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영등포구청이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해당 업체의 A 대표가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과 사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지방자치단체는 세금 사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특정 금액 이상의 계약을 공개입찰에 부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실무자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들어가는 계약의 경우, 이를 공개해 일반입찰에 부쳐야 한다.
불법? 편법?
그러나 여기에는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같은 법령 말미에는 계약의 목적과 성질, 규모 및 지역 특수성 등을 고려해 계약 당사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면 특정 업체를 임의로 지명해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예외 조항은 그동안 많은 지방단체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몰아줄 때마다 근거로 사용돼왔다.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고 정해놓은 금액의 상한선만 지키면, 한 업체에 얼마든지 일감을 몰아줄 수 있는 구조기 때문이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26조에 따르면, 경쟁에 부쳐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될 때, 추산가격이 2000만원 이하인 물품의 제조 및 구매 또는 용역계약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비교적 주관적인 기준과 애매한 상한 금액 때문에, 그동안 몇몇 지방단체에서는 금액이 큰 규모의 계약을 2000만원 이하의 계약으로 낮춘 뒤, 여러 개의 계약을 하는 이른바 ‘수의계약 쪼개기’ 수법이 기승을 부려왔다.
주로 대규모 공사에서 알음알음 행해져 오던 ‘수의 계약 쪼개기’가 지난해 구정 활동 등에서도 벌어진 모양이다. 지난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후로 영등포구청은 A 정치 컨설팅 업체와 수차례 용역계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했다.
구청 홍보를 위한 영상 제작, 인플루언서 마케팅 등에 구 예산이 투입된 것이다. 투입된 예산의 규모는 모두 2000만원 아래로 수의계약 조건에 아슬아슬하게 부합되는 금액이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영등포구청의 수의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15일 영등포구청은 2022구정인식 조사 용역에 1990만원가량을 A 업체에 지급해 ‘구정인식 조사 용역’을 맡겼고, 3월22일과 23일에는 ‘구정 홍보용 기획영상 제작’과 ‘인플루언서 협업 영상 제작’을 맡겨 각각 1500만원, 1900만원을 A 업체에 지급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 특정 업체에 일감
1990만원, 1500만원, 1900만원…한도 맞춰
영등포구청이 A 업체와 맺은 계약은 모두 상한 금액인 2000만원을 간신히 넘지 않는 금액으로, 두 달간 해당 업체에 몰아준 금액을 모두 합치면 5000만원이 넘어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법률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법’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의 계약 쪼개기’는 법령에서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이를 직접 담당했던 영등포구청 홍보미디어과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홍보제작물을 A 업체서 먼저 제안해왔고, 회의를 거친 후 최종 결재가 떨어졌다”며 “그 과정에서 어떤 외압이나 부당한 경우는 없었다. 모두 구청 홍보에 도움된다는 판단하에 이뤄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분리 발주를 넣게 돼 해당 용역이 두 번 잡히게 된 것일 뿐, 위법한 절차는 추호도 없었다. 요즘은 그런 분위기도 아니고 이렇게 차후에 문제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영등포 구청 측은 구정 인식조사 용역도 A 업체와 세 차례 계약을 맺었다. 영등포구청은 해마다 여론조사 업체를 선정해 구정 인식조사를 실시한다. 이는 구민들의 여론을 바탕으로 구청의 운영 방향 설정을 위한 조사로, 정책에 여론을 반영하기 위해 진행돼온 연간 단위 사업이다.
그러나 민선 7기로 임기를 시작한 채 전 청장 체제하에서 실시된 네 번의 인식조사 중 세 번이 A 컨설팅 업체를 통해 이뤄졌다. 특히 A 업체와 계약 후 조사 비용이 상향된 점도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당시 실무를 맡았던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절차상의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전 구청장과 대표 친분 작용?
구청 측 “모든 절차 문제없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1차는 다른 곳과 계약했고, 2, 3, 4차를 A 업체와 진행한 것을 확인했다”며 “실무자들은 매해 업체 선정을 위해 여러 곳에서 추천도 받고 팀장과 과장급들이 모여 회의한 후 결정한다. A 업체와는 2차 때부터 사업을 진행해왔고, 성과물과 금액 타당성이 모두 부합해 계속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올해는 해당 업체와 할지 안 할지 두고 볼 것이지만, 매번 절차에 입각해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2차 구정 인식 조사에서 A 업체에 일을 맡겨 사업을 진행했더니 결과물이 나쁘지 않아 그 이후에도 계속 조사를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금액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서도 합당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표본집단이 900명에서 500명으로 줄어들었음에도 (조사 비용이)커진 것을 두고 의혹이 제기된 점을 안다.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니 조사 방식에서 더 수준 높은 방식인 FGI로 행해졌다”며 “FGI는 쉽게 말해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 토론을 벌여 정보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인건비가 다른 여론조사보다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A 업체는 지난 3년간 구청의 용역을 받고 FGI 방식의 여론조사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과 A 업체의 대표 P씨와의 관계다. 채 전 청장은 최근 P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본인의 정치적 소신을 홍보하는 등 두 사람의 사적인 친분이 세간의 의심을 사고 있다.
“모른다”
홍보물 제작과 구정 인식조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천만원의 대가를 받아 간 A 업체 대표는 현재 제3의 인물로 바뀌어 있다. 채 전 구청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업체가 어딘지는 알고 있으나 사업자 선정 과정에 개입한 일이 없고, 실무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모른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