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흐흐, 헌데 그런 잘난 척하는 연놈들일수록 팝송과 샹송은 왠지 꽤 신성시하며 한 구절 반 곡조만 틀려도 부끄러워하잖아.
자기 고조할아버지에게 바치는 성곡(聖曲)이라도 되는 듯이 말야.
흥, 그게 한국 대중가요와 같은 미국과 프랑스의 대중적 노래란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못난이 꽃
물론 곡 자체는 정말 좋은 게 많지.
다만 문젠, 우리 한국뿐 아니라 몽골 미얀마 베트남 아프리카 각지에도 제각기 아름다운 감정을 실은 노래가 많건만 우린 그저 미국 위주의 숨소리만 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흠, 괴롭군.
나도 고민을 많이 하는 문제인데…
만일 팝송과 샹송 마니아들이 그 평범하고 유치찬란한 가사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도 숭배한다면 박수나마 쳐 주겠지만…
대부분 좃도 씹도 모른 채 그 속에 무슨 대단히 신비스러운 의미가 깃든 줄 알고 몽상에 빠진단 말야.
흥, 알고 보면 같잖은 개소리의 반복에 불과한 것을….
우리 대중가요보다 수준이 더 높은 것도 아닌데 왜 천박한 싸가지들이 개폼은 다 잡고 지랄이냐구, 씨발…
당신네들, 혹시 이걸 알어?
내가 가황님을 존경하지만 할 말은 하구 산다구.
모창이란 그냥 잘 따라 부른다고 장땡이 아니야.
모방하되 내 개성을 섞어서 색다른 거울로 만들어, 오리지널 조용필 마저도 앗! 하고 엉겁결에 반성의 비명을 지르게 해야 한다구.
그래야 거울로서 서로 비추며 공존할 수 있는 거지….
흠, 여기서 비화를 하나 소개해볼까?
인생의 미스터리가 담긴 전설적인 일화…
진정 위대한 인물들은 탁월성과 더불어 평범한 보통성도 지닌 것 같아. 사실 조 가황 자체가 얼마나 평범한가!
마치 키 작은 시골 청년처럼 생기지 않았던가?
용필이라는 이름 또한 얼마나 범상하고 촌스러웠던가?
그리고 또 데뷔 출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처음 얼마나 유치찬란했던가?
아니, 이건 지어낸 헛소리가 아니라 조 가황님 스스로 토로하신 얘기란 말씀이야.
외모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열등감 콤플렉스에 시달렸지.
아무리 노력해도 꼬마 용필이라는 비웃음밖에 돌아오지 않았으니깐….
일개 모창꾼인 나하곤 달리 대학 문턱에도 못 가봤으니 구슬픔이 오죽했으랴!
흠,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애초엔 가황님 취향에 맞지 않아 술 마시며 허무감에 젖은 채 연습했다잖아.
하지만 모든 달걀 속엔 노른자가 있어.
그분은 악조건을 극복하려는 피 끓는 노력으로 마침내 껍데기를 평범한 노랠 국민 애창곡으로 승화시킨 거지.
하하, 이젠 어떤가?
작달막한 체구 속엔 거인이 들어 숨쉬고, 평범한 얼굴은 만인의 희비애락을 품었으며…
촌뜨기 같은 이름조차도 한번 입속으로 불러 보는 순간 영혼을 그윽히 울리지 않느냔 말씀야.
흠, 내 말인즉슨…
주어진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이나 결점까지도 창의적으로 잘 활용하면 누구든 자신의 못난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얘기지. 으하하하핫….”
일장연설을 뇌까리다가 탁자에 코를 박곤 쿨쿨 잠들어 버린다.
그는 어떤 꿈을 꿀까?
그의 소망은 과연 뭘까?
본인 자신도 잘 모를 텐데 누가 어찌 알랴.
피에로 씨는 모창 가수와 좀 친한 편이었다.
당대 인기 코미디언인 ‘절뚝밤피’를 누구처럼 잘 모방해 자신도 연예계로 진출하리라는 야망을 은근슬쩍 내비치곤 하는 피에로 씨의 얘기에 의하면, 조필필의 진짜 속셈과 꿈은 유명가수를 빙자한 여자 사냥이라는 것이었다.
숫처녀를 딱 열 명만 따먹는 것.
그게 사실인지 허풍인진 모르지만, 필필은 때때로 눈길 끄는 아가씰 보면 작업을 걸어 보려 슬쩍슬쩍 시도하곤 했다.
하지만… 실적은 전무했다.
간혹 피에로 씨가 짓궂게 놀려대면, 필필은 진실한 사랑이란 영혼과 정감의 교류라고 강변했다.
