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당간당’ 이재명 변호사비 트라우마

‘당비’ 먼저 쓰면 임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변호사비 대납 등 문제로 곤욕을 여러차례 치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이번엔 당비로 변호사비를 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일요시사>가 의혹을 추적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로 인해 ‘정당 운영비 공개’에 대한 문제점이  주목받고 있다. 매년 수백억원, 선거철에는 1000억원에 육박하는 당 운영비가 ‘깜깜이’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원들이 내는 당비와 일반 시민들이 내는 국고보조금은 도대체 어떻게 쓰이고 있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변호사비’는 어느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지난 몇 년 간 수많은 고소에 직면했던 이 대표는 필연적으로 변호사를 계속 고용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합당한 변호사비를 지불해야 했다. 문제는 막대한 변호사비를 누가 냈냐는 데서 불거졌다. 

대납 의혹
부담스러워?

한 시민단체는 이 대표의 변호사비를 특정 기업이 대납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는 현재 검찰이 면밀히 수사 중이다. 이 대표는 제7회 지방선거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바 있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1·2·3심을 거쳐 파기환송심까지, 총 2년간 치열하게 진행된 대규모 재판이었다.

치열한 재판이었던 만큼 이 대표는 화려한 변호인단을 선임했는데, 세간의 주목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변호사비에 쏠렸다.

한 시민단체는 ‘쌍방울사가 이태형 변호사의 수임료 대납했다’는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이 말한 근거는 바로 이 대표의 재산 내역이었다. 그가 대규모 변호인단을 고용했음에도 공개된 재산이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 직후 공개한 재산 내역에 따르면 이 대표의 재산은 총 27억8342만원이었지만, 이후 2019년 3월 공개한 재산은 28억5150만원으로 되려 늘어있었다. 2020년 3월 공개된 재산은 약 23억원으로 소폭 감소 됐으나 이 대표 측이 후에 채권 재산 5억여원을 실수로 누락했다고 밝히며 사실상 재산 변동이 없었음을 시사했다.

이 대표가 선임한 변호인단은 대법관 출신 변호인 2명과 LKB앤파트너스 변호사 3명을 포함한 총 13명이다. 대법관 출신 이상훈 변호사, 고 이홍훈 전 대법관, 헌법재판관 출신 송두환 변호인 등도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업계에 따르면,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진 변호인단을 선임하려면 적어도 10억이 넘는 금액이 든다고 한다. 실제로 이 대표를 고발한 시민단체가 자체적으로 추산한 금액은 ‘23억원’으로 “이 마저도 최소한으로 추산한 금액”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수십억 규모로 추정되는 변호인단을 선임한 이 대표가 재판을 모두 마칠 때까지 재산이 줄지 않은 점은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정당이 사건 변호사비 대납?
사실은 “개인 돈”…논란 왜?

그 변호사비 대납 문제가 아직까지 이 대표를 괴롭히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이번에 제기된 의혹의 주체는 일반 사기업이 아닌 ‘민주당’이었다. 이 대표가 당비로 변호사비를 대납받았다는 의혹이었다. 해당 제보에 대해 <일요시사>는 다수의 채널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당비 유용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 대표가 사비로 ‘변호사비’를 대고 있던 것이다. 민주당 중앙당 관계자는 “변호사비로 검찰에 고발까지 당한 이 대표가 그럴 리는 만무하다”며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해줬다.


당비를 직접 관리하는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 또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대표 변호사비에 당비가 쓰이는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사실무근이다. 이 대표의 변호사비는 당연히 이 대표의 사비로 쓰이고 있다”며 “안 그래도 질문을 받고 알아봤는데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불거진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반면 동일한 질문에 대해 “그런 것으로 안다”고 대답한 몇몇 민주당 인사들도 있었다. 당비가 이 대표 변호인의 고용비로 쓰이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특히 한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중앙당 차원에서 변호인단을 고용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 자연스럽게 당비가 그쪽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어쩌다 이런 혼선이 빚어진 것일까. 원인은 모호한 당비 운용에 있었다. 현재 모든 국내 정당들은 당 운영자금을 ‘불투명하게’ 운용할 권리를 갖고 있다. 당 운영자금은 보통 당비와 기탁금, 차입금, 그리고 국고보조금으로 구성된다.

작년에만
900억원

당비와 기탁금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고보조금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금액이니만큼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국고보조금은 크게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나뉜다. 경상보조금은 분기별로 1년에 총 4번 지급하는 보조금이고 선거보조금은 공직 선거 시기 정당들에게 일괄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액수는 정당의 의석수에 따라 정해지는데,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 구성에 성공한 정당이 국고보조금으로 정해진 금액 전체의 50%를 균등하게 분배받는다.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정당들이 총액의 5%씩을 지급받고, 잔여분의 절반은 국회 의석수에 따라, 나머지 절반은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예를 들어, 정당 국고보조금으로 정해진 금액이 100억원이라 하면, 교섭단체를 구성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100억원의 절반인 50억을 2등분해 25억원씩을 지급받고, 비교섭단체 정당인 정의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이 전체의 5%인 5억원을 각각 지원받는 구조다.

