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역습 세 번의 기회

체포 가결? 원내대표? 총선 룰?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비명계 의원 약 30명가량이 가결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친명계는 집단 반발했고, 비명계는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봤다. 이제 친명과 비명 간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태세다. 비명계가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전쟁을 시작할까?

지난달 27일 국회 밖에선 많은 이들이 집결했고, 국회 안에선 보다 많은 민주당 의원실 직원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이날 국회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 앞에 집결한 사람들은 “이재명 수호”를 외쳐댔고, 표결을 앞둔 의원들은 서로 교감하며 표를 어디다 던질지 고심하고 있었다.

다음은
없다?

검찰은 같은 달 16일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사업 특혜,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무부는 국회법에 따라 21일 체포동의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요구서를 제출받으면 국회는 바로 다음에 있는 본회의에 이를 보고하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따라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제출받은 뒤 처음 개회됐던 이날, 본회의에 이를 안건으로 상정해 투표에 부쳤다.

검찰이 현직 야당 대표를 구속수사하겠다고 영장을 청구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고, 민주당 의원들도 처음 있는 일에 매우 당황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서로 소통하며 물밑에서 투표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조율하는가 하면, 의원총회서 공개적으로 표를 몰자는 등 투표 전 의견 수렴에 총력을 기울였다.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당일 <일요시사>와 민난 자리에서 “오늘 아침부터 (동료 의원들과의)자리만 세군데 잡혀 있다”며 “아마도 오늘 있을 투표에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려고 만든 자리 같다. 보좌관끼리도 소통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같은 달 21일, 국회 비공개 의원총회서 “이번에는 무조건 부결시켜야 된다”면서 그동안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의견을 강하게 내놨다. 친문(친 문재인)계 좌장으로 꼽히는 설 의원은 그동안 이 대표 비판에 앞장서왔던 인물이다.

그런 설 의원이 강하게 이 대표를 지키자고 제안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민주당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의총서 설 의원은 “오늘 이 대표와 점심을 먹었는데, (체포 동의안 투표를)부결하고 나면 모종의 액션을 취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사실상의 ‘딜’이 있었다고 자인한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의도 관계자 대부분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압도적 부결’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일요시사>와 만난 의원실 관계자들은 모두 160표 이상의 부결을 예상했고, 이 같은 예상은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계를 가리지 않았다.

투표는 모두 익명으로 처리되고, 민주당도 따로 당론을 정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당 내부에서는 이미 당론으로 정해진 것과 다를 게 없었다.

30명 이탈 “조직적 친명에 시그널”
이번엔 ‘공포탄’ 다음은 ‘실탄’ 장전?


친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당연히 압도적인 부결표를 예상한다”며 “사실 투표전에 의원들끼리, 또 의원실끼리 많은 교감을 주고받았다. 대부분 ‘부결’쪽으로 의견이 쏠리고 있으며, 이탈표는 미미한 수준에서 정리될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전화를 돌렸던 비명계 측도 대부분 같은 의견을 전했으며, 이탈표에 대한 걱정은 그 누구도 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 같은 ‘단일대오’ 기류에 먹구름이 낀 건 같은 달 23일부터였다. 기자간담회서 이 대표가 사퇴할 뜻이 없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불구속 기소됐을 때 당헌 80조 예외조항 적용 여부를 묻는 사회자 질문에 “당헌 80조를 적용하는 것은 개인 비리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이미 이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의 정적 제거 수사라는 것에 대한 의원들의 중지, 당원들의 중지가 모아진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당헌 80조는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즉, 사회자는 이 대표에게 기소가 되면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것이냐‘고 물은 것과 다를 게 없었고, 이 대표는 ’내려놓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 대표는 같은 달 초 다수의 비명계 의원들과 1대1 면담을 가졌다. 그는 비명계의 대표격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면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세 시간가량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상황을 모두 지켜본 민주당 관계자는 “그 자리(비명계 의원들과의 독대)서 이 대표가 비명계에게 체포동의안 부결과 대표직 사퇴에 관힌 ’딜‘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안 그러면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체포동의안은 같은 달 27일 투표에 부쳐졌고, 표결 결과 총투표수 297표 중 가결 139표, 부결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부결 처리됐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이 찬성해야만 가결된다. 이날 가결에 필요했던 찬성표는 149표로, 불과 10표가 모자랐다.

