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박 신기루 ‘캥거루 온천랜드’ 추적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20 09:15:37
  • 호수 14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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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에 호텔 짓고 온천 판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워너비그룹이 충남 공주서 온천 개발 중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해당 지역은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투자자들 사이서 온천이 그린벨트 지역이라고 소문나자 유튜브 등 홍보 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지금은 워너비그룹의 자회사 이름을 투자자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바꾸는 중이다.

재단법인은 일정한 목적에 의해 모여진 재산으로 구성된다. 설립자가 생전에 재산을 내놓은 경우, 그 재산은 법인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법인의 것(소유)이 된다. 재단법인은 모두 비영리로, 민법 제32조에 따라 재단법인을 만들려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비영리 재단법인은 목적사업에 대해 개인·법인 등에 기부금을 받아 사업에 사용한다. 이처럼 재단법인은 기부금을 받기 때문에, 공익법인으로서 회계 등에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한다.

문체부에
없는 조직

워너비그룹에서도 재단법인을 운영한다. 워너비그룹 전영철 대표이사가 캥거루재단을 2019년도에 설립했고 회장을 맡고 있다. 전 대표이사는 각종 미디어와 워너비그룹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워너비그룹 설립 목표를 발표했다. 

워너비그룹 홈페이지에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워너비그룹의 설립 목적은 약한 이웃인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위기가정 청소년을 품기 위함이다. ‘자생적 복지 시스템’이 곧 워너비그룹이 추구하는 것이기에 지주회사인 워너비데이터㈜의 모든 지분과 수익 배당은 복지재단에 예속돼있다”고 적혀있다.


즉, 워너비그룹의 수익은 고스란히 캥거루재단에 소속되는 셈이다. 캥거루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나온다.

캥거루재단 인사 글에는 “캥거루재단은 ‘약한 이웃(위기가정 청소년)을 품고 점프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2009년부터 시작됐다. 이제야 그 기틀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어느 날 방과후 초등학교 운동장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엄마가 식당에 다니는 편모 가정 아이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가지 못해 학교 운동장에 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캥거루재단은 이런 아이들을 위해 2009년부터 학원, 피자집, 미용실 등으로부터 생활 콘텐츠를 기부받아 아이들에게 제공했다. 16개 교육청과 연계해 1만3000여명의 아이들 명단을 받았고, 지역 목회자 3500명을 지부장으로 선정해 아이들을 돌보도록 했다”.(중략) “캥거루재단은 고정 지출이 짜여 있는 정부자금과 지자체 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캥거루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귀하의 관심과 후원이 더해져 소리 없이 울어야 하는 아이들이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후원을 촉구했다. 

이 같은 캥거루재단의 움직임은 박순선 캥거루재단 이사장과 전 대표이사의 인터뷰서도 나온다. 이 영상은 워너비그룹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다.

충남 공주시 온천리 개발 추진
알고 보니 불법 다단계 워너비

전 대표이사는 “워너비그룹은 기존 기업과 다른 사회운동을 하는 그룹이다. 한국에는 위기가정 어린이가 50만명이 있다. 이런 아이들을 지역사회가 잘 교육하고 보살펴야 한다”며 “우리 기업은 이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회사 수익으로 아이들이 상처 없이 자라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워너비그룹은 캥거루재단을 위해 존재하는데 운영비가 많이 든다. 처음 신생된 법인은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을 내려주지 않고, 주더라도 1억원 이내로 준다”며 “그런데 우리를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불법’ 다단계가 아니다. 다단계는 투자자를 버리고 도망쳐서 문제인데, 우리는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피해자도 없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장 역시 전 대표이사와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펼쳤다. 

