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 사태’ 일으킨 주범들 막전막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SG증권발 폭락 사태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라덕연 H 투자자문 대표는 혐의를 일부 부인하는 동시에 “진짜 배후는 따로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 대표는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시세차익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하고, 김 회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둘 사이의 진실공방은 법정 다툼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코스피 상장사 5곳과 코스닥 상장사 3곳. 지난달 말, 도합 8종목의 주가가 나흘새 최대 76% 폭락했다. 대규모 매물이 쏟아져 나온 해외 증권사의 이름을 딴, 이른바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발 폭락 사태’다. 

주가 폭락
배후 누구?

폭락 사태에 관여한 주요 인물들과 이들의 과거 행적이 점차 드러나면서 피해자 수와 피해 규모 추산치가 계속 불어났다. 수년간 주가 상승을 주도한 인물은 라덕연 H 투자자문사 대표로 알려졌다. 라 대표는 한때 직원 50명을 동원해 투자자 모집과 주식 매집에 나섰다고 밝혔다.

일당이 굴리는 자금 규모가 8000억원 이상이라는 증언에 이어 최대 2조원에 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라 대표는 한 매체와의 대화에서 “투자자 1000여명에게 투자금을 받아 1조원 이상을, 레버리지(빚)를 포함해 2조원이 넘는 주식을 거래했다”고 직접 털어놨다. 

라 대표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번 폭락 사태로 인한 투자 피해 금액은 최소 수천억원에서 최대 조단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해당 8종목의 시가 총액은 고점 대비 8조2000억원 이상이 증발했다.


그는 지난달 말 “모든 계획은 내가 다 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주식 거래량이 적은 종목 10개가량을 고르고, 조금씩 꾸준히 사들이는 방식으로 투자 계획을 세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라 대표는 “일부 계좌를 내가 맡아 매매한 건 사실”이라며 “인가를 받지 않고 남의 계좌를 운영해준 건 잘못한 부분”이라고 시인했다. 현행법상 무허가 업체가 ‘투자 일임’에 나서는 것은 불법이다. 여기서 투자 일임이란 계좌 개설, 종목 선정, 매매 등을 모두 대행하는 투자 방식을 의미한다. 

사태 ‘주동자’격인 라 대표가 혐의 상당 부분을 인정함에 따라 진상 파악에 나선 금융·사정당국도 덩달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과 금융위원회가 꾸린 합동수사팀은 지난달 27일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심되는 H 투자자문사를 압수수색했다. 지난 1일에는 라 대표를 비롯한 6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다만, 라 대표는 주요 혐의 중 하나인 ‘통정매매’ 사실은 부인했다. 시세조종을 위해 짜고 치는 거래를 한 적 없다는 주장이다. 

라 대표는 8개 종목 모두 가치 투자를 위해 매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우데이타는 매해 1조원을 넘나드는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시가총액은 6000억원에 불과하다. 다른 기업 역시 부동산 등 자산 재평가가 필요해 투자를 시작했다”면서 “우리는 ‘바이 앤 홀드’ 전략으로 계속 사모았다”고 했다.

‘라 vs 김’ 진흙탕 속 폭탄 돌리기
누가 거짓말 하나…법정 싸움 비화

라 대표는 자신 역시 이번 사태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주가 폭락의 주범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배후설’을 띄웠다. “일련의 (주가) 하락으로 수익이 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폭락 직전 주식을 대량 매도해 수익을 본 인물은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 김영민 서울가스 회장 등이 있다. 

김익래 회장은 지난달 20일 시간외매매로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다우데이타 140만주를 주당 4만3245원에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처분해 605억원어치를 현금화했다. 이날은 폭락 나흘 전이자 2거래일 이전이다. 김영민 회장은 이보다 빠른 17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주당 45만5950원에 10만주를 매도했다. 현금화한 금액은 456억원에 달한다.

특히 라 대표는 김익래 회장을 향한 저격을 이어갔다. 라 대표는 “주가 하락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김익래 회장 외에는 아무도 없다”며 “김익래 회장이 불장난하다가 산 하나를 태워 먹은 꼴”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또 주가 상승 기간 공매도가 꾸준히 이뤄진 점도 불법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는 “다우데이타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700억원이 넘는 공매도 행렬이 이어졌다. 수사당국은 공매도에 필요한 증거금이 확보된 상태였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익래 회장은 지난 3일 블록딜 거래명세서를 공개하며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한 사실이 없음을 입증했다.  

라 대표는 김익래 회장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금융·사정당국 등에 진정서를 넣어 손해배상을 받을 계획이다. 그는 “김익래 회장이 승계 목적으로 (증여세를 낮추기 위해)다우데이타 주식을 대량 매도해서 주가 폭락을 유발했다”며 “이달 안에 자본시장법상 시장 교란 혐의로 김익래 회장을 민형사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교란
진실게임

김익래 회장과 키움증권 측 또한 라 대표를 고소하면서 양측의 소송전이 시작됐다.

김 회장과 키움증권은 지난 2일 라 대표를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고소인 김익래 회장과 키움증권은 고소장에 “해당 주식 매도는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고, 관련 공시도 모두 이행했다”고 적었다.

