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실세’ 유병호 사무총장 막가는 리더십 막후

‘독불장군’ 막 휘두르는 잣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감사원의 선관위·권익위 감사가 시끄럽다. 위원들의 견해 차이가 있으나 유병호 사무총장의 월권 논란이 한몫하고 있다. 특히 유 사무총장이 최재해 감사원장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내부 직원들 사이서조차 ‘선을 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유 사무총장이 ‘감사원 실세’라고 불리는 이유다.

감사원은 본래 조용한 사정기관이었다. 언론과 정치권에 자주 언급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일을 잘한다’면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잇단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있다. 최재해 감사원장보다 앞서 나가는 스타일로 부담감을 느끼는 직원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무리한 감사
후폭풍 자초

유 사무총장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위법·부당 행위를 확인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지난 1일 감사원 감사위원회는 전원회의를 열고 전 위원장에 대한 사무국 감사 결과를 논의한 끝에 8개 핵심 쟁점 ‘불문’ 조치를 결정했다.

위법·부당 행위 및 개인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감사원이 조사한 전 위원장의 혐의는 총 8개로 ▲출·퇴근 포함 근태 문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이해충돌 유권해석과 관련한 쟁점 3개 항 ▲서해공무원 사건 유권해석 관련 1개 항 ▲전 위원장의 감사 방해 2개 항 ▲갑질 간부에 대한 탄원서 제출 등이 있다.


감사위는 8항의 탄원서 제출 쟁점을 두고 “부적절하다”며 기관 주의 조치를 내렸다. 기관 주의 조치도 “위법 부당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기관 경고조차 ‘법적 책임’이 없다는 설명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1항 출·퇴근과 탄원서 쟁점을 제외한 나머지 6개 항에 대해 전 위원장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 추 전 장관 이해충돌 유권해석과 관련된 2항의 보도자료와 3항의 보도자료는 같은 해 9월16일 권익위가 발표한 보도자료 건이다.

2항과 3항 보도자료는 추 전 장관의 직무와 아들(군 복무 중 휴가 논란) 수사 건에 대한 직무상 이해충돌에 관한 권익위 입장이다.

당시 권익위는 “이해충돌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사실관계 해석을 거쳐 유권해석을 했고, 그 해석도 전적으로 담당 실무진의 판단 결과”라고 발표했다. 권익위는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추 전 장관이 아들 사건과 관련해 지휘권 등을 행사했는지 확인했다. 대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감사원은 굴하지 않고 전 위원장이 실무진에게 “허위로 보도자료를 내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 위원장은 “간부들과 함께 수렴한 권익위 회의 내용을 실무자가 다른 직원들에게 메일로 발송하면서 ‘보도자료(위원장님 작성)’라고 제목을 잘못 쓰는 바람에 그런 ‘오해’가 생겼다”며 “그 자료는 해당 실무자의 컴퓨터에 그대로 저장돼있다”고 말했다.

특히 위 보도자료에선 “전적으로 담당 실무진의 판단 결과”라는 부분서 ‘전적으로’라는 표현이 쟁점이 됐다. 감사위가 보도자료를 내는 과정서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논의로 ‘방침’을 결정했고, 실무진은 그 방침에 따라 보도자료를 직접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전 위원장이 보도자료 작성에 직접 개입했다는 감사원 사무국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감사위 “전현희 위원장 부패·위법 없다”
따로 노는 사무국…간접적으로 인정 안 해


다만 감사위는 3항 보도자료 작성 부분에 관해 전 위원장에게 직접 책임을 묻지 않고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감사보고서에 관련 사실만 기술했다.

4항은 전 위원장이 추 전 장관의 이해충돌 유권해석 건을 두고 라디오 방송 시사프로에 ‘담당국장’을 시켜 허위로 인터뷰하게 했다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담았다. 그러나 감사원은 담당국장을 제외한 다른 관련 직원에게 “허위로 인터뷰하게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지 못했다.

