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대참사> 묵살된 79건 신고 의혹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1.07 11:57:23
  • 호수 14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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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부터 뒤엉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30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최초 신고 시각은 이날 오후 10시15분이며, 이때가 사고 발생 시점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우선 최초 신고는 4시간 전에 있었다. 최초 신고 시각인 오후 6시와 사고 발생 시각인 오후 10시 사이 이태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름과 얼굴을 모르지만 그립습니다. 삶이 이렇게 허무할 수 없습니다. 그대들이 가버린 삶을 하루하루 더 소중히 살아가겠습니다.” “언니가 쓴 블로그의 글을 보면 언니가 아직도 살아있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언니가 너무 그리워.” 

끊이지 않는
긴 추모 행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붙은 메모지의 글귀다. 모르는 사람을 추모하는 글귀도 있고, 지인을 떠나보낸 사람이 그리운 마음을 담아 적은 절절한 글귀도 있다. 이들은 추모하는 마음으로 지난달 30일 핼러윈 데이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의 골목에서 압사사고로 사망한 156명의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그날 이후 이태원역 1번 출구의 풍경이 바뀌었다. 상가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1월5일 국가 애도 기간까지 휴점합니다.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라는 문구가 붙어 있고, 출구에는 국화꽃, 소주, 초코우유, 물병, 사진, 편지 등이 놓여있다. 

종교계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오후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서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지몽 스님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부상당한 분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사고 원인에 대한 세밀한 조사,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금 10억원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일요시사>에 “대체 생때같은 자식이 왜 이렇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내 자식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내 자식이 죽은 것처럼 힘들다”며 “도대체 애들이 왜 죽은 것이냐”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길거리에는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보였고, 멍하니 서서 스님들의 염불을 듣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이 추모 행렬은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최초 신고 시각은 10시15분이고, 이때를 기점으로 압사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곧 최초 신고 시각이 잘못됐다고 발표됐다. 이후 최초 신고 시각을 정하는 발표가 나왔다. 압사사고를 최초 신고한 시각은 오후 6시34분이며, 총 79번의 신고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오후 6시 첫 신고 “압사 위험 있다”
오후 7시부터 길 걸어 다닐 수 없어

압사 관련 신고가 마지막으로 접수된 시각은 오후 10시11분이다. 

최초 신고자는 “지금 골목에 사람이 오르고 내리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 나는 겨우 빠져 나왔는데, 인파가 너무 많아서 통제해달라”며 “경찰이 와서 통제 후 이태원 골목의 인구를 뺀 다음에 다시 사람들을 들어가게 해야 한다. 지금은 나오지도 못하는데 사람이 쏟아져서 들어가고 있다”고 긴급한 상황을 설명했다.


두 번째 신고에는 “인원이 너무 많고 정체가 된다. 사람들이 밀치고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가 났다”고 신고했으며, 오후 8시33분에는 “지금 길바닥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사고가 날 것 같다. 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세 번째 신고가 들어왔다.

이후 신고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압사를 당하고 있다” “지금 인파가 너무 많아서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다. 경찰이 와서 통제해야 한다” “길에서 사람이 다 떠밀리고 있다. 사람들이 다 난리가 났다. 길을 어떻게든 해달라. 진짜 사람이 죽을 것 같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위기다” “지금 심각하다. 안쪽에 사람이 압사당하고 있다” “제발 빨리 와서 인원 통제를 해달라” “(비명소리가 들리며)이태원 뒷길로 빨리 와 달라. 압사될 것 같다” 등의 신고가 줄을 이었다.

즉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접수된 신고에는 공통적으로 ‘압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단순히 사람이 너무 많다거나, 교통정리가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뒤엉키고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결국 이는 잘못 발표된 최초 신고 시각처럼 압사가 시작된 시각 자체도 훨씬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에서 확인된다. 우선 오후 6시에는 이태원역 지하철에 내려서 이태원역 1번 출구까지 올라가는 데만 20분 넘게 걸렸다. 이 시간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버스에 내리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기도 했다.

나무처럼
엉킨 다리

오후 7시에 이태원에 도착한 A씨는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차를 세워놓고 이태원의 핼로윈 분위기를 보러 이태원역 인근으로 걸어갔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이태원역까지 거리는 1㎞ 정도로 가장 빠른 골목으로 걸으면 16분 정도다.

이태원역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싶어도 불법 주정차가 심각해서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차가 양방향으로 꽉 막혀 있었다. A씨는 아빠, 엄마, 동생, 오빠와 함께 길을 걸었다. 각 골목 코너에는 핼로윈을 기념해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식당 앞 대기줄, 식당에서 나와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등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래도 못 걸어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앞사람을 따라서 천천히 걸어가면 앞으로 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점인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상황이 달랐다. 오후 7시에도 골목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애당초 들어갈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특히 해밀톤 호텔 옆 골목 입구에는 코스프레한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어 길이 막히고 있었는데, 굳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많았다. 이 와중에 사람한테 밀쳐져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이태원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고 길을 둘러서 이태원역으로 내려갔다. 

