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도 모르는’ 아이들 문해력 이대로 좋은가

양극화 심해지고 
비판력 사라지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사흘간 무운을 빌었는데 금일 또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최근 불거진 문해력 논란을 관통하는 우스갯소리다. ‘사흘’을 넘어 ‘심심한 사과’로 이어지는 문해력 논란이 뜨겁다. 한국의 실질적 문맹률 논쟁부터 세대 간 갈등, 공교육의 실패와 양극화 등 불똥이 곳곳으로 튀고 있다. 단순히 혹자의 무지라며 비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발단은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카페가 SNS에 올린 공지글이다. 이 카페는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것을 두고 “예약 과정 중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고 적었다.

곳곳 불똥
일파만파

문제는 꽤 많은 SNS 이용자가 ‘심심한’의 뜻을 잘못 받아들이면서 발생했다. 본래 의도한 뜻인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대신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로 이해한 것이다.

이에 일부 이용자는 해당 공지에 “심심한 사과라니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앞으로 공지글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올리는 게 어떨까” 등 날선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반응이 화제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간간히 알려졌던 문해력 논란 사례가 함께 급부상했다. 예컨대 ‘금일’로 표기된 서류 마감일을 ‘금요일’로 잘못 알아 인사담당자와 갈등을 빚은 취업준비생의 일화, ‘고지식하다’를 ‘높은 지식(high+Knowledge)’으로 알았다는 등의 일화다.


지난해 대선 기간에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한 안철수 대표를 향해 “무운(武運)을 빈다”고 한 발언을 “운이 없기(無運)를 빈다”고 잘못 해석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외에도 사흘을 4일로 오인하는 일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된 사례다. 

일각에서는 예견된 비극이라는 평이 나온다. 몇 년간 국민의 평균적인 문해력이 떨어지는 추세가 꾸준히 보였다는 의미다.

지난달 23일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2017년 조사 결과, 전체 성인의 22%인 960만명이 일상생활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실상 문맹인’이라고 보고했다. 실질 문맹이란 글을 읽고 쓸 줄은 알지만,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의미한다. 일명 문해력의 문제다.

최근 교육현장 일선에서도 비슷한 하소연이 전해진다. 학교와 학원 교사들은 학생들의 낮은 문해력에 덩달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테면 학생들이 교과서나 교재를 읽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이다. 

한 교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수업 내용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교과서에 적힌 단어를 설명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다. 학생마다 다르긴 하지만 수업 진행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많은 학생의 어휘력‧문해력이 떨어져 있다”고 하소연했다.

성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전반적인 읽기 소양 수준 역시 전반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말 펴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비교적 크게 하락했다.


한국 학생들은 읽기·수학·과학 등 세 가지 영역 평균 점수가 2009년에 비해 모두 하락했다. 이 중 읽기 영역의 성취 낙폭이 가장 컸다.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문장이나 짧은 단락의 의미를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축자적 의미 표상’의 정답률이 두드러지게 낮았다. 이 때문에 기초적 읽기 능력과 관련된 분야에서 성취가 낮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심심한 사과’ 심심한 게 뭐냐? ‘발칵’
교과서·교재 내용 이해 못 하는 학생들

읽기 능력이 떨어진 원인으로는 단연 독서율 감소가 꼽힌다. 국내 독서율은 매년 내림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만 19세 이상 성인 6000명과 초등학생(4학년 이상) 및 중·고등학생 3320명을 상대로 시행한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나타났다.

2019년에 시행된 이전 조사에 비해 각각 8.2%포인트, 3권 줄어든 수치다. 초·중·고교 학생의 경우에는 연간 종합독서율은 91.4%, 연간 종합독서량은 34.4권이다. 이 역시 2019년과 비교하면 독서율은 0.7%포인트, 독서량은 6.6권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 문해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거나 젊은 층의 문해력이 기성세대보다 낮은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근거가 되는 지표는 2013년 OECD가 실시한 국제 성인 역량조사(PIAAC)다.

해당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16~64세)의 문해력은 중상위권이었다. 16~24세 청년층은 최상위권, 45∼54세는 하위권, 55∼65세는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실질문맹률 관련 지표 해석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실질문맹률을 지적하는 이들이 사용한 근거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실질문맹률 75%는)21년 전 조사를 이용한 침소봉대”라며 “지금은 실질문맹률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흔히 인용되는 ‘실질문맹률 75%’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2004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교육인적자원지표’다. 이는 문해력 단계를 1~5단계로 나눠 1단계는 문해력에 취약한 수준, 2단계는 단순 작업에는 대응할 수 있지만 새로운 직업 등을 학습하는데 문해능력이 부족한 수준 등으로 분류했다. 

2001년 진행한 조사에서는 1단계가 38.0%, 2단계가 37.8%로 집계됐다. 이 둘을 합하면 약 75%가 된다.


올라갔나
떨어졌나

하지만 최근의 문해능력 조사에서는 수치상으로 큰 변화가 있다는 게 신 교수 설명이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를 살펴보면 1단계 비율은 4.5%, 2단계 비율은 4.2%로 집계됐다.

신 교수는 “1~2단계를 실질문맹률이란 기준으로 하더라도 2020년 조사에선 8.7%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 설명했다.

