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고지전' 막전막후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2.10.02 08: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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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다 '낙동강 오리알' 될래? 뭉쳐서 '문안드림팀' 될래?

[일요시사=조아라 기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당내 경선을 통과하자마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며 대선고지에 깃발을 꽂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문 후보의 고지점령은 '1일천하'였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단 하루 만에 고지를 탈환해 문 후보를 좌절시킨 것. 안 후보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훈련된 정예군도 없이 손쉽게 문 후보를 몰아냈다. 이로써 문 후보 진영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야권단일화를 두고 물러 설 수 없는 한판 대결에 들어간 양 진영의 총성 없는 ‘고지전’. 그 전장으로 <일요시사>가 들어가 보았다.

지난 9월 18일 종합편성채널 JTBC가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역전의 이변'이 연출됐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양자대결에서 문 후보가 44.9%의 지지율을 얻으며 안 후보를 12.6p% 차로 따돌린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19일 안 후보가 본격 출사표를 던지자 안 후보의 지지율이 수직상승했다. 야권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안 후보는 문 후보에 10%p 앞서며 멀찌감치 앞서 갔다. 하루 사이 고지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때 기다리다 날개 펼쳐
탁월한 전략, 우위 선점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6대 왕인 장왕은 '3년 동안 한 번도 지저귀지 않은 새처럼 있다가 단 한 번 입을 열어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는 고사의 주인공이다.

장왕은 일찍이 역사 흐름의 맥을 짚고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다 날개를 펼쳐 원대한 고국의 뜻을 펼친 인물이다.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높이 올라 난세를 다스리고 천하를 호령한 것이다.

일찍이 중국학자들은 이러한 정치술을 '도광양회술(韜光養晦術)'이라 일컬었다. '물에 잠긴 용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의미의 이 정치술은 자신의 재능을 감추고 후일을 도모하는 중국 고대 제왕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신의 재능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 후보의 정치술은 이와 차이점이 있겠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단 한 번 입을 열어 원대한 포부를 밝히고, 이로 인해 민심을 흔들어 지지를 끌어올린 내공은 가히 그런 정치술에 견줄 만하다. 

'세를 모으고 힘을 비축한' 안 후보는 민주당의 경선이 끝나고 추석을 앞둔 지난 9월19일을 적절한 시기로 잡고 대선 전면에 등장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쏠리는 여론을 끌어옴과 동시에 추석 연휴를 앞두고 추석 밥상에 '안철수'를 올려놓기 위해 19일을 선택한 것”이라며 "정치경험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뭘 좀 아는 사람의 기가 막힌 선택"이라고 극찬했다.

박정희 묘소 앞, 엇갈린 두 사람의 행보
총괄본부장 박선숙 VS 기획위원 박영선

이에 안 후보는 탁월한 전략으로 대선출마와 동시에 문 후보와 단일화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선 레이스를 펼치기 전에 반드시 넘어야 할 야권단일화에서 안 후보가 자신의 셈법으로 우위를 점한 것이다. 

문 후보는 수세에 몰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문 후보는 단일화와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안 후보의 회동제안에 대해서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며 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안 후보는 계속 주도권을 쥐기 위해 재촉하겠지만,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끌려가는 회동 테이블에 앉는 모습을 피하려 하고 있다"라고 해석했다.


양측의 팽팽한 기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두 사람의 대선행보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안 후보는 출사표를 던진 다음 날인 지난 9월20일 현충원 참배로 첫 대선행보를 내디뎠다.

현충원을 찾은 안 후보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역사에서 배우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안 후보는 이날 "공과 과가 있다면 공은 계승하고 과는 바로잡으려는 노력,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날 참배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앞서 문 후보는 지난 9월18일 현충원 참배 후 페이스북에 "저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 언제든지 참배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가해자 측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 쪽은 '통합' 행보
다른 쪽 '반성' 강조

한 정치평론가는 같은 곳을 찾은 두 사람의 행보에 대해 "안 후보는 통합을 강조하며 중도층과 나아가 보수층의 표심을 공략했고, 문 후보는 반성을 내세우며 지지층의 결집을 호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 후보에 대한 네티즌의 평가도 다양했다. "안 후보는 국민 시선 맞춰 참배하고, 문 후보는 과거에 집착하느라 미래는 소홀했다" "안 후보는 침착했고, 문 후보는 감정에 치우쳤다"라며 안 후보에 대한 후한 평가가 우세했다.

