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두 가지 시선’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

기대보다 걱정 앞선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던 포르투갈전. 아직도 그 여운을 느끼고 있는 국민이 많다.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갈 한국 축구의 새 사령탑 선발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유다. 그런데 적어도 당장은 물음표 투성이다. 선수가 아닌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을 택했던 팀이 웃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클린스만은 전임자를 향한 그리움을 지우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증명하라는 과제를 받아들었다.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는 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계약기간은 이달부터 2026년 열리는 북중미월드컵까지 총 3년5개월이다. 연봉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밝히지 않기로 했지만, 전임자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을 넘어서는 수준(18억원 이상)으로 전해진다. 감독을 보좌할 코치진 명단 등은 조만간 클린스만 감독과 축협이 논의해 확정한다. 

전술능력
의문부호

계약 후 클린스만 감독은 축협에 보내온 인사말을 통해 “한국 대표팀의 감독이 돼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뜻을 전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인사말에서 “한국 대표팀이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발전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에 이르기까지 역대 한국대표팀을 지휘한 훌륭한 감독들의 뒤를 잇게 된 것을 영예롭게 생각한다. 다가오는 아시안컵과 2026년 월드컵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 각오를 밝혔다.

마이클 뮐러 축협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은 이튿날인 28일, 서울 종로구 소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클린스만 감독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뮐러 위원장은 “전체적인 과정을 통해 5명의 후보군을 추렸다. 우선순위를 두고 협상을 시작했는데, 클린스만이 첫 협상 대상이었고, 최종적으로 선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과 한국 축구에 대한 좋은 인상을 느끼고 있다는 점, 협상에 긍정적인 자세로 임했다는 점 등을 역설했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은)한국에 살고 싶어 하고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독일 해설가로 한국을 방문했고, 2017년에는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한 아들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이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리그 경기(3-2 독일 승)서 한국을 상대로 득점한 것을 언급하면서 “당시 치열한 접전 속에서 한국의 ‘파이팅 정신’과 투지에 감명받았다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이때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독일 대표팀을 이끌던 2004년 한국과의 평가전서 지고 한국 감독을 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역대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중 개인 명성이 가장 높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선수 시절 ‘전차 군단’ 독일의 간판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수많은 독일 축구 ‘레전드’ 사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수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는 독일 국가대표로 108경기에 출전해 47골을 터뜨렸고, 특히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3골을 넣으며 독일(당시 서독)의 대회 우승을 견인했다. 이어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월드컵까지 독일이 유럽지역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데 일조했다.

1996년 독일이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를 때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아울러 바이에른 뮌헨·슈투트가르트(분데스리가), 토트넘(EPL), 인터 밀란·삼프도리아(세리에A), AS 모나코(리그앙) 등 유럽 최상위권 리그 명문 팀에서 클럽 생활을 이어가며 통산 620경기 284골을 기록했다.

신임 사령탑 선임…3년5개월 계약 
벤투 이어 9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선수 은퇴 직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클린스만 감독은 당시 ‘녹슨 전차’라는 혹평을 받던 독일 대표팀을 맡아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그 결과 독일은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클린스만 감독은 2008년 친정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으며 약 2년 만에 복귀했다. 하지만 팀이 부진을 거듭한 끝에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경질됐다. 다시 2년간 공백기를 가진 그는 2011년 7월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는 미국의 2013년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골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독일·포르투갈·가나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음에도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8 러시아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연패를 거듭하다 또다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부임한 헤르타 BSC에서는 약 두 달 만에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첫 등장이 연착륙으로 평가받기는 어렵다. 우선 선발 과정부터 잡음이 나왔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다른 한국인 위원들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질문이 여럿 나왔다.

이와 관련해 뮐러 위원장은 “어제 광화문에서 2차 회의를 진행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위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고, 충분히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슈틸리케
따라가나

이어 “후보군을 선정하고 접촉하고 선임하는 과정은 축구협회의 정책적인 사안으로 민감한 부분이 많아 (위원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이에 대한 (위원들의) 동의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축구팬 사이에선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재소환됐다. 두 감독이 국적부터 지도 스타일 등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슈틸리케 감독처럼 한국 축구의 실패 사례로 남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

우선 두 감독은 모두 독일 출신이다. 나이는 10살 차이여서 전성기가 겹치진 않지만, 선수 시절 출중한 기량으로 빅클럽과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슈틸리케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레알 마드리드 CF 등에서 뛰었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선수 시절 경력과는 달리, 감독으로서의 역량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슈틸리케 감독은 유럽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축구 변방을 전전했고, 클린스만 감독은 일부 호성적을 거뒀음에도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클럽 감독을 맡을 때마다 시즌 도중 경질, 조기 사퇴 등을 거듭한 이력이 있다.

물론 이들이 매번 실패만 반복한 감독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 대표팀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 진출, 클린스만 감독의 2006 독일월드컵 3위 기록 등은 당시 해당 국가 내부 여론에서 ‘명장’으로 인정받은 성과다.

다만 이 성과가 온전히 이들이 해낸 몫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은 모두 ‘감독으로서의 전술 세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데, 성과를 보였을 때만큼은 이를 메워줄 유능한 수석코치의 보좌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거둔 성과가 사실은 이들이 아닌, 수석코치의 몫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

전설적인 선수 맞는데…
감독 역량에 의문 가득
각종 기행에 구설수까지

실제로 해당 수석코치들은 이들이 물러난 뒤 감독 자리를 이어받아 더 큰 성과를 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시 신태용 전 대표팀 감독을, 클린스만 감독은 요하힘 뢰브 전 감독을 수석코치로 거느리고 있었다. 둘 모두 각 나라에서 탁월한 전술가로 꼽히는 지도자다.


