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모여 있어서 각종 행사가 많다. 그렇기에 더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다. 이들이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해도 부딪히는 것이 있다. 바로 ‘성인’이라는 점이다. 또 해외로 입양된 사람이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오면 ‘개인정보’의 벽에 부딪힌다.
“사람을 찾습니다. 사례금 있습니다. 20대 남성(여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처럼 실종 전단지에는 실종된 사람의 이름, 실종 일시, 실종 장소, 신체 특징, 실종 당시의 복장, 실종 경위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보통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수단으로, 자녀를 찾는 부모가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 SNS에도 ▲부모가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 ▲그리운 사람을 찾는다 ▲사기꾼을 찾는다 등의 글이 종종 올라온다.
연기처럼
증발하다
반대의 상황도 목격된다. 해외로 입양된 경우다. 실종 아동이었던 김씨는 10살에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친가족이 누군지 궁금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가족을 찾을 수 없었다.
김씨는 “내 이름은 Suzy Batteau다. 한국 이름은 ‘김숙희’다. 1975년이나 1977년 5월13일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1983년 5월13일 오후 2시경 경남 진주시 ○○동 길가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됐으며, 뇌성마비로 다리 한쪽이 불편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위 두 가지 상황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찾고 있는 사람’이 성인이면 실종 이후 경찰에 신고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2월3일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 해에 무려 성인 6만명의 실종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신고 시 ▲18세 미만 아동 ▲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 ▲치매 환자는 즉각적으로 경찰 수사가 이뤄지지만, 성인일 경우는 사례별로 대응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성인 실종자에 대한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해당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이 지난해 12월9일 단순 가출인으로 관리됐던 실종 성인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개인 위치정보 및 이동경로 정보 조회 등 수색을 위한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실종 성인의 발견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다.
법안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실종 성인이 범죄에 연루됐거나 자살 징후가 포착되지 않으면 위치정보 조회 등 수색을 위한 조치가 불가능하다.
사라지는 19세 이상 1년에 6만명
사회복지사 요청으로 극적 상봉도
연보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에 대한 실종신고인 가출인 신고 접수는 2019년 7만5432건, 2020년 6만7612건, 2021년 6만6259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미해제 건수는 2019년 492건, 2020년 645건, 2021년 931건으로 매년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접수된 ‘실종아동 등’에 대한 신고 건수의 1.71배다. 18세 미만 아동,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치매환자를 찾는 실종신고 건수는 2019년 4만2390건, 2020년 3만8496건, 2021년 4만1122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에 실종신고가 접수된 성인 가운데 매년 1000여명이 숨진 채 발견된다. 최근 5년간 사망한 가출인은 2018년 1773명, 2019년 1695명, 2020년 1710명, 2021년 1445명, 지난해 1200명으로 집계됐다. 이 통계의 가출인에는 가출, 실종, 극단적 선택 의심, 연락두절 등이 모두 포함됐다.
A씨는 ‘동생이 가출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는 글을 온라인에 올려 실종신고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 엄마가 돌아가셨고, 동생이 대기업에 취직한 후 잘다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계속 쉬었다. 실업급여를 받고 쉬던 중 동생이 화장품 다단계를 시작했고, 내가 당장 그만두라고 해서 싸웠다”고 운을 뗐다.
이어 “동생과 함께 생활비를 내고 있었는데, 일을 그만둔 동생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동생도 생활비 때문에 제대로 돈을 써본 적 없는데, 동생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더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 동생이 가출한 지 3개월이 됐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금 동생의 카드 연체 금액이 700만원을 넘었다. 카드 담당자한테 전화해보니 본인이 전화하는 거 아니면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고 하더라.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핸드폰 번호가 맞는지 사정해서 물어봤더니, 핸드폰 번호가 바뀐 것 같다고 알려줬다”며 “동생은 자기가 잘못해서 가출했고, 이렇게 집에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런데 경찰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어른이
집 나가?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지만, 경찰에 신고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결론 내린 그는 흥신소를 이용해 동생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결국 동생의 빚을 갚고 있는 것은 A씨고 동생 카드를 연체해 정지시킬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할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실종신고 이후 실종자가 숨진 채 발견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12월, 60대 택시기사인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아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아들은 경찰에 “아버지가 6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30분 전에 카톡을 했는데 다른 사람인 것 같다”고 신고했다.
당시 아버지를 찾은 것은 경찰이 아니었다. 그날 오전 11시22분 “경기도 파주시 B씨의 아파트 옷장 안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신원 파악에 나선 경찰은 아파트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이 실종신고된 택시기사인 것으로 확인했다.
실종신고된 70대 남성이 사망 처리됐다가 무려 47년 만에 가족을 찾은 경우도 있다.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자신의 생년월일과 형제들의 이름, 졸업한 초등학교까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장기간 무연고자 신분으로 기도원과 사찰,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지난해 12월13일 대구지검에 따르면 충북의 한 지자체 사회복지과 담당자가 “70대 남성의 정확한 신원을 밝혀달라”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구지검에는 충북지역 검찰청에 없는 무적자의 호적 확인을 상시로 처리하는 ‘공익 대표 전담팀’이 있었다.
