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세계 핵전쟁이 임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엄포를 놓고 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을 사용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핵전쟁이 시작되면)아마겟돈이 올 것”이라고 응수했다. 세계 핵전쟁이 실제로 발발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긴 할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핵전쟁에 대비한 현재 한국 정부의 처세술은 ‘전무’한 상태다.
인류는 ‘인류 종말’에 대한 걱정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문명을 이룩한 이래 천적이 없어진 인류가 스스로에게 엄격한 경고를 날려온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인류가 멸종될 것이라 말하는 ‘기후종말론’부터 인류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걱정하는 ‘AI 종말론,’ 우주 소행성과의 충돌로 지구가 폭발할 것이라 믿는 ‘소행성 충돌론’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히로시마
2000배
다행히도 이 같은 종말론들은 모두 ‘낭설’로 치부될 만큼 당장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인류의 안위를 걱정할 만큼 실질적인 위협이 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능성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낭설이 하나 있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종될 것이라 믿는 ‘핵전쟁 종말론’이다.
우크라이나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가 ‘핵전쟁’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탓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벌어진 ‘우-러 전쟁’ 초기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금방 패할 것으로 보였다.
약 70배에 달하는 군비 지출 규모, 100배가량 차이 나는 공군력과 해군력 등 모든 지표는 우크라이나의 ‘조기 패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는 선전 중이다. 수도 키이우를 사수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똘똘 뭉쳐 저항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의용군이 참전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런 선전을 예측하지 못했던 나라에는 러시아도 포함된다.
몇 주 내로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추가 징집 명령을 내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암울해져만 간다.
그러던 중 푸틴 대통령을 ‘대노’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군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인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를 폭파시킨 것이다.
현지 매체들은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평가했다. 크림대교가 푸틴에게 보급로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2014년, 푸틴은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했다. 크림반도 사태는 냉전시대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의 영토가 넓어진 사건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는 푸틴의 ‘악행’으로, 러시아 내에서는 푸틴의 ‘공적’으로 기록된 바 있다. 푸틴 대통령 스스로도 ‘크림반도 강제 점령’을 본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언급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마자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 건설을 추진했다. 총 5조원 가량 들어간 이 공사는 푸틴의 ‘유도 상대’라 알려진 최측근 재벌이 맡아 수년 만에 완성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다리 개공식에서 직접 트럭 운전을 해 다리를 건너가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건설을 자축했다.
크림대교 폭파 후 심각해진 우-러 상황
핵 누르면 나토 참전 불가피 ‘3차 대전’
러시아의 자존심이자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가 파괴되자 푸틴 대통령은 전격적인 ‘피의 보복’을 감행했다. 지난 10일 오전(현지시각) 러시아는 키이우와 중남부 지역, 서부 지역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 75개 미사일을 발사했다.
현지 취재진은 전체적인 피해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키이우에서만 적어도 네 차례 큰 폭발이 발생했고 최소 19명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매체 BBC는 “초기 일부 폭발은 키이우 중심부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전쟁이 시작된 후로 키이우 중심부가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전례 없던 보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번 폭격은)에피소드 1화에 불과하다”며 추가 보복 계획을 시사했다. 추가 보복 계획에는 ‘핵무기 사용’도 배제되지 않은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대국민 방송 연설에서 “러시아의 영토가 위협받을 경우, 국익 수호와 국민 안전을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지체 없이 동원할 것”이라며 “이는 허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모든 수단’에 핵이 반드시 들어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충격적인 연설을 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의 발언이 허세가 아님을 재차 확인해줬다. 그는 “푸틴이 전술핵이나 생물무기 또는 화학무기를 말할 때는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핵 위협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러시아가)핵무기를 사용했을 때 아마겟돈으로 끝나지 않게 할 능력 같은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아마겟돈’이란 성경에 등장하는 ‘인류 종말 전쟁’이다. 성경 내용에 따르면, 아마겟돈 후 현 인류는 종말을 맞이하고, 신이 ‘새 인류’를 창조한다.
푸틴은 한다?
아마겟돈 공포
군사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아마겟돈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저 정도로 ‘센’ 발언이 구체적인 보고 없이 가능하겠냐는 분석 때문이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무수히 많은 예측을 쏟아냈고, 대부분 사실로 귀결됐다.
