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다. 관련 판결이 하나둘 나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실제 처벌 수위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특히 지난 26일에는 사상 최초로 원청 대표이사가 실형을 선고받으며 주목받았다. 이에 엇갈린 반응을 내비친 경영계와 노동계는 진행 중인 재판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운 모양새다.
지난달 26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이사 A씨가 1심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해 1월 말 법안이 시행된 이후로 원청 대표이사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징역 1년
이날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강지웅 부장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협력업체 대표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40시간을, 한국제강은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지난해 3월16일 경남 함안 한국제강 공장서 작업 중이던 60대 B씨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한국제강 협력업체 직원인 B씨는 해당 공장에 상주하면서 설비를 보수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B씨는 공장 크레인의 낡은 섬유벨트가 끊어지면서 무게 1.2t의 방열판에 깔려 숨졌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안전보건 관리체계 책임자 A씨가 ‘하도급업자의 산업재해 예방 조치 능력과 기술에 관한 평가 기준 마련’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 등 의무를 다하지 않아 B씨가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A씨를 비롯해 협력업체 대표, 한국제강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날 재판부는 “한국제강서 그동안 산업재해가 빈번히 발생했으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안전책임을 다하지 않아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며 “노동 종사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 지적대로, A씨가 실형을 선고받은 건 한국제강의 사용자 안전조치 의무 위반이 수년간 연달아 적발된 탓이 크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인 2021년 5월에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서 벌금 1000만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한국제강서 검수 업무를 담당하던 40대 노동자가 화물차에 치어 사망했기 때문이다.
시행 1년3개월 만에 1호 실형 ‘땅땅’
엇갈린 반응…긴장하는 건설사 CEO들
반면 앞선 ‘1호 판결’에서는 원청업체 대표가 집행유예, 현장 소장이 벌금형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온유파트너스의 경기도 요양병원 증축 공사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한 명이 추락사했다. 이와 관련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온유파트너스 대표에게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안전관리자인 현장 소장은 벌금 500만원을, 온유파트너스는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온유파트너스가 안전대 부착, 작업계획서 작성 등 안전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했다”며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해 보다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데 상당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양형 결정에 있어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진정 어린 사과를 하고 보험금을 지급한 점’ ‘재발 방지를 다짐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두 사건의 처벌 수위는 사뭇 다르지만, 재판부가 원청업체 대표의 책임까지 인정한 것은 공통점이다. 법원이 “하청업체뿐 아니라 원청업체 대표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조치 의무가 있는 사업주”라는 검찰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 이해당사자인 경영계와 노동계는 각기 다른 관점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근거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호소했지만, 반대로 노동계는 “실형 선고는 의미가 있지만 양형기준이 너무 낮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총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례는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돼 형사처벌을 받은 두 번째 판결”이라며 “대표이사를 법정 구속하는 징역형의 형벌이 내려지고 원청이라는 이유로 더 무거운 책임이 부과됐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너무 가혹” VS “형량 적다”
재판받는 14건 결과에 주목
경총은 “현장의 안전보건조치 여부를 직접 관리·감독할 수 없는 대표이사에게 단지 경영 책임자라는 신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엄격한 형벌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청도 하청근로자의 안전 확보를 위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겠으나 고용계약 관계 및 지휘·감독 권한이 없는 원청에게 더 엄한 형량을 선고한 것은 형벌체계의 균형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은 “중대재해가 반복 발생했음에도 법 위반이 지속돼왔던 한국제강의 경영책임자에 대한 실형 선고는 당연한 귀결이며 매우 의미가 있다”고 논평했다.
그러면서도 “반복적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이었음에도 검찰은 2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최저형량인 1년 실형 선고에 그쳐 산업안전보건법보다 낮은 구형과 양형의 선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시민단체 중대재해전문가넷이 온유파트너스 판결 직후 “경영책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은 점은 의미 있었지만 처벌 수위는 이전의 판단을 벗어나지 못한 판결”이라고 평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제 경영·노동계의 시선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다른 사건들의 처벌 수위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총 14건이다. 법안 시행 후 약 1년간 답보상태에 놓였던 것으로 평가받았던 ‘시행 초반 위반 사건’들의 법적 절차도 점차 진전을 보이는 중이다.
한국제강은?
이를테면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를 일으킨 삼표산업은 지난 3월31일 그룹 총수가 기소되면서 재판 절차가 본격화됐다. ‘1호 기소’ 사건인 두성산업 건은 아직 위헌법률심판제청 절차가 진행 중이긴 하나, 26일 대표이사의 공판이 열렸다. 두성산업에선 지난해 2월 직원 16명이 유해물질 ‘트리클로로메테인’에 의해 독성간염 피해를 입었다. 두성산업 대표이사는 유해물질을 취급하면서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조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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