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이승기

개미처럼 일만 한 ‘국민 남동생’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엄친아’ 연예인 이승기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최근 언론 보도들을 통해서 소속사와의 정산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미정산 음원 수입만 96억원 이상. 누락된 데뷔 초기 수입까지 더하면 이승기는 수십억원을 떼먹힌 셈이다. 일각에선 “이승기가 노예계약에 당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승기는 2004년 데뷔 이후로 18년간 별다른 논란 없이 연예계 생활을 이어왔다. 그의 지인들은 이승기가 데뷔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입을 모은다. 일명 ‘아이렌’으로 불리는 팬덤도 이승기를 따라 성숙하고 모범적인 팬 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모범 연예인
불량 소속사

하지만 지난 18년을 함께해온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만은 달랐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종합하면 후크엔터테인먼트(이하 소속사)는 이승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쓸어 담으면서도 이승기를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기만했다. 

지난 18일, 이승기가 소속사에 정산 관련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의외의 소식이었다. 이승기와 소속사 사이의 두터운 관계는 연예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승기는 데뷔 이래로 한 소속사에 계속 몸담았다. 지난해 5월 1인 기획사를 설립하고도 다음 달 재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끈끈한 의리를 보였다. 그는 2010년 KBS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권진영 대표를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고 인연”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소속사와 권진영 대표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전해왔다. 


이랬던 이들이 법정 다툼까지 눈앞에 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다. 지난 21일 <디스패치>는 단독 보도를 통해 이승기가 데뷔 이래 18년 동안 음원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소속사는 끊임없이 이승기를 ‘가스라이팅’했다. 그동안 소속사는 이승기가 음원 수익 정산에 관해 질문할 때마다 “너는 마이너스 가수라 정산을 못 해준다” “네 팬들은 음반을 안 사준다” 등의 답변으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정산은 없었다. 이에 이승기는 자신이 지난 18년 내내 ‘마이너스 가수’였던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던 중 이승기는 지난해 우연히 자신의 음원 수익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소속사 경영팀 직원이 실수로 정산 관련 문자메시지를 이승기에게 보낸 것이다. 문자 속에는 이승기가 2020년 발표한 곡들의 음원 수입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이를 본 이승기는 내심 기뻤다고 한다. “내가 마이너스 가수가 아니구나” “나도 음원으로 수익을 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승기는 이를 두고 음악계 선배와 대화하던 중, 의문점을 속속 접했다. 선배는 “내가 받는 저작권료가 얼만데, 네가 마이너스일 리가 없다” “소속사와 계약조건이 어떻게 되느냐”며 의문을 표했다.

이승기는 지속적으로 정산 자료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참다못해 꺼내든 방법이 내용증명 발송이었다. 


후크엔터 음원 정산 논란 일파만파
“100억원 중 최소 50억원 받아야”

내용증명으로 공개된 장부에 적힌 매출은 소속사가 그간 이승기에게 했던 말과는 전혀 달랐다. 장부에 적힌 이승기의 음원 매출액을 합쳐보니 총 96억원에 달했다. 이마저도 2004년 6월부터 2009년 8월까지의 자료가 유실된 결과다.

유실된 기간 중 이승기는 ‘내 여자라니까’ 등으로 전국적 인기를 끌며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누락 금액이 확인되면 매출액이 갑절로 뛸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당초 이승기 4·소속사 6에서 이승기 7·소속사 3까지 변화한 계약조건을 감안해도 이승기가 떼인 돈은 5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계산이다.  

소속사는 이 사건에서 돈을 떼먹은 가해자다. 반대로 이승기는 일방적인 피해자다. 하지만 내용증명을 받은 권 대표는 되레 분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권 대표는 이사진과 매니저를 소집한 자리에서 “(이승기 측이)그냥 막 가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내 이름을 걸고 죽여버릴 거야. 내 나머지 인생을 이승기를 죽이는 데 쓸 거야. XXX끼 내가 진짜야”라고 말했다. 배석자가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승기는 지난 17일 소속사 A 이사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김 매니저 통해서 권 대표 반응을 들었다. 정산서는 1년 동안 반응이 없으셔서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취한 행동인데 어떻게 그런 협박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며 “37살 열심히 일하며 사는 제가 왜 18살 고등학생처럼 욕을 먹으며 주눅 들어야 하는지 참담하다. 앞으로는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적었다.