박 이사장은 “워너비그룹은 설립 목적 자체가 자생적인 복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외부 지원금이 없어도 돌아가는 것인데 안티 세력이 많이 생겼다”며 “취지를 왜곡해서 전달한다. 내가 너무 속상해서 하나님께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요. 이럴 수는 없잖아요’라고 기도했더니 예수님도 핍박받으시고 오해받았는데,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당연한 절차다. 어떤 사람은 우리 취지가 너무 대단하고 세계적인 일이라고 하거나 사이비라더라. 새벽예배 때 기도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내고 있다”고 언급했다. 

워너비 수익
캥거루재단으로

이들 주장을 종합해보면 캥거루재단 운영은 워너비그룹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의아스러운 점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허가한 비영리법인에 ‘캥거루재단’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자인 전영철, 박순선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워너비그룹은 온천 개발을 홍보했다.

최근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워너비그룹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에는 “현재 온천랜드는 850까지 파 내려가고 있고 곧 온천수가 터지면 대박이다. 땅을 지하 1000m 파고들어 가면 35도 온천수가 나오는 것을 100% 확신한다. 150m에서 20도 온천물이 나왔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빨간 흙이 나오면 35도 온천이 나오는데, 이미 빨간 흙이 나왔다고 한다. 그럼 호텔을 지을 수 있다.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황 온천이 나오도록 기도해달라. 온천수가 하루에 4000t 나올 것으로 보인다”는 글도 있었다.

워너비그룹이 홍보 중인 온천은 ‘충남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 산21-번지’에 위치한다. 이름은 캥거루 온천랜드다. 워너비그룹은 이곳의 5만평 중 1만평을 우주와 같은 모양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당시 올라온 설명에는 “돔 형태의 글램핑이 현재 30동 지어져 있고, 기타시설 등 온천수를 활용한 국제급 글램핑장이 공사 중”이라며 “계룡산 준령에 세계 최초 온천수를 활용한 국제급 글램핑장이 들어서는 경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룡산 동쪽 준령으로 금강을 휘감아 도는 천혜의 요지에 세계 최초로 예상되는 우주형 글램핑장을 캥거루재단이 설립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현재 준공률은 98%로 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곳은 백제시대부터 온천이 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온천리로 불리는 곳”이라고 했다.

“곧 터진다”
이상한 소문


아울러 “캥거루 온천랜드는 캥거루재단이 품어 함께 뛰는 아이들에게 치유와 힐링 공간 겸 호연지기를 다지는 산촌 학교가 될 것이다. 워너비그룹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임직원들에게는 재충전의 장소로, 지역 시민들에게는 여가 선용의 장으로 긴요하게 활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자연과 온천이 만나는 최적의 힐링 장소인 캥거루 온천랜드에 아낌없는 사랑과 격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청했다.

워너비그룹 투자자들은 환호했다.

이들은 “캥거루 온천랜드, 꼭 대박날 겁니다” “캥거루 온천랜드 오픈하면 빨리 가족들과 체험하러 가고 싶다. 선한 기업이 선한 일만 하니까 정말 좋다. 우리 모두 워너비그룹을 응원한다” “캥거루 온천랜드는 전 대표이사의 작품이다. 레저공간까지 준비하는 탁월함에 놀랐다. 펑펑 쏟아지는 온천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뻥 날아갈 것 같다” “워너비그룹을 제대로 알고 쭉 가다 보면 머지않아 엄청난 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린 워너비그룹에 탑승한 행운아들”이라는 등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직접 온천랜드에 방문한 듯 블로그에 글을 올렸고, 전 대표이사는 언론에 나와 온천랜드를 홍보했다. 앞서 언급했듯 캥거루 온천랜드 글램핑 수영장 돔 하우스는 지난 2월28일에 준공했고, 향후 모든 개발을 마치게 되면 동학사 주변은 중부권 최고의 글램핑 온천랜드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말한 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워너비그룹이 말했던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 산21-1번지’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인 곳이었다. 

개발제한구역 안에는 건축물의 신·증축, 용도변경, 토지의 형질 변경, 토지 분할 등의 행위가 일체 제한하며, 개발제한구역 지정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서 국민 생활의 편익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로 허가권자의 승인이나 허가받을 경우 개발행위를 할 수 있다.