죽어서
만나다
70대 남성은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었지만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빨리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사회복지 담당자가 행정 전산망으로 여러 차례 지문을 조회해도 일치하는 인물이 없어, 환자 입원에 필요한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할 수 없었다.
해당 남성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말도 횡설수설했다. 전담팀은 경찰청 실종 수사팀과 함께 남성이 언급한 초등학교에 연락했고, 생활기록부의 존재를 확인했다. 학교 담당자의 도움으로 동창생들의 연락처를 확보한 전담팀은 그가 살던 마을까지 확인했고, 학교 소재 지역의 군청을 통해 마을 이장과 연락이 닿았다. 이 남성은 마을에 머물고 있던 그의 친척들과 통화하면서 마침내 가족을 찾았다.
전담팀에 따르면 70대 남성은 오래전부터 정신질환을 앓았고, 1975년 4월19일 27세에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 실종신고됐다. 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면서 1996년 법원서 실종 선고된 뒤 사망으로 처리됐다. 가족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다.
가장 힘든 경우는 한국서 해외로 입양간 뒤 다시 가족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오지만, 관계기관들의 비협조로 대부분 가족 찾기를 포기한다.
지난 3월, 46년 만에 한국을 찾은 C씨와 D씨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다시 유럽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남매인 두 사람은 지난 1977년 유럽으로 입양됐다. 원래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을 찾았다”는 연락은 출국 하루 전날에 날아들었다. 그것도 입양 기관이 아닌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던 것이었고 그렇게 친형제와 상봉했다.
가족 찾으러 한국 왔지만…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
두 사람은 입양기관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돕기는커녕 방해를 했다고 주장한다. C씨는 “해당 기관에 가족 정보를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개인정보라 줄 수 없다며 아동권리보장원에 연락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두 사람의 부모가 이미 사망했고, 형제들은 한국에 거주 중이라고 확인해줬다.
한국 가족들이 이들을 찾지 않은 것도 아니다. C씨는 “오빠도 해당 기관에 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남겨놓고 우리가 혹시 찾아오면 꼭 연락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관에선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만나지 못하게 방해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입양 관련 서류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1977년 입양 당시 유럽 입양기관서 받은 서류엔 부산서 태어난 고아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해당 기관서 받은 입양 관련 서류에는 다른 주소지가 적혀 있었고 부모 성명도 기재돼있었다. C씨는 “기관 담당자들은 당시에 자신들이 근무하지 않아서 모른다고 책임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가족을 찾는 일이 쉽진 않지만, 기적이 일어날 정도로 어려워서도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종 시 경찰 신고를 할 수 없다. 게다가 ‘개인정보’여서 가족을 찾을 수 있는 핵심적인 정보도 제공받기 어렵다.
반론도 존재한다. 성인에게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고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데 이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성인에게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어 집을 떠날 수 있다. 사생활의 자유 역시 있는데 가족들이 원한다고 위치 추적 등을 사용하는 건 위헌 요소가 다분하다”고 밝혔다.
경찰이 강제 실종 여부를 판단해 선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인 실종 사건의 데이터를 축적한 뒤 그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강제실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강제 실종이라고 판단될 경우 경찰이 보다 쉽게 위치정보를 파악하는 등 융통성을 부여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산 넘어 산
부모 찾기
입양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해외 입양을 줄이고 국내 입양을 늘려야 한다. 윤석열정부는 국내 입양 활성화 기본계획을 2026년에 수립하기로 했다. 입양 시 육아휴직을 제공하는 등 휴가·휴직제도를 개선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모든 입양기록을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해 입양인의 뿌리 찾기도 지원하기로 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춘천 초등생 실종 피의자
횡성 여중생 유인도
강원도 춘천 소재의 한 초등학교 여학생을 꾀어 충북 충주까지 데리고 간 혐의로 구속 기소된 50대 남성이 지난해에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12일 경찰에 따르면 실종아동법 위반 및 미성년자 유인‧감금 혐의를 받는 김모씨는 지난해 11월에도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
강원 횡성에 사는 중학생 A양에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접근한 뒤 자신이 사는 충주로 유인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막차 타고 집에 온다는 아이가 안 들어온다”는 가족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고 김씨의 충주 거주지에서 A양을 찾아냈다.
경찰은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실종아동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했지만 일부 혐의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실종아동법에 따르면 누구든 정당한 사유 없이 실종 아동(18세 미만)을 경찰관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채 보호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김씨는 지난 2월10일 SNS로 춘천에 사는 초등생 A양에게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 “잠을 재워주겠다”며 접근한 뒤 다음 날 자신의 거처인 충주 소태면 창고 건물로 데려갔다.
A양은 지난 2월14일 밤 어머니에게 메신저를 통해 “충주에 있다”고 알렸고, 경찰이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A양의 위치를 파악했다.
경찰은 당시 붙잡은 김씨를 지난 2월24일 구속해 검찰로 송치했다.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