3일 <뉴시스>에 따르면 잼버리 현장에 공급된 구운 달걀 7개서 곰팡이가 발견됐다.

식약처는 해당 구운 달걀에 대해 제조 단계부터 유통 단계까지 조사했다. 최고기온이 38도를 육박하던 상황서 식음료 안전관리에 허점을 보인 것이다. 식약처는 곰팡이 핀 달걀이 지난달 제조돼 소비기한(10월)이 지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다만, 유통 과정서 껍데기가 깨지며 곰팡이가 들어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실한 식단에 불만도 잇따랐다. 아침, 점심 식사에 빵과 과자 두 봉지, 식혜 한 캔만 제공됐다. 초코파이 같은 낱개 과자 2봉에 소시지, 음료수 한 캔만 나오기도 했다. 

내부 병원의 치료 실태도 지적받았다. 온열 질환을 호소한 대원들과 화상 입은 대원들은 치료를 받지 못했다. 직접 요리를 하다가 기름이 튀어 옷이 녹았음에도 약조차 발라주지 않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의료 인력들은 인력과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잼버리 대회 성인 자원봉사자는 “환자들이 막 밀어닥치니까, 환자들이 누울 공간은 없고, 병원 뒤편에 있는 리셉션 공간을 활용했다”며 “준비를 얼마나 안 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라고 토로했다.

1000억원이 넘는 예산 중 의료와 안전·소방 관련 예산 편성은 48억9000만원 수준에 그쳤다. 그 밖에 ▲의료시설 및 코로나 방역시설 등 28억원 ▲행사장 방역 및 해충기피제 8억7000만원 ▲CCTV 설치 및 차량차단시스템 4억8000만원 ▲안전시설 및 소방용품 3억원 ▲폭염 대비 물품 구입(소금, 물) 2억원 ▲과정 활동장 안전시설 및 전문안전요원 확보 1억9000만원 ▲종합상황실 운영 5000만원 등이다.


파행 국면은 영국이 철수를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잼버리에 최대 인원을 보낸 영국은 지난 4일 잼버리 영지서 전격 철수를 결정했다. 

4000여명을 파견한 영국은 당시 자국 스카우트 대원들을 새만금 캠프서 호텔로 철수시킨다고 발표했다. BBC는 이날 “한국서 열리는 세계 잼버리 대회서 4000명 이상의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폭염으로 호텔로 이동한다”고 보도했다.

끝나긴
했지만…

결국 주요 참가국들도 못 버티고 조기 퇴소했다. 지난 6일 미국의 루 폴슨 운영위원장은 “우리는 (평택 미군기지 내)캠프 험프리스로 돌아가는 것으로 돼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성인 자원봉사자 등을 포함해 총 1200여명을 파견하기로 돼있었다. 전날 0시 기준 참가 인원이 3만9304명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의 15%가량이 퇴소를 결정한 셈이다.

조기 철수한 이유와 관련해 미국의 학부모가 화장실·샤워실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 대표단 학부모인 A씨는 지난 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미국 스카우트는 청소년보호훈련이 엄청 기본 중에 기본으로 아주 중요시 여기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그런데 화장실 샤워실이 남녀 구분은 물론이고 어른 청소년 구분이 확실하게 돼야 되는데 여기서는 그게 안 돼있었다”며 “영내에 청소년 화장실 샤워실이 다 고장이 나거나 아니면 엉망이어서 사용 불가 상태서 아이들을 하는 수 없이 어른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화장실을 사용하게 했던 게 제일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화장실·샤워실로 인한)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서 철수 결정을 내리게 된 거라고(미국 대표단 측이) 말씀하셨고, 저도 4~5년 정도 스카우트를 시킨 부모기에 이 결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의 자녀 역시 온열질환으로 한 차례 쓰러졌다고 밝혔다. 그는 ”숨을 안 쉬는 상태서 앰뷸런스를 불렀는데 45분 동안 오지도 않았다"며 “회복된 저희 아이보다 더 중증 환자가 오면 침상서 내려와서 의자로 옮기고 의자에서 내려와서 바닥서 잤다. 결국엔 쫓겨나서 다른 데서 애가 잠을 잤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아울러 A씨는 잼버리 관련 소송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잼버리 참여 비용 등)준비하는 돈까지 합치면 7000달러 가까이 된다”며 “(소송은)돈이 문제가 아니다. 잼버리를 망친 누군가에게 묻고 따지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책임 반드시 물어야 한다”
폐막 후 거센 후폭풍 불가피

새만금 잼버리의 조기 파행은 개최 3일 만에 이미 예견됐던 바 있다. 지난 4일 영국의 <가디언>은 “한국에 있는 스카우트 대원들은 다소 끔찍한 상황에 있다”고 보도했다. 스카우트의 종주국인 영국에 제대로 찍힌 셈이다.

한 영국 참가자는 “샤워하려고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장지가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비누는 아예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영국인 참가자 소피는 “너무 더워 행사가 중단됐다. 밤이 되니 갯지렁이가 나와 대원들이 모두 물렸다. 끔찍하다”고 말했다. 날씨 핑계로 돌리기엔 기본적인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1170여억원에 달하는 대회 예산이 혈세로 지출되는 데 불만을 쏟아냈다. 

정부와 전북도 등에 따르면 이번 잼버리에는 국비 302억원, 도비 409억원을 비롯한 지방비 419억원, 참가비 등 자체 수입 400억원, 옥외광고 49억원 등의 예산이 들어갔다. 이 가운데 무려 74%를 차지하는 869억원이 조직위 운영비로 잡혔다.

정치권에서는 잼버리 예산의 사용처가 의심된다며 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지난 6일 SNS를 통해 “이번 대회가 끝난 후라도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은 어떻게 지출했는지 철저히 검증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여성가족부는 올 상반기 전북도에 잼버리 기반시설 설치 등의 목적으로 국고보조금 51억3600만원을 교부했다.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마련에 21억7400만원, 화장실·샤워장·급수대 등 야영장 조성에 26억5250만원이 편성됐다. 이 밖에 야영안전센터·물놀이시설 등에 3억950만원이 교부됐다.

여가부는 보조금 지급을 전북도에 요청했다. 통지서에 교부 목적으로 ‘새만금 잼버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사업 지원’을 꼽았다. 올해 새만금 잼버리는 조기 파행을 맞이하면서 혈세 낭비의 온상이 됐다.

태풍 ‘카눈’을 핑계 삼았으니 하늘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 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전 9시경 대만 참가자를 태운 첫 버스가 출발한 이후 1014대 버스가 각 행선지로 순차 출발하고 있다”며 “대상 인원은 156개국 3만7000여명”이라고 밝혔다.

계산은 
이제부터

파행 수순을 밟으면서 스카우트 대원들은 대거 흩어졌다. 지역별로 ▲서울 숙소 17곳서 8개국 3133명 ▲경기 64곳서 88개국 1만3568명 ▲인천 8곳 27개국 3257명 ▲대전 6곳 2개국 1355명 ▲세종 3곳 2개국 716명 ▲충북 7곳 3개국 2710명 ▲충남 18곳 18개국 6274명 ▲전북 5곳 10개국 5541명이 체류했다.

잼버리 뒷수습은 사실상 이제부터다. 미흡한 준비와 운영 미숙으로 여당 내에서 장관 해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지난 9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정부 최고위 관계자가 사과하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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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