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다단계’ 워너비그룹 충격 실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05 10:17:41
  • 호수 1421호
  • 댓글 7개

목사가 대표이사 권사·장로가 간부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금융감독원이 워너비그룹을 불법 자금모집 업체로 지목했다. 누가 봐도 투자자가 사라져야 정상인 상황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워너비그룹 B 대표는 한 교단의 담임목사로 재임 중이다. 워너비그룹 투자자들 역시 상당수가 교인이었다.

불법 다단계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불법 다단계는 강력한 사기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 피해자는 금전과 인간관계에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다.

금감원 주의
그래도 모집

문제는 가상자산을 이용한 신종 다단계 사기가 급증하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인 노년들이 타깃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 안정적인 경제력 등을 꿈꾸며 다단계 문을 두드렸던 노인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법 다단계 판매자는 주로 중년 이상의 남성이다. 반대로 피해자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고, 40대 이상 중년에게 주로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불법 다단계 사업 설명서에 가보면 60~70대 고령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인이 “투자는 하지 않아도 된다. 와서 설명회만 들어봐라”는 말에 설명회장으로 향했다.

대부분 다단계 사업 설명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이곳에 오신 분들은 운이 좋다” “여기서 우리 모두 부자가 되자” “대표를 믿고 기다리면 다들 부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업체와 다르다. 최신 기술을 이용해 원금을 보장한다” 등의 말로 사업 설명회가 시작된다.


사업 설명회는 보통 일주일 단위로 강의가 열리고,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도 열린다. 이 같은 불법 다단계 업체 10여개가 강남의 한 빌딩에 모여 있다. 곳곳에는 사기 피해를 본 투자자의 고성이 들린다. 

이런 업체 중 이미 금융감독원의 주의가 있었음에도 투자자가 늘고 있는 업체가 있다. 지난 2월10일 금융감독원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우면서, 플랫폼, NFT 투자 등을 통해 고수익이 가능하다고 유학하는 불법 자금모집 업체를 주의하세요!’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해당 보도자료는 ‘A 그룹’을 예시로 설명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A 그룹은 1구좌(55만원)에 투자하면 매일 1만7000원을 지급해 월 수익이 100%에 달한다고 홍보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특히 A 그룹은 일반인의 신뢰를 얻기 위해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킨 TV 광고와 강남역 대형 옥외 간판 광고 및 전국적인 사업설명회 등으로 투자를 유도했다. 전국적인 사업설명회에도 불구하고 A 그룹은 사업구조 및 수익성에 대한 검증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다.

‘유명 연예인’ 내세운 플랫폼 업체 
알고 보니 기독교 한 교단과 연계

그러나 자체 플랫폼 내 광고 이용권(NFT) 투자 시 고수익을 볼 수 있는 신사업이라고 홍보하면서 투자자를 현혹했다.

금융감독원은 “A 그룹은 판매수당을 별도로 지급하고 투자 금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수당을 지급해 거액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성이 없을 경우 신규 투자금을 재원으로 하는 폰지사기(돌려막기) 형태일 수 있다”며 “A 그룹의 자금모집 수법은 과거 불법 유사수신업체 등의 수법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A 그룹 가입자는 약 4만명, 피해 규모는 수천억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당국은 이와 관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고수익을 약속하며 자금을 모집한다면 유사수신·사기 ▲투자 전 반드시 제도권 금융회사인지 확인 ▲유사수신행위로 의심되면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금융감독원 보도자료 발표 이후, 언론 매체들은 A 그룹이 ‘워너비그룹’이라고 밝혔다. 워너비그룹은 ▲메타버스 및 블록체인 임대 서비스 ▲줄기세포 배양 기술을 이용한 의약품·코스메틱 ▲글로벌 명품 유통 ▲온천 글램핑 ▲행사 기획 등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같은 행태

문제는 금융감독원의 ‘주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워너비그룹 투자자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런 투자가 가능한 이유가 있다. 워너비그룹 B 대표이사가 기독교 한 교단의 ‘담임목사’이기 때문이다.

이 사항은 해당 교단의 목사가 남긴 글과 기독교 대학교수가 남긴 SNS 글로 확인된다. 이 글에는 B 대표가 해당 교단에 ‘12억원’을 기부했는데 이 기부 사실을 신문사에 알렸는지에 대한 것과 워너비그룹에 대한 의문이 함께 적혀 있다.

C 목사에 따르면, B 대표는 해당 기독교 대학 88학번으로, 워너비그룹에 목사·권사·장로가 깊숙하게 개입돼있다.

그는 지난 1월27일 자신의 SNS를 통해 “B 대표이사가 자신은 보증금 2000만원, 월 70만원에 사는 빈털터리라고 주장하는데 회사에 돈이 있어 주주들을 설득해 12억원을 기부했다.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B 대표는 계속 자신의 선의를 알아달라고 한다. 그런데 워너비그룹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광고에만 50억원을 썼다고 하고, 투자 회원만 4만명이라고 자랑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B 대표이사는 이미 2018년 워너비그룹의 전신인 C3W를 운영한 적 있다. 이때는 ‘자율순환 발전 플랫폼’을 내세워 ‘무한동력’을 실현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재 해당 회사는 폐업 상태다. 

