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처럼 펑펑’ 검찰 특활비 논란 막전막후

눈먼 돈, 쌈짓돈 쓰듯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이 국민 세금인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쓴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 확정판결 취지에 따라 사용명세와 증빙자료 전체를 시민단체에 전달하면서 생긴 파장이다. 검찰은 적법한 지출이었다며 구체적 해명에 나서지 않았다. 말을 아낀 검찰이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이 나온다. 불투명한 회계처리로 분식회계와 사건 은폐 시도 의혹에 불을 붙였다는 지적이다.

검찰이 특수활동비로 사용한 금액은 수백억원에 달한다. 업무추진비 내역 등이 공개됐지만 절반 이상의 자료가 복사 불량으로 판독 자체가 어렵거나 삭제됐다. 사실상 대법원 확정판결 취지와 다르다. 증빙 없는 지출도 있었다. 100억원이 넘는 금액이 검사들의 용돈처럼 쓰였고 정기적인 현금 지급도 이뤄졌다.

윤 대통령도
수천만원 사용

검찰의 특활비 논란이 시작된 건 지난달 말부터다.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등 3개 시민단체가 검찰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소송서 승소한 것이다. 대법원은 불속행 결정을 내렸고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의 전체 특활비와 업무추진비 기록, 일부 특정업무경비 기록을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대검은 특활비 증빙 내역과 수령증 등 세 가지 종류의 기록을 생산 관리해왔다. 그러나 2017년 1월부터 4월까지 특활비와 관련한 기록 세 가지 기록이 없었고 같은 해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에는 세 가지 기록 중 두 개가 없었다.

특활비는 엄연한 정부예산이다. 예산 집행기록도 곧 공공기록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특활비를 쓴 기록이 없는 것을 두고 검찰이 ▲기록을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거나 ▲중간에 폐기했거나 ▲분실한 경우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세 가지 가능성도 아닌 검찰이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이 자료를 폐기했다면 폐기물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검의 2017~2022년 치 기록물 폐기 목록에는 특수활동비 관련 기록을 없앴다는 내역은 없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를 건너뛰고 자료가 무단으로 폐기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대검은 “상당한 시일이 경과한 일부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검찰은 정상적인 자료를 공개하지도 않았다. 공개한 서류 중 절반가량이 복사 상태가 불량해 글자를 해독하기 힘든 수준이다. 대법원 판결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특활비와 관련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관리가 되지 않아 기록이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검찰의 주장도 거짓이었다. 2017년에도 검찰 특활비와 관련한 법무부의 예산 집행 지침은 존재했다.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돈봉투 논란’의 핵심 인물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2017년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면직 처분 취소소송 1심 판결문을 보면 관련 내용이 언급된다.

재판부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집행 지침 중 특수활동비와 관련한 규정을 언급하며 “법무부 2017년도 예산지침의 내용과 ‘각 중앙관서의 장’이 ‘집행주체’라고 돼있는 것 외에는 동일하다”고 밝히고 있다.

기재부 지침에는 “특수활동비 집행에 관한 증거서류를 감사원의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첨부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동일한 내용의 지침을 시행 중인 검찰 역시 감사원 지침에 따라 특활비 증거 서류를 증빙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깜깜이’ 회계처리로 자료 은폐 시도 의혹
수억 꼬박꼬박 지급돼도 사용처 확인 불가


이 전 지검장의 행정소송 판결문에는 2017년 4월 특활비 돈봉투 만찬 당시, 서울중앙지검이 특활비 집행 기록을 남겼다는 증거도 존재한다. 재판 과정서 확인된 상황 중에는 이 전 지검장 비서실 소속 직원이 “특수활동비 금전출납부에 사용처를 기재했다”고 밝힌 대목이 등장한다.

이 전 지검장 비서실 직원이 관리하는 일종의 ‘특활비 장부’가 존재했다는 근거다.

검찰은 물론 모든 정부 기관의 예산 기록 보존은 5년간 이뤄진다. 공공기록물법에 따르면 기록물을 폐기할 경우 반드시 기록물평가심의회를 열고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공공기록물 폐기는 불법이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검찰은 특활비 전체 중 절반 이상을 검사들에게 매달 용돈처럼 정기적으로 집행했다.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검찰이 지출한 특수활동비는 총 292억794만2900원이다. 이 중 특별한 사정 없이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된 돈은 155억9514만4800원으로 절반이 넘는 액수다.

이 정기 지급분 중 80억5146만원은 전국 고등검찰청·지방검찰청·지청에 매달 계좌 이체됐고, 나머지 45억4368만4800원은 29개월간 15~17명의 사람이나 기관에 매달 현금 지급된 것으로 추산된다.

한 기록에는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 64~65개 관서의 계좌에 약 2억~4억원이 입금됐다. 이 64~65개의 관서는 전국 검찰청으로 보인다. 2017년 3월 부산지방검찰청 서부지청이 새로 개청해 전국 고등검찰청·지방검찰청·지청은 총 64곳이 됐다. 이후 2019년 3월1일 수원고등검찰청이 개청하면서 대검서 특활비를 계좌이체 하는 검찰청은 65곳으로 늘었다.

