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자체들이 앞다퉈 유튜브에 뛰어든 지도 몇 년이 지났다. 대부분은 여전히 외면받고 있지만, 나름의 ‘필승법’을 찾아내 흥행에 성공한 채널이 더러 목격된다. 일명 ‘B급 감성’을 담은 영상으로 딱딱한 분위기를 깨고, 재미와 정보를 한 번에 전달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역시 과유불급. 자칫 선을 넘는 우를 범하면 ‘적극 행정’이 아닌 ‘인력 낭비’로 치부되기 일쑤다.
“요즘 지자체들끼리도 유튜브 경쟁 빡세요(치열하다). 구독자니 조회 수니 이거 엄청 신경써요.” “누가 신경쓰나고요? 누구긴 누구겠어요. 높으신 분들이지.” 서울 강서구가 지난달 전국 최초로 선보인 ‘공무원 버튜버’가 첫 영상에서 남긴 말이다. 버튜버라는 최신 트렌드에 B급 감성, 직장인의 현실 애환까지 담아낸 영상에 조회 수가 폭발했다.
조회 수 폭발
여기서 버튜버란 버츄얼 유튜버(Virtual Youtuber)의 줄임말이다. 카메라 및 특수장비를 이용해 화면 속 캐릭터가 사람 모습을 따라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이 캐릭터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강서구는 자체 캐릭터 ‘새로미’를 의인화한 모습으로 버튜버를 제작했다. 지난달 21일 공개된 첫 영상에는 버튜버의 탄생 배경과 강서구 관련 정보가 담겼다. 버튜버를 맡은 공무원은 이를 익살스러운 농담을 곁들여 풀어냈다.
이날 공개된 영상은 지난 2일 오후 기준 조회 수 11만회를 돌파했다. 버튜버 영상이 올라오기 전까지 9000명 정도였던 강서구청 채널 구독자는 1만3600여명까지 급증했다.
이처럼 지차체 채널이 ‘공직사회는 딱딱하다’는 통념을 깨는 영상 제작에 너도나도 나서게 된 것은 앞서 충주시의 성공사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각종 인터넷 밈을 패러디한 영상이 꾸준히 올라왔다. 최다 조회 수 영상은 조회 수 821만회를 넘어선 ‘공무원 관짝춤’으로, 코로나19 유행 당시 방역지침을 유쾌한 방식으로 안내하는 내용이다.
현재 충주시 공식 유튜브 구독자 수는 29만명이 넘는다. 이는 충주시 인구(20만8149명)를 훌쩍 뛰어넘는 숫자다. 채널 편집을 담당하는 김선태 주무관과 조길형 충주시장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어 SBS 예능 <지옥법정>에 동반 출연하기도 했다.
충주시 이어 서울 강서구도 유튜브 화제
필승법은?…B급 감성에 정보 전달 녹여내
강서구 버튜버 역시 충주시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강서구 버튜버는 영상서 “혹시 이거 보고 계신 분 중에 살고 있는 시·군·구 유튜브 구독하고 있다 손!”이라고 한 뒤 “없을 거예요.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 충주시 유튜브 구독하시는구나!”라며 “사실 (김선태)주무관님이 너무 센스나 편집점 잡는 게 뛰어나셔서 저희가 고민이 크다. 아마 전국 지자체 다수의 홍보과 직원들이 이분 때문에 이를 갈고 있지 않을까. 농담입니다, 농담”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반면 무리한 기획으로 구설에 오르는 지자체도 더러 나온다. B급 감성에 대한 수요를 잘못 파악한 결과다. 철저히 기획된, 고의적인 ‘엉성함’과 이에서 비롯되는 마음 편한 재미가 아니라 저급함에 초점이 맞춰진 B급은 ‘공격 대상’이 되기 일쑤다.
영상을 올린 이가 철저한 도덕성을 요구받는 공직자라는 점에서, 비판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이와 관련해 가장 최근 논란을 빚은 지자체는 전라북도다. 전북도는 지난달 15일 오전 공식 유튜브에 2023년 전북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 대회(이하 아태 마스터스) 홍보 영상을 게시했다가 오후 들어 삭제했다. 2분41초의 짧은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된 영상의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이날 전북도 관계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잠시 내렸다”며 “추후 보완작업을 거쳐 영상을 다시 게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달 초에도 해당 영상은 다시 올라오지 않은 상태다.
새로운 시도? 예산 낭비? 엇갈린 사례
‘선 넘는’ 내용 담았다가 물의 빚기도
해당 영상에는 단 한 번도 이성을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중년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마음에 드는 여성과의 소개팅에서 거절당한 뒤, 어린 조카에게 “여자를 만나려면 운동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이후 영상은 그가 용기를 내 아태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하고, 열 살 차이 나는 소개팅 여성과 연애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중간에 대회 일정과 종목 등 정보 제공용 자막이 삽입됐지만, 주된 내용은 중년 남성이 아태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하고 20대 여성과 연애하게 됐다는 것이다.
영상 촬영은 전북도청과 주변 카페, 길거리 등에서 약 한 달간 이뤄졌다. 제작비는 1000만원 남짓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도는 “일부러 ‘B급 감성’을 의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적절성 시비가 일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공인한 국제대회 홍보 영상서 여자 만나려고 운동한다는 줄거리가 적절하느냐”는 지적과 함께 “내용이 너무 허술하다” “제작비를 다 어디에 쓴 건지 모르겠다”는 등 완성도에 대한 비판도 함께 나왔다.
논란이 퍼지면서 전북도가 과거 제작한 일부 영상 또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영상은 전북도가 지난해 제작한 진안군 홍보 영상으로, ‘마이산의 불빛과 어우러진 화려한 폴댄스(feat.마이산 남부 야경)’라는 제목을 달고 진안군 공식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계정 등에 게재됐다.
30초 분량의 영상은 보름달 조형물 앞에서 초등학생이 폴댄스를 추는 모습을 담았다. 이 학생은 폴댄스 전용 의상을 입고 20초가량 기둥을 잡고 빙빙 회전하는 등 폴댄스 동작을 선보인다. 영상 말미엔 ‘진안으로 놀러 와~’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영상 시청자 중 일부는 영상 내용이 지역 관광 홍보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피부와 기둥의 마찰력을 이용하는 폴댄스 특성상 신체 일부가 드러나는 의상을 입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하필 미성년자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밤을 배경으로 등장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시선
전북도 측은 “역동적인 춤을 이용해 흥미로운 홍보 영상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이 가시지 않자 결국 전북도는 SNS에서 해당 영상을 삭제했다. 급기야 해당 부서장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고 검토를 철저히 하겠다”는 취지로 사과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