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는 민주당 ‘신 삼국지’ 대해부

다시 모이고
다시 싸우고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조조, 유비, 손권이 중화를 세 갈래로 갈라쳤던 중국의 역사가 현재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수십개에 달하던 민주당 계파는 이제 큰 세 갈래 세력으로 정리됐고, <삼국지>만큼이나 치열하고 재밌는 정치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민주당의 세가지 세력은 ‘친문’의 사의재, ‘비명’의 민주당의 길, ‘친명’의 처럼회다.

더불어민주당 계파만큼 복잡한 것도 없었다. 정치 성향에 따라, 가까운 원로 정치인에 따라, 연구모임에 따라 이리도 모이고 저리도 모였던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수십년간 수십개의 계파를 형성해왔다. 여의도에 오래 있던 전문가들도 헷갈릴 만큼 다양했던 민주당 계파는 정계에 입문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공부해야 하는 ‘숙제’였다.

여러 계파
단순 정리

그랬던 민주당의 계파가 단순하게 정리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최근 출범한 몇 개의 연구모임을 중심으로 계파가 명확히 나뉘고 있다는 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수십년간 민주당을 지키던 복잡한 계파가 이제 명쾌해졌다”며 “지난달 출범한 계파 모임을 잘 보면 당내서 계파가 어떻게 나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전당대회서 초선 이재명 의원을 당 대표로 추대하며 당 개편의 서막을 올렸다. 수십년간 민주당 헤게모니를 갖고 있던 친문(친 문재인), 친노(친 노무현) 계열은 주도권을 친명(친 이재명)계로 넘겼고, 그에 따라 민주당 의원들은 정치적 노선을 다시 짜게 됐다.


기존의 ‘민주주의 4.0’이나 ‘초금회’ 등으로 일컬어지던 친문계 의원들은 내년 총선 전에 다시금 세를 규합해야 했고, 이미 힘이 빠져버린 친노계와 친정세균계 의원들은 내년 선거에 나설 명분을 쌓아야만 했다. 그런 이들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새로운 연구모임의 출범이었다.

첫 신호탄은 친문 모임인 ‘사의재’가 먼저 날렸다. 지난달 18일 출범된 이 모임은 문재인정부 당시 청와대서 일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모임이다. 친문계의 원로, 장·차관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으며, 박범계·전해철·도종환·정태호·이용선 등 현역 의원들도 이 모임에 이름을 올렸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 조대엽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사의재의 공동 대표를 맡았고, 방정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당 ‘친문’계의 좌장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고문직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서 열린 창립 기자회견서 방 운영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의 좋은 정책들을 발굴 개선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포럼을 창립한 계기”라며 “윤석열정부는 (민주당 정부의)모든 정책을 왜곡·폄훼하고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복합적 위기 극복의 비전과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심지어 약화시킨다는 우려도 급증하고 있다”며 사의재 출범 이유를 밝혔다.

친문계 ‘사의재’서 모여 결의 다짐
문정부 인사 친문 원로 현역의원 합세 

공개적인 자리서 친문 인사들의 모임 출범을 윤석열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 이들은 계파 분열을 우려하는 당내의 우려를 의식한 듯 현재 민주당의 현안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사의재란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가진 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으로, 신유박해 당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수년간 머물렀던 유배 거처다.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전남 강진으로 유배 간 다산에게 지역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가락질하며 욕을 해댔고, 이 때문에 다산은 당시 머무를 거처 하나조차 쉽게 구하지 못했다.

그 지역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주모는 그런 다산 선생을 안쓰럽게 여겨 작은 방을 하나 내줬는데, 다산은 이 방을 사의재라고 명명했다. 술을 마시며 허송세월하던 다산 선생은 주모의 배려에 감동받아 이 방에서 다시금 학문에 정진하게 됐다. 다산의 대표 저서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이 바로 이 사의재서 탄생했다.

정치싸움서 패배한 뒤 세를 잃고 유배 갔던 다산의 당시 상황은 현재 친문계와 닮아 있다. 친문계는 지난해 대선 경선에서부터 당원과 국민들의 외면을 받아 정치적 입지가 쪼그라든 상태다. 지난 20대 대선 경선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내세우며 정권 재창출의 주인공이 되려 애썼다.