신 전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 경질 이후 급하게 소방수 역할을 도맡아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당시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을 2:0으로 잡아내는 이변을 연출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에 월드컵이 끝난 뒤엔 4-2-3-1 포메이션만 고집했던 전임 감독들과 달리 4-4-2·3-5-2 등 다양한 전술 도입을 고려했다는 점, 신인 김민재를 발굴해 정상급 선수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점 등이 재평가되기도 했다. 

뢰브 전 감독은 약 15년간 독일 축구대표팀을 맡아 이들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대표적인 성과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당시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전술적으로 완벽히 압도하며 7:1 승리를 거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 1회·3위 2회, 2017 러시아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등의 성과를 남겼다. 그는 2014 발롱도르 올해의 남자팀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탓에 국내 축구 팬 사이에선 클린스만 감독에 관한 회의론이 벌써 제기되고 있다. 감독 역량 자체에 대한 의문에 클린스만 감독이 각종 기행으로 구설에 올랐던 과거 사례가 얹어지면서 ‘클린스만호’의 성공 가능성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것. 

독일 매체 <11프로인데>는 지난달 24일 ‘세계 축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프로젝트! 한국 축구 팬들이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기행을 열거했다. 

매체는 먼저 “팬들은 페이스북 앱을 빠르게 설치하는 게 좋다. 훈련 계획, 67분(후반 22분)에 이뤄지는 선수 교체, 구단과의 결별 등 새로운 감독이 무엇을 하든 페이스북에서 먼저 알아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데뷔전
어떨까?

클린스만 감독은 헤르타 BSC에서 사임을 발표할 때 개인 SNS을 통해 사임을 발표해 구설에 올랐다. 이 발표가 구단과 일절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돌출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이 데뷔전에서 휴대폰을 꺼내 경기장을 촬영해도 놀라지 마라”고 덧붙였다. 이는 클린스만 감독이 헤르타 시절 사진촬영을 하느라 ‘아디다스’ 로고가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를 내보인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당시 헤르타는 아디다스의 경쟁 기업인 나이키에게 유니폼 후원을 받고 있었다.

또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대신 열심히 일하는 보조 코치를 미리 보내는 데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으니 그를 주시하라”고 조언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다른 코칭스태프에게 선수 점검이나 대표팀 스케줄 조정을 상당 부분 떠넘기면서 자질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때 수석코치로 근무하다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가 바로 뢰브 전 감독이었다.

이외에도 “클린스만은 헬기를 타고 훈련장에 가는 걸 좋아하기에 헬기장을 설치하라”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일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기에 선수들에 대한 평가를 일기에 작성한다” 등 비꼬는 주장도 이어졌다. 클린스만 감독이 헤르타 시절 자신의 일기에 소속팀 선수에 대한 비난을 적었다가 들통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또 미국으로 이주한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 독일서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미국 생활을 고집해 ‘재택 감독’ 논란을 자초했다. 심지어 자국서 열린 월드컵 워크숍에도 참석하지 않아 독일 내에서 거센 비난 여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차기 감독 후보군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여론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클린스만 감독이 몇 년 전에도 한국행을 추진하다 국내 거주 여부에서 이견을 보이며 협상이 결렬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전임자’ 벤투 전 감독은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와 가까운 경기 고양시에 재임기간 내내 머물렀다.

일단 이번에는 계약 내용에 ‘국내 거주’가 포함되면서 관련 문제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다만 클린스만 감독의 충동·독선적인 과거 태도를 고려했을 때,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부정적인 여론 
경기로 뒤집나

클린스만 감독의 데뷔전은 오는 24일 울산 문수축구장에서 열리는 평가전이다. 이날 대표팀은 남미의 강호로 평가받는 콜롬비아와 맞붙는다. 관건은 ‘실전감각’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2020년 2월 헤르타 BSC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로 3년간 야인으로 지냈다. 그가 한국 축구가 외국인 감독에게 원하는 ‘최신 트렌드에 맞는 선진 축구’를 전파할 수 있을지, 곧바로 지도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쉽게 확신할 수 없는 이유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술 지시 없었다” 클린스만 폭로한 독일 레전드

축구 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축구 지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필립 람.

‘독일 레전드’인 그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한 구절이 클린스만 감독의 한국 축구 사령탑 부임에 발맞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람은 2021년 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클린스만의 전술 지시는 없었다. 선수들의 체력만 단련했을 뿐”이라며 “결국 선수들이 경기 전 따로 모여 어떻게 경기를 해야 할지 토론했다”고 폭로했다. 

람은 2004년부터 독일 대표팀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FC 바이에른 뮌헨의 ‘원클럽맨’이다.

클린스만 감독과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대표팀에서, 2008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함께했다.

대표팀 감독과 클럽팀 감독으로서의 클린스만을 모두 겪어본 셈이다.

더군다나 람은 현역 시절 좌우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했고, 감독 임기응변에 따라 때로는 공격수로도 출전하는 등 최상급의 전술 소화력을 보여주며 많은 찬사를 받은 선수다.

“클린스만은 전술이 없었다”는 람의 비판이 한국 축구 팬들에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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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