만일 무효 처리된 11표가 가결 쪽으로 갔다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그대로 법원으로 넘어갔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친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사태를 파악 중”이라며 “익명 투표인만큼 누가 어떤 표를 던졌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짐작가는 사람이 몇 있다”고 전했다.

진의는
나가라?

일부 언론에서 추산한 민주당 이탈표는 31표 이상으로, 정계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이탈표는 비명계가 조직적으로 움직여야만 나올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10표 단위면 일부 의원의 소신표로 평가했겠지만 30표 이상이 나온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며 “이 정도면 그낭 (이 대표에게)나가라고 신호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미 이탈표를 던진 의원들의 명단이 떠돌고 있으며, <일요시사>가 받은 명단에도 30명 이상의 비명계 의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비명계는 체포동의안 투표를 통해 ’공식적으로‘ 이 대표와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고, 친명계도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일부 의원들은 당장 다음에 있을 두 번째 체포동의안 처리에서 지각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장 실질 청구심사를 법원으로 넘기는 데 실패한 검찰은 다음 영장은 꼭 받아낼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혐의는 대장동·의례 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관련 의혹 등 두 가지였다.

아직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세 가지의 의혹을 더 수사 중이다. 서울중앙지검에선 성남시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고, 수원지검은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및 변호사비 대납 사건, 그리고 성남지청은 성남시 정자동 개발 특혜 의혹은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경우처럼 검찰이 몇 가지 사건을 묶어 영장심사를 한 번에 청구할지, 혹은 개별적으로 여러 차례 청구할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한 번 더 영장청구가 있을 것이란 것이 민주당 내부의 시각이다. 이들은 다음의 청구심사가 현재 당심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에 나온 대거 이탈표의 의미는 ’경고사격‘ 정도 된다”며 “경고했는데도 이 대표가 어떠한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다음 공포탄은 없다. 바로 실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영장 청구가 한 번 더 이뤄지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또한 다시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여기서 비명계의 실탄이 이 대표에게 박히게 될 경우, 이 대표의 구속수사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비명계로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꽃놀이패가 손에 들어오는 셈이다.

다음 달에 있을 원내대표 선거 또한 좋은 역습 타이밍이다. 지난해 3월 선거로 뽑혔던 친명계 박홍근 원내대표의 임기는 오는 5월 말까지다. 박 원내대표가 임기를 마치면 민주당은 공석이 된 민주당 원내대표 자리를 채워야 한다.

대부분
비명계

민주당은 원내대표 선거를 예정대로 5월에 치를 예정이었으나 지도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의식한 듯, 내달(4월)로 스케줄을 조정하기로 했다. 친명계와 비명계의 헤게모니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한 달 뒤로 다가온 셈이다.

민주당은 본래 원내대표를 ’콘클라베(conclave) 방식‘으로 뽑는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제도를 차용한 것인데, 이 선거의 특징은 선거 전에 후보군을 미리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가 시작되면 민주당 의원 전원은 집합 후 회합을 열어 본인이 원하는 ’아무 의원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 

후보군이 없는 만큼 사전에 선거운동도 전개되지 못한다. 원내대표 선거는 구조적으로 투표 전 사전 교감을 통해 표를 몰아줄 수밖에 없는데, 이는 현재 그 집단을 누가,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돋보기가 된다.

선거 전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하마평도 이를 미리 볼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일요시사>가 취재 중 후보군으로 들은 인물은 7명가량으로 지난해 박 원내대표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던 박광온 의원, 또 비명계로 분류되는 윤관석·이원욱·전해철·홍익표 의원이 이름을 올렸고, 전통강호인 김두관 의원, 지난 전당대회서 준비위원장을 지낸 안규백 의원 등이 있다. 