이어 “김 매니저, 정말 진심으로 후크를 위해 열심히 했다. 저도 저지만 김 매니저한테 그러시면 안 됐다”며 “이승기, 이승기 부모, 이승기 매니저, 이승기 지인. 권 대표는 이 모든 사람을 평생 무시했다. 제 사람들 더는 무시 안 당하게 제가 용기 내야겠다. 권 대표의 음해와 협박으로 제가 연예인 못한다면 그것 또한 제 운명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측의 관계는 이제 최악으로 치달았다. 인연의 시작과는 정반대인 모습이다. 앞서 이들은 18년을 함께 걸어왔다. 18년 전 이승기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엄친아’였고, 권 대표는 가수 이선희를 도와 그를 ‘국민 남동생’으로 만들어준 은인이었다.

이승기는 1987년 1월13일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신학초등학교와 노곡중학교, 상계고등학교를 잇달아 졸업했다. 

친구들의 회상에 따르면 이승기는 완벽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 음악까지 모두 잘했다고 한다. 이승기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전교 회장을 두 번씩이나 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성공 동반자?
정산 뒤통수

고등학교 전교 회장 선거 당시에는 데뷔 때문에 출마를 고민하던 이승기가 후보 모집 마지막 날 결국 출마하자 앞서 신청한 후보 두 명이 낙선을 직감하고 자진사퇴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승기는 학교 역사상 최초로 찬반투표로 전교 회장에 당선됐다고 한다. 

공부도 잘해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중간·기말고사뿐만 아니라 수행평가 성적도 늘 상위권을 기록했다. 이승기 본인 회상에 따르면 학창 시절 전교 2등까지 해봤다고 한다.


성적보다도 빛났던 것은 그의 인간성이다. 이승기는 학창 시절부터 선하면서도 강한 리더십을 지녔다. 이승기의 고등학교 담임 교사들은 “학교의 문제아들도 이승기와는 유순하게 지냈고, 보통 반장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타 반 학생들과 달리 이승기네 반은 이승기가 한마디만 하면 군말 없이 따랐다”고 증언했다.

많은 연예인이 학창 시절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승기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공부보다도 쉬는 시간에 하는 축구에 더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은 여느 남학생들과 같았다. 또래 사이에서는 ‘축구 하자면 바로 해주는 멋진 친구’로 알려졌다.

한 동창생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학생 때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전반 20분 뒤늦게 등장한 이승기가 혼자 여러 골을 몰아 넣어 결국 11-1로 이겼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승기는 고등학교 때 ‘사이퍼(Cypher)’라는 밴드부 보컬로도 활동했다. 먼데이 키즈의 리드 보컬인 가수 이진성과 아이돌그룹 하이라이트의 양요섭 역시 사이퍼 출신이다. 이진성은 이승기의 2년 직속 선배로, 오디션에서 직접 이승기를 뽑았다.

이승기는 밴드부 활동 당시 동네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학교 축제가 열릴 때 이승기를 보려고 여기저기서 구경꾼이 몰렸다는 후문이다. 


이선희는 직접 운영하던 라이브 소극장에서 우연히 이승기가 밴드 공연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에 이선희가 직접 가수 제의를 했지만, 정작 이승기 본인은 이선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단칼에 거절했다. 사실 그때 이승기는 ‘이것이 내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며 공연했었다는 후문이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소홀히 하다 보니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각종 잡음 
압수수색

이승기가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이승기의 어머니는 집에 돌아온 이승기의 이야기를 듣고선 “무슨 짓이냐?”며 다시 이선희를 찾아갈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승기의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를 잘하니 당연히 공부로 성공시켜야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었는데, 본인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가수인 이선희가 자신의 아들에게 직접 제안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 이에 그는 십여년간 유지해온 교육관을 뒤바꾸고,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도 막아주며 이승기의 가수 데뷔를 지원했다고 한다.

