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원내대표 자천타천 하마평

벌써부터 총성 없는 전쟁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 총성 없는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지난해 당선된 박홍근 원내대표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 민주당에 원내대표 선거의 의미는 사뭇 무겁게 다가온다. 각 계파는 각자 밀고 있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벌써부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의 임기가 끝나간다. 정당의 원내대표 임기는 1년으로, 지난해 3월 선출된 박 원내대표는 오는 5월 초까지 임기를 채우고 물러날 예정이다. 원내대표란 국회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의원을 일컫는 말로, 기존에는 원내 총무라 불리기도 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권한이 계속 강해지고 있는 당의 요직이다. 

3인3색 
본격 대결

원내대표는 중앙당의 조직과 기능을 축소시키고, 원내 중심으로 정당을 돌아가게 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 지도부에도 당연직으로 참여하게 돼있어 여러 모로 중진 의원들이 탐내는 자리다. 보통은 3~4선의 중진 의원들이 당선되는 것이 관례며, 선출 당시 가장 힘 있는 계파에서 배출되곤 한다.

당초 민주당은 박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시점인 5월에 원내대표 선거를 치러 공석을 메우려 했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흥행으로 끝나고, 이들의 원내대표 선거가 내달로 정해지자 민주당도 선거를 앞당길 채비를 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원내대표 선거를)다음 달로 앞당기자는 주문이 있었고,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아직 정해진 바 없지만 다음 달에 선거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원내대표 선거는 당시 정당의 헤게모니가 어딨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데,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친명(친 이재명)계가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며 승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선거에서 당선된 박 원내대표는 당내에 친명계의 좌장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박 원내대표의 정치적 뿌리는 동교동계를 기반으로 한 친문(친 문재인)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친문이 계파 갈등을 겪으며 둘로 갈라졌을 당시 박 원내대표는 끝까지 중립을 지켜 친문계의 색을 잃었다.

이후 그는 박원순계로 오랫동안 인식돼왔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후에는 어느 계파에도 확실한 색을 띠지 않았다. ‘외딴섬’이었던 그에게 손을 내민 건 같은 당 이재명 대표였다.

한 취재원에 따르면 여의도에 인맥이 없다시피했던 이 대표는 박 원내대표를 캠프에 영입하고 싶어 했고, 그는 이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확실한 이 대표의 오른팔이 됐다. 

대선 캠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실장직을 맡은 박 원내대표는 이후 이 대표에게 제기되는 여러 의혹을 정면에서 막아내며 그의 심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비록 대선에서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에게 패배하며 낙선했지만, 이 대표는 대선 운동에서 활약한 이들을 잊지 않았다.

전면으로 나서기 싫어하는 박 의원을 원내대표로 만든 것도 이 대표의 뜻이 컸다. 친명계에서는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마땅히 밀만한 후보가 없었다. 3선 이상의 중진이 맡는 자리에 어울리는 친명계 의원은 몇 없었고, 박 원내대표가 후보군으로 급부상했다.

이 대표는 여러 친명계 의원을 보내 원내대표가 되어달라고 설득했다. 선거 방식도 콘클라베 방식이어서 박 원내대표로서는 그들의 설득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심 바로미터 평가, 주류 계파가 배출
범친명계 홍익표 내세워 “무난이 무기”

콘클라베 방식은 교황선거에서 차용한 것으로 선거 후보등록 없이 무기명·무차별 투표를 원칙으로 한다. 선거가 시작되면 의원들은 본인이 찍고 싶은 의원 누구에게나 투표할 수 있고, 여기서 특정 후보가 과반을 하지 못하면 1, 2등 후보를 두고 결선투표를 치른다.