이어 “(고소인이) 주가조작세력과 연계된 사실은 전혀 없고 피고소인 라덕연도 어떠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라덕연은 자신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마치 김익래 회장이 위법행위를 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나아가 모종의 세력과 연계해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위 주식의 가격을 폭락시켰다는 것은 그룹 총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전혀 근거 없는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김익래 회장이 키움증권을 동원해 주가를 움직였다는 주장에 관해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이들은 “해당 주식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 키움증권이 인위적으로 반대매매를 실행했다는 취지의 라덕연 발언은 실시간으로 자동 실행되는 CFD(차액결제거래) 반대매매의 구조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며 “키움증권이 주가조작을 하거나 주가조작 세력과 연계됐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신용을 심각하게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키움증권 측은 이후로도 이번 사태에 관한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와 모함이 이어지면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공지했다.

양측 주장이 확연히 엇갈리는 상황이지만,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양측 모두 주장의 신빙성에 흠집을 낼만한 과거 행적을 지적받았다.

라 대표는 과거 거짓 이력을 내세워 투자자를 끌어모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라 대표는 2019년 3월 ‘돈으로 돈을 버는 자산주’라는 주제로 투자 세미나를 열었다. 그는 강사 소개에서 자신이 동국대 정보관리학과(현 경영정보학과)를 졸업해 국민대 대학원 경영정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수상한
과거 이력

또 주요 경력으로 ‘전 안철수연구소 근무’ ‘<한국경제TV> 패널’을 내세웠다. 하지만 안랩 측은 자체 시스템에 라 대표의 근무 이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국경제TV> 역시 “라 대표는 6∼7년 전 1∼2회 투자 패널로 나왔을 뿐”이라고 밝혔다. 라 대표가 투자 세미나에서 자신을 ‘주식·선물·옵션 증권방송 경력 10년’이라고 소개한 것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김익래 회장은 과거 수상한 주식거래 흐름이 재조명되면서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익래 회장은 지난해 6월23일부터 9월26일까지 총 스물한 차례에 걸쳐 다우데이타 주식 3만4855주를 집중 매집했다. 2008년 4월22일 이후 약 14년 만에 다우데이타 주식 매입에 나선 것이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다우데이타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부터 2월 사이 주가가 4배가량 급등한 것이다. 1만원 초반 선을 유지하던 주가는 한 번 5만원 선을 넘긴 이후로 5만원 안팎을 오갔다. 그러던 중 이번 사태가 닥치면서 주가는 1만원 중반대까지 내려앉았다.

의문이 남는 것은 김익래 회장의 주식 매입 시점과 그 배경이다. 주가 상승 직전까지 주식을 집중 매집하던 김익래 회장은 정작 주가가 확연한 상승세를 타는 와중에는 주식을 사지 않았다. 그리고 고점이 끝나는 정확한 시점에 대규모 처분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래 회장이 지난해 주식 매입에 나선 이유는 추측하기 어렵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뚜렷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의 통상적인 매입 사유인 경영권 방어와 시세차익 기대 모두 해당 사항이 없었다. 매입 직전 김익래 회장은 자신 명의로 지분 26.57%을 소유한 상태였다.

둘 다 석연찮은데…과거 행보 논란 
금융·사정당국 즉각 진상조사 착수

오너 일가의 지분을 합치면 67.05%로,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별다른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금융업계 중론이다. 

지난해 이전까지 다우데이타 주가는 몇 년 동안 1만원대에서 횡보했다. 급히 긁어모을 정도로 시세차익이 기대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영지표도 악화된 시점이었다. 지난해 6월 말 나온 다우데이타 반기보고서를 보면 당시 영업이익은 4157억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 기록한 6983억원 대비 40.5% 급감한 수준이다.

결국 김익래 회장 측은 금융당국의 집중 점검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국회 정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서 SG증권발 폭락 사태에 대한 현안 보고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의 CFD 관련된 주요 증권사들에 대한 검사 방침 또한 보고됐다. 관련 검사 대상에는 ▲개인 전문투자자 여건 및 규정 준수 ▲고객 주문 정보의 이용 ▲내부 임직원의 연루 여부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금감원이 첫 검사 대상으로 키움증권을 선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익래 회장의 주식거래 배경을 살피기 위해서다. 금감원은 검사 과정서 임직원의 CFD 거래 관련 연루 여부를 따져볼 방침이다. 김익래 회장이 사전정보를 알고 매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김익래 회장이 키움증권 등기이사인 것과 연결될 수 있는지도 따져볼 예정이다.

검찰은 이번 사태서 관련 기업의 대주주들이 개입됐는지도 확인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김익래 회장뿐만 아니라 관련 기업의 대주주들이 소환조사를 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막대한 
시세차익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던 김익래 회장은 지난 4일 저녁, 돌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회견서 “높은 도덕적 책임이 요구되는 기업인으로서 한 그룹의 회장으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수사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키움증권 이사회 의장직서 사퇴하고, 다우데이타 주식 매각대금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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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