이 중 비명계의 색이 가장 강한 박광온·이원욱 의원은 이미 원내대표 도전 의사를 밝힌 상태며 안규백·윤관석·김두권 의원도 진지하게 원내대표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하마평에 올라온 인물 대부분이 비명계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후보군 중 범친명계가 미는 인물은 홍익표 의원 한 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욱 의원은 당초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을 가장 강하게 해오고 있는 인물로, 이번 원내대표 선거전에서 가장 앞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체포동의안 투표, 최소 한 차례는 더 남아
원내대표 선거, 총선 룰서 실력 대결 예상

비명계 일색의 후보군 하마평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홍 의원 정도가 친명계로 분류되고 나머지는 모두 비명계 혹은 중립지대에 있는 인물들”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대부분의 후보가 대표를 견제하는 세력에서 나왔다. 이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친명계 일색인 현재 민주당 지도부에는 고민정 최고위원만이 비명계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당을 완전히 장악한 이 대표로선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 큰 의미를 안 둘지도 모르겠지만, 비명계는 지도부의 한 자리라도 더 늘리려 노력하는 모양새다.

세 번째 타이밍은 지금으로부터 약 반년 뒤인 9월이다. 민주당은 보통 총선 180일 전에는 공천 시스템을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계파마다 본인 진영에 유리한 공천 시스템을 도입하려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공천관리위원회에 저마다의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인데, 2024년 예정된 22대 총선서 공천을 받으려면 본인 진영의 입장을 공천관리위원회에 충분히 어필해야만 한다.

지난 총선에서 시스템 공천을 확고히한 것을 유권자들에게 홍보하며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지만, 아직 불안정한 시스템이라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아무리 촘촘한 시스템이라도 당헌·당규와 공천 심사의 룰 대신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다분한 구조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공개적으로 밝힌 기준보다는 당내 파워게임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우세했던 바 있다. 따라서, 각 진영은 공천 시스템을 정할 때쯤이면 본인의 영향력과 인맥을 총동원해 유리한 진영을 구축하려 힘쓴다.

비명계가 신흥세력인 친명계의 득세를 잠재우려면 기존에 있던 룰을 최대한 수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민주당에서 업적을 쌓아온 의원들이 공천을 받으려면 기존 룰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대표가 주장한 ’당원 평가‘에 따른 공천 컷오프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친명계는 최대한 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꿔야만 다음 총선에서 득세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20일 총선 공천룰에 후보의 SNS 실적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가 비명계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그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서 “정치인의 잠재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데, 접촉면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리적으로 체크할 수 있는 게 SNS”라며 “이런 걸 중요한 평가요소로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실력 중심으로 공천하자”고 주장했다. 

또 지난달 7일에는 민주당 정치혁신위원회가 현역 국회의원 등 지역위원장과 당직자에 대한 ‘당원 평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안들이 모두 실행될 경우, 이번에 민주당에 대거 합류한 소위 ’개딸(개혁의 딸)들‘의 영향력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의 길에 참여하고 한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당원권을 강화하면 그만큼 장점이 있겠지만, 단점이 훨신 크다”며 “특정 진영에 과도하게 유리하고, 후보를 찍어 누르는데 용이한 구조라면 진짜 경쟁력 있는 후보는 계파색을 띠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 한번
타이밍

다음 체포동의안 표결, 원내대표 선거, 공천 시스템 확정 시기까지 총선 전에 비명계에겐 세 번의 역습 타이밍이 온다. 이때 한 번이라도 승리한다면 비명계는 잃었던 당내 헤게모니를 되찾을 수 있다. 민주당이 이대로 쭉 친명계 일색으로 다음 총선을 치를지, 혹은 극적으로 기사회생할지 민주당원들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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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