언론은 그의 예측이 맞아들어갈 때마다 바이든에게 보고된 미군의 정보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정확하다고 분석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핵전쟁 가능성을 직접 시사한 이면에 ‘러시아의 핵사용 징후 보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푸틴의 핵 발언 이후, 미국은 러시아의 핵을 찾아내기 위해 미군 위성과 정찰기를 총동원하고 있다. 미 정치 일간지 <폴리티코>는 백악관 인사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러시아를 전보다 더 밀착해서 감시하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매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우주와 공중 모두를 감시 대상에 넣고 있으며 핵무기 예상 배치 지역에 상업용 위성까지 동원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고 있는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갖고 있다. 신뢰도가 높은 매체 중 하나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가 총 7454개라고 보도했다. 이 중 전략 핵탄두는 2565개, 비전략 핵탄두는 1830개, 비축 핵탄두는 2889개다.
위력도 상당하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러시아는 미사일 ‘사르마트’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르마트는 '악마의 미사일'이라 일컬어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최대 18000km를 날아갈 수 있는 초장거리 미사일이다.
군 전문가
한 목소리
이날 사르마트에 장착된 핵탄두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의 약 20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텍사스주 전체나 프랑스 영토 전체를 순식간에 증발시킬 수 있는 위력이다.
러시아는 현재 가장 많은 수의 핵탄두를 만들었을뿐더러 초경량 기술까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제’ 핵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떨어지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근 국가들 또한 피해를 보게 된다. 폭탄 자체의 위험만큼 치명적이라 평가받는 낙진 피해가 접경 국가들에게 빠르게 퍼지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러시아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 이유다.
접경국에 대한 피해가 현실화된다면 세계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핵 사용을 걱정하고 있는 접경국이 모두 군사공동체인 ‘나토(NATO)’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나토는 경제적, 정치적 색채를 거의 띠지 않는 대신, 강력한 군사적 색채를 띤다. 나토 헌장 제5조에는 “어느 일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다. 즉 나토 회원국에 대한 낙진 피해는 회원국 전체의 피해로 인식되는 것이다.
비록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이 위험에서 대한민국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서방 세계에 대항해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있는 나라 중 북한도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억제하기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은 ‘반미’ 블록화를 모색해왔다.
그리고 이 블록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북한과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전투를 지속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해왔다. 양측의 국력 격차가 점차 차이 날 무렵인 1980년대, 북한은 군사력에서라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핵개발을 시작했다. 한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시키려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정부 처세? “사실상 없다”
전술핵, 사드 등 무용지물?
그 결과, 북한은 현재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평가받고 있고, 이는 한국을 괴롭히는 만성적인 근심거리로 자리 잡았다. ‘북핵’이라는 고질병은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발현됐다.
비교적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는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는 더욱 그랬다. 북한은 본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늘 무력 시위를 펼쳤고, 반응이 없으면 ‘더 센’ 무력 시위를 보여줘왔다. 최근 선을 넘는 위협 비행이나 일본 국경 인근에 발사한 미사일이 대표적인 예다.
윤석열정부도 굴하지 않았다. 전술핵 재배치를 계획하고있는 것이다.
<일요시사>와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가 실제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있었던 저수지 미사일 발사에 정부가 크게 놀란 상태”라며 “저수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전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만일 저 주장(저수지에서 미사일 발사)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사일이 발사된 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술핵 재배치 의지에 대해서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전술핵 재배치는 그 자체로 ‘무력의 평등’을 가져오는 의미가 있는 만큼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될 것”이라 전했다.
그러나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에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일요시사>는 용산에서 근무 중인 군인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실상 핵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드가 유일하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사드 요격으로 북핵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며 “전술핵을 재배치한다고 해서 핵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같이 사용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 단계까지 넘어가면 그 이후 군사적 대응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핵 대응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고 일침한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반도에 핵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미국이다. 전술핵을 용인해줄 리가 없다”며 “갖다 놔도 무용지물이겠지만 북한 무력 시위에 명분만 더 만들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이 핵을 사용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 이거는 말이 안 되겠지만 ‘핵 사용’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사용 전
대처해야
그는 통화 말미에 “전술핵 재배치와 사드가 모두 전문가들에게 ‘실익 없는 안보’라고 평가받는 상황에서, 끊임없는 잡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분히 정치적으로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핵전쟁 위험이 엄습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필사적으로 처세술을 연구해야한다. 다만 그 처세술은 핵 사용 ‘후’가 아닌 ‘전’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