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여행 ④익산 미륵산성

돌에 새겨진 생명의 역사

산성의 돌 하나는 병사의 갑옷과 같다. 목숨을 구할 방패다. 가파른 산에 거대한 돌을 쌓는 행위는 호국의 염원 없이 불가능하다. 여전히 마르지 않은 우물과 폐사지 초석 틈새로 자란 꽃이 격전지에서 살아남은 질긴 생명력을 떠올린다. 익산 미륵산성(전북기념물)은 둘레 1776m 포곡식 석성으로, 미륵산 정상부와 북쪽 봉우리를 포함해 동쪽 계곡을 에워싼다.

익산 지역 11개 성곽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북쪽으로 낭산산성(전북기념물), 동쪽으로 용화산성과 선인봉산성, 남쪽으로 익산 토성(사적)과 금마도토성(전북기념물)이 미륵산성을 겹겹이 둘러싼 형태다. 차로 미륵산성까지 갈 수 있는 최대 지점은 베네스다기도원 옆 미륵산성 주차장. 여기부터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가벼운 등산로

주차장서 주 출입구인 동문지까지 1㎞ 남짓, 약 15분이면 도착한다. 굵은 참나무가 등산로를 호위하듯 서 있다. 신선한 초록 잎과 묵은 갈색 이파리가 한 줄기에 달렸는데, 자연 속에 있는 산성 여행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자늑자늑 알려준다. 호젓한 산책로 같은 등산로여서, 미륵산 정상에 오를 계획이 아니라면 가벼운 옷차림도 무방하다.

동문지서 바라본 미륵산성은 좌우로 날개를 펼치고 서 있다. 성문은 동쪽과 남쪽 성벽 가운데, 서쪽 성벽 모서리에 냈다. 북쪽은 지형을 이용해 능선이 그대로 방어망이 됐다. 산성 내부에 계곡을 포용하고 그 주위를 둘러싼 능선을 따라 포곡식으로 축조했는데, 이는 대형 산성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다.

지형에 따라 외벽만 돌로 쌓고 내벽은 잡석과 다진 흙으로 채우는 내탁법, 외벽과 내벽을 모두 일정한 높이까지 돌로 쌓아 올린 협축법을 섞어 축성했다.


미륵산성은 ‘용화산성’으로 불렸는데, 미륵산의 옛 이름이 용화산이었기 때문이다. 고조선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해서 ‘기준성’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미륵산성은 축성 연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통일신라 이후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와유록> 등 시대마다 문헌에 등장하며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성벽 길은 동문지 안에서 세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 성벽으로 방향을 잡아 나무 계단을 오르면 평평한 석축을 밟아볼 수 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공격하는 돌출부인 치(雉)는 모두 10개다. 동북쪽 치에 올라서면 반대편 남쪽으로 향한 석축과 동문지의 옹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복원된 미륵산성 전체를 조망할 포인트다.

남문지는 산세가 치켜 올라갈 정도로 가파른데, 성벽 위와 안쪽을 계단처럼 쌓아 지형에 맞췄다. 석축 위는 접근이 안 된다.

가운데 중앙 계곡부 안쪽 등산로를 따라가면 6부 능선에 있는 건물 터가 보인다. 터마다 줄지어 남은 주춧돌이 꽤 큰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3단 석축 지역서 확인된 동서 510m, 남북 700m 규모 저수 시설이 핵심이다. 산성 안에 샘과 못이 많다는 것은 장기전이 가능하다는 뜻. 아직 마르지 않은 집수정에 신록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세 갈래 어느 방향이든 미륵산(430m) 정상으로 향한다. 동문지 오른쪽으로 등반하면 헬기장에 이르는데, 이 길은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는 열 갈래 중 하나다. 헬기장서 시선이 가는 곳이 있다면 화강암 채석장을 발견한 것. 익산의 돌은 ‘산에서 이익을 보다’라는 지명의 뜻처럼 그 규모가 대단해, 익산에선 돌을 노잣돈처럼 품었다고 한다. 익산 화강암은 단단하고 철분 함량이 적어 부식이 잘되지 않는 장점 덕에 삼국시대부터 애용했다.

<고려사> 등에 남아 있는 산성의 기록
미륵산 정상 조망…익산의 지리적 중요성

석재 이름은 보통 산 이름을 따서 부르는데, 익산 지역서 채취한 돌은 모두 ‘황등석’이라 한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과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보물) 등은 황등석이 쓰인 대표적인 석조 문화재로 꼽힌다.


