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가는’ 친노의 부활

‘노무현 우산’ 다시 펴지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의 칼날이 무뎌졌다. 지뢰밭처럼 터지는 당 대표 리스크와 실종된 정치 현안들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친노(친 노무현)계가 대안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우연일까? 최근 친노계 인사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면서 그 존재감을 서서히 키우고 있다. 친노계의 작은 날갯짓이 모여 폭풍을 일으킬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친명(친 이재명)계의 입지도 약해졌다는 평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야심차게 출범했던 ‘김은경 혁신위’(이하 혁신위)마저 연속 헛발질을 하면서 심란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기에 ‘노무현의 유산’이 사라졌다는 말까지 돌면서 이 대표와 그 주위에 냉기가 돌고 있다.

존재감 부각

날선 신경전이 오가는 가운데 친노계 인사들이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여의도 안팎으로 뛰어다니면서 정치 행보를 넓히는 추세다. 김 의원은 경남 남해 지역서 민주당 간판을 걸고 지역주의 타파와 학력 파괴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 김 의원은 서울양평고속도로 게이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시민단체와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사건을 ‘윤석열 김건희가 만든 희대의 고속도로 게이트 비리’라고 못 박았다. 김 의원은 국정조사와 청문회, 그리고 특별검사를 요구할 방침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민주당의 쇄신을 위한 애정도 돋보인다.


당의 혁신을 견인하려는 목적으로 출범한 혁신위가 도마 위에 오르자 적극적으로 감쌌다. 각종 현안에 묻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당원들을 향해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혁신위가 발표한 불체포특권 포기, ‘꼼수 탈당’ 근절 등 각종 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친노계 의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정 전 총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만큼 친노계에서는 상징성 있는 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최근 정치판에 간접적으로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정 이사장은당 상임고문단의 자격으로 혁신위 회동에 참석했다. 당시 회동에는 “(혁신을)더 세게, 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선 지난달 30일, 그는 여야를 막론한 정치의 터줏대감 격인 원로모임 ‘11인 원로회’(가칭)의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여야의 극한 대립이 사회적 분열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이 커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낙연 필두로 김두관, 정세균, 이용섭…
노의 남자들 서서히 고개 “구심점 기대”

해당 모임에는 국민의힘 신영균 상임고문과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이 함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재개의 목적은 없다고 밝혔지만 소속된 인물이 모두 ‘거물급 인사’들인 만큼 말 한마디에 국회의 흐름이 바뀔 가능성도 관측된다.

친노계의 얼굴인 김 의원과 정 이사장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각개전투’인 만큼 이 대표의 입지를 위협하진 않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지금까지는 친노 세력이 뭉치지 않고 홀로서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의 움직임이 이 대표에게 크게 압박을 가할 요인이 될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표의 앞길에 마냥 꽃길만 놓인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겸손과 무한책임을 가리키는 ‘노무현 정신’ ‘노무현 유산’을 잃었다는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5월23일 열린 노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두고 “노 대통령 앞에서 민주당은 과연 떳떳할 수 있는지 솔직히 자신 없다”고 한탄했다. ‘김남국 코인 논란’ ‘2021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두고도 민주당이 기민하지도, 단호하지도 못했다고 자책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에 대해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표퓰리스트’로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과 반대되는 길로 국가의 미래를 위함이 아닌, 자신의 권력 강화 수단으로 제도를 개혁해왔다는 비판이다. 이로써 현재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행보로부터 퇴보해 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은 노무현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구호”라면서 “지금 정치판서 ‘반칙’과 ‘부정부패’의 상징은 이 대표”라며 “친노 세력이 이 대표를 돕거나 함께하기에는 명분이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만일 친노계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뭉살흩죽’ 의지로 힘을 모은다면 판도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꿈틀하는 친노계
긴장하는 친명계

이를 대변하듯 신당을 중심으로 친노 세력이 구심점을 잡을 것이란 기대감이 국회를 맴돌고 있다. 초대 정의당 대표를 지낸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의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의당을 탈당한 천 이사는 전·현직 당직자 60여명과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천 이사는 창당에 도움만 줄 뿐 직접 정치에 가담하지는 않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노무현재단에 몸을 담고 있는 만큼 향후 친노계 인사들의 합류가 기대된다는 게 중론이다. 그는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통해 벼랑 끝 진보 정치를 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보다 노무현다운 모습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 밖에도 눈에 띄는 인물은 지난달 24일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다.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던 이 전 대표는 입국 후 가장 먼저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그의 첫 행선지를 두고 정치권에선 이 전 대표가 친노계, 친문(친 문재인)계 세력 끌어안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의 창당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표적인 친노계 인물인 이용섭 전 광주시장은 지난 3일 간담회를 통해 이 전 대표의 창당설에 힘을 실었다. 이 전 대표와 이 대표가 장기간 대립각을 세운다면 혁신 신당의 출연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책임론이 불거지고 ‘네 탓 내 탓’이 길어질수록 흙탕물 정치밖에 더 되겠냐는 주장이다.

이 대표를 향한 친노계의 아낌없는 쓴소리도 이어졌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민주당의 각종 리스크를 두고 “오만 정이 떨어졌다. 염치와 상식을 잃은 민주당 의원을 향해 무너지는 정당은 빨리 무너뜨려져 새 살이 돋게 하는 게 낫다”며 일침을 가했다.


선택의 시간

노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조직 특별보좌역으로 활약한 민주당 박재호 의원은 민주당의 운명이 이 대표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이 대표가 “총선서 지면 인생이 끝난다”고 말한 것을 두고 각종 리스크를 짊어진 그가 스스로 판단을 내릴 것이란 설명이다.

이 대표의 돌파구는 까마득해보인다. 이대로 총선을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면 직진하겠지만 어깨가 무겁다면 법의 심판을 받고 당의 지도부를 내려놓는 방법도 있다. 갈림길에 선 이 대표의 발끝에 국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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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