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클래식 월드스타 바리톤 김태한

  • 옥지훈 기자 ojh34522@daum.net
  • 등록 2023.06.12 12:57:34
  • 호수 14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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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국내파, 세계를 휩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한국인 남성 성악가 김태한이 세계 최고 성악가 반열에 올랐다. 세계 3대 클래식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서 아시아 남성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대회서 한국인 성악가가 우승한 건 2011년 여성 성악가 홍혜란 이후 두 번째다. 두 사람의 차이점을 꼽자면 홍혜란은 2009년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입학한 ‘유학파’인 데 반해 김태한은 국내서 성악을 배운 ‘순수 국내파’라는 점이다.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서 바리톤 김태한(22)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아시아 남성 성악가로서 최초, 2000년생 만 22세로 최연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세계 3대 콩쿠르
‘퀸엘리자베스’

김태한은 클래식 불모지로 꼽히는 국내서 성악을 공부했다. 그의 우승은 해외 유학 경험 한 번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한국은 지난해 같은 대회서 첼로 부문으로 우승을 한 최하영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자를 배출했다.

그동안 홍혜란(2011년), 황수미(2014년·이상 성악), 임지영(2015년·바이올린), 최하영(2022년·첼로) 등 여성 음악가가 해당 콩쿠르서 수상한 바 있지만, 남성 음악가가 우승을 거머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콩쿠르 성악 부문은 성악가 412명이 지원했다. 예선에는 영상 심사를 통해 68명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그중 18명이 한국인이다.


지난 1일부터 시작해 사흘간 진행된 결선에 진출한 12명 중 한국인 결선 진출자는 최연소인 김태한을 비롯해 바리톤 권경민, 베이스 정인호까지 총 3명이었다. 이번 콩쿠르서 국적별로 최다 진출이다. 결선 진출 입상자 순위는 1위부터 6위까지다.

베이스 정인호가 5위를 기록하면서 입상자 순위에 올랐고, 바리톤 권경민은 아쉽게 순위에 들지 못했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국제 음악 콩쿠르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수상을 이어가면서 K클래식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 음악가들이 세계 무대서 독보적으로 활약하면서 결선 진출자 숫자가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을 압도했다. 2015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서 우승한 조성진 또한 순수 국내파로 국내 클래식 열풍에 기여했다.

지난해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우승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선 한국인 연주자 12명이 준결선에 진출해 화제가 됐다. 임윤찬도 순수 국내파로 알려져 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 음악가들이 세계 대회서 연이은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김태한은 우승 직후 현지 인터뷰서 “한국 가수들이 워낙 노래를 잘하기 때문에 사실 국제 콩쿠르보다 국내 콩쿠르서 노래할 때 더 떨린다”며 “지금 당장 한국대회에 나가도 1등을 할 자신이 없을 만큼 실력자가 많다”고 전했다.

‘K클래식’ 콩쿠르서 연달아 승전보 
아시아 최초·최연소 타이틀 섭렵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벨기에 출신 바이올린 거장 외젠 이자이(1858~1931)를 기리기 위해 1937년 ‘이자이 콩쿠르’라는 명칭과 함께 바이올린 부문을 대상으로 처음 열렸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부문으로 진행됐으나 세계 2차 대전으로 휴지기를 맞았다. 이후 1951년 벨기에 왕비 엘리자베스 본 비텔스바흐의 후원 아래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어 재개됐다.


1951년 바이올린 부문을 시작으로 1952년 피아노 부문으로 번갈아 열리다가, 1953년 작곡 부문, 1988년 성악 부문, 2017년 첼로 부문이 추가됐다. 2012년 이후로는 작곡 부문이 개최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첼로 부문이 번갈아 가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역대 주요 수상자로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레오니드 코간·바딤 레핀과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등이 있다. 한국 출신은 1976년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3위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50명 넘는 입상자를 배출했다.

김태한은 처음엔 록 가수가 하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록밴드는 캐나다의 섬41(Sum 41)이고, 중학교 때는 밴드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비교적 늦은 나이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가 성악을 권유하셔서 성악을 시작했다가 뒤늦게 빠졌다”며 “선화예고에 진학해 비슷한 전공을 하는 친구들 만나면서 시너지가 생겨 꿈을 더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김태한은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진학한 국내파 수재다.