박 원내대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등을 차지해 결선투표로 향했고, 친문계에서 내세운 박광온 의원과 마지막 승부를 치렀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이때의 방식으로 원내대표를 뽑을 모양새다. 민주당은 이 방식을 도입한 이유로 ‘선거운동 과열 방지’를 들었다. 도입 당시 또한 민주당이 계파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던 탓이다. 후보 등록 후 후보들 간 비방전을 치르기보다 후보군 없이 선거하자는 게 도입 취지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사그라들지 않는 계파 갈등 속에서 미리 입후보를 받는 데 지도부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에 체포동의안 표결로 촉발된 ‘비명계의 반란’이 심상치 않았는데, 원내대표 선거는 그런 당내 분위기를 반영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온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선 이미 후보군이 정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몇몇 의원은 본인이 원내대표가 되고 싶다는 의견을 동료 의원들에게 피력하고 있고, 당 외부서도 이런저런 해석들을 곁들이며 원내대표 하마평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공공연하게 나온 원내대표 후보군은 6명가량이다. 직접 본인이 뜻을 밝힌 의원은 3선의 박광온 의원, 친정세균계의 좌장인 3선 이원욱 의원, 그리고 친명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3선의 홍익표 의원 등이다.

그 외에도 4선의 안규백 의원, 3선의 윤관석 의원, 재선의 김두관 의원 등이 후보군에 올라와 있으며 이들은 모두 원내대표 선거를 염두해 두고 물밑에서 치열하게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해진 
후보군

우선 친명계가 홍 의원을 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당초 친문계로 정치권에 입성했던 홍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신망이 매우 두터운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19대 총선서 절친으로 알려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역구에 출마했다.

결국 홍 의원의 여의도 입성 첫 도전은 임 전 실장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도전했던 꼴이 된 것이다.

이렇듯 홍 의원은 다소 ‘쉬운(?) 방법’으로 국회에 들어왔지만, 당내서 ‘정책통’으로 통할 만큼 누구보다 일을 많이한 인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자마자 원내대변인을 역임한 뒤,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연이어 선정됐다. 


초선 시절에 발의한 ‘국민 휴일에 관한 법률’은 아직도 회자되는 우수 법률로 인정받고 있고, 그 외에도 굵직한 노동과 유통법 등 대표발의 법률안만 40건이 넘었다. 홍 의원이 공동발의 법률을 모두 합치면 200건이 훌쩍 넘는다.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3선에 성공한 홍 의원은 이후 민주당 수석대변인과 정책위의장, 민주연구원장 등 민주당의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왔다.

그의 평판이 더욱 좋아진 계기는 지난해 초에 있었다. 홍 의원은 그동안 친구에게 물려받은 지역구인 서울 중·성동갑 지역구 대신 국민의힘 텃밭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을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해당 지역은 현재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역대 어떤 민주당 의원도 깃발을 꼽지 못했던 지역이다.

험지 출마 배경을 두고 홍 의원 측은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당의 모든 구성원이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당 안팎에서는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에 물고가 됐으면 한다. 지난해 재보궐선거부터 서울 지역에서 내리 졌는데, 그 배경을 살피면 강남과 서초 지역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뒤졌다”고 설명했다.

즉, 민주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본인이 몸소 실천하겠다는 것이었다. 홍 의원은 임 전 실장의 소개로 정치권에 입성한 것에 비해 계파색을 많이 띠지 않는 인물로 알려졌다. 친문도, 친명계도 아닌 중도로 인식돼온 그를 이번에 친명계는 원내대표 자리에 앉히려 하는 모양새다.

친명계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한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그쪽(친명계)이 이번에 많이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강한 친명색을 띠는 후보를 밀면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고 당 상황만 악화시킬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라며 “홍 의원은 당내에 ‘적’이 없는 인물로 유명하다. 친명계가 밀 수 있는 카드로선 최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골이냐
진골이냐

그는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 친명계가 비교적 적이 없고, 계파색이 옅은 후보를 찾아낸 것으로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친명계가 그분(홍 의원)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홍 의원이 막무가내로 친명계에 반기를 들 인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즉, 상대적으로 ‘문제 될만한’ 가능성이 적은 인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친명계가 걱정하는 것은 강한 계파색을 띠고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계파 인물의 당선이다. 현재 후보군 중 유력시되고 있는 이원욱 의원 같은 인물이다.

이 의원은 오랜 시간 동안 친명계를 견제해온 비명계의 대표주자다. 본래 정세균계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는 그는 지난 대선서부터 이 대표를 맹렬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에는 당 계파와는 상관없이 대권 후보를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전통이 존재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전에 어떤 갈등관계가 있던지 신경쓰지 않고, 대선후보의 당선을 위해 발벗고 나서왔다.