“개발 허가 수리된 사항 없다”
투자자 유혹 홍보 돌연 중지

그렇다면 캥거루 온천랜드는 어떤 상황일까? 이에 대한 해당 지자체인 공주시의 공식 답변이 나왔다. 민원 내용은 ‘캥거로온천에 대한 사실관계 문의’로, 공주시는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 산21-1번지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다. 현재 이곳에 대한 허가 신청이나 허가 수리된 사항은 없다.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 산21-1번지 인근인 반포면 온천리 2-4번지에선 야영장 시설사업으로 허가받아 공사 중이다. 온천 개발이 아닌 음용수를 위한 지하수 개발(관정파기) 허가를 받았음을 안내해드린다.”

이런 상황임에도 워너비그룹은 온천랜드 개발이 진행 중이라고 홍보했다.

워너비그룹 투자자 A씨의 “캥거루 온천랜드는 개발제한지역이라 온천수를 개발하는 게 아닌, 일반 음용수 지하수를 개발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룹 카톡 상담센터는 “그린벨트가 해제돼 공사 중이며, 온천수를 개발하는 것이 맞고, 현재 900m까지 파고 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100m만 더 파면 좋은 소식이 들릴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사실이 온라인을 통해 올라오자, 돌연 워너비그룹은 모든 캥거루 온천랜드 홍보 유튜브 자료들을 삭제했다. 다만, 전 대표이사의 언론 인터뷰 자료는 여전히 남아 있어, 워너비그룹이 캥거루온천으로 투자자를 모았다는 사실은 존재한다. 한 언론 매체는 워너비그룹의 캥거루 온천랜드를 두고 ‘노아의 방주’에 비유하기도 했다.

워너비그룹은 현재 또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 대표이사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블록체인사업인 ‘워너비체인소프트’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취재에
묵묵부답

한때 해당 업체에 투자했다던 B씨는 “불과 며칠 전까지 ‘워너비체인소프트’ 홈페이지 이름이 ‘에인트체인소프트’로 변경됐다. 대표 이름도 똑같고, 홈페이지 내용도 똑같은데 회사명만 바뀐 것”이라며 “워너비그룹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여전히 ‘워너비체인소프트’에 투자했다고 알고 있다. 회사명이 왜 바뀌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없다. 워너비그룹 단톡방에도 회사명이 바뀐 것을 한 번도 알린 적 없다”고 지적했다.

<일요시사>는 워너비그룹 홍보팀에 “캥거루 온천랜드의 땅이 그린벨트라고 들었다. 확인 부탁한다” “워너비체인소프트 이름인 에인트체인소프트로 바뀐 이유가 궁금하다” 등의 내용을 질의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워너비그룹 충격 실체’ 보도 후…
<일요시사>에 보낸 수상한 이메일

지난 6일 <일요시사>는 ‘불법 다단계 워너비그룹 충격 실체’를 보도했다.

기사 내용은 워너비그룹 대표이사가 한 교단의 목사며, 교회를 통해 워너비그룹을 키운다는 것이었다.

워너비그룹은 금융감독원이 불법 자금모집 업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기사 보도 이후인 지난 10일, 워너비그룹은 <일요시사>에 메일을 보냈다.

아래는 해당 메일 전문.

“워너비 그룹 홍보팀에서 문의사항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렸습니다. 기자님께서 2023년 4월6일에 작성하신 저희 기업 관련 기사 잘 봤습니다. 연락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기자님께서 사실에 근거해 작성하신 기사 글에 관해 약간의 수정이 가능하신지 여쭙고 싶고, 우리 그룹 차원에서 <일요시사>를 통해 광고 진행 가능 여부를 문의드리기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기사 정정 요청이나 기사에 대한 반박을 하기 위해 연락을 드린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광고 관련 부분을 편하게 생각해 주시고 회신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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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