시작은 록으로
지금은 오페라

그는 바리톤 나건용 교수를 사사했고, 현재는 국립오페라단의 젊은 성악가 육성 프로그램인 오페라 스튜디오 멤버로 활동하면서 김영미 교수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2021년에 국내서 열린 한국성악콩쿠르, 한국성악가협회 국제성악콩쿠르, 중앙음악콩쿠르서 각각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에는 비냐스 국제성악콩쿠르와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성악콩쿠르서 특별상을 받으면서 해외로 발을 뻗었다.

김태한은 콩쿠르 우승 직후 현지 매체와 가진 인터뷰서 ‘롤 모델’이 누군지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저희 선생님”이라고 말하면서 국내에 있는 스승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스승인 바리톤 나건용 교수는 제자에 대해 “24시간 노래를 흥얼거리며 연습할 만큼 열정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성악가”라고 전했다.

김태한은 2018년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10회 신한음악상 성악 부문 수상으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신한음악상은 일반적인 기업 메세나 프로그램과 달리 신한은행 직원들의 기부금으로 조성해 만 19세 이하의 순수 국내파 클래식 유망주만을 발굴해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김태한은 이번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서 진행되는 곡을 신한아트홀서 실전 연습하고 녹화하여 경연에 대비하는 과정을 거쳤다. 신한음악상 수상자는 모든 비용이 무상이다.

수상자는 매년 400만원씩 총 1600만원의 장학금과 함께 해외 유명 대학교수에게 받는 마스터클래스 및 공연 관람, 세종체임버홀서 정기연주 기회 등 국제적인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혜택을 제공받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한음악상 수상자들의 ‘음향시설이 잘 갖춰진 홀에서 연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수렴해 세종문화회관과 정기연주회를 정례화했다”며 “수상자들이 해외 콩쿠르에 나가는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신한아트홀서의 녹화 및 연습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선 무대
발음 극찬

신한은행은 순수 국내파를 배출하는 데 큰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금까지 6회 피아노 부문 수상자 박진형(2016년 프라하의 봄 피아노 콩쿠르 1위), 10회 첼로 부문 김가은(2022년 어빙 클라인 국제현악콩쿠르 1위), 12회 첼로 부문 한재민(2021년 에네스쿠 콩쿠르 1위) 등 61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김태한은 결선 무대에 올라 바그너 ‘탄호이저’ 중 ‘오, 나의 사랑스러운 저녁별이여’를 시작으로 말러의 연가곡 ‘내 가슴 속에는 불타는 칼이’, 코르골트의 ‘죽음의 도시’ 중 ‘나의 열망, 나의 집념’,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카를로가 듣는다-아, 나는 죽어가고 있어’까지 4곡을 불렀다. 그는 독일어와 불어를 정확하게 발음해 극찬을 받았다.

특히 베르디의 ‘오, 카를로 내 말을 들어보게’는 원래의 이탈리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불렀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열린 벨기에가 불어권이라는 이유에서다. 김태한은 “프랑스어 버전으로 부른 건 내 아이디어”라며 “프랑스어가 음악적으로 표현하기 좀 더 부드럽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어권이기도 하고, 프랑스 요청을 받아 베르디가 작곡한 ‘돈 카를로’ 원래 버전도 프랑스어였다”며 “작품이 크게 성공하면서 나중에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인데 마지막 소절인 ‘플랑드르를 구해 달라’는 의미가 플랑드르가 벨기에 땅이어서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국제음성기호(IPA)상 발음기호 공부가 정석인데 그 또한 (실제 발음과)다른 부분이 있어서 원어민 노래를 많이 듣고 세세한 부분까지 따라 해보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곡의 음정, 박자뿐 아니라 시를 분석하고 시인에 대해 공부하는 등 곡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지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서 자신의 꿈을 묻자 부족한 영어 탓에 “슈퍼스타가 되는 것(I want to be a super star)”이라고 답했다고 웃어 보였다. 클래식 비평가 마르띤느 메르제는 “김태한의 목소리는 웅장하고 풍부해 멜로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며 “보기 드문 우아함과 권위를 가진 그의 연주는 아름답게 절제돼 감동을 전달한다”고 호평했다.

