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답답한 연금 해법을 묻다 -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폴리페서에 책임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현재 한국의 연금 기금 적립액은 1000조원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다가올 미래에 기금 고갈로 인해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함이 퍼져 있다. 이에 대해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갈된 이후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갈은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문제다.” 사회복지학과 숭실대 허준수 교수는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연금개혁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요시사>가 허 교수를 만나 현 국민연금 제도의 문제점, 개선책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허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국의 공적연금 종류는?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는 전 국민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으로 구분돼있다. 국민연금(89.2%)은 1998년부터 시작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수직역연금(11.7%)에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이 있으며 소수의 관련 직군 종사자들이 가입한다.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적게 받는 반면, 특수직역연금은 많이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2030년 연금제도가 시한폭탄이 된다는 우려가 많다

▲사실 ‘시한폭탄’이라기보다는 연금 기금의 ‘고갈 시점’이라고 써야 한다. 공적연금 종류에 따라 기금의 고갈시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경우, 현행제도 유지 시(국민연금 재정 추계 위원회 추계 결과) 적립 기금은 2040년까지 증가해 최대 1755조원에 이르고 2055년까지 유지된다. 현재 1000조원 정도 적립 기금이 있는데 이게 고갈되는 것이다. 


-한국은 연금 규모가 1000조원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기금 고갈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인구의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수급자가 증가해서다. 한국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서 차지하는 비율인 고령화율은 2045년 30%에 달할 예정이다. 기대수명 역시 1970년 61.7세서 지난해 83.8세로 증가했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면 고령인구도 빠르게 급증한다. 현재 2020년 기준 국민연금 수급자가 532만명인데, 앞으로 2055년이 되면 2119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연금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닌가?

▲핵심은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문제가 당장 닥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미리 대비하면 된다. 언론에 언제 받을지도 모르고 맨날 기금은 고갈된다고 짚는데, 이건 잘못된 보도다. 기금의 적립 방식이나 부과 방식은 한국이 전 세계 1등 수준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문제는 뭔가?

▲출생율이 감소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연금 수급자는 증가하고, 연금 납부자들은 감소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경제 성장률도 둔화 중인데 연금 조성 재원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연금개혁이 필요하다. 

-결국 저출생 문제가 연금 문제까지로 이어지는 건가?


▲복지 선진 국가라고 하는 나라는 대부분 부과식을 많이 선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꺼내서 쓴다는 느낌인데 이 방식이 한국 정서에는 딱 맞다. 해외는 이미 기금이 고갈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가 낸 세금과 정부의 기여금을 통해서 현재 연금 수급자에게 지원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노인 인구 고령화 속도를 늦춘다. 연금은 결국 비율 싸움으로 젊은 사람이 많으면 된다. 미국의 고령화 수준은 한국보다 높은데 전체로 따지면 젊은 층이 훨씬 많다. 그 이유는 1년에 100만명씩 이민자들을 외국서 수혈해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생산 가능 인구가 확 늘었다. 

-한국은 적립식을 택하고 있다

▲적립식 방법을 택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다. 이들 국가는 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부과식도 일부 혼합하고 있다. 부과식만 하는 나라는 독일, 스웨덴, 일본이다. 독일, 스웨덴은 흔히 복지 국가로 불린다.

저출생으로 조성 재원 줄어들 것
과감하게 소득대체율 부과 높여야

독일은 보험료율이 18% 정도로, 연금 역사가 가장 길다. 부과식과 함께 재정 분배 기능을 통해 운용한다. 한국은적립식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젊은 세대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부과식으로 하면 된다. 사실 기금 고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저기 많이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계성을 확보하지 않아 문제다. 

-연금 고갈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지금부터 23년 후까지는 탄탄하다. 5년마다 재정을 재계산해서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까 사회적으로 논의하면 된다. 완전히 소진되면 부과식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1인 1연금 제도로 가령, 가구에 4명이 있고, 노동시장서 일을 하면 4개의 연금이 있는 셈이다.

한국은 연금의 역사가 짧아 고령층은 연금이 아예 없거나 받을 수 있는 돈이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다. 그분들에게는 연금의 이동을 보장하지 않았다. 

A라는 산업서 B로 이동하면 중간에 정산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이후로 납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노년기에 접어드니 받는 돈이 없다. 한국은 연금 수급자 30%를 제외하고, 소득 하위 70%에 대해 정부가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기초연금으로 20조원을, 국민연금은 30조원을 지출했다. 합치면 50조원 규모로 2021년 50만원서 60만원까지 증가했다. 가입자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기초연금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진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특수직역연금의 기금 대부분은 이미 고갈된 상황이다


▲공무원연금은 2001년 이미 고갈됐다. 2001년 처음 투입한 보전금은 현재 5조원 규모다. 군인연금은 1973년에 고갈이 된 상황이고, 올해 국고 약 3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학연금은 2049년 고갈 예정이다. 변수는 기금 투자의 수익률이다. 투자 수익률이 1%p 높아지면 기금 소진을 2년 늦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금 보험료율 2%p 인상과 동일한 효과다. 최근 20년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4.5% 정도다.