처녀란 처녀막의 유무가 아니라 순수 정신의 상징이라고 덧붙였다.
피에로 씨가 킬킬 비웃어도 필필은 별 상관하지 않았다.
정신과 영혼이 서로 교류하게 되면 육체적 합궁은 곧 따라온다는 얘기였다.
창녀집, 즉 돈을 주고 육신을 매매하는 곳에 절대 출입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란다.
둘 다 몽상적이고 망상적이었기에 현실에서는 어떤 여인에게도 왕자나 야수가 되지 못했다.
나중에 그들은 한 여자를 놓고 숙명적인 라이벌이 된다만….
모창 가수의 헛된 망상…뻔한 작업
강제 수용된 채 온갖 망측스러운 고초
하숙집은 많았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를 함께 받는 곳은 거의 없었다.
무지개 식당만 해도 남녀 하숙생의 비율은 8:2 정도였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곤 해도 특별히 고급이거나 여성 전용이 아닌 일반 하숙에서 여성은 홍일점 혹은 양념쯤으로 여겨졌다.
설령 당찬 여자가 용기내어 남녀 평등을 부르짖어 본들 어찌 고정관념을 쉬 타파하겠는가.
하숙엔 나름대로 흘러 내려온 생리가 있는 걸.
의식주가 함께 섞인 생활이랄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 적응하게 되면 큰 불편이나 마찰은 그닥 없었다.
언젠가 한번 조필필을 따라 피에로 씨가 청파동 쪽의 어느 여성 전용 하숙에 들어가 혹시 묵는 게 가능한지 물어 보았는데 단박 거부당했단다.
피에로 씨가 짐짓 계속 애걸하자, 하숙집 마담 왈 숙식비를 세 배 낸다면 특별히 전망 좋은 독방을 내줄 수 있다기에 씁쓸히 발길을 돌렸다며 킬킬 웃었다.
무지개 하숙집엔 여자 하숙생이 세 명 있었다.
식권파가 아닌, 숙식비를 완납한 진짜 하숙생….
그 외에 특별히 하숙비를 내지 않고 상주하는 여자는 여주인의 딸과 여동생이었다.
무남독녀 외딸은 서른을 갓 넘긴 미혼 여성이었는데, 엄마를 닮지 않아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다.
혹시 엄마의 강단성이 싫어 스스로 부드러움을 택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분위기를 약간이나마 중화시키는 역할은 했다.
일종의 상반(相反) 미학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자신의 엄마뿐만 아니라 여타 하숙인에 대해서도 그런 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얼굴은 평범해도 목소리를 한번 들으면 황홀해진 나머지 인간(부모)의 작품이라기보다 천상의 예술이라고 예찬하는 자도 있었다.
옥구슬 구르는 듯하다느니 뭐니 과장스러운 옛말도 있지만, 그 목청엔 정신과 마음을 문득 순화시키고 영혼마저 울리는 고혹적인 매력이 살짝 깃든 듯싶었다.
반면 그녀의 이모, 즉 여주인의 언니는 크게 말하든 작게 얘기하든 늘 쇳소리가 섞여들었다.
그 노녀는 60세가 넘었는데도 마치 처녀인 양 굴길 좋아했다.
길게 기른 머리칼을 갈색이나 검정 혹 때로는 보라색으로 염색하곤 화장까지 진하게 한 모양새였다.
분가루가 흩날릴 만큼 허연 얼굴에 빨간 루주를 바른 채 젊은 하숙생들에게 아양을 떨었다.
처음엔 타고난 색기가 지나쳐 그런가 싶어 퍽 불쾌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조카 아가씨의 말에 따르면, 이모(노녀)는 오래 전 꽃다운 스무 살 무렵(1980년 초) 봉재공장 잔업을 겨우 마치고 돌아오다가 통행금지령 위반으로 경찰에게 붙잡혀 지옥 같은 형제복지원엘 끌려 갔단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그곳에 강제 수용된 채 성폭행 등 온갖 망측스러운 고초를 당한 끝에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다는 얘기였다.
잃어버린 청춘
그래서 그런지, 늦게나마 억울히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고 싶은 희망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며 조카 아가씨는 고갤 살래살래 흔들었다.
노녀는 청년들에겐 맛난 음식을 듬뿍 가져다 주었지만, 늙수그레한 로맨스 그레이 영감들이 작업 걸려는 기색을 살짝이나마 보이면 짐짓 질색을 했다. 실상 객관적으로 보면 더 어울리는데도….
하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누가 어쩌겠는가.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