한편 "문 후보는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화해'를 요구하면서 지지율을 의식하지 않고 참배하지 않은 점이 가장 진심의 정치행위"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9월24일 있었던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에 대해서도 두 후보가 환영의 뜻을 보이면서도 약간의 온도차를 드러냈다.

문 후보는 "힘드셨을 텐데 아주 잘하셨다"라고 밝히면서도 "정수장학회,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문제 등을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오늘 박 후보의 사과가 이런 문제까지 풀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의 사과 표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구체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당부도 놓치지 않았다.

안 후보는 이날 박 후보의 사과를 두고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필요한 일을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한 "박 후보의 사과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안 후보의 이러한 답변에 대해 트위터에는 "박 후보가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은 맞는데 진심으로 사과했을까요? 야권후보한테 추격당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봅니다"

"(박 후보가) 아직 풀고 정리할 게 남아 있는데 뭔가 얼렁뚱땅 넘어가는 듯한, 서럽고 억울한 마음을 또 한 번 서운케 하는 것 같다"라는 등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한때는 절친, 지금은 적군
'전략통'과 '공격수' 대치

하지만 "두 후보가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각기 중도공략?좌클릭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시너지가 있다"라며 두 후보 모두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 의견도 있었다.

기싸움은 이들만 벌인 것이 아니다. 이들의 오른팔인 박선숙 전 의원과 박영선 의원도 양 후보의 전방에서 대치구도를 이루고 있다.

박선숙 전 의원과 박영선 의원은 일찍이 18대 국회에서 각각 민주당의 홍보전략본부장과 정책위의장이라는 핵심요직을 맡아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또한 1960년생 동갑내기 '절친'인 두 사람이 대선을 앞두고 양 갈래로 갈려져 대선후보만큼이나 이들의 활동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 전 의원은 현재 안 후보 캠프에 합류해 총괄선거대책본부장직을, 박 의원은 문 후보 캠프의 선거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박 전 의원은 '전략통'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서도 본부장을 맡아 캠프를 총괄했으며, 이때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로 나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단일화를 성사한 전력이 있다.

박 의원은 '공격수'로 불린다. 19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으면서 전면에 나서 정부와 여당의 공격을 담당했던 인사다.

진선미 민주당 대변인은 언론을 통해 "이명박 정권에 맞서 가장 앞장서서 싸운 분"이라며 박 의원이 문 후보의 기획위원으로 발탁된 이유에 대해 '대여 투쟁력'을 꼽기도 했다.

둘은 이제 두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되기 전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위치에 있다.

'SNS 전쟁' 돌입…표심잡기 경쟁에 사활
문, 서울 망원시장 VS 안, 수원 못골시장

선거전략가 ‘양박’이 포진한 두 후보 진영의 경쟁은 우선 SNS에서 판가름이 난다.

SNS는 야권 대선주자 선거운동의 주요수단으로 문 후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안 후보는 언론 담당 페이스북을 통해 일정이나 현안에 대한 견해를 올리며 유권자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문 후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표시된 '좋아요'는 지난 9월25일 3만5370명, 안 후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표시한 숫자는 5만4187명에 이르렀다.

또한 문 후보의 게시글 중 안 후보의 출마를 축하한다는 내용의 글에 대해 1만5079명이 '좋아요'를 표시하며 가장 높은 호응을 보였다.

안 후보의 페이스북에는 대선출마 기자회견 전문에 7만91명에 육박하는 네티즌이 '좋아요'를 표시하며 SNS전쟁에서는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월등히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매체를 통해 "전국 여론의 선행 지표이기도 한 SNS 여론에서 우호적인 유권자를 확보하기 위한 후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양 후보의 오프라인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문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방문해 전통적 지지층 규합에 주력했다. 같은 날 안 후보는 무인차량 로봇 연구센터를 방문해 정책행보에 주력하며 청장년층과 무당파 공략에 나섰다.

이들이 각각 지지층과 부동층을 공략하며 대조적인 행보만 보였던 것은 아니다. 문 후보는 서울 망원동 재래시장, 전날 안 후보는 경기도에 있는 못골시장을 찾으면서 사라져가는 재래시장의 상인들에게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온라인서 안철수 앞서
오프라인 행보도 분주

한 정치권 관계자는 "두 후보가 대척점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덧셈정치, 통합정치'를 실천하는 '상생의 경쟁'을 통해 외연의 확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 후보의 지지자들은 야권단일화라는 고지를 향해 고군분투를 벌여야 하는 두 사람이 '마이너스 경쟁'이 아닌 '1+1=3'을 만드는 상생의 경쟁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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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