록 가수 꿈꾸던 중학생이…
7년 뒤 세계 최고 성악가로

앞서 소프라노 조수미가 이번 대회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사위원장 베르나르트 포크롤을 비롯해 메조소프라노 베르나르다 핑크,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 등 심사위원진 17명 중 일원으로 활약했다.

조수미는 김태한 우승 직후 인터뷰서 “나도 콩쿠르서 여러 번 우승했는데, 내가 우승한 것보다 더 기쁘다”며 “우승자뿐만 아니라 결선에 진출한 한국 성악가 3명 모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단은 공정한 심사를 위해 대회 기간 내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엄격히 금지된다. 순위는 심사위원들이 각자 매긴 점수표를 일괄적으로 합산해 결정된다. 조수미도 발표 직전에 이번 대회 순위 최종 결과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김태한이 이번 대회서 우승이 확정됐을 때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했다. 다들 거의 만장일치”라고 답했다. 이어 “나이가 굉장히 어린데도 진정성 있게 노래한 게 심사위원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 같다”며 “원더풀 퍼포먼스였다”고 치켜세웠다.

‘대선배’ 조수미는 “이번 우승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니 자만하면 안 된다. (김태한이)아직 나이가 어리니 정신을 바짝 차려서 열심히 해야 한다”며 진정 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뻐하는 것도 오늘 하루만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갈 길을 가야 한다”며 “앞으로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할 수 있으니까, 제가 옆에서 잘 도와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한은 오는 9월부터는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오페라 스튜디오 멤버로 2년간 활동할 예정이다. 가장 해 보고 싶은 역할로 조아치노 안토니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를 꼽았다. 이어 “조연·단역부터 가리지 않고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겠다”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오페라 가수”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열심히 준비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어 기쁘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다”며 “오페라 무대에 많이 서면서 행복하게 음악을 하고 싶다.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대선배 조수미
진정 어린 충고

김태한은 지난 6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인근 워털루에 있는 음악 고등교육기관인 ‘퀸엘리자베스 뮤직샤펠’서 열린 공식 시상식서 마틸드 왕비로부터 직접 상장을 받았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장 명칭도 ‘마틸드 여왕 상’으로 2만5000유로의 상금도 함께 수여됐다. 그는 오는 13일 브뤼셀서 열리는 퀸엘리자베스 폐막 공연을 통해 우승자로 첫 무대를 선보인다. 이후 현지 일정을 모두 소화한 뒤 오는 20일경 귀국 예정이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계 클래식 홀린 K클래식

한국인의 최근 세계 3대 콩쿠르서 활약이 심상치 않다.

세계 무대서 한국인 콩쿠르 입상자 수는 압도적이다.

지난해 세계적인 콩쿠르서 우승한 한국인 음악가 중 악기 부문만 보더라도 피아노(임윤찬·밴 클라이번), 바이올린(양인모·시벨리우스) 첼로(최하영·퀸 엘리자베스)로 3명이나 된다.

한국인 음악가가 세계대회를 휩쓰는 건 이제 흔할 지경이다.

세계 3대 콩쿠르 중 먼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서 2011년 소프라노 홍혜란이 우승하면서 4년 주기로 돌아오는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첼로 부문서 2014년 소프라노 황수미가 또 한 번 정상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국인 여성 성악가 목소리가 세계 무대를 떨친 건 꽤 오래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 마돈나’ 홍혜경부터 1990년대 소프라노 조수미 등 한국 소프라노는 세계 무대에 이름을 떨쳐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2011년 베이스 박종민과 소프라노 서선영이 각각 남성·여성 성악 부문 정상을 차지했다.

2012년에는 베르디 국제 콩쿠르서 테너 김정훈, 바리톤 김주택, 테너 윤승환이 각각 1~3위를 휩쓸었고, 2021년에는 바리톤 김기훈이 BBC 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 오페라 부문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한국 남성 성악가의 국제 무대 경쟁력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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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