대놓고
자료 폐기?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전국 검찰청에 정기 지급된 특활비는 80억5146만원이다. 검찰 특수활동비 증빙자료 중 국고금입금의뢰서 양식에 입금 요구자의 관서를 기록하게 돼있다.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의 자료를 보면 매달 총 15명이 한 장짜리 영수증을 쓰고 1억9052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그러나 누가 어떤 기관이 현금을 받아 갔는지 검찰이 정보를 모두 가려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2017년 6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신원을 알 수 없는 최소 15명서 최대 22명이 한 달에 2억이 넘는 돈을 현금으로 챙겼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수사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절차를 걸쳐 집행됐어야 할 특활비를 정기 배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검찰총장의 예산편성권이 공개되지 않고 감시받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편성권을 가진 다른 정부 기관의 장들은 국회에 출석해 예산 사용에 대한 감사를 받는다. 그러나 검찰만은 예외다. 검찰총장은 2년5개월 동안 자신이 임의로 비율과 금액을 정해, 즉 예산을 편성해 특활비를 사용하는데도 국회 등 외부 통제나 감시를 받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논란서 자유롭지 않다. 그가 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된 직후인 2017년 6월부터 7월까지, 두 달간은 특수활동비 수령증이 무더기로 없어졌다. 당시 윤 대통령이 집행한 4000만원이 넘는 특활비가 어떻게 썼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중앙지검의 특활비 기록도 무더기로 사라졌다. 2017년 1월부터 7월까지의 특활비 총액은 확인되지 않고 같은 해 1월부터 5월까지의 특활비 자료 전체는 없어진 상황이다. 대검의 특활비 증발 시기(2017년 1~4월)와 거의 일치하고 이 전 지검장의 돈봉투 파문이 터졌던 때(2017년 5월)와도 겹친다.

국민 혈세
검사 용돈

2017년 6월과 7월, 두 달간은 집행명세 확인서는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집행을 입증할 ‘수령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라진 수령증은 모두 45장이다. 수령증은 특활비를 받아 간 사람이 반드시 남겨야 하는 기록이다.

우선 2017년 6월 한 달간 윤 대통령은 18건의 특활비를 집행했다. 1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까지 총 1100만원을 검사들에게 나눠줬다. 그런데 윤 대통령으로부터 돈을 받아 간 사람이 써야 하는 수령증은 한 장도 없었다. 18번 돈을 줬다면, 18건의 영수증이 있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2017년 7월분 특수활동비 ‘집행명세 확인서’도 마찬가지다. 집행은 모두 37건. 한 번에 10만원서 최대 1000만원까지 줬다. 서울중앙지검의 7월분 특활비 집행 총액은 3970만원이었다.

그런데 합계란에는 총액이 30만원이라고 적혀 있다. 6월과 마찬가지로 7월 기관장 확인란에도 윤 대통령의 도장이 찍혀 있다. 2017년 7월의 집행내역 37건 중 27건의 수령증이 없었다. 영수증은 10장뿐이다. 7월25일 자 지급분 이전의 영수증은 없었다.


수령증이 없는 특활비의 지급액은 3360만원에 달했다. 여기에 2017년 6월분 1100만원을 합하면 모두 4460만원어치의 특활비 증빙자료가 없어진 것이다.

100% 현금으로 특활비를 주는 상황서 한 장짜리 수령증마저 없으면, 당시 윤 대통령과 검사들이 특활비를 사적 사용이 아닌 기밀 수사에 썼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대법원 확정판결 무시? 자료 절반 복사 불량
엉터리 장부에 일부 자료 부존재 의심 자초

특활비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폐지는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 장관이 직접 특활비를 배분하면 검찰의 수사 독립성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수사나 조사 등의 정보수집 활동으로 써야 한다. 격려금으로 쓰이는 건 당연히 문제라고 본다”며 “특활비 폐지가 현실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다만 검찰도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지난 10일, 윤 대통령과 복두규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특가법상 국고손실죄, 특경가법상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단체는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내는 동안 “특활비를 사적 경비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 혈세인 특활비를 사용하여 행정 기관장이 자신에게 충성을 하는 특정 부하나 부서에게는 특혜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돼야 할 법무부 예산 일부인 특활비가 사실상 검찰의 통치자금처럼 집행하는 것은 물론(중략)... 특활비가 불공정하고 불투명하게 사용되도록 부하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만들었으므로 (윤 대통령은)직권남용죄 등의 죄책을 져야 마땅하다”며 “복 기획관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므로 윤 대통령과 공범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복 기획관은 서울고검과 대검 사무국장을 지냈다.

단체가 받은 자료 중에는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낼 무렵 지출한 특활비 내역도 포함돼있었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5월22일부터 2019년 7월24일까지 사용된 특활비 총액은 38억6300만원이었다.

공수처 수사
가능성은?

검찰총장으로 있던 2019년 8월에는 4억1111만원이, 9월에는 4억1431만원이 총장 몫 특활비(수시지급분)로 배정됐다. 이 가운데 2019년 8월27일과 9월9일에는 각각 5000만원이 한 번에 현금으로 지출된 정황도 확인됐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검찰이 ‘수사 및 정보수집 목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명확한 특활비 사용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7일 법무부에 ‘검찰 특수활동비 집행지침’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수사·범죄정보 수집 등에 소요되는 경비여서 구체적 집행지침을 공개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며 관련 지침을 공개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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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