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대접’ 천대받는 공무원 현실

왕이 하인 대하듯 ‘깨진 철밥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바람이 열풍으로 변했다가 광풍으로 커진 뒤 미풍으로 가라앉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들어가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 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것은 늘었다. 문제는 ‘죽어서’ 나오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공무원의 나라’가 아니다.

최근 ‘공무원’과 ‘극단적 선택’이 제목에 엮인 보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면 지난 22일에도 새내기 공무원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확인된다. 사인은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됐다. 사망한 공무원은 충북도청 소속으로 지난해 7급으로 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버티기

공무원은 한때 ‘신의 직업’으로 불렸다. 경제 위기로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정년 보장’이라는 메리트로 각광받았다. ‘철밥통’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긴 했지만 이르면 40대부터 ‘희망퇴직’을 받는 사기업과 비교해 안정성 부분에 있어서는 가점이 주어졌다.

서울 노량진 등 학원가를 중심으로 공시(공무원 시험)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 공무원 열풍은 이제 미풍으로 변했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시험 평균 경쟁률이 31년 만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인사혁신처는 9급 공무원 공채시험 접수 결과 5326명 선발에 12만1526명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22.8대 1의 경쟁률이다. 이 수치는 1992년 19.2대 1을 기록한 이래 가장 낮다.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30대 1을 밑돈 해는 1992년과 지난해 그리고 올해뿐이다.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2011년 93.3대 1까지 치솟았다가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2년 연속 30대 1 아래로 떨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완만하게 떨어지다가 이제 줄어든 채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올해 지원자 수는 지난해 16만5524명에 비해 4만3998명 감소했다. 최근 5년간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2019년 39.2대 1에서 2020년 37.2대 1, 2021년 35대 1, 지난해 29.2대 1로 매년 떨어져왔지만 전년 대비 올해처럼 큰 폭으로 낮아진 적은 없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1990년대 이전에도 경쟁률 자체는 이보다 낮은 적이 있긴 했지만 채용 인원이나 당시 채용시장 분위기가 달라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면서 “1990년대 이후로 보면 이번이 1992년 이래 최저 경쟁률이고 30대 1 밑으로 2년 연속 떨어진 적도 사실상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9급 공무원 경쟁률 역대 최저
2년 연속 30대 1 미만 기록

경쟁률 하락의 이면엔 ‘경제’가 있다. 박봉의 월급이 지원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부동산, 코인,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렸다. 가상화폐 가격이 끝 모르고 올랐고 주식시장은 커졌다.

특히 집값은 고공행진을 벌였다. ‘벼락거지(상대적 빈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 등의 신조어가 생겼다. 

어떻게 해서든 내 집 마련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20~30대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집값이 끊임없이 우상향을 거듭하자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고 생각한 것. 그 움직임은 집값을 더욱 빠른 속도로 밀어 올렸다. 그러다 보니 근로소득이 직업 선택의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그런 관점에서 공무원은 취업준비생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공무원 시험 수험생을 위한 공직안내서>에 따르면 올해 기준 9급 초임(1호봉) 공무원의 월 보수는 236만원(연 보수 2831만원) 수준이다. 초과근무수당·가족수당·특수업무수당 등 각종 수당을 합친 액수다. 수당을 제외하면 월 177만원이다. 7급 초임은 월평균 보수 259만원, 월 봉급액은 196만원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내놓은 <공직사회 세대 가치관 변화와 조직혁신>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 공무원이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로 ‘낮은 보수’를 선택한 비율이 72.4%(복수응답)에 달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5~6월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1021명을 연령별로 나눠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기성세대(1981년 이전 출생자), 밀레니얼 세대(1982~1994년 출생자), Z세대(1995~2004년 출생자) 등으로 구분했다. 1982년 이후 출생자가 MZ세대다. 

MZ세대 박봉에 ‘절레절레’
하루 새 새내기 두 명 숨져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월급이 많이 오른다면서 ‘존버(끈질기게 버티다의 은어)’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제는 일정 수준까지 월급이 오르는 그 시기까지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새내기 공무원이 임용 후 얼마 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례가 많아졌다.

행정안전부가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에 제출한 ‘행정안전부 국가공무원 의원 면직자 현황’에 따르면 2018년 1만694명에서 2021년 1만4312명으로 자발적 퇴직자가 증가(33.8%)했다. 지방직 공무원의 경우 3610명에서 5202명으로 44% 늘었다. 자발적 퇴직자 수의 증가는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3년 미만 퇴직자 수는 2018년 5166명에서 2021년 9881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내놓고 있다. 김승호 인사혁신처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설문조사 등을 분석하면 경직된 공직문화와 낮은 보수가 (저연차 퇴직자 수 증가의)주요 원인으로 판단된다”며 “현재 MZ세대가 국가공무원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공직이 미래 역량과 경쟁력을 갖추려면 MZ세대가 매력을 느끼고 공감하는 공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MZ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수평, 자율, 공정, 워크 앤드 라이프 블렌딩(일과 삶의 조화)이라고 본다. 이런 특징을 반영한 공직문화 혁신과 기성세대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며 “능력에 따른 승진 기회 부여, 적극행정 즉시 보상, 저연차 공무원 처우개선 등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2일 2명의 새내기 공무원이 세상을 떠났다. 각각 20대, 30대 공무원은 대구와 충북 청주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세종시에선 4개월 새 공무원 3명이 연이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신의 직장?

공무원은 이제 더 이상 MZ세대의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경쟁을 거쳐 임용돼도 미련 없이 털고 나올 수 있는 직업이 돼버렸다. 그마저도 어려운 이들은 세상을 등지는 방식으로 공무원의 현실을 알렸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시했다.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죽어가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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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