그러나 이들은 주인공은커녕 악역으로 전락했다. 대통령 후보 경선서 이 대표에게 많이 뒤처져 있었던 친문계는 ‘네거티브’ 전략을 선거전에 활용했고, 이때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거센 공격을 가했다. 현재까지 이 대표를 괴롭히고 있는 ‘대장동 특혜 의혹’도 이때 친문계에서 내놓은 전략이었다. 

이 전 총리는 “(이재명 대표 같은)불안한 후보로는 본선을 이길 수 없다”며 민심에 호소하는 전략을 취했고, 대장동 의혹을 방송 토론에서 언급하는 등 ‘도 넘은’ 네거티브를 연일 이어갔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친문계 의원들은 각종 라디오와 방송 인터뷰서 이 대표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 경선 막바지까지 시끄러운 잡음을 만들어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친문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 대표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지난해 10월10일 최종 마무리된 경선 결과, 이 대표가 50.3%의 득표율로 과반을 차지했다. 절반이 넘은 득표 수는 결선투표를 노리고 있던 이 전 총리에게 비보였고, 친문계는 좌절감을 그대로 맛봐야 했다.

얽히고
설키다

그러나 최종 결과 발표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좌절감은 엉뚱하게 발현됐다. 이 전 총리가 경선 결과에 불복을 선언한 것이다. 친문 진영 측은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 처리한 점을 문제 삼으며 이 대표가 과반을 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선 경선에 뛰어든 후보 중 컷오프를 통과한 후보는 총 6명으로 이재명·이낙연·박용진·추미애·정세균·김두관 후보였다. 이 중 김두관 의원과 정세균 전 총리가 중도 사퇴하며 논란의 씨앗을 만들었다. 

문제는 정 전 총리가 득표한 23731표와 김 의원이 득표한 4411표가 결선투표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표를 모두 무효표 처리해 분모서 뺄 경우 이 대표의 득표율은 당초 발표된 50.29%가 맞으나, 이를 그대로 인정해 분모에 포함시킨다면 과반이 안 되는 49.32%가 된다.

표를 인정하면 과반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선투표를 치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친문 진영에선 이를 무효로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결선투표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지자들은 연일 민주당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때 이들이 시위 현장에 들고온 피켓에는 ‘현대판 사사오입’이라는 다소 과격한 문구도 적혀 있었다.

이때 친명 진영에 행했던 거센 공격들을 친명계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사법 리스크 등으로 현재는 힘이 빠졌지만, 지난해 민주당 경선서 친명계는 주도권을 확실히 잡았고, 지도부를 현재의 친명계 인사들로 꽉 채웠다.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유배지로 향했던 다산 선생처럼 친문계는 요즘 민주당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추세다.

세간에선 사의재를 두고 암울한 상황인 친문계가 계파를 다시금 규합하기 위해 만든 연구 모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 소식에 정통한 한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친문계가)어느 정도 소속감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오래된 연구모임이나 추상적인 ‘친문계’ 같은 용어는 소속감을 주기 부족하다. 새로 출범한 ‘사의재’에 소속돼있다는 사실은 본인의 계파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사의재가 당장 정치적 활동을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 대표가 버티고 있는 만큼 상황을 보다가 총선 전에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인공?
악역?


지난 경선서 보여준 ‘악의적인 네거티브’와 대선 패배의 궁극적 이유가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지적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동력을 쉽게 얻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현재 평론가들의 시각이다.

사의재가 친문계의 거점이 되려 한다면, 비명계의 거점은 지난달 31일 첫 토론회를 가진 ‘민주당의 길’이 되려 한다.

해당 모임의 출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김종민 의원은 이날 토론회 모두발언서 “민주당의 길 토론회는 비명 모임이 아니라 비전 모임이다. 한 글자가 틀린데 (그 뜻이)엄청나게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비전과 전략, 정치개혁과 민생 개혁 등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면 가장 큰 수혜자는 민주당 지도부, 이재명 대표가 될 것”이라며 비명 모임이라는 항간의 소문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민주당 관계자들은 자리에 참여한 의원들 대부분이 친명계에 쓴소리를 던지던 인물들이라는 점은 이미 모임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가 보궐선거에 출마할 때, 또 전당대회에 출마할 때 그에 대한 비판과 설득을 했던 비명계 의원들 대부분이 ‘민주당의 길’에 합류했다.