결국 이 부분도 담당국장의 허위 진술로 확인됐다.

5항은 지난해 7월27일, 국회 정무위 출석 후 점심식사 당시 일어난 사건이다. 이날 국회 정무위서 서해 사건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구하는 국민의힘 의원의 질타에 대해 전 위원장은 “권익위가 사건의 사실관계를 잘 몰라 (유권)해석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감사원은 해당 결정을 전 위원장이 했고 담당국장에게 강요했다며 강요 미수로 고발했다. 이는 담당국장의 일방적 주장이었다.

감사원의 무리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사원 대변인실은 지난 2일, 출입기자들에게 “감사위원회는 제보 내용을 안건별로 심의하며 권익위원장 및 권익위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관해 권익위원장에게 기관 주의 형태로 조치할 예정이며, 정무직이고 이미 수사 요청된 점 등을 고려해 감사보고서에 관련 내용 등은 서술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실 문자에서 “권익위원장 및 권익위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해”라고 적시한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즉, 감사위원회 결정은 개인 조치는 ‘불문’이고, 기관 주의도 ‘부적절했다’는 것이 끝이다. 감사위 결정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읽힌다.

실패한
전 잡기

유 사무총장은 대변인실이 입장을 밝힌 날 지휘서신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감사원 관계자들은 유 사무총장이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기관에 대해 중대 감사로 취급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통상적으로 수사 요청 이전에 감사위 의결을 거친다. 예외는 ▲(감사 대상자)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 ▲당사자 본인 조사가 어렵거나 ▲범죄 혐의가 있거나 ▲긴급성이 있을 때만 둔다.

감사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실상 감사원 사무국이 수사기관의 수사 이전부터 전 위원장을 범죄자로 봤다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무국이 직권으로 사전에 무리수를 뒀다. 내부서도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에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의 행태를 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전 위원장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 의혹’을 제기하며 최 원장 등을 지난해 12월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전 위원장은 지난 4월4일 공수처 조사에 앞서 경기 정부과천청사 민원인 안내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정치적 감사에 공수처가 수사로 경종을 울려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공수처는 당시 구체적인 고발 경위 조사를 위해 60여쪽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감사원의 보고서 발표 이전에는 수사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다”며 “특별수사본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희 잡기’에 실패한 유 사무총장은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위 회의서 최 원장의 발언을 끊거나 제지하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이어갔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감사원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본인이 최 원장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정권과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최근까지 보여준 태도는 선을 한참 넘었다”고 비판했다.

다른 관계자도 “‘독불장군’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위원들과 말다툼을 벌이던 모습보다 심하다”고 말했다.

멈출 줄
모른다


지난해 유 사무총장이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과 고성이 오간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김 의원은 최 원장과의 질의서 문재인정부 시절 공공기관 감사국장이었던 유 사무총장의 직속 부하였던 A 과장이 유 사무총장을 비위 의혹으로 신고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감사원 직원들도 대부분 몰랐던 내용이다.

A 과장은 윤석열정부 출범 뒤 유 사무총장이 ‘문정부서 공공기관 평가 비위를 봐준 의혹이 있다’며 직위 해제한 인물이다. 당시 그의 상사가 유 사무총장이었다. 유 사무총장은 A 과장과 함께 당시 공공기관을 감사했던 4명의 감사관에 대해서도 직위해제와 동시에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그런데 A 과장이 최 원장에게 유 사무총장의 비위를 신고한 것이다.

유 사무총장을 향한 감사원 직원들의 불만이 언급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감사청구가 제기된 대통령실 용산 이전 의혹을 조사하던 감사원 B 과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했고, 배경으로 유 사무총장의 ‘감사 중단 압력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CBS 구용회 논설위원은 ‘대통령실 감사 연장 불승인, 유병호 압력설 사실인가’ 칼럼서 “감사 업무를 총괄하던 행안 1과 B 과장이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B 과장은 유 사무총장에게 대통령실 감사 기간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특히 B 과장은 ‘(대통령실 감사를)손을 봐 놓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제대로 정리를 해 놔야 한다’는 취지로 유 사무총장에게 감사 연장을 수차례에 걸쳐 요청한 것도 확인됐다”고 썼다.