결국 이승기는 이선희의 제자로 들어가 직접 음악을 배웠다. 둘의 소속사는 물론 후크엔터테인먼트였다. 짧은 연습생 기간 끝에 이승기는 ‘이선희의 애제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승기는 2004년 6월5일 정규 1집 ‘나방의 꿈’ 타이틀곡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누나 신드롬’을 불러왔다. 이에 당대 연예인답지 않은 수수하고 모범생적인 이미지로 차별성을 주면서 데뷔 직후부터 팬덤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승기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후속곡 ‘삭제’도 연달아 히트곡 반열에 올랐고, 2006년 출연한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가 시청률 50%에 육박하는 인기를 끌면서 안방극장에도 연착륙한다.

20세가 된 2007년에는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출연하면서 예능계에 본격 입성했다. 이전까지 연상녀들이 선호하는 ‘미소년’이미지가 강했던 이승기는 <1박2일> 출연을 통해 ‘국민 허당’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다. 이는 이승기의 인기가 연상녀뿐 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2009년 이승기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첫 정극 주연에 도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찬란한 유산>은 최고 시청률 47.1%를 기록했고, 이승기는 ‘국민 남동생’ ‘국민 사위’ 등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승기는 바쁜 활동 중에도 학업과 병역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더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2005년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수시 합격했다. 신문방송학에서 국제통상학으로 전과한 뒤 휴학 한 번 없이 2009년 졸업했다.

들통 나자 적반하장…대표 “죽여버리겠다”
비판 여론 들끓자 면피용 사과문 게재 빈축

졸업 직후 본교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으로 입학해 예정대로 2012년 2월 수료했다. 당시 동국대 재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승기는 인기 많은 연예인답지 않게 출석률이 매우 준수했고, 조별 과제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승기는 2016년 현역 입대한 뒤 제13공수특전여단에서 특전병(정보 특기)으로 복무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던 이승기가 강하 훈련까지 수행하며 성실히 군생활에 임했던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적 호감도는 더욱 올라갔다.

이승기는 전역한 이후에도 예능 <집사부일체> 등에 출연하며 여전한 예능감을 뽐냈다. 2018년 SBS에서 연예대상을 수상하며 개인 최고 수상 경력을 경신하기도 했다.

후크엔터테인먼트는 2002년 설립 이래로 이승기와 함께 고공 성장했다. 이제 소속사는 이선희·이승기 등 가수 외에도 박민영·윤여정·이서진 등 여러 유명 배우들을 관리하는 종합 매니지먼트회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꾸준히 잡음이 일어왔다. 소속사는 이번 사건 이전에도 다른 소속 연예인들과 여러 차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소속배우 박민영의 전 연인인 강종현과의 긴밀한 연관성이 알려지면서 홍역을 앓았다. 강종현은 각종 경제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소속 연예인 출연료 횡령 혐의로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후 사흘 만에 이번 사건이 연이어 터진 것이다.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자, 권 대표는 지난 21일 저녁 ‘모든 것이 저의 불찰입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권 대표는 “최근 회사와 저 개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분께 면목이 없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이기에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거나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드리는 것이 도리이나, 앞선 보도자료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정리 단계인 점과 앞으로 법적으로 다뤄질 여지도 있어 입장 표명을 자제한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추후 후크엔터테인먼트나 저 개인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명확히 확인되면, 물러서거나 회피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 소속 연예인들의 연예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더 이상의 심려를 끼쳐드리는 일이 없도록 더욱 더 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
여전한 여론

하지만 비판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되레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이승기가 내용증명을 보내자 “자기 인생을 걸며 죽여버리겠다던 사람”이 사태가 커지자 바로 사과문을 발표한 건 단지 비난 여론을 모면하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승기 과거 발언 재조명

이승기가 수십억대의 음원 수입을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과거 농담처럼 받아들여졌던 이승기의 발언 일부가 재조명받고 있다.

앞서 이승기는 예능 <아는 형님>에 출연해 “출연료가 얼마인지 모른다”고 밝혔다.

이에 관한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음원 수익 외에 출연료 분배에서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가능성을 이미 제기하고 나섰다.

또 지난 3월 <써클 하우스>에 출연한 이승기는 주식에 빠진 23세 청년에게 “내가 돈이 많아 보이냐”고 물었다.

이에 “네!”라고 답한 청년에게, 이승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다”고 말했다.

이 역시 떼먹힌 정산금과 연관 있는 발언 아니냐는 추측이 이어졌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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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