그런 오랜 민주당의 전통을 깬 인물이 바로 이 의원이다. 이 의원은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정해지자 우선 선대위 조직본부장에 이름을 올렸으나 몇 주 후에 개편된 선대위에는 합류하지 않고 방관했다.

그는 이 대표가 대선 패배 후 보궐선거에 출마하자 강하게 반대했으며, 지방선거 후 “이재명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합니다!”라는 글을 개인 SNS에 올려 비꼬았다. 지방선거서 민주당이 대패했지만, 이 대표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상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이후에도 사사건건 이 대표를 비판해온 이 의원은 현재까지도 친명계서 주시하고 있는 비명계의 주요 스피커다. 그런 이 의원이 원내대표에 출마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부터 나왔다. 그의 도전을 지도부 내에서는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선전포고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명계 이원욱 도전 눈에 띄어…그대로 분당?
친문계 박광온 재수 선언…불편한 동행 갈까?

민주당 소식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분당(分黨)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며 “이원욱 의원은 사실 이 대표와 함께 갈 수 없는 인물인데 그런 인물이 원내대표에 당선돼 지도부 회의에 들어간다면 날이면 날마다 총성 소리가 들릴 것이고 이 의원도 그런 역할을 하러 가는 줄 알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의원의 당선은 당의 주도권이 친명계에서 비명계로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이 의원 본인의 뜻만이 아니라 비명계와 중도에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반으로 갈라질 채비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대로 가면 분당”이라는 주장이 수차례 나온 민주당으로선 이 의원의 당선이 매우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그의 당선으로 친명계 일색인 민주당 지도부에 견제 장치가 들어간다는 의미는 좋게 평가받고 있다.

친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민주당은 본래 여러 목소리를 듣는 일에 익숙한 정당이다. (이 의원이 당선된다면)최근 친명계 일색인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일거에 잘라낼 수 있을 것”이라며 다소 희망섞인 관측을 내놨다.

한편 당내 일각에선 친문계 박광온 의원에 대한 기대도 존재한다. 비명계에선 이미 박 의원과 이 의원, 투톱체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지난 원내대표 선거에서 득표력을 입증받은 그가 결선투표에 갈지도 모른다고 해석한다.

박 의원은 홍영표 전 원내대표와 김종민 의원과 함께 대표적인 이낙연계 의원으로 손꼽힌다. 2014년 재보궐선거 당시 경기 수원정에 출마해 국회로 입성했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 당 대표 시절엔 비서실장을 지내 그를 지근거리서 도왔다.

또 이낙연 전 총리의 당 대표 재임 시절엔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돼 국회상임위원장과 사무총장직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했다.

친문계 의원들은 아직도 ‘성골 친문계’인 그가 원내대표에 당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교적 분당 가능성이 적고 계파색을 확실하게 낼 수 있으며, 이 대표와의 전략적 연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친문계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박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이)이 전 대표의 귀국이 약 3개월가량 남은 시점에서 친문계의 세력 규합을 도모할 수 있지 않느냐”며 “민주당은 유사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계속해서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귀국은 우리에게 좋은 카드인 것은 분명하다”고 해석했다. 

그가 말하는 유사시는 이 대표의 낙마를 뜻하는 것으로 친문계 의원들은 총선 전에 이 대표의 낙마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잇따른 최측근들의 극단적 선택과 검찰의 강한 기소 의지, 또 비명계 의원들의 반란 등은 현재 친문계에게 나쁘지 않은 조짐으로 읽힌다.

유사시
대비도

박 의원이 당선돼 지도부에 들어간면 그들이 말하는 ‘유사시’를 위한 대비도 치밀하게 설정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안규백·윤관석·김두관 의원은 각자의 색깔을 자신하며 본인이 원내대표의 적임자라고 믿고 있다. 친명계의 파란이 비명계의 반란으로 다시 잠잠해질지, 혹은 내년 총선까지 친명계 일색의 지도부가 이어질지 내달 중순쯤 정해질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