회사 관계자와 투자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는 방치된 상태다. 투자자로 보이는 유저가 “운영하지 않느냐”고 묻자 다른 유저는 희망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곳 역시 다단계 형태로 투자자들을 모집했으나, 제품은 출시되지 않았다.

결국 B 대표이사는 불법 다단계 업체를 운영했고, 이 업체가 희망이 없자 곧바로 워너비그룹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말로만
이웃사랑


C 목사는 “2021년 교단서 문제를 일으켜 제명된 김모씨가 ○○교회 건축대금 3억5000만원을 빼돌려 몰래 투자한 회사가 B 대표이사의 C3W다. 당시 ○○교회 장로가 추궁해 B 대표이사는 차용증을 써주기도 했다. 결국 C3W는 사기로 판명 났다”고 B 대표이사의 과거 행적을 설명했다.

결국 B 대표이사는 C3W 사업이 기울자 워너비그룹을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 기독교 대학 D 교수는 워너비그룹서 운영하는 캥거루재단에 의문을 표했다.

D 교수는 “워너비그룹의 캥거루재단이 뭐하는 곳인지 이해가 안 된다. 보통 재단이라는 곳은 무엇을 돕기 위해 마련된다. 그래서 비영리재단을 생각한다. 그러나 문체부에 등록된 비영리재단 중 캥거루라는 이름의 비영리법인은 없다. 캥거루재단 홈페이지 연혁을 보면 최근 2년간 워너비그룹 내용만 있다”고 주장했다.

교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해당 글에 댓글을 남겼다. “자신도 교회서 워너비그룹에 관해 들은 적 있다” “오늘 지인이 젊은 개척교회 목사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이거였다. 알려준 사람에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등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후 해당 교단은 총회장 목사의 명의로 “최근 교단 목회자와 교회(성도)를 대상으로 금융(폰지)사기에 대한 접근이 있어 유의‧당부드린다. 일부 교단 기관에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하는 등 모 그룹의 행태가 문제가 돼 후원금을 반환하는 등의 혼란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며 금융사기 주의보를 발표했다. 

이어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도 깊이 개입돼있어 적극적인 피해 예방을 위해 거리를 둘 것을 요청한다. 금융사기의 특성상 뒤늦게 피해자가 나타나고, 피해자가 소송까지 가는 일이 쉽지 않아 사전에 대응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NFT 투자로 높은 수익 보장”
고수익 신사업 투자자 현혹
“집 담보로 대출받아 이사직”

아울러 “매우 허술한 구조인데 당장의 수익에 현혹돼 투자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에 다른 지인까지 끌어들이는 행태가 반복되면 안 된다. 주변에 이와 관련한 금융(폰지)사기에 연류된 분이 있다면 주의와 탈퇴를 부탁한다. 다시 한번 경계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워너비그룹 카톡 채팅방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이 카톡 채팅방 이름에 참여한 사람만 700명이다. 

이곳 회원은 “소리 없이 우는 아이들을 돕는다는 취지가 너무 좋아 집을 대출받아 이사직급을 가졌다. 빵 공장서 주야로 12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희망이 없었는데 희망을 밝혀준 워너비그룹에 큰 감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주일이라 교회서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이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냐는 대목이 꼭 내 이야기 같아서 많이 울었다”고 글을 남겼다.

결국 해당 글은 금융감독원과 소속 교단의 경고가 있음에도 워너비그룹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비단, 워너비그룹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의 장이 돼야 할 종교시설들이 사업을 위한 사람을 모으는 장소로 전락한 모양새다. 

교회는 왜 불법 다단계를 막을 수 없을까? 교회서 한때 청년부 사역을 했다는 E씨는 교회의 ‘이웃사랑’ 정신이 이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E씨는 “특정 종교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분명히 사기꾼들이 자기 마음대로 말하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측면이 있다. 3년 전 가족 중 크게 유행한 불법 다단계 업체에 돈을 넣은 사람이 있다”며 “말렸는데 계속해서 이상한 불법 다단계 업체를 이야기했다. 피해자 가족을 보면 유난히 교회가 많이 언급된다. 연령대를 보면 전형적으로 장로‧집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왜 이런 정보를 줬냐고 하면 ‘이웃사랑’으로 합리화한다. 내가 알게 된 정보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이라며 “또 한국 교회 커뮤니티가 워낙 끈끈해서 이런 불법 다단계가 침투하기 쉬운 구조”라고 부연했다.

묵묵부답
연락해도…

한편, <일요시사>는 워너비그룹 B 대표이사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당 그룹은 홈페이지도 없는 데다, 워너비그룹 소속인 캥거루재단에 기재돼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B 대표이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세종시 소재의 한 교회 역시 홈페이지가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B 대표이사는 최근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해당 교회 담임목사인 것과 캥거루재단을 운영한다고 밝혔지만 워너비그룹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해당 교회 유튜브 채널에는 4개월 전부터 B 대표이사의 설교가 올라오고 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