상반된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세대 간 갈등도 확전 양상을 보인다. 한쪽에서는 유튜브 시대에 독서나 한자 교육 부족이 낳은 어휘력의 빈곤을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선 반지성주의, 반엘리트주의적 흐름이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문해력 부족 자체뿐 아니라 이를 바로잡는 지적에 대해 ‘잘난체하는 꼰대’로 여기는 태도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이들은 ‘일상 표현을 배제하고, 굳이 어려운 단어를 선택하는 행태가 문제’라는 주장을 편다. 상식-비상식의 대립이 세대 갈등으로 치환되는 흐름이다.

이와 관련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의 올바른 지적조차 꼰대 문화로 치부하며 ‘내가 주류다’라는 식으로 세몰이하는 네티즌이야말로 ‘젊은 꼰대’의 전형”이라고 일침을 던졌다.


이외에도 ‘본질적 문제는 종전의 문해력 정의에서 찾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선 기존의 활자 인식 능력을 넘어 온라인정보해석 능력이 요구된다. 일명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가 낙제점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바꿔 말하면 디지털 기기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온라인정보를 바르게 해석하거나 취합한 정보를 활용해 더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외려 떨어진다는 뜻이다.

정작 문제
다른 곳에

한국 학생의 디지털 문해력은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다. 지난해 5월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학생(만 15세)이 온라인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문제를 맞히는 ‘정답률’은 25.6%에 그쳤다. 미국 69.0%, OECD 평균 47.4%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득수준에 따라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벌어지고, 또 이로 인해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악순환이 전망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울 중고교생 1만3141명을 조사한 결과, 부모 경제력에 따라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는 지난달 28일 ‘Z세대 서울학생의 디지털 리터러시와 학교 환경의 관계’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정보 활용, 미디어 비판 등에 대한 개인 능력은 가정 경제 수준에 따라 최대 9.1%포인트까지 격차를 보였다.

이를테면 ‘인터넷정보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문항에 가정환경이 ‘상’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81.5%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중’ ‘하’라고 응답한 학생이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75.7%, 72.4%에 그쳤다. 

온라인플랫폼 및 자료학습 활용, 인터넷정보 사실 구분 여부 등 다른 문항에서도 경제 수준에 따라 3∼9%포인트씩 차이가 났다. 보고서는 “가정환경에 따른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유의미하게 나타났다”며 “취약계층 학생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 없는 게 무운?
잘못 해석 촌극도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학습 능력 격차와 성인이 된 후 소득격차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청소년 시기)디지털 활용 능력 차이가 향후 직업 선택의 폭까지 좌우할 수 있다”며 “디지털 교육 기반이 열악한 지역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핀셋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대통령까지 관련 발언을 통해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인재 100만명 양성 방안’을 보고받고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체계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관련 부처인 교육부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2022 개정 교육 과정’ 시안에는 문해력 교육 보충안이 대거 포함됐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국어 수업시간이 지금보다 34시간 늘어날 예정이다. 고등학교에선 미디어 문해력을 높일 목적으로 ‘매체 의사소통’ 과목을 신설한다.

‘독서와 작문’ ‘독서 토론과 글쓰기’도 선택과목으로 도입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방침이다.
새 교육과정은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 2025년 중·고교 1학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교육부가 즉각 행동에 나선 배경은 이미 문해력 저하 현상을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력조사 결과를 통해 문해력 저하 현상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는 것.

지난해 교육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고교 2학년의 국어과 ‘보통학력’ 이상 비율은 64.3%에 그쳤다. 2019년 77.5%였던 게 2년 만에 13.2%포인트 하락했다. 중학교 3학년 역시 같은 기간 82.9%에서 74.4%로 쪼그라들었다.

이에 새 교육과정은 취학 초기부터 기초 문해력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교육부는 개정 국어과 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유형의 글, 작품, 복합 매체 자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한다”고 명시했다.

가르치면
달라질까

일부에서는 언어 교체 속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한자어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보수적인 접근”이라며 “이보다 어려운 한자어로 된 개념어 학습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관련 주장을 일축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해력 논란 타고…관련 도서 열풍

최근 불거진 ‘심심한 사과’ 논란에 서점가가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다.

어휘력·문해력 도서를 찾는 이가 부쩍 늘어나면서 해당 분야 출간‧판매가 활발하다.

지난 1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어휘력·문해력 관련 도서 출간이 최근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교재류를 제외한 어휘력·문해력·글쓰기·맞춤법 관련 인문서 출간 종수를 집계한 결과, 116종으로 확인됐다.

전년 동기 대비 43.21% 증가한 수치다.

일찍이 자녀의 기초 어휘력과 문해력을 길러 주려는 움직임도 분주하다.

코로나19 유행의 여파로 학습 격차가 벌어진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어린이 대상 관련 도서는 2020년 5종에서 지난해 33종으로 늘었으며 올해도 전년 동기 대비 276.34% 판매 성장률을 보인다.

다만 이 같은 독서 열풍이 세대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작 문해력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고 평가받는 Z세대의 참여가 비교적 저조한 탓이다. 

예스24 관계자에 따르면 관련 도서 구입 연령대는 40대(33.82%) 30대(25.98%) 50대(17.39%) 20대(16.34%) 순이다.

구입 연령대만 놓고 보면 문해력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장년층의 도서 구매 비율이 청년세대 몫을 웃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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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