A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고가 난 골목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마 거기를 지나갔으면 집에 더 늦게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참사가 일어났던 것이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고 밝혔다.

오후 8시가 지나가는 시점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B씨는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 이태원을 방문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핼러윈의 이태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파 휩쓸려
슬슬 흘러가


이태원 메인 길거리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골목마다 사람이 많은 정도는 달랐다. 우선 ‘세계문화거리’에서 ‘와이키키 골목’으로 향하는 초입은 걸을 수 있는 정도였다. 초입을 지나자 사람이 점점 더 몰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구간도 있었다. 

멈췄다 섰다를 반복했고 인파에 휩쓸려서 흘러간다는 말이 정확할 정도로, 자력으로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길에서 뒤를 돌아보거나, 동행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야 할 방향으로는 절대 갈 수 없었다.

결국 B씨는 동행과 엇갈리게 됐다. 여태까지 B씨의 동행은 B씨가 다치지 않도록 감싸주고 있었는데 헤어지게 된 것이다. B씨는 떠밀리듯 해밀톤 호텔 옆 골목으로 흘러 내려갔다. 

이때부터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내려가려는 사람, 길에서 넘어진 사람, 내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이 뒤엉켰다. 이 과정에서 키가 작은 B씨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뭇가지가 엉키듯 다리가 엉켰다. B씨는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이미 넘어진 사람도 있었다.

당시 상황은 몇 명의 사람이 넘어져서, 이미 사고가 발생한 시점이었다. B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순간 사람들이 밀거나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왔고 이때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는 것도 힘을 안 줘서 넘어지는 게 아니라,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몸만 앞으로 밀려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옆에 있던 남자의 어깨에 목이 눌려서 숨을 쉬기 힘든 상황이 됐다. 흉부 쪽 공간을 확보해도 키가 작으면 다른 사람 어깨에 목이 눌렸다. 


B씨는 바로 옆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넘어져서 못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겹쳐있던 상황은 아니지만,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B씨가 넘어진 여자를 부축해서 겨우 일어났다.

근처 술집 난간에 매달려서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바닥에는 중간중간 장애물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B씨는 중간에 있었던 클럽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클럽에서는 사람이 많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큰 문제 없이 이태원에서 빠져나갔다. 시간은 오후 8시30분이었다.

“넘어지고, 매달리고
비명 지르는 사람들”

B씨는 “내가 있었을 때는 재미로 사람을 미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빠져나가려고 하는 사람이나 지나가려는 사람만 있었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핼러윈 파티를 구경하러 이태원에 갔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며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참사가 일어난 게 너무 무섭다. 넘어진 사람들, 매달린 사람들,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사람이 조금만 많아져도 숨을 쉬기가 힘들다. 몸은 크게 다친 곳이 없다. 멍들고 어깨가 뻐근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한 정도다. 정말 체구가 작으면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불편한 옷이나 신발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혼잡한 출근길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A씨와 B씨의 증언에서 나오듯 오후 8시부터는 이미 인파에 밀려 사람들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확인된 상황은 아니지만, 분명히 부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오후 9시부터는 더 많은 사람이 이태원역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이때부터는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가득 찼다. 일반적으로 길을 걷거나, 끼어있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거의 앞사람을 끌어안고 걸어가는 형국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내리막길이라 더 위험했다. 이때부터는 간헐적으로 밀리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이 도망치게 됐고, 다시 밀고 밀리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됐다. 골목길 안에서 사람들은 휩쓸려 다녔고 결국 도로로 나가게 됐다. 

이태원역에서 골목길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니 휴대폰 데이터도 먹통이 됐다. 이때부터는 골목뿐 아니라 이태원 전체 지역에 사람이 밀리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술을 마신 사람들이나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사람들은 사람이 밀리는 현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1시간에서 2시간 전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놀이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몸싸움이 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이태원 압사사고 신고가 첫 번째로 들어간 오후 6시부터 마지막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까지 있었던 일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오후 10시15분 전부터 이미 사람이 넘어지고 뒤엉키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만 많이
빨리 왔어도…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한 112 신고자 변모씨는 이태원 참사가 오후 7시부터 예견됐다고 주장한다. 변씨는 “사고는 이미 오후 8시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산발적인 압사가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내가 신고한 것이 오후 9시가 넘은 시점인데, 나는 해밀톤 호텔 컨테이너 창고에 올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5분 간격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찼고, 술을 마신 청년이 모여서 밀기도 했다. 사방에 비명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발에는 옷 같은 것이 계속 밟혔다. 클럽 음악이 너무 크게 틀어져 있어서, 바로 밑에서도 상황을 몰랐다. 나도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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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