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민석 기자]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를 맞아 국민들은 각종 대출상환에 '빚의 노예'로 전락한지 오래다. '빚의 늪'에 허덕이고 있는 채무자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 지 카드사들은 리볼빙 등 고금리대출서비스 확대에 더욱 힘을 싣는 모습이다. 카드사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채무자의 눈과 귀를 가린 '리볼빙서비스'의 실태를 파헤쳐봤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는 지난해 8월 모 카드사로부터 '리볼빙서비스'를 권유받았다. 텔레마케터는 "연체내역이 없는 우량고객에 한해 리볼빙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리볼빙의 장점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용카드 결제 방식을 최소금액결제로 설정하면 매달 청구대금의 5∼10%만 납부하면 된다"며 "결제대금이 연체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용등급에도 영향이 없는 최고의 서비스"라고 안내했다. 물론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에 대한 설명은 쏙 빠져 있었다.
원금을 넘은 수수료
목돈 마련을 염두에 뒀었던 김씨는 카드결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 달콤하게 다가왔다. 리볼빙서비스를 신청한 김씨는 당분간 카드결제로부터 오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최소결제액도 낮게 설정했다. 이후 카드 결제액 대부분이 삭감되자 금전적 부담이 확 줄어들었고 김씨의 씀씀이는 조금씩 커져갔다.
서비스 가입 11개월째인 지난 8월 김씨는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 분명히 지출을 줄였는데 신용카드 결제액은 전달보다 높게 부과된 것. 그제야 김씨는 신용카드 청구서를 찬찬히 확인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리볼빙서비스로 인해 카드결제대금이 이월에 이월을 거듭해 갚아야 할 금액이 600만원을 넘은 상태였던 것. 당장 은행을 찾은 김씨는 매달 결제를 미룬 대금에 20%를 훌쩍 넘는 수수료가 계속 부과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화가 났다. 수수료만 합산해 봐도 원금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억울한 김씨는 금융감독원에 민원도 제기해보았지만 카드사가 김씨의 동의하에 계약이 진행되었다는 녹취 자료를 제시해 남은 대금을 갚는 수밖에 없었다.
사례에 나온 김씨는 그래도 부분상환액에 대한 연체로 인한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아 사정이 나은 케이스다. 피해사례를 살펴보면 카드사들은 채무자가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관행처럼 리볼빙서비스 신청을 유도 해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리볼빙서비스에 가입된 상당수의 금융소비자들은 리볼빙이 어떤 개념인지도 알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게 서비스에 가입돼 높은 수수료를 내고 있었다.
리볼빙서비스란 신용카드 회원이 현금서비스 또는 카드이용대금 중 일정비율만 결제하면 나머지 금액은 대출 형태로 전환돼 계속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결제방식이다. 따라서 남은 대금 잔액은 약정에 따라 수수료와 함께 수개월에서 3년까지 나눠 납부하게 된다. 카드 이용자가 일시적으로 현금이 부족할 때 결제금액의 일정부분을 연체 없이 상환 연장할 수 있어 잘만 활용하면 유용한 제도일 수 있지만 제2금융권과 맞먹는 수준의 높은 수수료때문에 장기간 결제대금이 쌓이면 자칫 신용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 문제가 심각하다.
리볼빙서비스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민원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드러난 피해사례만 해도 수백수천 가지다. 롯데카드는 고객이 "리볼빙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몰래 무단가입을 시킨 것이 발각돼 징수한 수수료를 환불한 바 있고 현대카드도 가입 시 '자유결제서비스'란이 공란이면 자동으로 리볼빙서비스에 가입시켜 문제가 됐다. 특히 씨티카드는 모든 신용카드 발급 시 리볼빙서비스에 자동으로 가입되는데 이를 모르는 고객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 20∼30% 고금리 숨긴채 약탈대출 일삼아
신용등급 추락 경고…신용불량자 양산 지적도
리볼빙서비스의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30%에 육박하는 수수료율이다. 5.9∼28.8%인 수수료율은 개인신용도에 따라 보통 10∼20% 사이에서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리볼빙서비스 이용자 대부분은 신용등급이 좋지 못해 20%를 훌쩍 넘는 수수료를 물고 있다. 리볼빙서비스의 최고금리는 카드론 및 현금서비스의 최고금리와 비슷한 28.8%로 제2금융권의 평균금리보다도 높은 실정이다.
실제로 올해 7월 말을 기준으로 은행계 카드사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한국씨티은행, 대구은행에서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의 90% 이상이 22∼30%대의 고금리를 적용받았고 부산은행도 이용 회원의 87.27%가 24∼28%대의 고금리를 적용받았다.
전업계 카드사들도 금리가 높긴 마찬가지다. 삼성카드 리볼빙 서비스 이용 회원의 79.69%가 22% 이상의 고금리를 적용받았고 롯데카드, 현대카드, KB국민카드 이용자의 60% 정도도 적용 금리가 22% 이상이었다. 하지만 각 카드사들의 리볼빙 홍보물을 살펴보면 돋보기로 찾아야 간신히 수수료에 대한 내용을 찾을 정도로 작게 적혀 있고 텔레마케터들은 리볼빙의 장점을 홍보하면서 수수료와 신용등급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카드사들은 '신용등급 걱정 없고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서 고객 현혹시키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용등급이 하락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역시 문제가 있었다.
리볼빙서비스를 장기간 사용하면 현금서비스를 사용한 것과 동일하게 취급돼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리볼빙서비스 이용자 290만명 중에 35.7%가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들로 20∼30%대의 높은 금리를 부과 받는 이들의 1인당 미결제 금액은 평균 210만원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고금리가 적용되다 보니 연체율도 결코 낮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리볼빙서비스로 이월되는 전체금액의 5∼10%에 해당하는 부분상환액조차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 신용등급이 순식간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신용평가에 있어 연체 이력은 가장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부분상환액 연체로 인한 신용등급 하락은 리볼빙서비스의 문제점으로 보긴 어렵다.
이를 두고 금융관계자는 "리볼빙의 경우 한 달만 연체해도 순식간에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원은 '돌려막기'
이뿐만 아니다. 카드사들은 '돌려막기'라는 어원에서 유래한 리볼빙이라는 단어를 교모하게 바꿔 소비자를 위한 것처럼 바꾸기도 했다. KB국민카드는 '페이플랜', 롯데카드와 삼성카드, 현대카드는 '자유결제서비스', NH농협은행은 '회전결제'라는 이름으로 리볼빙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한 소비자단체가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리볼빙서비스 이용자 중 72.5%가 "가입 사실을 몰랐다"고 응답한 바 있다.
리볼빙서비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고금리에 대해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의 경우 예금 등 수신기능이 없기 때문에 고객들의 카드대금 연체가 생길 경우 회사채로 인한 부채를 상환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상대적으로 조달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리볼빙서비스에 가입하면 고객별로 리볼빙서비스 관련 안내서가 나가고 매달 명세서에도 리볼빙서비스의 결제액과 금리부분이 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결제비 제도개선 등 리볼빙 실태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며 "카드사들도 자체적으로 약관을 변경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