이어 “하지만 유 사무총장은 감사 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유 사무총장은 ‘더 이상 건들지 말라’며 ‘여기서 끝내라’는 취지로 감사 연장을 중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감사원 규정에 의하면, 감사 연장 승인 여부 결정권은 감사원 사무차장에게 있다고 한다. 연장 승인권이 사무차장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 사무총장이 ‘중단 압력’ 결정을 내렸다면 이는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10월 대통령실·관저 이전과 관련한 국민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감사원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는 5개의 청구 항목 중 2개를 인용하고 3개를 기각·각하했다. 이후 감사원은 ▲대통령실·관저 이전 의사결정의 부패 행위 및 불법 여부 ▲대통령실·관저 이전에 따른 건축 공사 등과 계약 체결의 부패 행위 여부 등에 대해 감사에 착수했다.

“유, 고집 안 꺾인다”
정부여당 뒷배 믿고?

참여연대는 기각·각하 결정이 난 ▲대통령실·관저 이전에 따른 비용 추계와 편성 및 집행 과정의 불법성과 재정 낭비 의혹 ▲대통령실 소속 공무원의 채용 과정의 적법성 여부 ▲국가공무원법상 겸직 의무 위반 여부 항목과 관련해 헌법소원심판 청구도 진행했다.

참여연대는 해당 칼럼에 대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헌법과 감사원법으로 독립적 권한이 보장된 감사원서 사무총장이 직권을 남용해 국민이 청구한 대통령실 감사를 중단토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국민감사를 방해한 중대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일단 전 위원장 건은 묻어두는 분위기다. 감사위 결과를 불복한 데 이어 논란을 자초하면 어깨의 짐만 더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충돌로 여유가 없기도 하다.

현재 선관위는 헌법을 내세워 감사원 감사 거부 입장을 피력했고 감사원은 감사원법을 근거로 감사를 거부하면 사법절차를 밟을 수 있다며 이를 갈고 있다. 이들 헌법기관의 충돌은 자녀 채용 특혜라는 현안과 보수 진영서 쌓여온 선관위에 대한 불만, 유 사무총장이 이끄는 감사원의 강성 성향, 헌법기관 위상을 지키려는 선관위의 판단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금도 선관위는 일반 행정(조직·운영)이나 회계 분야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정기감사를 받고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사안이 불거졌을 때 벌이는 직무감찰이다. 역사상 감사원이 선관위를 직무감찰한 적은 없다.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서 불거진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 때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감사원은 직무감찰을 주장했지만 선관위가 거부한 바 있다.

감사원이 선관위에 직무감찰 권한이 있다는 근거로 든 조항은 감사원법 24조 3항이다. 직무감찰 범위 대상 공무원서 국회·법원·헌법재판소를 제외하는 내용이다.

감사원은 1995년 법 개정으로 제외 대상을 기존 국회·법원서 헌법재판소까지 확대했는데, 이때 국회서 논의 끝에 선관위를 넣지 않은 것은 선관위가 감사원 직무감찰을 받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권한은 있지만 선관위를 존중해 직무감찰을 자제해왔다고 주장한다.

‘황소고집’
불만 폭발

감사원은 여권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지금이 선관위의 벽을 깰 수 있는 적기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국회가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권익위 조사, 선관위의 수사 의뢰에 따른 경찰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감사원까지 직무감찰을 고집하는 건 유 사무총장의 또 다른 무리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재 여권과 유 사무총장은 ‘한 몸’이다. 감사원이 검찰 다음 가는 ‘용산 하청기관’이라고 불리고 있다. 유 사무총장의 한 명의 고집으로 인해 무리한 감사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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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