그리고 전체 지급액 65억원을 뺀 35억원에서 의석수와 득표수에 따른 차등 분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민주당은 지난해 1분기에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보조금 약 224억원과 경상보조금 54억원 등 총 279억원가량을 중앙선관위에서 보조받았고, 2분기에는 지방선거보조금 약 223억원과 경상보조금 약 56억원을, 3분기에는 약 55억원의 경상보조금을 지급받았다.

지난해 1·2·3분기를 통틀어 민주당이 지원받은 국고보조금 총액만 900억원에 육박한다.

각 정당에 매년 수백억원씩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은 당비와 합쳐져 당 운영비로 계산된다. 선거 때 수백억원, 분기별로 수십억원을 지원받는 국고보조금에 더해, 당비도 분기별로 함께 계산된다.

당비는 당원들이 스스로 낸 자발적 당 운영비로, 지금까지 공개된 민주당의 지난 한 해 당비 총액(기탁금, 후원회 기부금 등 제외)은 1분기 약 67억원, 2분기 약 81억원, 3분기 약 79억원으로 총 227억원가량이었다.


지난해 민주당 운영비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4분기 금액을 제외하더라도 1000억원이 넘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천문학적인 금액이 어디에 쓰이는지 일반 시민들과 당원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디에 
쓰이나

정치자금법 제41조 1항에는 “정당(정당 선거사무소를 제외한)과 후원회의 회계책임자가 회계보고하는 때에는 대의기관(수임기관 포함) 또는 예산결산위원회의 심사와 의결을 거쳐야 하며, 그 의결서 사본과 자체 감사기관의 감사의견서를 각각 첨부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말미에는 “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공인회계사의 감사의견서를 함께 첨부해야 한다”고 적시돼있다.

겉보기에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며 누구든 당 운영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공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민주당도 매 분기 중앙당 ‘수입·지출 총괄표’를 작성해 공식 홈페이지에 빠짐없이 업로드하고 있다.

선관위에 제출하기 위한 회계보고서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셈인데, 이런 식의 공개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내부서조차 나오고 있다.

민주당 중앙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에 당비로 이 대표가 변호사비를 댔다는 주장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 당비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당비 사용 내역은 행정위 사무총장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계보고서에는 선거비용의 정치자금 목록으로 크게 세 가지, 작게는 열 가지 넘는 항목이 빠짐없이 기재돼있지만, 뭉뚱그린 항목들일 뿐 실무자들도 알기 힘든 세세한 지출내용은 알아볼 수 없는 형태다.

민주당 당헌·당규에도 당비에 관한 규정이 중앙당 사무총장의 재량과 당 대표의 권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민주당 당헌 제48조 1항에는 ‘모든 당비는 사무총장이 관리·감독한다’고 돼있고, 2항에는 ‘사무총장은 매월 최고위원회 및 당무위원회에 당비 납부현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적시돼있다. 

‘다만, 당 대표가 인정하는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렇지 않는다’고 나와있다. 또 제51조에는 ‘당비와 관련해 이 규정에서 정함이 없는 사항은 당 대표가 당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정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사실상 당비에 대한 관리·감독을 사무총장이 총괄하고 또 이를 당 대표가 추가로 심사하는 것인데, 시스템에 의한 감시가 아닌 개인의 권한에 맡겨진 감시라는 점에서 수많은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두 사람이 의도적으로 실수하거나, 이해관계에 맞는 명분을 붙여 당비를 유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원인은 불투명한 운영
“미국 사례 따라가야”

한 민주당 관계자는 “현행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 내역은 상시 공개가 되고 있지 않다. 정당들이 외부 감사내용을 당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는 하나 선거비용 말고도 운영사무 관리, 사무 운영비, 그리고 많은 지출을 차지하고 있는 다른 항목들은 온전하게 공개가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헌재 판결 이후 공개해야 하는 부분만 ‘억지로’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변호사비 문제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의 말처럼 구체적인 운영비는 정당이 공개하고 있는 지출내용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볼 수 있지만, 청구일로부터 최소 15일은 기다려야만 원하는 내역을 관람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는 관람이 불가능한 형태인 것이다.

민선영 참여연대 간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같은 경우에는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쓸 때마다 홈페이지에 전부 다 공개하고 있다”며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 모두가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미국 정당들은 연방선거위원회의 규정에 맞게 모금과 지출내용을 항상 감시당하고 유권자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후보별로 정치자금 지출현황을 공개하는 ‘공개주의’ 원칙을 택하고 있다. 정치자금 지출내용을 보고 싶은 미국의 유권자는 각 정당의 홈페이지에서 검색, 분류, 다운로드가 모두 용이한 편이다.

각 정당은 선거가 끝난 뒤 보조금에서 돈이 남을 경우, 하나도 빠짐없이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

물론 대선 때마다 불법 정치헌금 모금 등 크고 작은 논란이 따라붙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정보공개 범위가 모든 정치자금에 해당한다는 점, 선거관리기관들이 정치자금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 적절한 분류를 통해 시민들의 접근을 매우 용이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공개주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깜깜이
지출내용

당비는 사무총장과 당 대표의 재량에 따라, 국고보조금은 ‘비공개 원칙’에 따라 시민들의 알 권리를 방해하고 있다. 당의 운영비가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를 아는 권리는 당비를 내고 있는 당원들뿐 아니라 세금을 내는 일반 시민도 모두 갖고 있다. 운영비 지출내용에 대한 지적이 오래된 만큼 시급한 대책 논의가 시급해 보인다.


<ingyu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