송전탑을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걸으면 미륵산 정상이다. 정상부는 표석을 중심으로 나무 덱을 조성해 전망하기 좋다. 남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서동공원과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가 들어온다. 쾌청한 날에는 북쪽으로 논산과 부여, 서쪽의 금강, 남쪽으로 멀리 김제와 전주까지 넓은 지역이 한눈에 보여 우리나라 4대 고도(古都)로 지정된 익산의 지리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미륵산성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인근 구룡마을을 지나치지 말자. 한강 이남 대나무 최대 군락지로, 5만㎡ 면적에 대나무숲이 빼곡하다. 왕대의 북방 한계선이기도 하다. 푹신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이 숲을 깨우고, 댓잎이 부대끼며 시원한 바람을 불러온다.

미륵산은 백제 최대 사찰로 꼽히는 미륵사가 있던 곳이다. 복원된 동탑과 달리 미륵산의 봉우리처럼 솟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은 ‘돌의 역사’를 압축한 상징물이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최대(最大) 석탑이다. 광활한 절터와 슬쩍 훑어도 그 끝이 아득한 폐사지서 찬란한 백제의 역사를 되새겨본다.

왕궁리 유적

익산백제실, 미륵사지실, 역사문화실 등 상설전시실을 갖춘 국립익산박물관을 먼저 둘러보고 미륵사지로 향하는 동선을 추천한다.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에 가면 1400여년 전, 백제 왕궁과 마주한다. 왕궁리 유적은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해 질 녘 바라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의 위용은 드넓은 궁터를 지키는 수호신 같다. 디지털 체험 시설과 체계적인 전시 설명을 갖춘 백제왕궁박물관은 왕궁리 유적을 제대로 배우는 교과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역사 여행: 익산 미륵산성→익산 쌍릉→국립익산박물관→익산 미륵사지→익산 왕궁리 유적→백제왕궁박물관
-걷기 여행: 익산 미륵산성→미륵산 정상→구룡마을 대나무숲→국립익산박물관→익산 미륵사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익산 미륵산성→익산 쌍릉→구룡마을 대나무숲→국립익산박물관→익산 미륵사지→익산 왕궁리 유적→백제왕궁박물관
-둘째 날: 보석박물관→왕궁다원→고스락→익산교도소세트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익산시 문화관광 www.iksan.go.kr/tour/index.iksan
-국립익산박물관 https://iksan.museum.go.kr
-백제왕궁박물관 www.iksan.go.kr/wg/index.iksan

문의 전화
-익산시청 문화관광산업과 063)859-5778
-익산미륵사지관광안내소 063)859-3873
-국립익산박물관 063)830-0915
-백제왕궁박물관 063)859-4631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익산역, KTX 20~50분 간격(05:07~22:22) 운행, 1시간15분~2시간10분 소요. 익산역 동부광장 인근 익산역(중앙동 방면) 정류장서 60-2번 버스 이용, 구룡 정류장 하차, 미륵산성 동문지까지 도보 약 30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익산여객 063)837-1001
[버스] 서울-익산, 센트럴시티터미널서 하루 8~11회(07:10~22:10) 운행, 약 2시간40분 소요(익산고속버스터미널 운영 중단, 고속버스 승하차 시 익산시외버스터미널 이용). 서울남부터미널서 하루 5회(06:55~20:05)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익산시외버스터미널 인근 평화동 정류장서 60-2번 버스 이용, 구룡 정류장 하차, 미륵산성 동문지까지 도보 약 30분.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hticket.co.kr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익산여객 063)837-1001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연무강경TG→연무IC교차로 연무·익산제3일반산업단지 방면 좌회전→오동정교차로 삼기·여산 방면 좌회전→우금삼거리 금마·미륵사지 방면 왼쪽→구룡길 방면 우회전→베데스다기도원 맞은편 미륵산성 주차장


숙박 정보
-익산유스호스텔: 익산시 마한로, 063)850-2000, www.익산유스호스텔.com
-웨스턴라이프호텔: 익산시 동서로, 063)720-3000, www.westernlife.co.kr
-청담황토한옥: 금마면 미륵사지로1길, 010-5619-4648, www.instagram.com/hanokpension_cheongdam

식당 정보
-무진장갈비촌(돼지갈비): 익산시 선화로31길, 063)843-3070
-한일식당(황등비빔밥): 황등면 황등로, 063)856-4471
-맛동순두부(순두부백반): 금마면 미륵사지로, 063)835-8919

주변 볼거리
마한박물관, 익산 제석사지,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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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