이 중 이인영·홍영표·강병원·김영배·김종민 등이 눈에 띄었으며 친문계의 신동근·윤영찬 의원, 또 지난해 이 대표를 거세게 비판했던 이원욱·박용진·조응천 의원이 합세했다. 이름만 보면 모두 ‘비명’의 색채를 띄고 있는 의원들 뿐이기 때문에 당내에선 민주당의 길이 비명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첫 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모두발언을 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은 이 대표의 뜻이 컸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선 그가 비명계를 끌어안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대표도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오늘 비명계니 친명계니 하는 많은 말들이 있는 줄 모르고 참석했다”며 “민주적 정당이라면 당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 진지한 토론, 의견 수렴 등을 통해 국민의 뜻에도, 국익에도 부합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이런 자리는 많을수록 좋다”고 모임 출범을 축하했다.

이처럼 이 대표도, 민주당의 길을 만든 김 의원도 모두 ‘비명 모임’이라는 단어 사용을 극도로 꺼리고 있지만, 이 대표가 두 번이나 검찰에 출석하며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는 와중에 ‘비명계’ 의원들로 구성된 모임이 출범했다는 점은 민주당이 사실상 플랜B를 염두해두고 있다는 세간의 의심을 피해갈 순 없다.

친명계 비판 ‘민주당의 길’
털고 기지개 켜는 ‘처럼회’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김 의원이 말한 것처럼 이 모임을 ‘비명 모임’으로 해석하는 건 지양해달라”며 “민주당의 길은 지난해 두 차례 선거서 민주당이 왜 졌는지에 대한 분석과 이름 그대로 앞으로 민주당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를 고민하는 모임일 뿐”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몇몇 민주당 관계자는 현재 나온 발언들로 모임의 성격을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 비명계 의원실 보좌관은 “당연히 그렇게 말할 것이다. 비록 많이 흔들리고 있지만 어쨌든 현재 민주당의 대표는 이재명 의원”이라며 “내년 총선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의원들이 ‘비명’이라는 색채를 쓰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그러나 이 대표의 낙마가 현실화된다면 상황은 많이 바뀔 것이다. 현재 친명계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의원은 대부분 말을 아끼려 하지만 친명계가 와해되면 민주당의 길에 소속된 의원들을 중심으로 힘을 뭉치려 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고 예상했다.

즉, 상황을 보다가 비로소 세력을 규합할 명분이 생기면 ‘민주당의 길’이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민주당 내부의 시각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두 차례나 검찰에 출석하며 사법 리스크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성남FC와 관련된 ‘제3자뇌물죄’와 ‘대장동 특혜 의혹’은 현재 검찰 주요 인력 대부분이 붙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기소가 이뤄지고 재판에 넘겨지게 될 경우, 이 대표가 내년 총선까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위기에 빠진 이 대표를 지키고 있는 것은 현재 민주당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처럼회’다. 강성 개혁 성향의 초선 의원들로 이뤄진 처럼회는 민주당 지도부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 및 비명계 모임이 잇따라 출범하며 언론의 관심이 이들에게 쏠린 모양새지만 처럼회 세력은 아직 건재하다. 지난해부터 민주당의 스피커 역할을 해온 최강욱·김남국 의원 등이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데다 재선의 박주민 의원, 정청래 최고위원 등이 같은 세력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헤게모니를 넘겨받은 친명계는 처럼회를 중심으로 세력을 지키고 있고, 이 대표도 현재 지도부와 더불어 이들을 가장 많이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세력 과시를 뒤로 했던 이들 모임은 지난달 25일, 이 대표와 오찬 회동을 하며 의원들 간 교류를 다시 시작했다.

친문의 사의재, 비명의 민주당의 길, 친명의 처럼회는 현재 민주당의 가장 큰 세 가지 세력인 것으로 파악된다. 권력을 잡고 있는 처럼회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의재, 그리고 이들의 정치싸움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는 민주당의 길은 내년 총선 전까지 쉴 새 없는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쉴 새 없는
자리싸움

<일요시사>와 민주당사 앞에서 만난 한 지지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저렇게 헛발질을 하는데, 민주당의 인기가 그만큼 올라가지 않고 있다. 이는 뭔가 민주당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라고 하소연했다.

지난 대선서 극심한 계파 갈등으로 정권을 국민의힘에 헌납한 민주당은 이제 하나로 뭉쳐야 할 때다. 처럼회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해결해야 하고, 사의재는 문재인정부의 실책을 반성해야 하며, 민주당의 길은 생산적인 비판을 해야 한다. 이들의 변화 여부에 따라 다음 총선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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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