-어느 부분을 먼저 개선해야 하나?

▲보험료율이다. 한국은 가입자의 기준소득월액에 9% 보험료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다르게 이야기하면 기여율이다. 사용자가 4.5%, 노동 4.5%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또 소득대체율이라는 게 있다. 연금 수급자가 돼 과거 근로 노동 기간에 있던 급여서 소득을 얼마나 대체해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지다. 100만원을 벌었으면 40만원을 받는다. 

고갈 후 부과식 채택해야
정치적 이해관계로 실패

현재 국민연금 1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연금 수준은 60만원 전후인데 이 정도로는 소득 보장을 하지 못한다. 결국 기여율,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수급 연령 인상, 연금액을 정하는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연금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과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또, 공적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경우 기금을 적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복지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서 활용하는 부과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 


-해외는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른가?

▲독일의 경우 보험료가 19.5%, 덴마크는 18%, 스웨덴은 16.5% 정도로 굉장히 많이 낸다. 소득 대체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물론, 많이 내는 만큼 돌려받는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외국 연금의 차이는 총가입 기간이다. 한국은 남성,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 25세를 전후해 노동시장에 진출했다가 45~50세 전후로 빠진다.

전체적인 정년 연령은 60세지만 대부분 50대에 일자리서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월급이 적어져 기여금이 줄어들고, 실업이 생기기도 한다.

외국은 연금의 역사가 100년 이상 된다. 대부분 일자리도 정년이 보장돼있어 퇴직 시 국민연금으로 받는 소득이 굉장히 높다. 그에 반해 한국은 일하는 기간이 20년 내외인 데다, 주 일자리서 나왔을 겨우 3대 업종으로 빠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총 소득 및 가입 기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즉,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의 주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소리인가?

▲그렇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금보고서에 의하면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OECD 회원국 평균은 42.2%고, 한국은 31.2%로 11%p가 낮은 셈이다.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는 40년 가입 시 기준으로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 ▲군복무 ▲실업 크레딧 등 사회적 경제적 연금 약자에게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저소득자에 대한 국가 보험료 지원도 늘려야 한다. 

-연금의 가입 기간과 가입 대상도 고려할 사안으로 보인다

▲가입 기간, 가입 대상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외국 연금 가입자의 정년 연령은 65세 전후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정년 연령은 60세 미만이 대부분으로 외국보다 가입 기간이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가입 대상 확대는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중요한 정책 방안인데 가입자는 고령화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가입 대상을 확대하면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형평성 측면서도 중요하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다. 가입 대상 확대를 통해 소득이 낮은 사람도 가입하도록 하면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소득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원 대상을 확대(현재 10인 미만 사업장에만 적용)하고, 앞으로는 저소득 계층의 보험료를 중앙정부가 소득계층별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역대 정부서도 계속 연금개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는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연금개혁이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건 사실이다. 여야가 협력해야 가능한 부분으로 협치를 해야 한다. 서로 공방만 벌이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1988년 처음 연금개혁을 띄웠을 때, 소득 대체율이 너무 높게 설정됐다면서 손을 댔다. 다음 주자가 노무현정부때였는데, 소득 대체율이 하락해 50%까지로 올리려고 했다.

노인만을 위한 제도 아냐
50년, 100년 뒤 미래봐야

하지만, 여야의 대립이 강했고 이 때문에 기초연금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국민연금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결국 핵심적인 제도 개선이 아닌, 땜질 처방한 것인데 현재 그게 30조원이 돼버린 것이다. 문재인정부서도 연금개혁을 하겠다며 소득 대체율을 올리고 내리는 방식 등의 네 가지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단순히 방안만 제시하는 데 그쳤다. 

-윤석열정부도 연금 개혁을 띄웠다

▲윤석열정부 들어 국회 차원서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합의문 도출도 하지 못했고 그동안 논의 경과만 정리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한쪽은 보험료와 소득 대체율을 높여 온전히 노후 보장을 하도록, 다른 한쪽은 소득 대체율도 40%로 줄이고 보험료율도 줄이자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다만 수급 개시 연령이 2023년 63세, 2033년 65세 등으로 상향 조정되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공유했었다. 국민적 저항과 경제 상황도 개혁을 좌우하는 부분으로 국민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보험료 인상이나 수급 연령 상향 등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내용이 많아 저항에 부딪히기 쉽다. 

-여야 합의가 필요한 것 아닌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탈피해서 50년, 100년 뒤 미래를 봐야 한다. 초저출생의 초고령화 사회서 아이들도 줄어들고 노동자도 사라진다. 노인이 많아지면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데 돌파구는 국민연금을 안정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치권이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고갈 이야기만 하지 않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 자문위원회에 있는 사람들이 연금을 기획했던 사람들인데, 이들 폴리페서(Politicsfessor,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책임이 있다. 연금 기금의 고갈, 노후 소득 보장, 노인 빈곤, 저출생 인구 고령화 등이 함축적으로 섞여 있는데, 이를 국민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연금은 지금의 노인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다. 미래에 노인이 될 세대와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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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